How To Ruin A Love Comedy RAW - Chapter (433)
EP.433 렌카 조교일지 5 #5
“떡 더 먹어.”
테이블의 오와 열을 맞추고 있는 내게 다가온 렌카의 말.
주방에서 열심히 일을 하고 있는 삼촌들을 슬쩍 곁눈질한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괜찮아요.”
“먹어.”
“아니, 괜찮다니까요? 나중에 먹을게요.”
“먹으라고.”
수줍은 자신의 마음을 떡 권유로 드러내는 게 웃기다.
변화하고 있는 게 눈에 보여서 기특하기도 하다.
하지만 하루아침에 렌카가 달라질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지금은 이렇더라도, 조금 풀어주면 분명히 예전의 그녀로 돌아올 거다.
새어나오려는 웃음을 참아낸 내가 말했다.
“나중에 먹을게요. 지금은 속이 더부룩해서요. 차라리 삼촌들한테 드리는 게 어때요?”
“삼촌들은 아까 먹었어.”
“그럼 부장이 먹어요.”
“시끄러. 탈의실에 놔둘 테니까 브레이크 타임에 먹든가 해.”
“알았어요.”
렌카가 탈의실로 들어가자 큰삼촌이 날 호출했다.
뭔가 싶어 주방으로 가보니, 그가 유니폼과 같은 색의 두건을 내밀고 있었다.
“이거 써라. 렌카한테도 주고.”
“웬 두건이에요?”
“우리야 민머리라 괜찮지만 너랑 렌카는 음식 나르다가 머리카락 떨어질 수도 있잖냐.”
“합리적인 이유네요.”
“그렇지? 아, 맞다. 렌카한테 사진 보냈는데 너도 봤냐?”
다소 뜬금없는 소리를 들은 내 귀가 쫑긋했다.
“사진요?”
“못 봤나보네. 저번에 우리가 주…”
큰삼촌이 의외라는 낯으로 설명을 해주려고 할 때였다.
“아 큰삼촌! 이거 뭔데! 내가 이거 여기 놓지 말랬잖아…! 손님들한테 민폐라니까?”
어느새 홀로 돌아온 렌카가, 구석을 보며 큰삼촌을 나무라기 시작했다.
그에 눈을 끔벅인 큰삼촌의 시선이 렌카에게로 향하자, 그녀가 날이 선 표정으로 큰삼촌에게 이리 오라며 손짓을 했다.
“빨리 와봐…!”
“뭐가 있는데?”
“와보라니까?”
“알았다.”
“작은삼촌도 와서 봐…! 내가 못 살아 정말…”
약간의 오버를 곁들인 태도인데, 혹시 렌카가 큰삼촌과 내 이야기를 엿듣다가 다급하게 방해하려고 하는 건가?
정황상 그렇게 보이긴 한다.
뭐길래 저렇게까지 기를 쓰면서 막으려고 하는 걸까?
굉장히 궁금한데, 나중에 삼촌들에게 넌지시 물어봐야겠다.
아니, 삼촌에게 답을 듣지 말고 나중에 렌카가 자발적으로 말하도록 해야겠다.
나는 구석에서 쑥덕거리기 시작한 세 사람을 보며 헛웃음을 치고는 머리에 두건을 둘렀다.
이후 삼촌들과 이야기를 끝낸 렌카가 주뼛거리며 다가오자 대수롭지 않게 상황을 넘겼다.
“정리 마저 할까요?”
대화내용이 전혀 궁금하지 않는다는 듯한 내 얼굴을 보고 잠깐 당황하던 렌카는, 다소 안심해하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어.”
“이거 쓰래요.”
무덤덤하게 두건을 내밀자, 렌카가 내키지 않는 기색을 풍기며 그것을 받았다.
머리가 망가지는 게 싫은 건가?
그보다는 두건을 쓰면 우스꽝스런 모습이 될까봐, 그리고 내게 놀림을 받게 될까봐 걱정스러워서 저러는 듯했다.
지금부터 방임주의로 갈 거라 그런 걱정은 할 필요 없는데…
우리 렌카는 생각이 너무 많아서 탈이다.
내뱉는 말은 그렇지 않은 것 같아도 말이다.
그렇게 오픈 준비를 마친 나는 렌카와 함께 가게 문을 열었다.
방학시즌이라 그런지 오픈을 하자마자 사람들이 쏟아지듯 밀고 들어왔는데, 그리 바쁘지 않을 거라던 삼촌들의 말이 무색해지는 순간이었다.
브레이크 타임에 가기도 전에 진이 빠질 것 같다. 알바가 타이밍 맞게 잘 그만두었구나.
책임감 같은 건 없는 자식. 만나면 두들겨 패주리라.
그러한 생각을 하며, 나는 렌카와 영업용 미소를 장착하고 손님들을 맞이했다.
**
“뭐 먹을 거냐?”
“그냥 남는 거 주세요.”
“그럼 생선 뼈 우려서 국으로 만들어 주면 되지?”
“재미없습니다.”
“서운하군.”
입맛을 찹찹 다신 작은삼촌이 주방에서 요리를 시작했다.
그 사이 땀으로 살짝 젖은 두건을 벗은 나는, 거울 앞에서 앞머리를 매만지는 렌카를 흘깃거리고는 행주를 집어 식탁을 닦았다.
삼촌들의 가게가 나름의 입지를 갖게 된 것 같아서 기쁘긴 하지만 알바는 힘들다.
특히 관광지라서 더더욱.
이렇게 보면 삼촌들은 참 근성이 있다는 말이지.
잘 안 됐을 때도 포기하지 않고 활로를 찾잖아.
젊은 사람들의 의견을 받아들일 줄도 알고.
물론 추진력이 없는 건 단점이라고 할 수 있지만, 조금은 존경할만한 것 같다.
부스럭.
식탁 정리를 끝마치고 요리가 완성될 때까지 의자에 앉아 쉬고 있는데, 렌카가 내 맞은편에 앉더니 검은 봉지를 내밀었다.
“떡 먹어.”
또 저 얘길 하고 있구나.
주문, 메뉴 체크, 전달 등… 공적인 부분을 제외한 렌카와의 사적인 대화는 가게를 오픈하고 지금이 처음이다.
“감사합니다.”
무감정한 톤으로 인사를 한 나는 봉지 안에 있는 떡의 비닐을 벗겼다.
그리고는 말을 이었다.
“밥 때 됐으니까 하나만 먹을게요.”
“그래.”
“부장도 드세요.”
“됐어. 그리고 잠깐 얘기 좀 해.”
“나 떡 먹고 있는데.”
“먹으면서 들으면 되잖아. 따라와.”
통보하듯 말한 렌카가 가게 밖으로 나갔다.
입 안에서 찐득이는 떡의 식감을 느끼며 그녀를 따라나간 나는, 삼촌들이 듣지 못하게 가게의 미닫이 문을 닫았다.
그러자 삼촌들이 뭘 하는지 안쪽을 살펴본 렌카가 팔짱을 꼈다.
“너 어제랑 오늘 이상한 거, 네 스스로도 알지?”
“그랬나요? 어떤 점이?”
“아까부터 계속 모르는 척하지 마. 애니쉐어로 쪽지하지 말라고 해서 삐쳤냐?”
“제가 그런 걸로 왜 삐칩니까.”
“그럼 치나미랑 호텔에 가지 않겠다고 해서…”
“무슨 그런 소리를 해요? 그런 거 아니니까 이상한 생각하지 마세요.”
“아니면 대체 왜 그러는 건데?”
훌륭한 노예를 양성하기 위한 교육의 일환이란다.
라는 말을 지금 어떻게 하니.
“제가 어쨌다고 그래요?”
“하… 사람이 되게 쪼잔하네. 진짜 몰라서 물어?”
“서로의 생각에 차이가 있을 수 있으니까 설명해줄래요?”
“…..”
렌카의 입이 꾹 다물렸다.
중간중간 쉴 수 있는 짧은 텀이 생겼을 때, 평소처럼 노예라고 하거나 희롱적인 말을 하기는 커녕 조용한 곳으로 불러서 스킨십도 하지 않으니 수상하긴 한데…
위화감을 느끼고 있는 게 심증뿐이라서 이걸 대놓고 말하기는 힘들겠지.
“너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건데?”
화제를 돌리며 내게 먼저 답을 요구하는 그녀.
그녀를 살짝 도발해야겠다고 생각한 내가 대답했다.
“알바가 힘들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이…!”
눈을 부라리는 모습이 무척 예쁘다.
당장 저 도전적인 표정을 헤롱헤롱하게 만들고 싶어지는 기분이다.
“힘들어서 그렇다는 거야?”
“뭐가 그렇다는 건지 잘 모르겠어요.”
“사람 답답하게 하고 있… 저리 안 가!?”
어느새 가게 벽에 달라붙은 삼촌들을 발견한 렌카가 빼액 소리를 질렀다.
그러자 제 발 저린 도둑마냥 어깨를 들썩인 두 사람이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식탁을 가리켰다.
요리가 다 됐다는 뜻. 누가 뭐랄 것도 없이 동시에 손가락질을 하는 게 참 쌍둥이스럽다.
“…. 됐어. 나도 이제 신경 끌래.”
한숨을 푸욱 내쉬고 저리 중얼거린 렌카가 입을 삐죽거리며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는 드르륵거리는, 의자가 끄는 소리를 내며 식탁에 앉아 젓가락을 들었다.
“싸웠냐?”
“아 뭐래…!!”
“싸웠네?”
“좀! 저리 가라고!”
“우리도 밥 먹어야하는데.”
“따로 떨어져서 먹어!”
“조카가 서운한 말을 하네. 가족이라는 정도 없냐 넌?”
“없어.”
“눈물이 나올 것 같군.”
“나가서 울어.”
숨을 크게 삼키고 가게로 돌아가니 삼촌들이 렌카를 마구 놀려대고 있었다.
저러니까 렌카가 삼촌들더러 철이 없다고 뭐라 했던 거였구나.
허당 기가 있는 줄은 알았지만 저렇게 상당할 줄은 몰랐다.
그래도 괜히 눈치를 보며 미온적으로 행동하지 않고, 저렇게 구니까 나름 분위기가 환기되는 것도 같다.
평범한 사람 같았으면 삼촌들이 저랬을 때 진짜로 화가 났을 텐데…
렌카는 삼촌들의 저 철부지 같은 행동에 겉으로만 화를 내지, 그다지 의미를 크게 두지는 않는 듯한 모습이었다.
오래 봐온 가족이라서 그러려니 하는 건가 싶다.
“켄! 와서 밥 먹어라!”
힘차게 날 부르는 큰삼촌에게 피식 웃어보인 나는, 자연스럽게 렌카의 옆에 앉았다.
그러자 신경질적으로 젓가락질을 하고 있던 그녀의 몸이 살짝 들썩였다.
맞은편이 아니라 바로 옆에 엉덩이를 붙일 줄은 몰랐나보지?
은근히 기뻐하고 있는 것도 같다.
“초밥이에요?”
“그래. 중뱃살 남는 거 조금 있어서 만들어봤다. 오후엔 초밥 안 하니까.”
“비쌀 텐데 이래도 돼요?”
“위장에 들어가면 다 똑같은 음식이지.”
부담 갖지 말라고 배려를 해주는구나.
역시 인상과는 다르게 착하다니까.
저런 사람들이 진짜 화가 나면 무시무시하긴 한데… 조심해야겠다.
“그럼 잘 먹겠습니다.”
“오냐.”
**
가게 영업은 성황리에 종료되었다.
오늘따라 손님들이 더 많이 왔다고 좋아라하던 삼촌은, 샤워를 끝내고 나온 렌카와 내게 흰 봉투를 나누어주었다.
오늘 일당이었다.
“감사합니다.”
“안 받겠다더니?”
“거절해도 준다는데 안 받을 수가 있나요.”
“갑자기 아까워졌는데 다시 내놓으면 안 되냐?”
“그럴 수는 없죠.”
삼촌들과 간단한 농담을 주고받은 나는, 뒷문에서 잠깐 바람을 쐬다가 백을 챙긴 렌카가 나오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지금 돌아가게요?”
“어.”
“그럼 차키 챙겨올 테니까 기다려요.”
“난 혼자 버스타고 갈 테니까, 넌 여기서 관광 좀 하든가 해.”
“뭔 소리에요. 태워줄게요.”
“됐어.”
“태워다준다니까요?”
“귓구멍 막혔어? 혼자 간다니까?”
아까 내 행동에 대한 복수를 하고 있구나. 진심으로 하는 말이기도 한 것 같다.
지금 칼자루를 쥐고 있는 사람은 렌카가 아니라 난데…
그래도 여기서 진짜 혼자 보내버리면 렌카가 무척이나 비참해질 테니, 그렇게까지 하지는 말자.
“삐쳤어요?”
점심 즈음에 렌카가 내게 했던 말을 그대로 돌려주자, 그녀가 고개를 홱 돌려 날 바라보았다.
눈을 부라리는 눈망울이 무척이나 깜찍하다고 생각하며, 내가 말을 이었다.
“그러지 말고 내 차 타고 가요. 내가 미안해.”
“왜 사과를 하고 난리야?”
“그냥 해본 말이에요.”
“그럴 줄 알았어. 쓰레기 같은 자식.”
“쓰레기라는 말까지 나올 상황이에요?”
“어.”
“알겠으니까 같이 가요.”
더 이상 거절해봐야 득이 될 게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까?
입술을 댓 발 내민 렌카가 핸드백 끈을 어깨에서 풀어내리며 작은 목소리로 내게 감사를 전했다.
“신세질게.”
뾰로통해진 와중에도, 방금까지만 해도 혼자 간다고 투덜거리는 와중에도 인사는 잊지 않는 게 너무너무 귀엽다.
순간적으로 웃음보가 터질 뻔한 충동을 간신히 참아낸 나는, 다시 가게로 들어가 또 와달라는 삼촌들의 인사에 대충 손을 흔들어보이고는 차키를 갖고 왔다.
맛보기는 충분히 보여줬다.
오늘 렌카를 내려주고 난 후로부터는 그녀가 먼저 연락을 해올 때까지 가만히 있어야지.
내가 없으면 몹시 무료하고, 더 나아가 애가 타기까지 하는 것을 렌카는 스스로 깨우쳐야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