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t or Die RAW novel - Chapter 551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551화
배세진은 부들부들 떨면서 정면을 보았다.
거기엔 여전히 이상한 도트 그림 화면이 떠 있었다.
[박문대 (ㅁ_ㅁ+) : 당신의 정체를 추리하는 중!]“…….”
“돼, 됐다!”
됐긴 뭐가 됐단 말인가.
배세진은 망연히 큰달을 바라보았다. 큰달은 정장 차림으로 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저절로 몸이 돌아갔다.
“내가… 뭘 해야…….”
“어어어 접촉 그대로, 그대로 천천히 떼주세요! 아직 제가 연결 중이라!”
‘으윽.’
배세진은 큰달의 어깨를 잡고 있던 손을 그대로 두었다.
마구잡이로 큰달의 사지를 여기저기 잡고 있던 사람들은 천천히 순서를 지켜서 큰달에게서 떨어졌다.
하지만 다들 눈은 배세진 앞에 뜬 기묘한 창에 고정되어 있었다.
이건…….
“그… 딸 키우기 게임 있지 않나? 그런 느낌?”
“아니 근데 왜 박문대가 저기 있냐고!”
“형님, 그게 안 궁금한 사람은 여기 없지 않을까요?”
갑작스러운 격렬한 추론 끝에, 그들은 박문대가 지난번처럼 이상한 가상 세계 같은데 떨어져 있는 것이란 결론을 도출했다.
“그나마… 다행이네요.”
“…….”
…근데 왜 하필 다마고치란 말인가.
“최대한 노력했습니다….”
큰달은 통로 너머를 따라잡았을 때의 상황을 떠올렸다.
‘갑자기 ‘학습 중’이라는 정보 값이 들어왔지.‘
그 상황에서 최대한 편안히 박문대에게 영향력을 발휘해 보려고 하니, 이런 포맷이 형성된 것이다.
[아무튼 발견해서 다행이죠. 휴….]안도의 한숨을 쉬는 권희승의 영상통화 화면 옆에서 차유진이 삿대질했다.
“문대 형 얼굴 달라졌어요!”
“…….”
큰달은 화면을 관찰했다. 그리고 얼빠진 표정으로 자신을 가리켰다.
“…그러게요. 이 얼굴이네요??”
“맞아요!”
비록 분위기는 천지 차이였지만 말이다.
누가 봐도 성격 좋고 훤칠한 청년인 큰달과 다르게, 화면 속 화질 낮은 박문대는… 성격이 더러워 보였다.
아니, 초췌해 보였다.
도트에서 지침이 묻어나온다.
“…잠깐만. 애가 왜 이렇게 꼬질꼬질해?!”
“확인할 수 있는 다른 건 없을까요?”
“자, 잠시만요.”
큰달은 최선을 다했고, 결국 사람들은 도트 게임처럼 구성된 문대의 상태 요약을 볼 수 있었다.
가장 앞에 있던 배세진은 쉽게 해당 정보를 속독해나갔다.
‘박문대….’
돈도 없고, 몸도 아프고, 정신 수치 하나는 짱짱하지만….
“체력이 쓰레기잖아.”
“…….”
“다행 하나도 아니에요.”
차유진의 팩트에 큰달이 양손으로 눈을 눌렀다.
그래도 어디든 박문대가 살아 있는 것을 간접적으로 확인하니, 사람들의 분위기가 많이 누그러졌다.
“이제 데려올 방법만 알면 되는 거죠?”
“일단… 우리가 여기 있고 널 데려오려고 하는 중이란 걸 알리자.”
하지만 너무 복잡한 의사소통은 거의 불가능했다.
게다가 큰달이 판단하기엔, 지금 박문대에게 이 이상 정보 값을 불어넣어 소통하는 건 위험했다.
“지금으로서는… 이게 한계 같아요! 형도 많이 지치고 힘든 상태인 것 같아서….”
“…….”
심지어 이렇게 ‘접속’하는 것도 특성을 가진 한 명씩 돌아가면서 해야 하는 상황.
그리고 어째서인지 첫 타자로 선택된 배세진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계속 화면을 보았다.
선아현이 살짝 손을 들었다.
“그, 그럼 우선, 여기 문대가 건강해지도록… 도울 방법은, 없을까요?”
“저도 동의합니다! 건강이 회복되시는 게 우선입니다.”
큰달이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일단 회복하시면 뭔가를 더 시도해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으으음….”
배세진은 그 말을 귀담아들으며, 눈앞에서 또 바뀌는 말풍선을 보았다.
그리고 눈을 의심했다.
[박문대 (ㅁ_ㅁ) : 연기에 도전하는 중.]“……연기?”
네가 그걸 왜 해…?
“…그, 직업 상태나 이런 걸 봐서는, 형이 배우 지망생 같은 게 되신 것 같은데.”
“…….”
“…….”
대체 무슨 일이 있던 건지 궁금해졌다.
말없이 상황을 지켜보던 청려는 턱에 손을 올렸다.
‘시간의 흐름이 다른데.’
게임과 현실의 시간이 다르듯이 말이다.
지금 팝업으로 보이는 박문대는 벌써 몇십 초 만에 이미 대본으로 보이는 종이묶음의 탐독을 끝낸 모습이었다.
‘1, 2분에 하루 정도인가.’
청려는 빠르게 계산을 끝냈다.
그 사이, 화면 속 박문대는 떫은 표정으로 변해 있었다.
[박문대 (ㅁ=ㅁ) : 연기를 고뇌하는 중…….]류청우가 중얼거렸다.
“문대가… 연기를 못하는 편일 텐데.”
“…….”
박문대는 뻔뻔하게 누군가를 흉내 내는 것은 나름 귀신같이 해냈다.
그러나 캐릭터에 몰입해 감정을 터트리거나 복잡한 갈등 어린 마음 같은 걸 표현하라고 하면… 처참한 결과물이 나왔다.
“으으음.”
그리고 반사적으로 여기서 가장 연기를 잘하는 사람에게 주목이 돌아갔다.
“흠.”
배세진은 미간을 찌푸리며 다마고치로 나오는 박문대를 쿡 눌렀다.
“내가… 뭐 해줄 수 있는 게 없나?”
그 순간이었다.
[특성과 연결된 재능!] [가호를 내리시겠습니까?]“…!?”
* * *
나는 큰달과 주고받던 채팅창의 팝업 같은 홀로그램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여기 와서 처음으로 보는 메시지였다.
누군가의 신호.
[집중하는 천재 배우가 당신을 안타까워합니다.]‘…배우?’
‘집중’, ‘천재’ 같은 키워드가 서술로 붙어 있다.
게다가 마침 내 눈앞에 서 있는 게, 몇 년 전 배세진인 걸 고려하자면….
이거 혹시… 현실의 배세진인가.
‘…세진 형?’
하지만 반응은 없었다. 아무래도 직접 대화하는 형태는 아닌 것 같군.
나는 팝업에 새 문구가 뜨길 기다렸으나, 그 후로도 몇 초간 아무런 글도 뜨지 않았다.
“저기요.”
“아, 죄송합니다.”
나는 일단 초점을 바꿔서 ‘이쪽’의 배세진을 바라보았다.
에 참가하기 전 과거, 휴식기의 끝물쯤에 아마 재활을 위해 여기 나온 것 같은 배세진을.
녀석은 직접 출연하는 게 아니라, 말 그대로 코칭을 위해 초빙된 듯했다.
‘저놈 회사랑 계열사도 다른데 어떻게… 아, 감독이 아는 사이인 것 같군.’
나는
“한번 해보시면… 제가 확인하고 말씀드리겠습니다.”
“…음.”
나는 스탭에게 받은 뮤직비디오 대본을 열었다.
사실 나는 대사도 없었다.
그냥 바닷가를 보면서 쓸쓸히, 애수에 찬 느낌으로 걸어가다가 꽃다발을 던지면 됐다.
그리고 바닷물을 발로 툭 차라는 지시가 몇 줄 적혀 있을 뿐이었다.
다만… 마지막이 말이다.
[C :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은 눈으로 돌아보는)역광, 콘트라스트가 강한 바다가 반짝인다.]
“…….”
대체 이 ‘많은 이야기를 하고 싶은 눈’이라는 게 무슨 의미냐?
여러모로 아찔했다.
하지만 안 한다고 뻗댈 상황이 아니니, 나는 한숨을 참으며 뇌를 가다듬었다.
‘뮤직비디오 촬영 경험을 떠올리자.’
나는 최대한 자연스럽게, 걷다가 뒤를 돌아보았다.
“…….”
“…….”
민망하니까 무슨 말이라도 좀 해봐라.
다크써클이 내려앉은 배세진은 눈을 내렸다.
“…연기 배워보신 적 없죠.”
“예.”
“그럼 됐는데요.”
뭐?
“아까 한 그대로 촬영 때도 하세요.”
그리고 배세진, 지금은 이세진일 놈은 읽고 있던 대본으로 시선을 내렸다.
“…….”
흐음.
* * *
[넌 연기 경험은 없냐.]이동 중인 VTIC의 밴 안.
청려는 뜬금없이 뜬 도움말에 눈을 감았다 떴다.
스스로 선언한 대로 ‘자기 마음대로’ 튀어나오는 이 도움말은 더 이상 사사건건 자신의 유용함을 증명하려 들진 않았다.
그러나 청려의 일상에 대해서는 듣고 싶어 했다.
-빡치는 일은 없었고?
대화가 길어지는 날에는 위로나 조언을 툭 던지듯 내놓기도 했다.
그리고 가끔은 이렇게 질문을 하기도 했고.
이제 청려는 ‘그런 질문은 왜 하는 거지?’라고 말하는 대신 선선히 대답했다.
“그룹 성공엔 영향이 없어서.”
해봤지만 손절쳤다는 뜻이로군. 박문대는 단번에 해석했다.
[…그래. 보통 아이돌 그룹에서 연기하는 멤버가 한둘은 나오던데. 어쩐지 VTIC은 없더라.]청려는 순간 웃을뻔했다.
“통상적으로… 그룹이 형성될 때부터 멤버를 특정해서 배당하는 포지션이 있지.”
그는 산뜻하게 말을 이었다.
“우리도 예외는 아니었고.”
VTIC에도 연기 수업을 받은 멤버가 있긴 하다는 뜻이었다.
[그게 누구였는데.]“신오.”
[!!]이게 놀랄 일인가.
청려는 살짝 시선을 틀어서, 대각선 뒤에 앉아 있을 신오를 의식했다.
약간 얼떨떨하게 느껴지는 팝업이 떴다.
[연기 전공 같아 보이진 않은데.]“글쎄. 작금의 연기력보단 외양이 중요한 기준이라서.”
아이돌 소속사가 배우용 멤버를 낙점할 땐, 차라리 맞는 외양을 고르고 능력은 트레이닝을 통해 키우는 걸 선호하기 때문이다.
단순히 잘생긴 걸 보는 건 아니었다.
인상이 단정하고. 뼈대가 좋고. 카메라에 분위기가 잘 잡히는지.
그런 게 보통의 선발 기준이었다.
특이한 점은, 아이돌 평가 때와는 달리 지나치게 강렬한 타입보단 담백한 쪽이 오히려 평가가 좋았다는 것이다.
“무대와는 기준선이 다르지.”
도움말은 마치 생각에 잠긴 듯이 잠시 팝업이 없어졌다.
마치 정리하는 것처럼 그렇게 되뇌는 도움말을 청려는 제법 흥미롭게 바라보았다.
무슨 발상을 하는 걸까.
하지만 도움말은 다음 말을 잇는 대신, 화제를 전환하듯 환기했다.
[그래도 외양만큼 연기력도 중요한 거 아니냐? 발연기로 욕먹을 수도 있고.]“그럴 일은 없어.”
[…?]청려는 창문가에 팔을 댔다.
“어차피 재계약할 때까지 배우 스케줄은 없을 테니까.”
[…….]화제성이 분산되기 때문이다.
[네가 인간이면 그놈한텐 잘해줘라.]청려는 작게 미소를 지었다.
이런 소리를 툭툭 주고받는 게 그리 나쁜 기분은 아니었다.
‘음.’
이제 대화는 정기적이지도 않았기에, 청려는 도움말과 묘한 거리감을 계속 유지할 수 있었다.
당장 삭제하고 싶지 않다면 이 방식이 차라리 나았다.
“도착했습니다.”
“네엡~!”
차가 멈추고, VTIC은 자리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도움말은 질문은 했다.
[녹음 가냐.]“그래.”
하지만 잘 다녀오라는 인사는 없었다.
청려는 그것을 의식했으나, 머뭇거림 없이 곧게 발걸음을 옮겼다.
* * *
‘자연스럽게’라.
나는 아르바이트 퇴근 후, 낡은 원룸에 앉아서 대본을 한 번 더 점검했다.
그러면서도 틈틈이 팝업을 확인했다.
[집중하는 천재 배우가 당신의 건강을 염려합니다.]그러나 별다른 변화는 없었다.
가끔 ‘집중하는 천재 배우가 번뇌합니다.’ 같이 말이 바뀌어 뜨긴 했으나, 여전히 특별히 실시간 소통된다는 느낌은 없었다.
‘역시 내 생각이나 말이 전달되는 건 아닌가.’
…입이 약간 썼다.
그래도 놀라운 건 시스템에 접속했을 때도 그 팝업이 흐릿하긴 해도 남아 있었다는 것이다. 약간의 모험심으로 시도해 보길 잘했다.
그러니까…… 정리하자면.
어쩌면 말이다.
‘이거 현실에서 온 메시지가 맞을 확률이, 제법 높지 않나.’
그리고 그렇다면, 어떻게든 소통 방법을 찾아낼 수 있을 것이다.
…그 발상만으로도 제법 기분이 괜찮았다.
“음.”
나는 자리에서 일어나서 좁은 방 안을 걸어 다녔다.
‘사실 연기를 그렇게 잘할 필요는 없다.’
이건 현실 정보 수집을 위해서 하는 짓일 뿐이니, 오히려 내가 진짜 배우처럼 잘하면 당장 한국으로 끌려갈지도 모르지 않은가.
…다만, 내가 하는 게 적정 수준도 안 된다면 그것도 문제였다.
이 경우에도 한국에 끌려갈 수 있다. 빨리 귀국해서 연기 수업받으라고 하면 어쩌냐.
‘안 돼.’
게다가 말이다.
‘……내가 연기를 시작하니까 팝업이 나왔지.’
배세진을 만나서 일지도 모르겠지만, 어떤 게 원인인지 모르는 이상은 연기에 대한 끈을 잡아놔야 했다.
‘그러니까 결론은 연습이지.’
그리고 어떤 방향으로 연습해야 하는지도 적절히 루트를 잡았다고 생각했다.
-자연스럽고 일상적인 움직임이되, 분위기 있어 보여야 한다.
한마디로 일상적일 만큼 자연스럽지만 동시에 멋지게 움직이라 이 말이다.
‘무슨 심플하지만 화려해 달라는 디자이너 요구 같군.’
하지만 노가다는 배신하지 않는다. 몸동작에 집중해서 신경 쓰며 반복 연습을 하다 보면 언젠가 비슷하게라도 하겠지.
걸림돌은….
몸 상태가 쓰레기라는 점이다.
‘아, 망할.’
나는 걷다가 한숨을 쉬었다.
장기간 자연스러우면서 동시에 집중하는 건 이 몸 상태로는 물리적으로 거의 불가능했다.
무대 아드레날린이 없이는 더더욱.
‘이 악물고 한 3분은 참겠는데.’
무대와 달리 템포가 길고, 밀도 높은 임팩트가 쾅쾅 터지는 게 아니라 더 고욕이었다.
‘집중하기가 어렵군.’
혀라도 깨물까?
“휴우.”
나는 없는 바다를 발로 갈겼다.
그렇게 며칠은 순식간에 지나, 마침내 촬영일이 다가왔다.
그리고 나는 이곳의 배세진을 다시 만났다.
“안녕하세요.”
“…네. 안녕하세요.”
여전히 표정이 안 좋군.
나는 놈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연습은 했는데, 마음에 걸리는 게 있어서요. 전에 코치님께서 ‘그대로 하라’라고 말씀하셨는데.”
“…….”
“혹시 더 연습해 봤자 답이 없어서 그렇게 말씀하신 건가요.”
“…뭐라고요? 그런 뜻은 아닌데요.”
배세진은 인상을 찌푸렸다.
“연기를 배운 적이 없다면서요.”
“네.”
“그럼 차라리 의식하지 않고 그때처럼 하는 게 나아요. 대사가 있는 것도 아니니까.”
“…….”
“그러니까, 그대로 하시라고요.”
이전에 앨범용 게임을 만들 때 큰세진에게 했던 조언과 비슷한 부류였다.
나는 이놈의 의도를 깨달았다.
‘정확한 조언을 하려고 했군.’
다만 의도와 다르게 시비 거는 것처럼 들렸다는 것도 배세진답긴 했다.
“네. 감사합니다.”
“……. 아뇨. 돈 받고 하는 건데요.”
정말 한결같다.
나는 빡치는 대신 약간 그리움을 느끼며, 어깨를 으쓱하고 발을 옮겼다.
뭐, 좋다. 그럼 정말 적당히 해보자고.
“거기, 지금 들어갑니다~”
“예.”
나는 모래사장에 발을 디뎠다.
‘빠르게 오케이 받아야 한다.’
내 체력을 불신하면서.
그런데.
[집중하는 천재 배우가 당신에게 가호를 내립니다!] [특성 : 집중력]“…??”
그 순간.
갑자기 몸 전체가 가벼워지기 시작했다.
* * *
바닷가를 걷는다.
아무것도 의식하지 않고, 몸이 자연스럽게 움직였다.
손에는 꽃다발이 들려 있다.
꽃다발은 다소 비일상적인 물체기 때문에 너무 의식하지 않는 편이 더 자연스럽다. 손에서 그냥 흔들리게 놔주자.
“후.”
한숨 쉬는 숨결 너머로 바다가 보였다.
촤아아아-
해가 지고 있었다.
“…….”
나는 발을 멈췄다.
이 사람이 여기 어떤 사연이 있어서 바닷가에 왔는지는 모른다.
‘상관없어.’
그러니 지시문 그대로, 명료하게 행동하면 된다.
자연스럽게.
나는 바닷물에 가볍게 꽃다발을 던졌다.
툭.
집중한 대로, 보기 좋은 포물선을 그리며 꽃다발이 바닷가에 떨어지고.
나는 부드럽게 몸을 다잡았다.
그리고 한 박자 쉬고, 다시.
툭….
파도를 발로 살짝 찬다.
화가 났다는 지시문은 없다.
그러니까, 건드리듯이. 약간은 조심스럽게.
“…….”
그리고 발을 거둔 후에, 내가 태양을 바라보고 서 있다는 것을 의식하며 몸을 돌린다.
기억해 둔 카메라 위치를 향해, 흔들림 없이.
휙.
딱 한 번.
유일하게 카메라와 눈이 마주치는 시간에만. 생동감을 주는 것이다.
무대에서 그랬던 것처럼.
“…….”
나는 내가 모든 과정을, 계획한 대로 차질 없이 완벽히 해냈다는 것을 깨달았다.
모든 걸 표출하듯 던지는 건 아니지만, 결결이 집중했다.
‘이런 거였나.’
나는 눈을 깜박이지 않고, 고요히 카메라를 쳐다보았다.
의식적인 집중의 세계.
배세진이 연기의 어떤 점에 빠졌는지, 겉핥기이겠지만 알 것 같았다.
그리고.
“컷! 이대로 갑니다.”
다시 카메라 바깥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웅성웅성 소란스럽게 컷이 끝났다.
“감사합니다.”
나는 고개를 숙여 보인 후, 카메라 앞에서 벗어났다.
“괜찮은데요?”
“생각보다 테이크가….”
스탭들이 떠드는 소리 너머, 코치 배세진이 눈을 약간 크게 뜨고 이쪽을 보고 있었다.
그리고 아마도, 다른 배세진도.
[집중하는 천재 배우가 이 정도면 충분히 괜찮았다고 선언합니다!] [집중하는 천재 배우가 당신을 후원했습니다! : 에너지 +]몸에 힘이 차오르고, 두통이 서서히 잦아든다.
‘아.’
아무리 생각해도 이 메시지를 보내는 건, 아무래도 현실의 녀석들이 맞는 것 같다.
코치 베세진이 입을 열었다.
“…어떻게.”
나는 희미하게 웃었다.
“코치를 잘해주셔서요.”
한 치의 거짓도 없는 진실이었다.
* * *
한편 JSA.
“우와아악!”
“이대로 가자!”
“다, 다음은, 누가 하면 될까요…?”
성공적인 결과를 자축하며 빠르게 정식 계획이 성립되었다.
‘빨리 회복시켜서 데려와야 해!’
일명 박문대 키우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