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Became the Despised Granddaughter of the Powerful Martial Arts Family RAW novel - Chapter (343)
이 무심한 눈길로 말했다.
“저 사람들도 풀어줄 생각 아니었어?”
“아, 그랬지. 맞아.”
백리세란은 훙미를 억누르고 마저 다른 이들도 모두 풀어 주었다. 하지만 그들은 구속에서 풀렸음에도 얼떨떨한 기색으로 눈치만 볼 뿐이었다.
백리세란은 문을 향해 고갯짓했다.
“도망치세요.”
“뭐, 뭣? 어디로 도망치란 말이오?”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든지, 가던 길을 가든지……. 어쨌든 여기 계속 있을 수는 없잖아요?”
사람들이 당혹스러운 기색으로 서로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때 뒤쪽에서 누군가 버럭 소리쳤다.
“말도 안 되는 소리! 너야 가문이 든든해 상관없겠지만 우리 같은 강호인들은 관에 찍히면 얼마나 귀찮은 줄 아느냐?”
“아는 이요?”
“예전에 본 적 있소! 백리세란! 저자는 백리가의 막내딸이란 말이오!”
“배, 백리세란이라면 무림맹주의……!”
“아, 그래서 저런 무기를……!”
“백리 세가라니! 하하, 어쩐지 거침없더라니! 현령도 상대를 잘못 골랐군!”
몇몇이 진실을 깨달은 듯한 표정과 우러러보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백리세란은 어깨를 으쓱이곤 얼굴을 쓸어내렸다.
“여기서 아는 사람을 만날 줄은 몰랐는데.”
백리세란은 현재 간단한 역용을 하고 있었는데, 몸에 부담이 없는 대신 그녀를 예전에 본래 얼굴을 아는 사람에게는 역용술이 효과가 없었다.
“그래. 내가 백리세란이 맞아. 그런데 뭐?”
상대가 당황한 듯 눈을 끔뻑였다.
그 자를 제치고 다른 이가 앞으로 나오더니 갑자기 그녀를 향해 말했다.
“백리 소저. 우릴 조금만 도와주 시지요!”
“그래요! 백리 소저라면 산군 정도야 쉽게 처리 가능하지 않소? 차라리 그냥 처리하고 가는 게 어 떻소.”
“아니면, 현령에게 잘 말하여서 우리라도 풀어주라고……”
“아니! 이대로 갈 수는 없소! 소문이 참말이라면 그 산군에게 영단이 있을 확률이 높소!”
“ 영단이라고?”
“무림맹에게 지원 요청이라도 합시다! 백리 소저가 있으니 무림맹도 무시할 수 없을거요!”
가만히 있으려니 이야기가 끝도없이 이어져갔다.
백리세란은 인상을 찡그리며 말을 잘랐다.
“방금 내가 말한 거 뭐로들은 거야? 그냥 도망치라고.”
그때 백리세란의 정체를 밝힌 사내가 버럭 소리쳤다.
“이, 이대로 우리가 도망가면 ……! 관에 쫓기게 될 텐데! 그런데 지금 그런 짓을 하란 말이오?!”
“내가 그쪽들 사정까지 신경 써야 하나? 알아서 도망가든지 말든지. 난 산군 잡으러 갈 생각 없으니까, 괜히 돌아오지도 않는 나 때문에 죽지 말라고 풀어 준 거야.”
“뭐, 뭐얏?”
그때 다른 이가 그녀를 향해 손가락질했다.
“너는 이곳의 백성이 불쌍하지도 않으냐?”
백리세란이 인상을 찡그렸다.
“뭐라는 거야. 바로 전에 영단이 어쩌고 해놓고?”
몇몇 사람들의 낯이 붉어졌다.
백리세란은 혐오 어린 눈빛으로 슬쩍 비웃듯 미소짓고 말을 이었다.
“게다가 당신들도 얘기 들었잖아? 여기 사람들이 먼저 산군을 건드린거라고.”
그녀는 머리를 귀 뒤로 쓸어 넘기며 말을 이었다.
“본인들이 잘 못 해놓고, 도와줄 사람에게 성심껏 부탁은 못 할망정 협박이라니. 기분 상해서 싫어.”
“너는 사람 목숨이 그리 가벼우냐?”
어깨를 으쓱인 백리세란이 몸을 돌릴 때였다.
“하! 천하제일이라는 백리연의 자식이 이 모양이라니! 그 이름이 아깝구나!”
백리세란의 표정에서 웃음기가 사라졌다.
가문과 이름이 알려진 순간.
사람들은 늘 제멋대로 기대하고 제멋대로 실망했다.
수십 번씩 반복되던 지긋지긋한 상황이었다.
백리세란이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오류문의 막고성, 그 입 닥쳐. 당신이 뭔데, 내 어머니의 이름을 언급하지? 그만한 대가를 치룰 각오는 있나?”
사내가 펄쩍 뛰며 주춤 물러났다. 표정에 경악이 드러났다. 겁에 질린 것 같기도 했다.
“어, 어떻게 내 이름을……!”
사내와 동조하던 다른 이들도 순간 당황한 기색이었다.
그 순간이었다.
뻑! 둔탁한 소음과 함께 사내가 바닥으로 쓰러졌다. 쓰러지는 사내 뒤쪽에서 소년이 말했다.
“뭐 하러 이런 놈을 상대하고 있어? 쓸데없는 짓이야.”
잠시 눈을 동그랗게 뜬 백리세란은 씩 웃음 지었다.
“잔소리쟁이네.”
백리세란이 잔소리쟁이를 다시 만난 것은 한 달 후, 호랑이, 산군의 영역에서였다.
“여기까지 해.”
그때 그 잔소리쟁이였다.
백리세란은 당장 뛰쳐나갈 뻔한 다리를 억누르고 최대한 기척을 죽였다.
크르르릉-.
하얀빛의 집채만 한 백호는 그 모습만으로도 사람들을 공포에 질리게 만드는 기백이 있었다. 그리고 당장이라도 덤벼들 것 같은 백호의 맞은편에 그 잔소리쟁이가 서 있었다.
‘대체 뭘 하려는 거지?’
산군의 그르렁거림 속에는 고통, 원한, 슬픔이 느껴졌다. 말한다고 들을 정도가 아니었다. 그렇다고 저 소년이 홀로 상대 할 수 있을 만큼 만만한 짐승도 아니었다.
그때 소년이 들고 있던 것을 산군을 향해 집어 던졌다. 백리세란은 미간을 좁히며 안력을 높였다.
수풀을 구르며 보자기가 벗겨지고 드러난 것은 사람의 목이었다. 얼굴을 확인한 백리세란은 한 손으로 입을 틀어막았다.
‘미친••••••!’
목의 주인은 한 달 전 강호인들을 잡아 산군을 잡으라고 협박하던 현령이었다.
소년이 말했다.
“이제 끝났어.”
백리세란은 입술을 깨물었다.
그래. 산군의 아이를 잡아 죽이고 팔아먹은 자는 바로 현령이었다.
본래 이곳의 산군은 숲속의 넓은 영역을 누비며 조용히지내고 있었다.
그리고 근방 마을의 사람들은 산군을 거의 반신령처럼 여기며 산군의 영역에서 조심스레 약초를 캐거나 버섯을 따는 행동을 허락받아 왔다.
그러나 이번에 부임한 현령의 생각은 달랐던 모양이었다. 현령은 산군의 이야기를 듣고, 잡아 팔 생각을 했다.
마을 사람들도 처음에는 반대하였으나 어느 순간에는 동조하게 되었고…… 비극이 찾아온 것이었다.
산군은 바닥을 구르고 있는 현령을 꼼짝하지 않고 노려보았다. 숨을 들이쉬고 내쉴 때마다 그르렁 거리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렇게 울리던 소리가 어느 순간 점차 잦아들었다.
노기가 누그러드는 듯한 모습에 오랫동안 긴장하던 소년의 어깨가 풀어졌다. 그 순간이었다.
[아니, 이걸로는 끝나지 않는다!]울부짖음과 함께 머릿속을 울리는 듯한 의지에 가까운 목소리가 들렸다. 동시에 산군이 바닥을 박차고 도약했다. 순식간에 산군과 소년의 신형이 얽혔다.
콰쾅-!
그리고 백리세란은 황급히 수풀 사이를 뛰쳐나갔다.
“잠깐!”
그녀의 등장에 산군이 집채만한 몸을 날렵하게 틀어 소년에게서 물러났다. 그러고는 몸을 낮추며 당장 둘에게 달려들 것처럼 경계했다.
“너는••••••?”
소년이 놀란 목소리를 뒤로하고 백리세란이 말했다.
“싸우려고 온 게 아니야.”
백리세란은 산군을 자극하지 않을 정도로 느리게 움직여 펼치고 있던 기막을 풀었다. 그리고 작게 휘파람을 불었다.
그녀의 행동을 어찌 해석했는지, 다시 덤벼들려던 산군이 갑자기 움직임을 멈췄다.
그녀의 뒤쪽 수풀이 흔들리는 움직임은 무언가 다가오는 모습이었다. 산군은 그곳에서 시선을 떼지 못했다.
이내 수풀 사이로 아직 다 자라지 못한 어린 호랑이가 모습을 드러 냈다.
주변을 둘러보던 어린 호랑이는 그녀와 산군을 번갈아 보다가 산군의 품을 향해 뛰어들었다.
“죽은 아이는…… 미안해. 찾을 수 없었어.”
이미 가죽이 되어서 어떻게 되었는지 알 수 없었다.
산군의 시선이 그녀와 소년을 번갈아 향했다. 무언가 가늠하듯 탐색의 시선이 한참을 맴돌았다.
긴장감에 목덜미로 땀이 흐르는 것이 느껴졌다. 마침내 산군이 제 아이와 함께 수풀 사이로 멀어졌다.
산군의 모습이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진 후, 간신히 안도의 숨을 내 쉴 수 있었다. 이제 더는 사람을 공격할 일은 없을거라는 걸 알 수 있었다.
백리세란은 옆을 돌아보았다. 그녀가 튀어나가기 직전의 아주 짧은 공방이었을 텐데 언제 닿았는지 소년의 허리에 붉은 피가 너덜 너덜한 옷자락을 적시고 있었다.
호신강기를 종이 찢듯 찢어 버리는 힘이 목소리처럼 들릴 정도의 의지와 사고력. 이미 영물이라고 볼 수 있었다.
“ 괜찮아?”
소년이 고개를 끄덕였으나, 그와 함께 바닥으로 한쪽 무릎을 꿇으며 주저앉았다.
백리세란은 깜짝 놀라 함께 몸을 숙였다.
“나한테 약이 있는데 잠깐……”
상처를 보려고 하였으나 소년은 숨기듯이 상처를 팔로 가렸다.
“지금 고집부릴 때야?”
약간의 실랑이가 있었으나 백리세란은 소년의 상처를 살필 수 있었다.
그리고 경악했다. 호신강기를 종이 찢듯 찢어 버릴 때부터 알아봤지만, 생각보다 내상이 깊었다.
‘이거 그냥 상대했으면 정말 힘들었겠는데……?’
원통하지만 언니나 오라버니 수준은 돼야 상대할 만할 듯 싶었다.
하나 다행이라 볼 수 있는 건 치명적인 부상은 아니라는 것이었다.
지혈하고 약을 바르고 붕대를 감았을 땐 상당히 시간이 지나, 그녀나 소년이나 둘 다 잔뜩 진이 빠졌다.
지친 기색으로 나무에 기대앉아 있던 백리세란은 문득 시야에 들어온 걸 보고 물었다.
“그런데 이거 괜찮겠어? 이 사람 그냥 시골 현령이 아닌데. 엄청 이름 높은 집안 자제인데. 조부가 육 부의 상서라고 들었어.”
백리세가라는 이름을 듣고도 알 바냐는 듯 배짱부린 이유가 있었다.
사고를 쳐서 시골에 내려와 있던 것일 뿐, 본래라면 이곳에 있을 만 한 집안의 자제가 아니었다.
“ 알아.”
“그런데 죽인 거야? 무슨 대안이라도 있어? 아니면 아무한테도 안 들킬 자신이 있던 거야?”
“들켰어.”
백리세란이 펄쩍 뛰었다.
“뭐라고?!”
그녀의 반응과 달리 소년은 태연하게 답했다.
“하지만 다른 방법이 없었어.”
백리세란은 입을 다물었다.
하긴 직접 마주한 산군의 분노는 대단했다.
그녀는 수소문 끝에 산군의 자식을 되사오면 해결되지 않을까 싶었지만, 현령을 끝내지 않는 한 결코 끝날 분노가 아니었다.
만약 현령의 목이 없는 채 산군의 아이만 가져다 줬더라면 산군의 분노에 당하는 건 그녀였으리라.
‘동물이라고 너무 쉽게 생각했어.’
잠시 입을 다물고 고개를 숙인 채 고민하던 백리세란이 말했다.
“이렇게 하자.”
“너랑 나랑 같이 현령을 죽인 거로.”
소년이 무슨 소리냐는 듯이 백리 세란을 바라보았다.
“엄마 친우 중에 높은 분이 계시거든. 내가 저질렀다고 하면 조금…… 혼나긴 하겠지만 어떻게 수습이 되긴 할 거야.”
“왜?”
백리세란은 알아듣고도 모르는 척 빙글빙글 웃으며 말했다.
“뭐가?”
“네가 날 왜 도와주냐고.”
“그러는 너는 현령을 죽인 거야? 귀찮아질 게 뻔한데.”
감옥에서 말하던 걸 보면 현령에게 원한이 있다거나, 딱히 백성을 돕고자 하는 마음이나 안쓰러운 마음은 없었다.
“스승님이 시켜서.”
“스승님?”
“호랑이 때문에 소란스러우니 조용히 시키고 오라고 했거든.”
“소란스럽다고?”
“산군을 죽이는 건 내 실력으로 불가능하니, 현령을 죽일 수밖에.”
미친놈인가.
백리세란은 잠시 말을 잃었다.
잠시 바라보던 백리세란이 다른 질문을 했다.
“네 이름이 뭐야?”
“ 없어.”
“……뭐? 이름이 없다고?”
“응, 없어.”
“아, 어쩐지……
백리세란이 눈가를 쓸어내렸다.
그녀에게는 천기를 읽을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날 때부터 있던 능력으로 사고를 할 수 있을 때쯤 홀로 깨달았다. 이 능력에 대해선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는 것이 좋다는 걸.
유일하게 어머니만이 그녀의 능력을 짐작했다. 어머니는 그녀를 안쓰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안아주었다.
“역시 ……의 능력은 네가 물려 받는 게 좋겠구나. ”
그 능력 덕에 그녀는 그녀와 말을 섞은 이들을 저절로 파악할 수 있었다. 이름이 무엇인지, 나이가 몇인지, 어떻게 자랐는지, 거짓말을 하는지, 진실을 이야기하는지.
하지만 이 녀석만큼은 안개가 낀 듯이 뿌옇게 아무것도 알 수 없었다.
“그래도 스승님이 계신다며? 널 부르는 호칭이 있을 거 아냐?”
“제자야.’’
백리세란은 멍한 얼굴로 물었다.
“사문이 대체 어디야?”
“비밀이야.”
그녀의 말문을 막은 소년은 기대 고 있던 나무를 짚고 몸을 일으켰다. 백리세란은 놀라서 따라 일어 났다.
“어디가?”
“가야지.”
“바로 떠난다고? 그 몸을 하고? 좀 쉬는 게 좋지 않겠어?”
“여긴 산군만 위험하지 않아. 피 냄새가 났으니 다른 들짐승들도 몰려올거야. 너도 여기 머물 생각 말고 떠나.”
소년은 더 말하고 싶지 않다는 듯 고개를 까딱인 후 몸을 돌렸다.
백리세란은 그렇게 떠나는 소년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그리고 느리지만 꾸준한 발걸음으로 길도 없는 깊은 숲속을 익숙하게 걷던 소년은 살짝 미간을 좁히고는 뒤를 돌아보았다.
그와 눈이 마주친 소녀가 환하게 웃었다.
소년은 무표정하게 물었다.
“왜 따라오는데?”
“네 사문이 궁금해서.”
알려 주면 안 따라갈게
“솔직히 내가 도와줬는데 그 정도는 알려 줘도 되지 않아? 검도 없고 손의 단련 정도를 봐서는 권장법을 주로 쓰는 것 같은데 맞아?”
“알려 줄 수 없다고 했잖아.”
“그럼 따라다닐 거야. 알아낼 때까지.”
소년은 붉은 눈동자가 자리한 눈매를 당혹스럽다는 듯이 일그러트렸다.
백리세란은 왠지 느낌이 왔다. 마치 하늘의 인도를 받는 느낌이었다. 그를 따라간다면 찾을 수 있다고. 그녀가 오랫동안 찾아 헤매던 자신만의 것을.
새로운 이야기의 시작이었다.
〈외전 5 마침〉
by BaaRa