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pirit Farmer RAW novel - Chapter (244)
건우의 하루는 여전히 똑같았다.
배추의 상태를 보고, 무밭을 살피고, 던전 농지에 들르고…….
평소와 조금도 다를 게 없는 하루였지만, 건우는 오늘따라 허전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왜 이러지? 그냥 기분 탓인가?’
그렇게 생각한 건우는, 오늘 했던 일 중에서 가장 어색하게 느껴졌던 일을 다시 한번 해 보기로 했다.
-힝!
그것은 바로 정령을 소환하는 일이었다.
‘분명 소환은 문제없이 잘 돼. 일을 할 때도 문제없었고. 그런데 왜 이렇게 낯설지? 오늘 처음으로 해 보는 것처럼…….’
그렇게 생각한 건우는 한동안 이 문제로 인해 고심에 빠졌다.
그러길 한참.
“건우야. 이제 작작하고 저녁 먹으러 나와라.”
아버지가 깊은 생각에 빠져 있던 건우의 어깨를 짚었다.
그에 깜짝 놀란 건우가 정신을 차리고 아버지를 돌아봤다.
“밥이요?”
“그래. 네 어미가 아까부터 밥 먹으러 나오라고 노래를 불렀는데…… 못 들었어?”
“그랬어요? 전혀 못 들었어요.”
건우는 그렇게 대답하면서, 살짝 열린 방문 틈 사이로 보이는 거실을 살펴보았다.
가온이 식탁 옆에서 빵빵한 배를 두드리고 있었다.
“식사는 다 하신 거예요?”
“그래. 네가 안 나와서 일단 우리끼리 먼저 먹었다. 오늘 저녁은 어떻게 할 거야? 안 먹을 거면 상 치울 거고, 아니면 지금 바로 나와서 먹어라.”
그 말을 들은 건우는 짧게 침음을 흘렸다. 그러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오늘은 못 먹을 것 같아요. 입맛이 없네요.”
그렇게 말한 건우는, 묘한 표정을 지으면서 책상 위를 바라봤다.
거기에는 바람의 정령이 대자로 뻗어서 잠들어 있었다. 아까 건우에게 소환을 당한 후, 지금껏 기다리다가 지쳐서 잠에 든 모양이었다.
‘괜히 소환해서…… 미안하네.’
그렇게 생각한 건우는 바람의 정령의 배를 검지로 쓰다듬어 주기 시작했다. 그에, 바람의 정령이 잠든 상태로 한 차례 꿈틀거렸다.
아버지가 그 모습을 보면서,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뭔 일 있었냐?”
“아뇨. 별일 없었어요.”
“그런데, 왜 그러고 있어? 몇 시간씩 멍하니 앉아있고…….”
그 말에 건우가 어색하게 웃었다.
“죄송해요. 그런데 정말 별일 없었어요. 그냥 뭔가 좀 허전해서요. 마치 잊으면 안 될 걸, 잊은 느낌이에요.”
“잊으면 안 될 거? 그게 뭔데?”
“그걸 모르겠어요. 아무리 생각해 내려고 해도 생각이 안 나요.”
“그래? 흐음.”
건우의 말에 아버지는 침음을 흘렸다.
그러다가 대뜸 다른 이야기를 꺼냈다.
“오랜만에 네 옛날 모습을 보는 것 같다.”
“제 옛날 모습이요?”
“그래. 네가 초인인지, 뭐시긴지 하러 뛰쳐나가기 전에 말이다. 너는 옛날부터 이상한 생각을 하느라고 몇 시간씩 멍하니 있었잖냐? 내가 왜 그러냐고 물으면 그냥 명상한 거라고 둘러대고…….”
“아.”
건우는 아버지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차릴 수 있었다.
과거, 건우가 질풍노도의 시절 때 이야기였다.
“그때는 제가 좀 어렸잖아요. 잡생각이 좀 많았죠.”
“그래. 그때는 어렸지. 사춘기이기도 했고…… 아무튼, 그냥 그때 생각이 나서 한번 말해봤다. 적당히 하고 나와라. 과일이라도 좀 깎아줄 테니까, 먹고 자.”
아버지는 그렇게 말하면서 밖으로 나갔다.
건우는 그 모습을 보면서, 미안한 표정을 지었다.
‘괜한 걱정을 끼친 것 같네.’
그는 그러면서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때, 뭔가가 건우의 손가락을 꼭 쥐는 느낌이 들었다.
-힝!
잠들어 있었던 바람의 정령이, 자신의 배를 쓰다듬던 건우의 손가락을 온몸으로 감싸 쥔 것이다.
건우가 그 모습을 보고는 슬쩍 웃었다.
“깼어? 괜히 나 때문에 지루했지?”
-힝!
바람의 정령은 건우의 말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활짝 웃었다.
그 순간, 건우는 묘한 기시감이 들었다.
‘이거랑 비슷한 상황, 겪어본 적이 있는 것 같은데…….’
그는 그러면서 한동안 더 생각에 빠져들었다.
그렇게 잠시 후.
건우가 바람의 정령을 돌려보내고 잘 준비를 하려는데, 스마트폰에서 알림음이 울렸다.
[이건우 님. 내일 점심시간 조금 지나서, 아버지와 방문해도 될까요?]신비술사 조윤아에게 문자가 온 것이다.
***
다음날.
건우는 아침 일과를 하지 않고 손님맞이 준비를 하고 있었다.
조윤아가 그녀의 아버지인, 신화그룹 회장 조현수와 방문할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원래대로는 그냥 일과를 보고 있다가 맞이하려고 했는데…….’
그렇게 생각한 건우는 슬쩍 부모님을 바라보았다.
어머니는 엘과 소아에게 고운 한복을 입혀주고 있었고, 아버지도 가온에게 대감님 모자(정자관)를 씌워 주고 있었다. 끈으로 묶어서 고정하는 방식이었다.
‘정말 극성이라니까.’
그렇게 생각한 건우는 피식 웃으면서, 시간을 확인해 보았다.
조윤아와 조현수가 도착하려면 아직 여유가 있었다.
‘오기 전에 청소라도 좀 하고 있을까?’
건우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일단 자신의 방부터 정리하기로 했다.
잠시 후.
그는 청소하던 중에 작은 한복을 하나를 발견했다.
‘누구 거지?’
건우는 작은 한복을 살피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러고는 거실에 있는 어머니에게 물었다.
“어머니. 여기 남은 한복은 누구 거예요?”
그 물음에 엘과 소아의 머리를 따 주고 있던 어머니가 바로 대답해 주었다.
“몰라. 전번에 살 때, 네가 실수로 세 벌 산 거 아니냐?”
“으음. 제가 실수로 한 벌을 더 샀다고요?”
“아니면 한복집에서 한 벌 서비스로 넣어준 걸지도 모르지. 우리 애들이 좀 예쁘니? 호호호.”
어머니는 그렇게 말하면서 엘과 소아의 볼에 입을 쪽 하고 맞췄다.
그에 엘과 소아가 꺄르르 웃더니, 어머니의 양쪽 볼에 뽀뽀하는 것으로 답례했다.
건우는 그 모습을 보면서 한 차례 미소를 짓다가, 다시 한복을 살폈다.
‘노란 저고리에 분홍 치마라…… 예쁘네. 혹시 모르니까, 잘 보관해 둬야겠다.’
그렇게 결정을 내린 건우는 한복을 잘 싸서 옷장 안에 넣어 두었다.
그리고 다시 거실로 나왔을 때, 건우는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아버지. 그건 또 왜 꺼내셨어요?”
“응? 당연히 마시려고 꺼냈지.”
아버지가 애지중지 잘 모셔두었던 산삼주를 꺼냈기 때문이다. 지난겨울에 캐낸 산삼으로 담근 산삼주였다.
건우가 아버지의 말에 한숨을 내쉬었다.
“그거 제가 장가갈 때, 장인어른 드린다고 하지 않으셨어요?”
“내가 그랬었나? 나는 손녀가 시집갈 때, 시댁 어른 준다고 했던 것 같은데?”
“아무튼요. 그걸 왜 지금 꺼내세요?”
그 물음에 아버지가 씨익 웃었다.
“집안 행사 때 꺼내는 것도 좋지. 그런데 오늘 오시는 분이 예삿분이 아니잖냐? 이런 거라도 대접해 드려야지.”
“그냥 아버지가 드시고 싶으신 건 아니고요? 평소에도 산삼주 같은 건, 너무 오래 담가두면 효능이 떨어진다고 자주 그러셨잖아요.”
“내, 내가 그랬나?”
“네. 그러셨어요. 상당히 자주.”
건우가 그렇게 말하자, 아버지는 괜히 먼 산을 바라보면서 산삼주가 든 병만 조용히 닦았다.
건우는 그 모습을 보면서 못 말리겠다는 듯이 고개를 한 차례 저은 후에, 아무려면 어떠냐는 듯이 웃었다.
‘그래. 어차피 먹을 건데…… 중요한 손님께 대접하는 것도 나쁘지 않지.’
그는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하던 청소를 마저 하려고 했다.
그러던 와중에 한 가지 의문이 떠올랐다.
‘그런데, 저걸 누가 캤더라?’
어린아이 팔뚝만 한 커다란 산삼.
지난겨울, 그 산삼을 누가 캤는지 기억이 가물가물했던 것이다.
건우가 그것을 아버지에게 물었다.
“아버지. 그런데 그 산삼, 누가 캤었죠?”
“응? 이거? 네가 캔 거 아니었냐?”
“제가요? 아닌데…… 엘이 캤었나?”
건우가 그렇게 묻자, 어머니가 따아 준 머리를 만지작거리고 있던 엘이 고개를 저었다.
“저는 아니랍니다! 그때, 저는 던전 농지에서 살았답니다.”
“아, 맞다. 그랬었지. 그러면 누가 캔 거지? 소아하고 가온이는 확실히 아닌데…….”
건우는 그렇게 중얼거리면서, 가물가물한 기억을 되짚어 나갔다. 그러자 한 아이의 뒷모습이 떠올랐다.
겨울 산을 마치 날다람쥐처럼 헤집고 다녔던 작은 아이.
건우가 그 아이에게 조심하라고 주의를 주니, 그 아이가 활짝 웃으면서 뒤돌아봤다.
‘그런데…… 왜 얼굴이 기억나지 않지?’
마치 아이의 얼굴에 짙은 안개가 낀 것처럼 보이질 않았다.
대신 한 단어가 떠올랐다.
“하와?”
바로 하와라는 단어.
건우는 그것을 몇 번이고 되뇌더니, 고개를 갸웃거렸다.
“하와가 뭐지?”
그는 결국 하와가 뭔지 떠올리지 못하고, 스마트폰을 꺼내서 검색해 보았다. 나오는 거라고는 성경에 나오는 인물뿐이었다.
‘아담의 갈비뼈를 뽑아서 만들어낸 하와라…… 하와와 이브는 동일인물이었구나.’
건우는 뜬금없이, 하와는 히브리어 발음이고 이브는 영어 발음이라는 것을 알아내고는 스마트폰을 껐다.
그리고 한동안 하와에 대해서 떠올리다가, 다시 청소를 시작했다.
그 청소는 조윤아와 조현수가 도착할 때까지 이어졌다.
***
묵계리 입구로 리무진 한 대가 들어섰다.
보통 이런 마을에 리무진 같은 고급 의전 차량이 들어서면 깜짝 놀라기 마련이었지만, 묵계리에 사는 마을 사람들은 그리 놀라는 눈치가 아니었다.
한 번 쓱 쳐다보고는 다시 하던 일을 하는 것이다.
리무진 안에서 그 모습을 본 한 청년이 입을 열었다.
“여기 사람들은 리무진을 보고도 그리 놀라지 않는구나?”
청년의 이름은 조현수.
무려 신화그룹의 회장직을 맡고 있는 인물이었다.
그런 조현수의 말에 한 여인이 덤덤하게 대답했다.
“아무래도 그렇죠. 제가 자주 타고 다녔으니까요.”
몸매가 그대로 드러나는 붉은색 드레스를 입고 있는 관능적인 여인.
그녀의 정체는 놀랍게도 조윤아였다.
조윤아는 결국, 성장의 비약을 마셔서 본래의 모습을 되찾은 것이다.
조현수가 그런 조윤아의 모습을 보면서, 혀를 가볍게 찼다.
“옷 꼬라지 하고는…….”
“왜 또 그래요? 타협 봤잖아요.”
“타협은 무슨…… 네가 지현이랑 같이 협박해서 어쩔 수 없이 허락해 준 거지.”
“자꾸 그러실 거면 가세요. 저 혼자 갈 테니까.”
조윤아의 가시 돋친 말에, 청년은 입을 꾹 다물었다. 할 말은 많았지만, 하지 않았다.
그렇게 얼마 후.
목적지에 거의 도달하자, 운전을 하고 있던 집사 나이트가 입을 열었다.
“회장님, 거의 다 도착했습니다.”
그 말에 조현수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옷맵시를 단정히 했다.
그와 더불어, 조윤아도 심호흡을 하면서 구겨진 옷을 평평하게 피기 시작했다.
조현수는 그런 조윤아의 모습을 보면서,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러니까, 딸내미 키워 봤자 소용없다는 말이 나오는 거지.’
가족인 자신이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 더 잘 보이려고 애쓰는 모습이 아니꼽던 것이다.
그 순간, 조수석에 있던 이가 목을 쭉 빼서 조현수를 바라봤다.
집사 폰…… 아니, 집사 룩이었다.
“회장님. 어디 불편하십니까?”
“안 불편하겠어? 기껏 애지중지 키워놓은 딸내미가 이러고 다니는데?”
그 말을 들은 룩은 자기도 모르게, 조윤아에게 시선을 돌렸다.
그 모습을 본 조현수는 손가락 두 개를 들어 올리더니, 룩의 두 눈을 찌르려는 모션을 취했다.
“어딜 쳐다봐? 눈 안 돌려?”
“흐음, 죄송합니다.”
조현수의 위협에 머쓱한 표정을 짓는 룩.
그가 다시 정면을 바라보는 순간, 조윤아가 고운 이마를 찌푸렸다.
“아버지. 룩한테 왜 그러세요?”
“왜 그러긴? 그걸 몰라서 물어? 어휴- 진짜 딸내미라고는 딱 하나 있는 게, 애비 마음은 조금도 몰라요.”
조현수가 그렇게 투덜거리자, 조윤아는 그런 그와 한동안 더 입씨름을 했다.
그런 둘의 모습을 백미러로 확인한 나이트가 슬쩍 미소 지었다.
‘이런 모습도 나쁘지 않군.’
한껏 꾸미려는 딸과 그런 딸을 어떻게 해서든 자제시키려는 아버지.
어찌 보면 그리 특별할 것도 없는 부녀 사이의 모습이었지만, 나이트에게는 그것이 신선하게 다가왔다.
회사 일로 항상 바쁜, 신화그룹의 회장 조현수.
그리고 그런 그에 못지않게 바쁜 일정을 소화하는 조윤아.
둘은 평소에 만남이 적은 만큼, 그리 친근한 관계도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무튼 외모의 변화라는 것은 신기하군. 두 사람의 관계를 이렇게 바꿔놓을 줄은 몰랐어.’
나이트는 그렇게 생각을 마무리하면서, 입을 열었다.
“회장님. 마지막으로 VIP 이건우 님에 대해서 말씀드리겠습니다. 이건우 님은…….”
“아니, 됐어. 그에 대한 건 충분히 숙지하고 있으니까.”
“그러시다면…… 알겠습니다.”
그렇게 대화가 끝나자, 얼마 가지 않아서 리무진이 멈췄다.
목적지에 도착한 것이다.
잠시 후.
나이트와 룩이 뒷좌석의 문을 열어 주었고, 거기서 조윤아와 조현수가 모습을 드러냈다.
둘은 말끔한 정장과 드레스 차림으로 건우네 집 대문을 지나쳐 들어갔다.
바로 그때, 건우네 집 현관문이 열리면서 소아가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앗! 도착했다! 손님 왔어요!”
그러면서 다시 집으로 들어가는 소아.
그 모습을 본 조현수가 조윤아에게 덤덤히 물었다.
“윤아야. 저 아이가 하와냐?”
“네? 하와요?”
“그래. 아이들 중에서 네가 가장 애정한다던 아이 말이다.”
그 말에 조윤아가 묘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소리세요? 저는 아이들 다 좋아해요. 한 명만 편애하지 않아요. 그리고 저 아이 이름은 소아예요.”
“소아라…… 그래. 알았다.”
조현수는 조윤아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고는 소아라는 이름을 속으로 되뇌었다.
바로 그때였다.
건우네 가족이 깔끔한 한복을 차려입은 채, 밖으로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