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t or Die RAW novel - Chapter 428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428화
이미지가 점멸한다.
비명.
둔탁한 굉음, 그리고 쏟아지는 잔상과 흔들리는 불빛.
뒤에서부터 덮쳐오는 거대한 충격.
그리고 나는….
“허억.”
눈을 떴다.
-후배님.
먼지와 철 냄새가 났다.
그리고 시야 외곽에서 희미하게 번지는 불빛.
목소리.
-후배님.
“…어,”
쿨럭! 기침 때문에 말이 끊겼다. 숨을 못 쉴 지경이다. 그러나 보인다.
반짝.
충격으로 튕겨 나간 스마트폰이, 금 간 바닥에 뒤집혀 깜박거린다.
막힌 듯 낮은 소리가 들렸다.
-살아 있구나.
그래 살았다 새끼야.
살라고 알려준 거 아니었냐.
그러나 그런 말을 하기엔 여전히 내 상태가 쓰레기였다.
‘뒈질 맛이군.’
눈앞이 흔들리고, 심장이 입 밖으로 튀어나올 것처럼 불안정하게 튄다. 거의 격통처럼 느껴진다.
‘언제 정신을 잃었지?’
내 사지가 어디에 달렸는지도 모를 지경이지만….
‘…어쨌든, 살았다.’
나는 입을 훔쳤다. 손등이 입술 아래 이빨을 치며 피 맛이 난다. 안 죽었다고.
-무대 장치가 무너졌나요.
“그래.”
기침을 참고 힘겹게 입을 벌렸다.
“무대로 올라왔거든.”
내 상태이상 실패는 죽음이다.
그래서 시스템이 날 당장 죽이려고 든다면, 그게 ‘말도 안 되는 일’이 일어나는 방식이면 뻔하지 않은가.
‘사고사다.’
터무니없는 사고.
그래서 최대한 일어날 법한 일을 추측할 수 있게 방향을 유도한 것이다.
무대 위에 아무도 없으니, 어차피 뭐가 일어나도 결국 시설 붕괴 수준일 거라 반사적으로 생각했지.
다행히 그게 맞은 것 같고.
‘…복도였으면 다 뒈지는 거였어.’
주변 사람을 최대한 안 끌어들일 만한 방향이면서, 내가 예측 가능한 사고로 유도한 것이다.
‘그리고 어떻게든 첫 타에 안 죽고 피했다.’
하지만.
“이게 끝은 아니겠지.”
-…….
“그래.”
나는 덤덤히 이야기했다.
“이걸로 끝난 거였으면 너도 굳이 미션을 끝까지 할 필요가 없었지.”
피할 수 없으니까 이 새끼도 그렇게 많이 재시작하지 않았겠는가.
나는 숨을 죽이고 기다렸다. 곧 스마트폰에서 낮은 목소리가 흘러나온다.
-네.
나는 이를 악물었다.
“…언제쯤?”
-곧.
X발.
나는 고개를 들었다.
주변은 아슬아슬하게 쌓인 철골과 조명 파편으로 난장판인 것이 언뜻 비쳐 보인다.
누가 봐도 저 균형이 삐끗하는 순간 나한테 쏟아지며 끝장날 것 같군.
‘그전에 구출하면… 아니, 그게 더 최악이다.’
내가 구출되는 과정에서 무슨 일이 발생할지 나도 모르겠다. 변수가 많아지면 점점 어려워진다.
이게 맞다.
나는 숨을 고르며, 머리를 정리했다. 그리고 할 말부터 했다.
“신고하지 마.”
-…….
“내가 무사하고 너랑 연락이 되고, 뭐 그런 거 말하지 말라고.”
말 안 해도 알겠지만 혹시 해서 말해두는….
-그런 건 신경 쓰지 마.
“…….”
상황이 X 같긴 한가 보다. 이 새끼가 이런 말투도 쓰고.
목소리는 빠르게 이어졌다.
-그리고 다음 일이 일어날 때까지,
‘…까지, 뭐.’
그러나 다음 말은 들리지 않았다.
-…….
정적.
“신재현?”
나는 스마트폰을 향해 고개를 돌리다가 깨달았다.
희미하게 빛나던 불빛은 사라졌다.
“…!”
X발.
나는 당장 손을 뻗어서 스마트폰을 봤던 바닥을 더듬었다.
곧 각지고 단단한 조각이….
“흡.”
날카로운 통증이 손 마디를 찔렀다. 화끈거린다.
‘젠장.’
나는 어떻게든 의상으로 손을 감싸서 스마트폰을 뒤집었다.
“…….”
스마트폰은 박살이 나 있었다.
아마 철골이 떨어질 때의 충격인 것 같았다.
그래서 통화도 끊긴 것이다. 아니, 저 산산조각 난 몰골로 지금까지 연결이 됐다는 것이 신기할 지경이다.
…그러니까,
‘빨리 인정해.’
이게 X발 무슨 상황인진 몰라도, 나는 상태이상 클리어에 실패했다.
…그리고 외부와의 소통은, 완전히 끊겼다.
나는 혀를 물었다.
다른 방법, 다른 방법.
일단 청각.
‘……어떻게 된 거지?’
나는 최대한 귀를 기울여 바깥의 소리를 들으려 시도했다. 그러나 웅웅거리는 소리뿐이다.
아무래도 이 정도로 차단될 정도면 무대 장치뿐만 아니라 제대로 천장까지 쏟아진 것 같다.
그렇다면… 다음.
‘빨리 움직인다.’
또 지랄 나기 전에 빨리.
나는 상체부터 당장 몸을 일으켰다.
“큽.”
옆구리가 아팠다. 지난번에 부러진 갈비뼈가 다시 금이 가든 부러지든 한 것 같다.
‘아니면 기분 탓일 수도 있고.’
후자이길 바라자.
어쨌든, 일단 내 몸으로 일어설 수는 있으나….
‘…머리에 닿는다.’
내 대가리 위로 아슬아슬하게 스쳐 지나가는 차가운 금속이 느껴진다.
아마도 무대 장치의 잔해 같다.
“후.”
눈을 감고 잠시 기다렸다. 빌어먹게도 초조했으나 시야가 적응하는 게 우선이다.
그리고 눈을 뜨자, 어둠에 적응한 시야가 전체적인 윤곽을 드러낸다.
“…!”
무대 위는 난장판이었다.
철골이 다 무너져 내려서 사실 무대라고 할 것도 안 남아 있는 수준에, 사방을 에워싼 그 철골과 천장 자재들로 밖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리고 내가 있는 곳은 반대편 백스테이지 바로 앞.
여기까지 거의 슬라이딩으로 넘어지다시피 밀려와서 저걸 피한 것이다.
“후우.”
파악이 끝났고, 이 정신머리로 더 관찰해 봤자 뭐 쓸 만한 걸 얻을 순 없겠지.
‘일단 이동한다.’
여기 있으면 그대로 철골이 떨어져서 압사할 것 같거든.
그래도 다행인 것은 팔다리는 크게 다치지 않은 것 같다는 점이다.
대신 등이 좀 이상한데… 움직이는 덴 크게 지장이 없으니 괜찮다.
나는 비틀거리지 않도록 최선을 다하며 반대편 백스테이지로 향했다.
찾아야 할 것은.
‘위험이 확실한 곳.’
딱 봐도 안전한 곳은 안 된다. 가스 터진다든가 하는 말도 안 되는 개짓거리를 할지도 모르니까.
내가 대략이라도 예측 가능한 사고가 일어날 만한 공간.
그리고….
‘혼자 있어야 해.’
최대한 다른 놈들과 떨어지는 방향으로 이동해야 했다.
말려들면 그때부턴 겨우 가지고 있는 실낱같은 통제력도 다 상실한다.
“…….”
그러니까 여기서 기다리는 건 절대 안 된다.
충격이 가시고 상황 파악이 되는 순간, 사람들이 이 반대편을 통해 붕괴한 무대로 접근할 방법을 떠올리는 건 쉽다. 빨리 움직이자.
나는 백스테이지 외곽을 돌아서 비상계단 방향으로 빠져나오기로 했다. 다행히 불은 다 나갔어도 비상구 푸른빛이 보인다.
“후욱.”
나는 땀에 전 손으로 비상구 문을 열었다.
그리고 순간의 고민 끝에 위로 달렸다.
‘아래로 갔는데 위가 무너져서 파묻혀 죽을 정도면 무슨 짓을 해도 감당 못 한다.’
최대한 빠르게 계단을 통해 위로….
끼익.
등 뒤로 불길한 소리가 계속 난다.
‘설마.’
하지만 그 삐걱거림 위로 인위적인 소리가 치고 들어온다.
[DING- DING-]벨소리.
어딘가의 스피커에서 안내 방송이 나와 메아리친다.
나는 즉시 올라가던 걸음을 멈추고 발을 돌렸다.
‘위층 복도.’
이 비상계단으로 사람이 쏟아질 수 있으니, 차라리 복도로 빠지자.
그리고 한 층만 올라 비상계단을 벗어나 문을 열고 복도로 발을 디딘 순간이었다.
…머리가 쭈뼛 섰다.
쿵.
이상할 정도로 내 발소리가 울렸다.
다음으로….
등골이 얼어붙는 위기감과 상식 없는 공포가 다시.
온다.
‘X발…!’
나는 한발 앞서 이를 악물고 뛰었다.
끼익콰콰콰끼이이이익과과쾅!
귀가 찢어질 것 같은 굉음과 함께, 직전에 딛고 있던 발밑이 징조도 없이 무너진다.
이유를 안다.
‘여기가 무대 위야.’
위치상 제일 불안할 곳이다.
그리고 방송국에서 자재 보관용 라인으로 쓰는 곳이라 상주하는 사람도 없다. 없어야 한다.
‘일부러 골랐으니까…!’
괜찮다.
할 수 있다, 할 수 있다!
나는 머릿속으로 구조를 그렸다.
일부러 큰 기둥이나 무게 가중을 더 잘 견디게 설계했다는 화장실과 시설물 쪽은 가지 않는다.
그게 무너질 정도로 큰 붕괴가 오면 사이좋게 이 안 사람들이 다 뒈지는 거니까.
‘지옥이다.’
여기 있는 사람이 관객석만 해도 천 명이다.
“흐읍!”
먼지와 공기, 크고 작은 파편이 튀긴다.
내가 달려서, 갈 곳은….
[비품실 303]여기다.
‘무대 바로 위가 아닌 곳!’
나는 문을 잡아당기는 바보짓 대신 온몸을 문에 부딪혔다.
그리고.
콰콰과과광-!
방이 흔들린다.
‘X발.’
빌어먹을 시스템 개자식아.
나는 쏟아져 내리는 비품을 몸으로 맞으며, 그 속에서 제일 무겁고 육중해 보이는 무언가에 매달려 머리에 가져다 댔다.
굉음이 이어지고, 몸이 계속 흔들린다. 손과 팔을 작고 큰 물건들이 친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허억.”
굉음과 진동이 멈췄다.
나는 눈을 반복적으로 감았다 뜨며 시야를 확보했다. 숨이 찼다.
허옇게 질린 손에 잡힌 물건부터 확인하면… 철제다. 단단한 면과 파이프의 조합, 아무래도 선반 같은데.
반쯤 벽에서 뜯겨 나왔다. 아니, 벽 채로 뜯어져 나와 그 너머의 어두운 허공이 보인다.
고개를 돌렸다.
내가 들어온 문은 공간이 뒤흔들릴 때 닫혀서 아슬아슬하게 맞물려 끼인 모양새다.
“…….”
열리지 않는다.
“허.”
나는 내가 이 작은 비품실에 갇혔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뒹구르르르….
비품인 듯한 팬이, 한쪽 구석으로 굴러서 모여 있다.
‘기울었어.’
방 자체가 기울어서 뒤틀려 있다.
아무래도 무대 쪽으로 기울어 아슬아슬하게 매달려 있는 것 같다.
“……후욱.”
나는 아까 무대 위보다 작고, 불안정한 공간에 갇혔다.
움직일 수가 없다.
나는 철제 선반에 매달린 그대로, 현실을 받아들이고자 노력했다.
한 시간, 아니, 고작 몇십 분 전만 해도 무대 하나 잘 끝내는 것이 전부였는데.
이제 이 꼴이 됐군.
두 번은 어찌어찌 살아남았지만, 어떻게든 기필코 날 죽이겠다는 미친 초자연적 동력원이 날 쫓는 상황이 말이다.
“……흡.”
전신에서 통증이 올라오기 시작한다. 하지만 그 통증보다 강한 것은… 무력감이다.
‘모르겠다.’
얼마나 더 버틸 수 있을까.
하다못해 정보도 없고.
“…….”
사실, 다른 사람과 연락을 시도해 볼 방법이 없진 않다.
알고 있었다.
‘큰달.’
스마트폰이 없어도 상태창으로 불러볼 수 있는 녀석.
심지어 이놈은 뭐라도 단서를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상태창에 접속할 수 있으니까….
하지만 문제는 내가 지금 상태창을 열어도 되냐는 거다.
혹시라도 그게 무슨 폭탄 스위치가 돼서 다음 ‘말도 안 되는 일’을 더 빨리 불러올 수도 있고, 더 확실한 사망 선고가 내려올 수도 있겠지.
그러니까 부르지 않는다. 절대로.
“…….”
그렇게 생각했지만… 말이다.
나는 손에서 힘을 풀었다. 그리고 고개를 숙였다.
차가운 철제가 이마를 식혔다.
‘포기하는 게 낫지 않나.’
상식적으로, 이러다가 여기 있는 사람 다 죽고 나도 죽으면 대체 이 지랄이 다 무슨 의미가 있나.
이 규모가 점점 커지면 인명 피해가 어떻게 될지도 모르겠다고.
‘멍청아.’
지금 내가 뒈지게 생겼는데 남 목숨 챙겨줄 정신이 있냐 싶어서 웃기긴 한데, 사람이 최소한 양심이 있으면 이걸 신경을 안 쓸 수가 없다.
남도 아니고, 몇 년이나 같이 지낸 놈들 아닌가.
그리고,
‘…다 팬들이지.’
관객석 천 명이 다 팬으로 차 있다. 이건, X발. 일부러 이랬나 싶을 정도로 내가 포기하기 쉬운 환경 아닌가.
나는 길게 한숨을 쉬었다.
깨진 스마트폰에 베인 손바닥 상처에서 나온 피로 선반이 번들거렸다.
‘…무겁다.’
눈을 감았다.
입을 다물고, 그대로 몸을 숙였다.
공허처럼 조용했다.
그렇게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저기요?”
“…!!”
사람 목소리.
나는 고개를 들었다.
처음 보인 것은 야광빛이었다.
철제 선반이 무너지며 반쯤 뜯긴 벽 너머에서, 노란 불빛이 은은히 넘어오고 있다.
그리고 한발 늦게 그게 무슨 빛인지 깨달았다.
……응원봉이었다.
“무, 문대?!”
벽 너머로 날 발견한 것은… 아까 관객석에 앉아 있던 팬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