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artial Arts Gacha RAW novel - Chapter 180
67. 천마(4)
천마의 몸에서 진득한 마기가 피어올랐다.
다른 마인들의 것과는 차원이 다른, 오로지 천마만이 다룰 수 있는 진정한 마의 기운.
드드드득.
지면이 흔들린다.
천마가 전력으로 힘을 드러낸 여파로, 무지막지한 기운이 몰아치며 주변 일대를 억눌렀다.
소종천 역시 한껏 기세를 올리며 저항했지만, 중력이 바뀌기라도 한 것처럼 몸이 조금 무겁게 느껴지는 것까진 어쩌지 못했다.
“웨엑!”
“커흐윽!”
공을 탐한다고 달려들었다가 죽은 이들과 다르게 적당히 거리를 두고 있던 무인들이, 사방으로 퍼지는 기운에 노출되어 창백해진 얼굴로 몸을 떨었다.
몇몇 무인들은 내상을 입고 피를 토하며 쓰러지기까지 한다.
심리적인 압박감을 넘어 육체에 영향을 줄 수 있을 정도의 무지막지한 살기.
새로운 경지에 들어선 소종천도 다룰 수 있는 힘이었지만, 천마가 보여주는 것은 그보다 훨씬 강력한 수준이었다.
멀쩡히 버티고 서 있는 것은 소종천 자신과, 그나마 초절정의 경지라 쉬이 무너지지 않는 남궁건과 황석호뿐.
‘사혜는?’
소종천의 시선이 잠시 뒤로 향했다.
안전한 곳에 떨어뜨려 두고 싶었지만, 분리 불안증을 들먹이며 기어코 쫓아온 한사혜도, 천마가 뿜어내는 기운에 눌려 상태가 좋지 않았다.
그래도 전투가 벌어지면 최대한 뒤로 떨어져 있으라고 미리 이야기해 둔 덕분에, 몸을 움직이지도 못할 정도로 억압당한 상태는 아니라 다행이었다.
-뒤로 더 빠져 있…….
“한눈팔 여유가 있나?”
더 물러나 있으라고 전음을 보내려는 차에 천마가 움직였다.
엄청난 속도로 접근한 천마는 소종천의 목을 움켜잡기 위해 손을 뻗었다.
슈와아악!
그다지 힘이 실린 것 같지도 않은 가벼운 동작이었으나, 눈앞에서 산이 무너져 내리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큭!’
대성한 불영선하보를 극한으로 펼쳐 간신히 천마의 손아귀를 벗어난 소종천은, 연대구품을 펼치며 분신들과 함께 반격을 시도했다.
“하찮다.”
천마는 코웃음을 치며 한 걸음을 내디뎠다.
콰앙!
지면이 폭발하며 강기가 실린 파편들이 주변을 초토화시켰다.
천마를 중심으로 직경 십여 장에 달하는 구렁이 생겨났다.
고작 발 한 번 뗀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는 현상.
과거 천마가 펼친 무공 중에서 무림에 제법 이름이 알려진, 천마군림보라는 절기다.
다만 반세기 전에 활동하며 알려졌던 그것과는 차원이 다른 위용이었다.
“으윽…….”
곧바로 걸레짝이 된 분신들이 그 자리에서 소멸하였고, 호신강기를 두른 채 손발을 움직여 파편들을 쳐냈던 소종천 역시 적잖은 상처를 입었다.
그간 수차례 위기를 모면하게 해주며 소종천의 성명절기나 다름없던 연대구품으로도, 천마를 잠시나마 붙잡아둘 수가 없었다.
“맙소사…….”
“어찌 인간의 몸으로 이런 힘을 낸단 말인가!”
소종천의 뒤편에서 각각 수비초식을 펼친 덕에 간신히 피해를 최소화해 버텨낸 남궁건과 황석호가, 신음을 흘리며 질린 표정으로 천마를 바라보았다.
“흐아압!”
아직 투지를 잃지 않은 소종천이, 기합과 함께 땅을 박차며 빛살 같은 속도로 천마에게 달려들었다.
아라한신권으로 강화된 폭발적인 속도.
거기에 극성으로 펼친 불영선하보와 금강부동신법까지 더해진다.
눈 깜짝할 사이에 천마의 뒤를 잡은 소종천이, 소림오권 중 가장 쾌속한 표권의 형으로 권을 내질렀다.
뒤통수에 위치한 요혈인 천주혈을 노리고, 반줌으로 쥔 주먹이 쾌속하게 찔러 들어갔다.
하나 그 역시도 다 파악하고 있다는 듯이 천마는 기괴한 움직임으로 몸을 비틀어 피했다.
철판도 찢어낼 일격이었으나, 결국 허망하게 텅 빈 공간만을 꿰뚫었다.
“이쯤 하지.”
소종천의 공격을 회피한 천마가 손을 내저었다.
파리를 쫓는 듯한 성의 없는 동작.
하지만 손끝에서 방출된 흑색의 강기는 전혀 우습게 볼 수 없었다.
그물망처럼 펼쳐진 강기다발이 소종천의 전신을 옭아맸다.
불영선하보와 금강부동신법의 신묘한 움직임으로도, 미처 다 피해낼 수가 없었다.
“으윽!”
몸 곳곳에서 핏줄기가 솟구쳤다.
숱한 전투에서 몸을 보호해 줬던 천잠보의가 갈가리 찢기며, 안에 담겨 있던 용린 두 점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용의 비늘인가. 역겨운 존재의 흔적을 가지고 다니는군.”
천마의 손짓에 용린이 허공으로 떠올랐다.
내공으로 물건을 움직이는 능공섭물(凌空攝物)의 수법.
무지막지한 내력이 소모되어 초절정의 무인조차 쉽게 보일 수 없는 기예인데, 천마에게는 숨 쉬는 것처럼 간단한 일이었다.
기이잉!
용린을 붙잡은 천마가 손아귀에 힘을 주자, 진동과 함께 검명과 비슷한 소리가 울렸다.
그리곤 이내, 파지직하는 소리와 함께 가루가 되어 흩어졌다.
강기에 직격당해도 파괴되지 않던 보물인 용린이었으나, 천마의 앞에서까지 버텨내진 못하였다.
‘이렇게까지 차이가 날 줄이야…….’
소종천은 전의를 상실하고 말았다.
같은 경지라고 생각했는데, 천마의 무위는 그가 예상했던 것과는 차원이 달랐다.
“너무 차이가 나니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표정이군. 여흥을 너무 일찍 끝내는 것도 아쉬우니, 비밀을 하나 알려주마.”
소종천과 얼굴을 마주한 천마가 웃음을 흘리며 입을 열었다.
“아무리 본좌라고 해도 인간의 몸으로 이만한 기운을 다루는 것은 사실 무리가 있다. 지금 본좌의 상태는 힘을 통제하는 게 아니라 완전히 소멸시키는 것으로, 다시는 사용할 수 없는 일회성의 강력함을 발휘하는 것이라 말할 수 있겠지.”
“……무슨, 뭔 소리를 하는 거야.”
“쉽게 말해 기존에 본좌가 가진 힘의 많은 부분이, 오늘 이 자리에서 없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쉽게 말한다지만 더욱 알 수 없는 말이다.
도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일까?
소종천의 눈에 의문이 서렸다.
“본좌가 말하지 않았느냐? 본좌가 다루는 기운은 망가진 신성에 의해 변질되어 버린 신의 힘이다. 그리고 네놈이 다루는 기운 역시, 신이 인간의 격에 맞춰 전해준 변질된 신력의 일종이지.”
비록 상반된 성질을 가지긴 했지만 반야신공의 내공과 천마의 마기가, 신격이라는 같은 뿌리를 두고 있다는 이야기.
“그래서 대체 하고 싶은 말이 뭐냐?”
“네 녀석의 몸, 본좌가 갖겠다.”
“……뭐?”
당황한 소종천이 반사적으로 되물었다.
천마가 육체를 바꿔가며 생존해왔다는 것은 들어서 알고 있지만, 그 전이의 대상이 자신이 될 수 있다는 생각은 전혀 해보지 않았었다.
“신은 자신의 개입을 최소화한 상태로 본좌를 제거하고 싶었겠지. 그것이 스스로 정한 규칙이었으니, 그걸 어긴다면 신격에 큰 손상을 입게 될 테니.”
천마는 소종천을 내려다보며 말을 이었다.
“그나마 편법을 동원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간섭이, 이계의 영혼에 기묘한 술수를 부려 미리 준비해 둔 육체에 쑤셔 넣는 것이었을 터.”
천마의 손바닥이 소종천의 얼굴을 움켜잡았다.
불길한 흑색의 기운이 넘실거리며 일어나, 천마의 팔을 타고 흘러 소종천을 덮쳤다.
“커헉!”
“신이 안배해 둔 육체만큼 특별한 몸도 없겠지. 네놈의 육체라면 본좌를 받아들이고 제법 오래 버틸 수 있을 것이라 기대가 되는구나. 그 상극의 기운이 걸림돌이긴 하다만…….”
잠시 말꼬리를 흐리며 침묵하던 천마는 이내 다시 말문을 열었다.
“결국, 같은 뿌리에서 나온 것이니 본좌가 다루지 못할 것도 없느니. 극심한 반발력에 육체가 망가지지 않도록, 본좌의 힘을 다소 덜어낼 필요가 있겠지만 말이다. 그걸 위해 힘을 소모하며 한계 이상의 무위를 보일 수 있었으니, 나름대로 일석이조라 할 수 있겠군.”
소종천은 자신의 머릿속으로 무언가가 침범하는 듯한 감각을 느꼈다.
몸을 움직여 벗어나고자 했지만, 천마가 쏟아내는 기운에 붙잡혀 아무런 저항도 할 수가 없었다.
‘이렇게 끝난다고? 하, 하하.’
허탈해진 소종천은 눈을 질끈 감았다.
천마를 쓰러뜨린다는 것은 애초에 이룰 수 없는 목표였다.
힘의 차이가 이렇게 나는데, 무슨 방법이 있겠는가.
‘몸을 뺏기면 어떻게 되는 거지? 내 영혼도 사라지는 건가?’
시야가 검게 물들어갔다.
정확히 어떤 현상이 벌어지고 있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이대로라면 분명 천마의 말대로 육체를 잃게 되리라.
‘차라리 자결을 해서라도…….’
이렇게 죽는 것은 억울하고 분하다.
그렇지만 어차피 방법이 없는 거라면, 목숨을 버려서라도 천마를 막아내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단전을 스스로 파괴하고 기를 폭주시켜 몸의 장기들을 죄다 손상시켜 버리면, 적어도 몸은 뺏기지 않겠지.’
그렇게 하면 소종천의 육신을 온전히 취하고자 스스로의 힘마저 덜어낸 천마를 허탕 치게 만들 수 있으리라.
어쩌면 단순히 허탕 정도가 아니라, 전이가 취소되며 천마에게 큰 피해를 입힐 수 있을지도 모른다.
자신의 사망 자체는 변함이 없지만, 그로 인해 다른 무인들이 천마를 제거할 수 있는 계기가 만들어질 수도 있다.
‘아니. 거기까진 바라지도 않으니까, 하다못해 건이와 사혜가 달아날 수 있는 시간이라도 벌 수 있다면…….’
죽음을 받아들인 소종천은 즉시 생각한 것을 실행에 옮기려 들었다.
하지만 그것조차도 마음대로 되는 것이 아니었다.
잠깐 사이에 벌써 육체에 대한 통제력을 잃었는지, 아무리 의지를 품어도 내력이 움직이지 않았다.
‘이런 지랄 맞은…… 기껏 죽는 것까지 각오했는데!’
무력감이 정신을 짓눌렀다.
더는 아무것도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다.
그렇게 다 끝났다고 생각하며 포기하려던 소종천은, 불현듯 무언가를 떠올리고 다시 정신을 차렸다.
‘아니지. 생각만으로 할 수 있는 게 있긴 해.’
마음속으로 뽑기창을 그려냈다.
물론 아무리 뽑기의 힘이 있다 해도, 이 상황을 타개할 해결책이 되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어떻게, 내 몸에 조금이라도 뭔가 이상을 일으킬 방법이 없나?’
시도해볼 만한 것이 있기는 했다.
고민하거나 주저할 여유가 전혀 없기에, 의식의 흐름에 따라 떠오르는 것을 곧바로 실행에 옮겼다.
소종천은 무공 합성을 돌렸다.
세 개의 무공 항목을 선택한다.
며칠 전 영웅 뽑기를 연달아 시도하며 생긴 심득을 통해 얻은 잡스러운 무공 두 개.
그리고 거기에 더하여 소종천이 가진 힘의 근원이나 마찬가지인 무공, 반야신공을 대상으로 지정했다.
‘시부렐 거…… 이걸 10성을 찍고 갈아버리게 될 줄이야.’
내공심법은 몸 안에 기를 담아 운용할 수 있게 만들어주는, 무인에겐 기초 중의 기초라 할 수 있는 무공이다.
무려 200년에 가까운 내공을 몸에 지닌 존재가, 심법을 배우지 않은 상태로 되돌아간다면 어떤 현상이 벌어지게 될까?
그저 내력을 움직일 수 없는 채로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을 수도 있고, 어쩌면 내공 자체가 산산이 흩어져버릴지도 모른다.
혹은 누구도 상상할 수 없는 특이한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
결국, 답이 나와 봐야만 알 수 있는 일.
‘지워!’
소종천은 결과가 뭐가 되었던 육체에 좋지 않은 방향으로 이상이 발생해, 천마에게 큰 엿을 먹여줄 수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무림 역사상 대성한 이가 존재했다고 검증된 기록이 없는 10성의 반야신공이, 합성의 소용돌이 속으로 사라졌다.
그리고 이내, 소종천의 몸에서 어떠한 변화가 발생하기 시작했다.
뽑기로 무림최강 181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