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irit Farmer RAW novel - Chapter (245)
현관을 나선 건우는, 익숙한 두 사람과 낯선 두 사람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익숙한 두 사람은 집사 나이트와 룩이었고, 낯선 두 사람은 신화그룹 회장 조현수와 신비술사 조윤아였다.
건우는 한 차례 움찔거렸지만, 금세 낯선 이들이 누군지 눈치채곤 인사를 건넸다.
“안녕하세요? 조현수 회장님 맞으시죠? 저는 이건우라고 합니다.”
“네. 조현수 맞습니다. 무척 만나 뵙고 싶었습니다, 이건우 님.”
건우의 인사를 정중하게 받은 조현수가 먼저 악수를 청했다.
건우는 그 손을 맞잡으면서, 반가운 미소를 지었다.
“저도 무척 뵙고 싶었습니다. 편하게 대해 주세요.”
“으음. 그래도 되겠습니까?”
“네. 물론이죠. 윤아네 아버지시면, 제 아버지이기도 한데요, 뭘.”
건우는 그렇게 말하면서, 친근함을 표현했다. 친한 친구의 부모님을 자신의 친부모님처럼 여긴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그런 건우의 표현이 조현수에게는 다르게 다가왔다. 그의 눈에는, 건우가 자신의 딸을 노리는 도둑놈으로밖에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언제 봤다고 아버지야?’
그러면서 맞잡은 손에 서서히 힘을 주는 조현수.
건우가 그것을 느끼면서 의아한 표정을 지을 때쯤, 조현수가 먼저 손을 놓았다.
“그래도 저희 신화그룹의 VIP시니, 예의를 다 하겠습니다.”
“그러지 않으셔도 되는데…….”
건우는 조현수가 자신을 편하게 대해 줬으면 했지만, 조현수는 건우가 VIP라는 이유로 거절의 의사를 밝혔다.
어떻게 해서든 건우와 거리감을 유지해서, 조윤아에게 떨어뜨리려는 속셈이었다.
건우가 그런 조현수를 보면서,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원칙에 민감하신 분이구나. 하긴…… 신화그룹의 총수 자리에 계신 분이니까.’
꿈보다는 해몽이라고나 할까?
건우는 조현수가 원칙주의자일 거라고 지레짐작하면서, 이 상황을 이해하고 넘어가기로 했다.
그런 두 사람의 사이에 조윤아가 끼어든 것은 바로 그 순간이었다.
“아버지. 그러지 말고 편하게 해요.”
“VIP한테 어떻게 그래?”
“어떻게 그러긴, 뭘 어떻게 그래요? 다른 VIP들하고는 편하게 지내시잖아요.”
“그, 그거야. 그 사람들하고는 친분을 충분히 쌓았으니까 그렇지.”
“그래요? 그러면 이건우 님한테도, 친분이 쌓이면 편하게 하시겠다는 거네요?”
그 말에 조현수는 입술을 달싹거렸다. 절대로 그럴 일은 없을 거라고 대답하려다가, 다른 사람들의 시선을 깨닫곤 멈칫한 것이다.
‘에효, 딸내미라고는 딱 하나 있는 것이…… 애비 마음은 조금도 몰라주네.’
그렇게 생각한 그는, 결국 마음에도 없는 말을 내뱉었다.
“그래. 친분만 쌓이면…… 충분히 그럴 수 있지.”
그 말을 들은 조윤아가 만족스러운 듯, 화사한 미소를 지었다. 그 덕분에 건우도 조금은 편안한 표정이 되었다.
그렇게 건우가 조현수와의 인사를 끝내자마자, 조윤아가 바로 건우와 인사를 나눴다.
“오랜만에 봬요.”
“어? 어어. 오랜만이다. 그런데…… 윤아 맞지?”
“네. 맞아요. 좀 많이 바뀌었죠?”
그녀는 그렇게 말하면서, 쑥스러운 듯이 자신의 팔을 쓸어내렸다.
그 모습을 본 건우는 괜히 얼굴이 붉어지는 것을 느끼면서, 목덜미를 쓰다듬었다.
“좀 바뀌긴 했는데…… 예쁘네.”
“정말요?”
“응. 예쁠 거라고는 예상했지만…… 예상보다 훨씬 더 예뻐서 놀랐어.”
“고, 고마워요.”
두 사람은 그렇게 대화를 나누면서, 서로서로 조금씩 어색한 기색을 보였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분위기가 나쁘다는 것은 절대로 아니었다. 오히려 아주 좋은 분위기였다.
그 순간, 조현수가 불편한 표정을 감추지 않고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그건 그렇고…… 이건우 님. 뒤에 계신 어르신들하고 아이들 소개는 언제 받을 수 있습니까?”
“아, 맞다. 바로 소개해 드려야죠.”
건우는 아차 싶은 표정을 지으면서, 조현수에게 가족들을 소개시켜 주었다.
그 과정에서 부모님은 무척 놀란 표정을 지었다. 미디어에서 본 조현수와 실제 조현수와의 차이가 너무 심했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아이들도 조현수 옆에 있는 조윤아를 보곤,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조, 조윤아 님이 커졌답니다!”
“신기해! 마법이야…… 요!?”
갸웅!
아이들이 호들갑을 떨면서 조윤아의 변화가 신기한 듯이 두 눈을 반짝거렸다.
그 모습을 본 조윤아는 어른스러운 미소를 지어 보이면서, 아이들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평소에 했던 것처럼 아이들을 품에 안았다.
그 행동에 아이들이 잠깐 움찔거리긴 했지만, 이내 평소처럼 조윤아에게 안겨서 어리광을 부리기 시작했다.
모습이 바뀌긴 했지만, 그 근본은 같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다.
건우가 그 모습을 보면서 흐뭇한 미소를 지었다.
‘아이들이 거부감을 느끼면 어쩌나 싶었는데…… 그런 일은 없어서 다행이다.’
그렇게 건우의 가족과 조윤아의 가족이 첫 상봉을 마쳤다.
* * *
건우네 가족과 조윤아네 가족은 인사를 나누자마자, 바로 집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어머니가 준비한 간단한 음식을 먹으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따로 특별한 목적이 없는 단순한 친목이었다.
그들은 그 시간을 아주 충실하게 보냈다. 부모님과 조현수는 아버지가 내온 산삼주를 마시면서 연신 감탄사를 내뱉고 있었고, 조윤아는 평소처럼 아이들과 놀아주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
건우는 그런 모습들을 지켜보면서, 은은한 미소를 지었다.
‘정말 좋구나.’
가족들과 이웃이 소소하게 모여서 떠들고 있는 모습.
그런 모습은 건우에게 마음의 평온을 가져다주기 충분했다. 한동안 머릿속에 머물던, 하와라는 의문의 단어를 잊을 수 있을 정도였다.
그런데 그런 건우의 마음에 파문을 일으키는 이가 있었다.
“이건우 님. 그런데 하와라는 아이는 어딨습니까? 얼굴이라도 좀 보고 싶었는데…… 어디 갔습니까?”
그 주인공은 바로 조현수였다.
건우는 조현수의 말에, 심장이 시큰거리는 것을 느꼈다. 마치, 누군가가 바늘로 콕콕 찌르는 것만 같았다.
“하와…… 요?”
“네. 윤아가 저랑 통화할 때마다, 매번 하는 얘기 중의 하나가 그 얘기였습니다. 어찌나 귀엽고 사랑스럽다고 노래를 부르던지…… 꼭 한번 보고 싶더군요.”
그가 그렇게 말하자, 옆에서 아이들과 놀아주던 조윤아가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아버지. 아까부터 자꾸 누굴 찾는 거예요?”
“누굴 찾다니? 네가 가장 애정한다는 아이를 찾고 있는 거지.”
“저는 따로 편애하는 아이, 없다니까요? 그리고 하와는 대체 누구예요?”
“누구냐니? 얘가 무슨 소릴 하는 거야? 네가 나랑 통화만 하면, 귀엽다고 난리였으면서…… 혹시 다른 애들 앞이라서 그런 거야?”
“아니요. 그게 아니라, 정말로 모르는 말이라니까요?”
둘은 그렇게 티격태격하면서, 묘한 대화를 나눴다.
그때, 건우가 나서서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잠, 잠깐만요. 그 하와라는 아이에 대해서 좀 들어볼 수 있을까요? 사실, 저도 오늘 아침부터 계속 신경 쓰였습니다.”
건우가 그렇게 나서자, 조현수의 표정이 묘해졌다.
그는 한동안 고개를 갸웃거리다가, 아차 싶은 표정을 지었다. 상황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얼추 눈치챈 모양이었다.
“이런…… 내가 실수를 했군.”
“실수라뇨?”
건우가 그렇게 되묻자, 조현수가 난처한 표정으로 웃으면서 말했다.
“하하. 그냥 말실수를 했다는 뜻입니다. 이상한 소리를 해서 죄송합니다.”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 상황을 무마하려고 했다.
하지만 건우는 이미, 조현수가 뭔가 알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챈 후였다.
건우가 그런 그에게 다급히 물었다.
“윤아 아버지…… 아니, 회장님. 그러지 마시고, 하와라는 아이에 대해서 조금만 말씀해 주실 수는 없나요?”
“으음…… 죄송합니다만, 저는 정말로 아무것도 모릅니다. 그냥 나이가 들어서 잠깐 헛소리를 한 것뿐입니다.”
조현수는 이제 막 20대에 들어섰다고 해도 믿을만한 외모를 소유하고 있는 만큼, 나이가 들었다고 말하는 것은 나름대로 재밌는 위트 포인트였다.
하지만 그것으로 웃는 사람은 이 자리에 아무도 없었다.
건우의 표정이 심각할 정도로 진지했기 때문이다.
“회장님. 부탁 좀 드리겠습니다. 하와가 어떤 아이인지, 알아야만 할 것 같아요. 사소한 거라도 좋으니, 하와에 대해서 아는 게 있다면 알려주세요.”
다시 한번 간절하게 청하는 건우.
그 모습을 본 조현수가 숨을 깊게 내뱉었다. 어떻게 해야 하나, 고심하는 표정이었다.
하지만 결국, 그는 또다시 고개를 저었다.
“기억을 하지 못하는 데는 이유가 있는 겁니다. 별거 아닌 일이 분명하니…….”
조현수는 그렇게 말하면서 완곡한 거절을 표하려고 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건우가 자세를 고쳐 앉으면서 무릎을 꿇었다.
“제발…… 이렇게 부탁드리겠습니다.”
그 모습을 본 사람들의 눈이 동그랗게 변했다.
설마 건우가 무릎까지 꿇을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다.
조현수 역시 놀란 표정을 짓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이건우 님. 이러지 마십시오. 어차피 기억도 안 나는 것 가지고, 왜 이러십니까?”
그에 건우는 한동안 복잡한 표정을 짓고만 있었다. 그러다가 천천히 입을 열었다.
“저도 잘 모르겠어요. 하지만 지금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요. 그냥…… 지금 그냥, 마지막 기회가 될 것 같아서 그래요. 제발 부탁드립니다. 하와가 누군지 알고 싶습니다. 부디 알려주세요.”
건우는 그렇게 말하면서 고개를 푹 숙였다. 그와 동시에, 거실 바닥 위로 굵직한 눈물 한 방울이 뚝 떨어졌다.
주변 사람들은 그 모습을 보면서 당혹스러운 표정을 짓는 한편,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건우의 행동에서 진심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 모습을 본 조윤아가 조현수의 팔뚝을 가볍게 붙잡았다.
“아빠. 저도 부탁드릴게요.”
그녀는 조현수를 아버지가 아닌 아빠라고 불렀다.
그 표현에 조현수가 미간을 살짝 모았다.
“너는 꼭 이렇게 난처한 상황에만 아빠라고 부르는구나. 고얀 놈.”
조현수의 말에 조윤아가 머쓱한 표정을 지었다.
그 모습을 본 조현수가 한숨을 푹 내쉬더니, 고개를 푹 숙이고 있는 건우에게 말했다.
“좋습니다, 이건우 님. 말씀드리겠습니다.”
“정, 정말요?”
조현수의 말에 건우가 눈물을 훔치면서 고개를 들어 올렸다.
그 모습을 본 조현수가 복잡한 표정을 지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네. 잠시 따로 얘기를 나누도록 하죠.”
그는 그렇게 말하면서, 자리를 털고 밖으로 나갔다. 그리고 그 뒤를 건우가 바짝 뒤쫓았다.
* * *
밖으로 나온 건우와 조현수는 옥상으로 향했다.
주변에 높은 건물이 없어서 그런지, 건우네 집 뒤쪽으로 보이는 넓은 밭이 한눈에 들어왔다.
조현수가 그런 풍경을 둘러 보면서, 입을 열었다.
“저는 하와라는 아이에 대해서, 알고 있는 범위에서만 말씀드릴 겁니다. 그리고 그것으로 끝입니다. 알겠습니까?”
덤덤하지만 묘한 압박이 느껴지는 말투.
건우는 자기도 모르게 침을 꼴깍 삼키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네. 그거면 충분해요.”
그가 그렇게 대답하자, 조현수가 건우를 돌아보면서 말했다.
“제 얘기를 듣는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을 겁니다. 하와라는 아이는 이미 존재하지 않고, 누구도 기억하지 못할 테니까요.”
“하지만…… 회장님은 기억하시고 계시지 않나요?”
그 말에 조현수는 묘한 표정만 지은 채,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런 그가 대뜸 입을 열었다.
“하와라는 아이는 윤아가 가장 좋아하는 아이였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귀엽고 사랑스럽다고 노래를 불렀죠. 하지만 항상 아쉽다고 했습니다. 자신은 하와라는 아이에게 절대로 첫 번째가 될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자신도 하와를 가장 사랑하는 첫 번째가 될 수 없다고 하더군요.”
거기까지 얘기를 들은 건우는 가슴 한 편이 강하게 조여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 압력이 얼마나 강한지, 그는 자기도 모르게 가슴을 움켜쥘 정도였다.
그 모습을 본 조현수가 잠시 말을 멈췄다.
“그만할까요?”
“아, 아뇨. 아닙니다. 계속 부탁드릴게요.”
그 말에 조현수가 한숨을 가볍게 내쉬었다. 그리고 복잡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하와라는 아이에게 첫 번째는 늘 당신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첫 번째도 늘 하와라고 하더군요. 제가 아는 하와라는 아이는 딱 이 정도입니다. 만족하십니까?”
그렇게 말을 마친 그는, 건우를 덤덤하게 바라봤다.
그에 건우는 놀라울 정도의 무반응을 보였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마치 뭔가가 빠져나간 것 같은…… 껍데기만 남은 듯한 무표정이었다. 가슴을 움켜쥐고 고통스러워하던 모습은, 마치 거짓말 같았다.
조현수는 그런 건우의 모습을 보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이게 현실이지.’
그는 그렇게 씁쓸한 표정을 지은 채, 건우를 지나쳐서 옥상을 벗어났다.
옥상 아래에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는 가족들이 서 있었다.
조현수가 그런 가족들을 보면서, 여러 가지 감정이 뒤섞인 미소를 지었다.
“이건우 님은 잠시 혼자 있고 싶다고 합니다. 조금 지나면, 스스로 내려올 겁니다. 저희는 집에 들어가 있죠.”
그는 그러면서, 가족들을 데리고 집 안으로 들어갔다.
* * *
옥상에 혼자 남겨진 건우.
그런 그가 정신을 차린 것은 한참 후의 일이었다. 그리고 그 상태로 가장 먼저 내뱉은 것은, 다름 아닌 눈물 한 바가지였다.
“하, 하와야. 하와야…… 하와야아…… 하…… 하으.”
그는 그렇게 하와의 이름을 연신 내뱉으면서, 무릎을 꿇고 오열했다.
조현수의 예상과는 달리, 건우는 하와를 기억해 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