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t or Die RAW novel - Chapter 456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456화
“민하야!”
“…어, 어어, 하린아.”
미리내의 박민하는 최근 혼이 빠져나갈 것 같은 상태로 지내고 있었다.
회사 난리로 그룹 스케줄이 붕 뜨며 다들 숙소에 있는 시간이 길어진 탓에, 멤버 각자가 취미나 연습에 열중하며 불안을 떨치려 노력하는 중이었다.
그런데 유독 박민하만 저렇게 구는 것이다.
‘너무 스트레스를 받는 건가?’
또다시 리더의 무게감이…. 미리내 성하린은 심각하게 팔짱을 끼었다.
그때, 박민하가 불쑥 말을 꺼낸 것이다.
“하린아, 우리… 다른 회사 갈 수 있으면 갈 거야?”
“…?!”
“아, 아니. 못 들은 걸로 해줘.”
그걸 못 들은 걸로 할 수 있는 사람이 있다면 아이돌이 아닐 것이다!
‘다른 회사? 다른 회사?’
무슨 시그널이라도 왔나?
성하린도 알았다. 회사가 뒤숭숭하다는 것을.
하지만 계약 기간이 남은 엔터 회사를 탈주하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렇다면 그사이를 틈타서, 그나마 현실성 있는 일이 일어난다면… 설마!
“우리 테스타 레이블로 가??”
“쉿, 쉿!”
박민하가 경악했다.
그리고 누가 듣기라도 하는 것처럼 빠르게 좌우로 고개를 돌리다가 황급히 입에 손을 가져다 댄다.
“진짜야?”
“아니야, 아니 그건 아니야!”
하지만 우물 쭈물거리다가 덧붙인 것이다.
“…가능성은 있을 것 같긴 한데.”
뭐야!
박민하는 절대 쓸데없는 허풍 어린 소리를 할 멤버가 아니었다.
그렇다면 정말 뭐라도 들은 게 있으니까 이런 소리가 나오는 것이다.
그 순간, 성하린의 머릿속에 까먹었던 의심 하나가 강타했다. 유독 의미심장한 대화를 나누던 둘.
“…….”
혹시 민하의 정보통이….
“설마… 박문대 선배님이 알려줬어?”
“…?!”
박민하가 굳었다.
정곡을 찔린 것 같은 반응에, 성하린은 묻어뒀던 의심이 다시 슬그머니 치고 올라오려 했다.
‘둘이 사귀는 건….’
“하린아 설마 우리가 가깝다는 소문이 암암리에 돌고 있는 건 아니지? 회사 관계자들한테나, 아니면 다른 아이돌들한테, 아니면 혹시 팬들한테까지 그런 이야기가 도는 무서운 사태가….”
역시 아닌가 보다.
“아, 아니! 내가 추리한 거야, 내가!”
“후.”
박민하는 긴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하얗게 불탄 것 같은 표정으로 의자에 걸터앉았다.
“네 추리는 맞아….”
“…응.”
그런 것 같다.
하지만 마지막 의심은 이젠 다시 떠올리지 않기로 했다.
‘그래, 민하처럼 아이돌에 진심인 애가 벌써부터 티 나게 그럴 리가 없지!’
그렇다면, 완전히 비즈니스적으로 박문대와 말을 주고받았다는 건데 말이다.
“그럼 대체 무슨 일이야?”
“……조금만 기다려 달래.”
박민하는 우수에 찬 표정으로 자신의 스마트폰을 보고 있었다.
“…?”
성하린은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상황에 물음표를 띄웠으나, 박민하는 더 답변해 주지 않았다.
그리고 며칠 후, 회사로부터 조심스러운 연락이 왔다.
무려, 그룹명을 회사가 아니라 그룹이 직접 보유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는 소식!
“왜 그러시는 걸까요?”
“분위기 반전 노리는 거겠지 뭐. 이미지 메이킹 같은 거?”
“아하.”
멤버들은 그런 말을 나누었지만, 어쨌든 그룹명을 살 수 있다는 것은 무척 매력적인 제안이었다!
회사가 바뀌어도 그룹명을 가져갈 수 있는 거니까!
‘대박.’
하린은 입을 틀어막았다가, 곧 현실을 깨달았다.
‘…우리가 이걸 가뿐히 살 정도로, 정산이 엄청 많지는 않은데.’
잠깐만.
그럼 이걸 넘기는 걸 빌미로… 너그러운 척 빚으로 달아서는, 정산에서 차감하는 식으로 우릴 더 털어먹는 거 아닌가?
어차피 그룹을 오래 끌고 갈 생각이 없이 한탕 장사라면 그룹 상표권 따위 아무래도 좋지 않은가!
‘미리내를 오래오래 키워줄 생각이 없으니까 이러는 거 아니냐고!’
그러나 회사는 생각보다 양심적인 가격을 불렀다.
“…?”
물론 단위가 억 소리가 넘긴 했지만, 몇백억 같은 미친 단위는 아니었다는 뜻이다.
“나는 꼭 샀으면 좋겠어! 응!”
“민하가 그렇다면야 난 좋아!”
그리고 박민하의 적극적인 주도와 율기의 해맑은 말에, 멤버들은 선뜻 돈을 모아 공동명의로 상표권을 샀다.
“다른 그룹들은 어떻대?”
“사는 분위기 같더라.”
하기야. 논란에 휘말려서 침몰 직전인 서바이벌 출신 신인만 제외한다면, 이 기회를 놓칠 리가 없다.
…비록 회사가 팔아놓고서는 마치 그냥 곱게 양도해 준 것처럼 언론플레이를 하는 것이 고깝긴 했지만, 어쨌든 분위기는 좋았다.
‘아티스트 소모품으로 쓰는 T1과는 정말 다른 궤도로 간다’라며 사람들 반응도 좋으니, 씁쓸하지만 장기적으로 좋은 일이었다.
‘재계약까지 몇 년이나 남았잖아.’
테스타 때야 기간이 5년이었지만, 그 시즌이 엄청나게 히트한 그다음부터는 7년으로 묶였다.
‘좋아. 다음 앨범은 대박 낸다! 테스타 레이블 들어가도 좋고!’
성하린은 최대한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이 기사가 뜨기 전까지는 말이다.
[테스타 재계약 무산되나… KPOP 스타의 다음 둥지는 어디]“…….”
테스타가 재계약을 안 한단다.
‘아, 아니.’
테스타 레이블이 해산되게 생겼는데?!
‘탈출하잖아 이 사람들!’
자기들끼리 도망치고 있다!
그럼 박민하가 한 소리는 대체 뭐였던 말인가? 성하린은 고개가 부러질 듯이 위튜브 화면에서 고개를 돌려서 박민하를 쳐다보았으나….
“민하얌?”
“허허허… 허허.”
박민하는 위튜브 화면을 보며 허탈하게 웃고 있었다.
놀란 눈치는 아니었다.
단지 돌이킬 수 없는 결정을 해버린 것 같은 분위기였다. 흡사 어마어마한 고가의 물건을 할부 24개월로 긁어버린 것처럼 말이다.
“…??”
박민하는 정율기가 자신을 쿡쿡 찌르는 대로 놔두며, 지난 선택을 돌아보고 있었다.
‘이거… 이거 맞는 줄 잡은 게 맞겠지??’
지금까지 엇나간 적이 없으니, 반드시 이번에도 팽 당하지 않고 가야 했다.
‘제발 좀!’
박민하는 개업용 풍선인형처럼 흐늘거리며 스마트폰을 들었다.
* * *
지이잉.
-미리내 박민하 : 선배님 재계약 안 하신다는 말씀 들었습니다… 새로운 곳으로 가시는 것 정말 축하드립니다.
그래. 슬슬 기사가 뜰 때가 됐다.
나는 여기저기서 오는 연락을 지우며, 그 톡에 답장했다.
-감사합니다
물론 이 녀석도 진짜 축하하려고 보낸 건 아닐 것이다.
‘떠보는 거지.’
나는 다음 말을 덧붙였다.
-걱정은 안 하셔도 괜찮아요
답장은 몇십 초 후에 돌아왔다.
-미리내 박민하 : 예…
-미리내 박민하 : 그럼요. 단톡방에도 초대해 주셨는데 저는 선배님 믿습니다.
어쭈.
여차하면 나도 단톡방 깔 수 있으니 뒤통수치지 말라는 뜻이군.
‘더 빠릿빠릿해졌네.’
나는 피식 웃으며 ‘알겠습니다.’라고 보내고 스마트폰을 껐다.
그리고 연락을 보고 있던 건 나만은 아니었다.
“와, 연락 무섭게 오네.”
“으응, 그러게….”
여기저기서 기사에 대한 연락이 멤버들에게 쏟아지는 중이다.
그리고 나는 어제 들은 소식을 되새겼다.
‘본부장이 그만뒀다.’
타이밍을 놓치지 않고, 그놈이 튀었다.
게다가 연달아서 테스타가 재계약을 안 한다는 사실이 기사화된 상태다.
물론 회사가 낸 기사가 아니다.
‘우리가 제보했거든.’
물론 직접 한 건 아니고 실수한 것처럼 관계자 발로 흘린 것이지만, 어쨌든 말이다.
1. T1의 손절.
2. 본부장의 손절.
3. 테스타의 손절.
결국 이 회사는 이런 미친 손절을 예상도 못 한 타이밍으로 차곡차곡 단기간 내에 본 것이다.?
가장 회사가 흔들리고 있을 이 순간.
“이제 다음 계획으로 진행되나요~?”
그렇다.
나는 고개를 돌려 담당자를 쳐다보았다.
이 그룹에서 제일 믿음직스럽고, 안정적인 이미지를 맡고 있는 놈을.
“형, 잘 부탁드립니다.”
“제가 잘 부탁드려야죠, 형.”
이미 준비를 끝낸 류청우는 웃으며 숙소를 나섰다.
목적지는 회사 회의실이었다.
단, T1 Stars가 아니라, 산하 레이블인 테스타 레이블의 회의실로.
* * *
‘후…….’
권희승, 아직도 박문대에게 ‘골드2’라는 별칭으로 불리는 중인 아이돌은 단톡방의 지난 내역을 들여다보는 중이었다.
바로 박문대가 만든, ‘회사 대탈출용’ 단톡방이었다.
‘소원권 이야기를 꺼내야 도와주실 줄 알았는데.’
이런 회사 문제는 너무 힘든 일이 아닌가. 그래서 권희승은 여차하면 그 괴상한 가상 세계에 끌려가 개고생했을 때 받았던 소원권이라도 쓸 생각이었다.
그런데 거기까지 갈 것도 없이 박문대가 먼저 손을 내민 것이다.
다만 조건이 있었다.
-무슨 일이 일어나도 가만히 있을 것.
이것이다.
그래서 권희승도 이사진이 구속되고 상표권을 팔고 본부장이 나가고 테스타가 나가는 개판에서도 꿋꿋이 가만히 있었다.
‘큰 그림 그리고 계시겠지.’
비록 박문대의 태도가 과격한 편이긴 했지만, 그는 알았다. 박문대 형은 분명히 의리와 정이 있는 타입이었다!
…테스타가 정말로 재계약 안 하고 나간 것은 좀 심장이 떨어질 것 같긴 했지만 말이다.
‘괜찮아. 손절 아닐 거야!’
하지만 다음 소식에서는 아무리 긍정적인 그라도 진짜 심장이 떨어질 뻔했다.
“야 미친, 거기 레이블 사람들 다 퇴사했대.”
“…!? 어어?”
“그 테스타 레이블, 오르빗? 거기 사람들 줄줄 퇴사 중이라고!”
맙소사.
그리고 입소문으로, 권희승은 곧 그것이 과장된 소문이 아니라 정말로 거의 모든 인원이 퇴사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당연히 기존 회사에서도 난리가 났다.
-이거 보통 일이 아닌데?
-아 설마 또 뭐 터지나…?
슬슬, 이직이 가능한 사람들은 릴레이 경주하듯이 회사에서 나가기 시작했다.
거의 회사 인원의 절반이 탈주하는 대사건에, 안 그래도 상사들이 거의 다 빠지며 제대로 기능하지 못하던 회사는 완전히 마비된 것 같았다.
“…….”
권희승은 한층 더 불안해졌지만, 박문대를 믿어보기로 했다.
어차피 1군 아닌 연예인이 손쓸 판이 아니었으니, 긍정적으로라도 생각하는 게 정신 건강에 좋으니까!
물론 카톡은 보냈다.
-형… 회사 사람들이 증발하는데요
-그리고 테스타 어디로 가시는지?ㅠ
-ㅠㅠㅠㅠ형?
답장은 거의 곧바로 왔다.
-증발 아니다
-조금만 더 기다려
“…?”
그리고 바로 그날 저녁, 연예뉴스 메인에 화려하게 기사가 떴다.
[테스타의 특급 의리… 새 둥지가 아니었다, “레이블 대표님”의 기획사] [테스타, 신생 기획사와 계약… 알고 보니 퇴사한 “대표님”]“…!”
그렇다.
테스타는 소속사를 대놓고 직접 세우지 않았다.
그렇다고 기존에 있던 소속사로 가지도 않았다.
대신, 그들의 레이블 대표가 퇴사하며 새롭게 세운 소속사로 이적했다.
그 순간, 권희승은 깨달았다.
‘…설마 레이블 직원들이 다들 퇴사하셨던 게?’
그렇다.
박문대가 본부장을 맡았다면, 류청우는 레이블 사람들을 맡아서 구워삶았다.
회사의 아슬아슬한 전망, 터지는 사고, 나도 ‘손절’해야만 할 것 같은 그 불안감 속에서… 일종의 군중심리를 자극한 것이다.
-저희는 정말… 여기 분들과 같이 일할 수 있다면 재계약도 다시 고려해 볼 것 같아요.
레이블 대표는 기꺼이 동아줄을 잡았다.
그리고 테스타가 따라간다는 소리에, 대부분의 레이블 직원들은 주변 눈치를 보다가 다 같이 가라앉는 배에서 뛰어내렸다.
그래서 결국 이 상황이 된 것이다.
레이블 채로 독립할 수는 없다.
하지만 뿔뿔이 흩어지듯 사라졌다가, 재구성되어 신생 소속사가 되었다!
‘대박, 그래서 형이 증발이 아니라고 하셨구나.’
권희승은 감탄했으나, 곧 본인의 처지를 자각했다.
‘잠깐, 그런데 우리는 어떻게 되는 거지?’
스페이서.
우리… 설마 이대로 버림당하는 건가…?
-형??
-형님ㅠㅠ??
답장은 또 금방 왔다.
-조금만 더
‘아니 대체 얼마나 더요?!’
권희승은 울부짖고 싶었고, 그래서 그대로 카톡을 보냈다.
보낸 후에야 혹시 화내는 것처럼 보였을까 살짝 걱정이 들었으나, 박문대는 화내지 않았다.
단지 이렇게 답장했을 뿐이다.
-사람들이 너보다 더 불안해할 때까지
* * *
“…어?”
그리고 얼마 후.
상상도 못 한 소식이 들렸다.
“회사가… 인수합병됐어.”
“…??”
“테스타 새 소속사가 티원 스타즈를 샀대….”
예??
권희승은 매니저의 말에 스마트폰을 떨어트릴 뻔했다.
그러다가 갓 도착해 따끈따끈한 박문대의 카톡을 발견했다.
-너희 계약 파기 가능할 것 같은데
-지금 풀까?
“…….”
‘세상에.’
이 회사가 망할 것이라는 심리를 최대한 고조시킨 후.
시장가치와 미래전망을 최대한 떨어트려서.
가장 우호적일 때, 가장 낮은 가격으로.
테스타의 새로운 소속사는, T1 Stars를 먹어버린 것이다.
“…….”
이래서… 가만히 있으라고 한 거였구나.
권희승은 반사적으로 깨달았다.
자신이 믿는 구석이 있는 티를 내거나, 적극적으로 나오면… 이 분위기가 흐트러질 수도 있어서, ‘가만히 있어 달라’는 주문을 한 것을.
‘와.’
진짜… 대박이었다.
상상도 못 한 회사 탈출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