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t or Die RAW novel - Chapter 354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354화
활동기에 새벽부터 스마트폰도 없이 나가서 몇 시간이나 연락이 두절 된 멤버.
심지어 직전에 그 새끼 때문에 사흘이나 스케줄이 중단된 상태라면?
‘돌았지.’
변명의 여지 없는 미친 짓이다. 나는 이를 악물었다.
‘차유진은 쪽지라도 남겨뒀다고.’
안 봐도 숙소에 비상이 걸렸겠군. 심하면 회사에까지 이야기가 들어갔을 수도 있겠는데….
‘…망할.’
내가 X발 폭탄이라니.
선아현이 어떤 표정일지 벌써 짐작 간다.
나는 이를 악물고 인터폰을 다시 보았다.
띠링.
심지어 선아현은 1층 정문 앞이 아니라 바로 이 현관문 앞에 서 있다. 이게 어떻게 가능한 건지도 모르겠군.
그래서 더 혼란스럽지만….
“후배님 멤버네. 문 열어줄까요?”
“…잠깐.”
나는 현관을 본 후, 천천히 심호흡했다.
“내가 열고 싶은데.”
“음? 그래요.”
나는 ‘굳이?’라고 대놓고 표정으로 표출하는 놈을 두고 현관으로 향했다.
그리고 문을 당겨 열었다.
인터폰 화면 속의 놈이 문틈으로부터 보이기 시작한다.
“…!”
정면에 보이는 선아현의 얼굴은 마스크를 썼는데도 허옇게 질려 있다.
그러나 문이 열리는 순간 안색이 변한다.
…안도였다.
선아현은 고개를 푹 숙였다.
“여, 여기 있었… 구나.”
미치겠다.
나는 겨우 입을 열었다.
“스마트폰을… 두고 간 줄 몰랐는데. 미안하다. 아침부터.”
“…! 아, 아니야. 내가….”
선아현이 숨을 한번 들이쉬더니, 고개를 들지 않고 말한다.
“미안해….”
“…….”
꼴을 보니 새벽부터 뛰어다닌 것 같은데 뭐가 미안하단 말인가.
“소, 소란을 피워서… 무, 문대도, 따로 호, 혼자만의 시간이 필요할 수도, 있는데… 자, 잘 모르고….”
“아니.”
이 망할 사과 좀 그만 듣고 싶다.
나는 그 되먹잖은 감상을 꾹꾹 누르며 최대한 침착하게 대꾸하려 했다.
그리고 망했다.
“연락 없이 사라진 사람 잘못이니까 그만하자고.”
“…….”
“…….”
선아현은 바로 입을 다물었다. 나는 혀를 깨물고 싶어졌다.
‘멍청한 새끼야.’
왜 이따위로 대답하냐고. 침 대신 약이라도 빨아 먹고 있냐?
정적이 X 같았다.
그 순간, 감흥 없는 목소리가 끼어들었다.
“콩이가 산책으로 오해할 것 같으니, 들어오든 나가든 하나는 했으면 좋겠는데요.”
왕!
개 짖는 소리가 복도를 울린다. 선아현은 퍼뜩 고개를 들었다.
“…! 죄, 죄송합니다. 그, 그럼… 무, 문대야.”
눈은 마주치지 않는다. 마스크로 다 가린 놈의 얼굴에 미소 비슷한 것이 뜬다.
“기, 기분, 괜찮아지면… 펴, 편하게, 들어와…. 여, 여기.”
“…….”
그리고 내 손 앞으로 스마트폰이 조심스럽게 나온다. 받아 가라는 듯이.
“휴, 휴대폰은, 피, 필요할 것 같아서….”
나는 그 찌그러진 사과 무늬를 보다가, 주먹을 쥐었다.
그리고 스마트폰을 받아들었다.
“…안 그래도, 지금 돌아가려던 참이었어.”
“…….”
“나갈게.”
“으, 으응…!”
나는 스마트폰을 받아들고 문을 나섰다. 선아현이 엘리베이터 버튼을 누르러 황급히 발을 옮긴다.
“와왕!”
그리고 하네스를 물고 개가 신나게 뛰쳐나온… 넌 왜.
“이미 콩이가 오해했네요. 후배님 덕에 산책이 짧게 끝나기도 했고.”
“…….”
“콩아 잠깐. 이거 하자.”
나는 가까스로 입을 열었다.
“미안하다.”
“그래요.”
아니, 네 개한테 한 말이다.
하네스를 도로 한 개만 신난 채로, 남자 셋이 탄 엘리베이터가 침묵 속에서 내려간다.
먼저 입을 열었다.
“내가 여기 있는 건… 어떻게 알았는데.”
선아현이 살짝 움츠러든다.
“C, CCTV를, 확인했어.”
“…!”
CCTV?
생각도 안 한 극단적인 수단이 튀어나왔다.
보통 경찰 신고나 회사까지 들어가야 할 일인데… 그러기엔 선아현이 다른 말을 안 했단 말이지.
‘설마?’
“그, 급하다고, 가, 간절하게 부탁드리니까… 도, 동의서 작성하고, 보여주셨어….”
주어가 복수형이 아니다.
이놈 혼자 관리사무소까지 가서 그렇게까지 부탁한 건가.
나는 놈의 발을 확인했다. 맨발에 단화가 마구 구겨진 채로 달려 있다.
“…….”
썩 반가운 상황은 아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마음에 들지 않는데도 이상한 감상이 든다.
‘그래도 완전히 다 끝장나진 않은 모양이지.’
대가리 끝까지 올랐던 긴장의 수위가 낮아진다.
나는 조용히 대답했다.
“그래서 내가 이… 선배님을 따라온 걸 알았다고.”
“…으, 으응.”
선아현은 열심히 고개를 끄덕인다.
그렇게 분위기가 좀 부드러워졌다 싶을 때.
“이상하네…. 내가 호수를 말한 적이 있던가.”
“…!”
“아무리 그래도 살지도 않는 동 건물 내부까지 보여주진 않았을 것 같은데…. 그걸로는 안 되잖아요. 그렇죠?”
당사자가 정곡을 찌른다.
하지만 선아현은 놀라지 않았다.
“네, 네…. 그, 그건, VTIC 선배님께 전화로 여쭤봐서, 드, 들었어요….”
“…….”
“누구?”
“채, 채율 선배님, 이요. 가, 감사하게도 바로 알려주셔서….”
“아.”
나는 군 입대를 앞둔 놈에게 닥칠 또 다른 재난을 목격했다.
‘안됐군.’
원래 나쁜 일은 한 번에 찾아오는 법이다. 견뎌라.
청려는 그 대화를 끝으로 1층에서 갈라졌다.
기분이 어쨌든 자기 개는 챙길 줄 아는 놈이니, 개 산책은 이대로 잘 시켜주겠지.
그러면서도 말 한마디 남기긴 했다만.
“음, 왜 고민했는지 알겠네요. 저건… 기복이 심한 타입이니.”
“…!”
“하하. 활동 문제였구나. 그럼 확실히 고민할 만하죠.”
‘이 새끼….’
선아현의 스탯 하락 위험을 바로 알아본 것이다.
‘…특성이 괜히 붙은 게 아니군.’
나는 청려의 특성을 다시 한번 인지했다.
[감정(A)]: 가치 있는 건 드물고, 쓰레기는 널렸다.
-인적 자원 판단력 +150%
‘…조심해야겠군.’
그 와중에 외모 스탯이 오르기까지 한 놈을 보니, 앞으로도 이 새끼는 아득바득 더 해먹을 모양이었다.
청려는 목소리 크기를 낮춘 말투를 그쯤에서 그만뒀다.
“조언은 바꾸지 않을게요.”
“예.”
그러든가.
“잘 들어가요.”
나는 얼굴을 누르다가, 결국 대답했다.
“…차 잘 마셨습니다.”
“하하.”
청려는 개와 함께 반대편으로 걸어갔다.
그리고 다시금 정적이 찾아왔다.
선아현은 왜 내가 청려를 따라갔던 것인지 묻지 않았고, 내가 그 새벽에 왜 다짜고짜 밖으로 나갔던 건지도 캐묻지 않았다.
우리는 입을 다물고 조용히 산책로 반대편을 따라 걸었다.
“…….”
그리고 놀랍게도, 다른 화제로 선아현이 먼저 입을 열었다.
“…그, 무, 문대를 찾았다고…… 여, 연락해도 괜찮을까.”
“…지금 바로 숙소 들어가면 다들 있는 거 아닌가.”
설마 몇 명은 경찰서 갔냐?
순간 미래가 컴컴해질 뻔했으나, 다행히 신고 이야기는 나오지 않았다.
“아, 아마 있을 텐데… 내, 내가 혼자, 나와서, 호, 혹시 해서….”
“…….”
이놈도 정신없이 주변 안 보고 단독 행동을 좀 한 모양이다. 그리고 이제는 좀 정신을 차린 것 같고.
선아현은 본인 생각에도 민망했는지 고개를 숙인다.
나는 머뭇거리다 입을 열었다.
“고맙다. 걱정해 줘서.”
“…! 아, 아니…….”
선아현은 갑자기 발걸음을 멈췄다.
막힌 소리를 내는 걸 봐서는… 설마 우나.
“선아현.”
그러나 놈은 울지 않았다.
대신 떨리는 목소리로 계속 말했다.
“무, 문대야. 이, 이런 건 지겹겠지만… 하, 하나만, 말하면… 안 될까.”
“…….”
나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마치 여러 번 곱씹고 준비한 것처럼 말이 바로 따라온다.
“너는… 정말 대단한 사람이고, 화, 활동도… 뭘 하든, 정말로 훌륭하게, 뭐든 잘했어. 언제나… 안 그랬던 적이 없어. 저, 정말이야….”
아.
나는 놈이 어제 외쳤던 말을 떠올렸다.
-지금, 너, 너는 활동, 활동을 할 때가 아니야…. 저, 점점 심해지고 있고….
놈은 그 말에 내포될 수 있는 모든 부정적 의미를 뭉개고 있었다.
“내, 내가… 함부로 잘못 말한 거야, 그러니까… 문대는 언제나 잘했어….”
걸음을 멈춘 채로, 아무도 없는 숙소 앞 길바닥.
나는 멍하니 놈의 말을 들었다.
선아현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무, 문제는 나야.”
“…!”
“나, 나도 알아… 나는, 혼자 흔들리고, 기복이 생겨. 매, 매번… 그랬어.”
뭐.
마치 청려의 말을 엿듣기라도 한 것처럼, 선아현은 천천히 선고를 내렸다.
잔인할 정도로 객관적이었다.
“저, 전에도… 그랬으니까.”
유사한 감각을 벌써 느끼기라도 한 듯, 놈은 자신의 발을 내려다보았다.
“지금은… 내, 내가 평소보다, 많이 어, 어색할 수도 있고… 그, 그럼, 팀에 폐가 될 테니까….”
선아현은 이미 결론 난 사람 특유의 담담한 어조로 말을 마무리했다.
“그, 그러면… 내가, 아프다고 발표하면 돼.”
“…!!”
“내, 내 문제니까. 다, 다른 이야기는… 하지 않아도 될 거야.”
선아현은 침을 삼켰다.
“그리고, 빠, 빠진, 스케줄만큼… 연습할게, 여, 열심히, 연습할게.”
목소리는 점점 절박해졌다.
“그러면, 어느 정도는, 무, 무대에선, 괘, 괜찮을 거야. 티, 팀에는, 문제없을 거야…. 내 문제는, 무, 문대가 해결하지 않아도… 괜찮아.”
“…….”
“자, 자기야말로 병원에, 다녀야 하는 사람이… 한 말이니까, 어제 들은 말도… 시, 신경 쓰지 마. 이, 잊어줘….”
“그건.”
그렇게 말하지 마.
하지만 그 말을 할 틈도 없이, 선아현은 황급히 말을 계속했다.
“그, 그렇지만, 무, 문대야. 기분 나쁘겠, 나쁘겠지만… 하, 한 번만.”
떨리는 목소리가 붙었다.
“상담은… 받으면 안 될까.”
나는 고개를 돌렸다.
선아현이 흠칫 떨었다.
“미, 미안해. 이런 이야기 다시 해서….”
“…….”
“그리고, 다, 다음에는, 꼭, 제대로 이야기 들을게. 꼭 그럴게…. 이야기하는 건 뭐든지 잘 들을게….”
선아현은 어깨를 떨었을지언정 절대 울거나 소리를 지르지 않았다.
말만 더듬었을 뿐이지, 사실상 선아현의 내면에서는 이미 결론이 나온 것이다.
-모든 갈등은 내 문제 탓이며, 그 문제는 내가 알아서 처리한다.
그러니 박문대는 안심하고 한 번만, 본인의 상태를 재점검해 뒤돌아봐 달라는 요청.
“…….”
나는 몇 번 할 말을 골랐다가, 취소했다.
계산은 엉망진창이었다.
하지만 내가 무슨 결론에 도달하고 싶은지는 알았다.
“내가 무슨 이야기를 하든 들을 준비가 됐다고.”
선아현이 빠르게 고개를 끄덕인다.
그리고 또 누른 목소리로 말한다.
“내, 내가 아, 알려달라고 해놓고….”
“아니, 그건 내 잘못이야.”
나는 거침없이 말을 이었다.
네 결론은 네 결론이고, 나는 내 결론이 있다.
“누가 들어도 믿을 만한 이야기가 아니었어. 다시 생각해 보니까 순 정신 나간 이야기 같더라고.”
“무, 문대야….”
선아현은 울음을 꽉 참는 것 같았다.
나는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자연스럽게 생각이 정리되었다.
그래.
내 실수의 근원은 거기였다.
“믿을 수밖에 없도록 제대로 말했어야 했는데 말이지.”
“……으, 으응?”
생각해 보자.
선아현은 직관적으로 스파크가 튀듯이 아이디어를 떠올리거나 논리를 비약할 수 있는 타입이 아니다.
체로 걸러서 불순물과 모순을 다 제거한 뒤, 조건에 가장 알맞은 정답을 남기고 납득하는 녀석이다.
‘이번 앨범에서도 그렇게 해서 성과를 냈었고.’
다 알고 있다.
그럼 처음부터 거기에 맞춰서 설명했어야지.
이제야 명확해진다.
‘이건… 신뢰나 친밀도의 문제가 아니야.’
타이밍의 문제였다.
그리고 내가 평소라면 그런 것들까지 다 고려해서 판을 제어했을 텐데, 이놈이 바로 믿었다고 오해해서 고삐를 놓친 게 문제였다.
“듣겠다며. 알았어. 다시 설명할 테니까 들어라.”
“…!! 그, 그….”
이번엔 빠져나갈 틈이 없게 증인과 증명 사례로 꽉 채운다.
그러면 죽이 되든 밥이 되든, 후회 없는 결론에 도달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