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t or Die RAW novel - Chapter 83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83화
‘팬덤 이름, 컬러, 공식 응원봉까지 뭐 하나 아직도 내준 게 없는 소속사’에 대한 분노는 에스컬레이터처럼 번져갔다.
‘이 정도면 참을 만큼 참은 상황이긴 하지.’
솔직히 더 일찍 터졌어도 이상하지 않았는데, 워낙 곡이 잘 나왔고 기세를 타는 중이라 혹시 성적에 영향 갈까 봐 공론화하지 못했던 모양이다.
어쨌든, 덕분에 회사 기획 파트에 적신호가 들어간 모양이다.
원래 오늘 밤에 예정되어 있던 테스타의 회사 관련 스케줄이 취소되었다.
“축하합니다!”
대신, 조촐하게 숙소에서 1위 파티가 벌어졌다. 허락받은 법인 카드로 치킨이나 몇 마리 시켜놓은 소소한 규모였다.
의외의 요소는 술이 있다는 점이다.
“1위 기념이니까 맥주 정도는 괜찮을 것 같아서. 취하지 않을 정도만 마시고 치우자.”
“네!”
허가를 받아온 류청우가 시원스럽게 말하고는 맥주를 한 번에 들이켰다. 척 봐도 술 강할 인상이라 놀랍진 않았다.
물론 미성년자 둘에게는 탄산음료가 돌아갔다.
왠지 소외시키는 것 같았는지, 선아현이 드물게도 둘에게 말을 걸었다.
“내, 내년엔 꼭 같이 마시자…!”
차유진이 입에 종이컵을 물고 대답했다. 한동안 관리하느라 못 본 탄산에 정신이 팔린 모양이었다.
“못 마심니다….”
“…으, 으으응?”
“쟤 재미교포라 음주는 만 21살부터 가능합니다.”
맥주를 따던 큰세진이 씩 웃으며 끼어들었다.
“하하하, 무슨 상관이야. 어차피 한국에서 마실 건데!”
“…!”
김래빈과 차유진 모두 큰 깨달음을 얻은 표정이 되었다.
‘잘들 노는군.’
나는 한 손에 맥주를 들고, 다른 손으로 스마트폰을 조작했다. 상황 확인을 위해서였다.
‘대체 어떻게 1위 한 거지.’
분명 며칠 전에 확인했을 때는 불가능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그 후로는 어차피 이번 주 순위 집계 기간이 끝나서 안 들여다봤었다.
“…….”
그리고 얼마 뒤. 나는 상황을 깨달았다.
‘세 가지 요소가 겹쳤군.’
첫 번째는 예능 선공개. 여기서 뮤직비디오와 음원으로의 유입이 작은 기폭제가 되어서 차트 순위가 차근히 올랐다.
두 번째는… 팬 사인회였다.
추가 팬 사인회 응모 때문에 음반 판매량이 아직도 꽤 높던 것이다.
‘…컷이 더 올랐잖아.’
어느새 180장이 된 팬 사인회 컷을 보니 식은땀이 났다.
이건 나중에 생각하도록 하자. 이제 뭘 해야 제값을 할지 감도 오지 않는다…….
…어쨌든, 이 두 가지 요인이 우연히 맞물리며 시너지를 내는 가운데, 팬들이 먼저 상황을 눈치채고 투표를 몰아준 것 같다. VTIC의 음방 활동이 끝나서 그쪽 투표 기세가 약간 줄기도 했고.
게다가 여기서 결정적인 세 번째 요인이 들어갔다. 일요일에 하는 ‘인기뮤직’이 최근 순위 집계 체계를 개편했던 것이다.
그 과정에서 본래 월요일이던 집계 일자가 수요일까지 밀리면서, 상승한 음원 점수가 다 반영되었다.
음반 판매량에서는 테스타의 팬 사인회 특수가 다 반영되고 VTIC은 집계기간만 밀려 점수 차가 더 벌어졌다.
‘천운이지.’
그래서 아슬아슬하게 VTIC을 이긴 것이다.
어느 정도냐면, 점수가 7점밖에 차이가 나지 않았다.
“…….”
나는 나도 모르게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켰다. 이렇게 해냈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물론 더럽게 고생은 했다. 그래서 보상심리라도 발동했는지 이게 되니까 아주 짜릿했다.
게다가 작은 실험도 성공했고.
“…더 마실 거야?”
“예.”
나는 이세진이 건네는 맥주 캔을 하나 더 받으며, 상태창을 불러냈다.
“캬하하학!!”
주변에서는 폭소 소리가 가득했다. 자막 붙인 앵콜 영상을 TV 화면으로 틀어보는 모양이었다.
민망해하면서도 웃고 즐거워하는 놈들과 대조적으로, 차갑고 깔끔한 상태창 팝업이 눈에 들어왔다.
[성공적 1위!]당신은 공중파 음악방송 을 통해 1위에 성공했습니다!
!제한시간 : 충족 (대성공)
!상태이상 : ‘1위가 아니면 죽음을’ 제거!
: 진실 확인 ☜ Click!
상태이상 제거 보상으로 주어지는 ‘진실 확인’.
저걸 수령 하지 않으니, 상태이상이 제거되지 않았다.
즉, 보상을 받지 않으면 팝업 내용이 적용되지 않는 것이다.
‘안 그래도 고민했다.’
내가 상태이상을 일찍 제거할수록, 새 상태이상이 뜨는 텀이 짧아지는 것 말이다.
그러면 돌연사 위기는 그대로인 채 난이도만 미친 듯이 상승하게 된다.
그러니까 기한 내에서 최대한 시간을 끄는 편이 나았다.
지난번 케이스 등을 고려하여 그 방법을 틈틈이 고민했는데, 일단 제일 간단한 추측이 통했다니 다행일 뿐이다.
‘한결 마음이 편하군.’
일단 앞으로 300일 정도는 쫓기지 않고 상황을 살필 수 있다는 게 제일 큰 이유다.
다음으로는, 이 상태창이라는 게 어떤… 유동적인 악의를 가진 지성체가 아니라 시스템이라는 추측에 힘이 실렸기 때문이다.
‘악의가 있다면 벌써 팝업으로 수령하라고 협박을 하든, 강제 수령을 시키든 했겠지.’
그런 일이 일어나지 않은 것으로 볼 때, 이 상태이상에도 끝이 있을 확률이 높았다. 게임에는 보통 엔딩이 있으니까.
‘뭐, 희망적인 추측일 뿐이다만.’
일단 하나 해결하고 술이 들어가니 상황을 긍정적으로 해석하게 되는 것 같다.
어쨌든, 이제 팝업도 보류시켜놨으니 천천히 상태창과 상황을 살펴보면 된다. 나는 손에 든 맥주를 다시 쭉 들이켰다.
“무, 문대야.”
“어.”
“너, 너무 빨리 마시는 건… 아, 안 좋을 것 같은데…….”
“아. 그러네.”
한 번에 한 캔씩 비우는 건 좀 심했나. 나는 혀를 차며 맥주를 치우고, 치킨을 잡았다.
“다, 닭 좋아한다고, 봤어.”
“나? 아, 그 팬 사인회.”
“으, 으응!”
선아현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 많이 먹어!”
“그럴게.”
“많이 먹고……. 많이!”
“…….”
‘얘 좀 취한 것 같은데.’
한 캔도 안 마셨는데 취하는 걸 보니 자기 주량을 모르는 모양이었다. 안 마셔봤나.
나는 선아현에게 탄산음료를 들려줬다. 그리고 첫 팬 사인회 때 만난 홈마를 떠올리며 치킨을 뜯었다.
‘색 보정을 잘하시던데.’
때 이것저것 많이 올려주신 분이라 좀 부채감이 있다. 다음에 보면 그분 카메라에 시간을 더 많이 할당해야겠다.
“오오오!”
“야 이거 어떡하냐 우리 진짜 멍청해 보이는데? 크흐흡.”
다른 놈들은 어느새 앵콜 영상에 이어서 본방송 클립을 TV 화면에 틀어놨다.
[히이이익!]마침 모가지 딴 새 탈을 보고 비명을 지르는 차유진이 클로즈업되고 있었다.
“으하하하!!”
본인까지도 눈물을 흘리며 폭소했다.
‘진짜 웃기긴 하네.’
가학성 논란 안 나게 잘 편집해 놨다. 게다가 마지막 소고기 장면을 잘 살려놔서 훈훈함까지 챙겨놨다.
멤버들이 경악했다.
“허어억.”
“5, 5㎏…….”
“어쩐지 다음날 체중이 좀 늘었습니다….”
“괜찮아. 그거 스케줄 때문에 다 빠졌어.”
“맞아요.”
걱정 많은 몇 명은 그 와중에도 이런 말을 중얼거렸다.
“그래도 5㎏까지 먹었을 줄은 몰랐어.”
“금액이 꽤 컸을 텐데.”
“…괜찮을걸요.”
말로는 손해 보는 것처럼 적어놨다만, 진짜 손해 보는 방송이 어디 있나.
나는 큰세진으로부터 리모컨을 뺏어서 연관 동영상을 띄웠다.
[테스타의 한우 5㎏ 먹방 | 무편집본 | ep.2]“저기서 이미 고깃값은 다 뽑았을 겁니다.”
“…!”
조회수가 벌써 백만이 넘었다. 멤버들이 감탄하는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 먹방을 해보는 건 어떨까요? 평소 먹고 싶던 건 다 시도해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문대를 센터로 보내자!”
“세, 센터!”
선아현에게 또 맥주를 준 놈은 누구냐.
다행히 이 화제는 금방 지나갔다.
“저 계속 볼래요!”
“아, 맞다! 아까 문대 난입한 시간부터 다시 틀자!”
신이 난 놈들이 시시덕거리며 영상을 도로 재생했기 때문이다.
‘이제보니 다 좀 취한 것 같은데.’
심지어 미성년자 둘도 분위기에 취했다.
뭐… 즐거워 보이니 내버려 두자. 어차피 숙소인데 취해도 상관없겠지.
나는 스마트폰으로 밀린 모니터링이나 진행하기로 했다.
-우리 애들 한우 많이 먹여주셔서… 압도적 감사…!
-차유진 공포영화는 잘 보면서 현실 공포에 약한 거 너무 귀여워ㅠㅠ 우쭈쭈 울 고영 새가 무서워오?
-선공개 영상만큼 웃겼다ㅋㅋㅋ 아주사 안 본 머글 친구에게 영업 대성공ㅋㅋㅋㅋ
-문대가 찍은 아현이 사진이 내 사진보다 나은 건에 대하여… 요솔 1패 문대 1승ㅠ (보정 사진)
“…….”
마지막은… 프로필을 보니 선아현 사진 찍는 분이 잡담 올리는 계정이다.
그리고 첨부된 선아현의 사진은 며칠 전에 찍은 기억이 있다. 인터넷에서 발견할 줄은 몰랐지만.
마침 고기 먹방이 끝난 TV 화면에서 관련 내용이 나오고 있다.
[둥!] [※쿠키 영상※]먼저, 테스타가 와르르 카메라를 들고 이곳저곳을 찍는 짧은 컷이 지나갔다.
[이 행동의 결과]다 흔들려서 괴생명체처럼 보이는 새, 지면에 나동그라졌는지 달려가는 발만 덩그러니 나온 컷, 뜬금없는 하늘 사진과 수평 안 맞는 물가사진까지 엉망진창의 사진들이 쏟아져나왔다.
그리고 자막이 떴다.
[알아볼 수 없었습니다….]“아하하하!”
“처음 써봤어요!”
“필름이 아까워.”
당사자들이 한마디씩 보태는 와중에, 새로운 자막이 화면에 등장했다.
[예외 있음]수면을 박차고 날아오르는 검은 새, 나뭇가지를 휘두르는 파란 새, 그리고 저수지 정경 몇 점이 지나갔다.
직전에 나온 사진들과 대조되는 깔끔한 컷들이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뜬 것은 햇볕 아래 환하게 웃는 선아현이었다.
저게 바로 아까 선아현의 홈마가 올린 보정사진의 원본이었다.
“어?”
“…박문대겠네.”
무덤덤한 이세진의 말처럼, 곧바로 자막이 떴다.
[모두 한 카메라에서 나온 사진입니다.] [↓찍은 사람]선아현을 찍는 박문대의 영상이 교차되어 나갔다.
그리고 ‘카메라 감독님’이란 자막으로 자체 모자이크된 스텝의 목소리가 삽입되었다.
[무슨 수로 이렇게 잘 찍었지…?] [이 친구 진짜 잘 찍었는데요? (당황)]화면에서 ‘오~’ 하는 감탄사와 함께 카메라를 들여다보는 스텝들의 모습이 지나갔다.
[박문대 : 의문의 금손 (카메라 감독님 피셜)] [※에서 인증됨]자막 위로 도장이 찍히는 효과가 났다. 그리고 영상이 끝났다.
“…….”
설마 이것도 컨텐츠로 살릴 줄은 몰랐네.
그리고 옆에서 큰세진이 일부러 상심한 척하기 시작했다.
“하… 이거 너무 서운한데? 문대는 친구를 차별하는데? 너무 아현이만 챙겨주는 거 아닐까? 아현이 말고도 이렇게 잘해주는 친구가 옆에 있으면 자주 찍어서 업로드하며 우정을 증명하는 게 맞지 않나?”
“…….”
“문대가 가만히 있을수록 상심한 나는 점점 더 말을 많이 하지 않을까? 문대는 빨리 포기하고 사진 업로드를 약속하는 편이 편하지 않을…….”
“내일 찍어서 올릴 테니까 그만해라.”
“그랭.”
취한 놈은 포기를 모른다. 다시 말을 걸지도 모르니 얼른 스마트폰 보는 척이나 하자.
화면에는 아까 띄워놓은 선아현의 보정 사진이 아직 남아 있었다.
‘어쨌든, 예상대로 잘 나왔다.’
솔직히 판다면 시세보다 더 잘 받아야 할 사진이다.
카메라 반납하고 잊어버려서 제대로 확인 못 했는데, 이렇게 볼 줄은 몰랐다.
‘뭐, 인정받는 거 좋지.’
사진 잘 찍는다고 나쁠 건 없지 않은가. 나는 여유로운 마음으로 SNS 확인을 계속해 나갔다.
그리고 한 박문대 팬의 인기글을 봤다.
-박문대 슨스에 올리는 사진부터 예사롭지 않았다고 생각했지만 사진 진짜 잘 찍는다 근데 왜 셀카는 실력이 반토막 나냐..ㅠㅠ
“…….”
찍어본 적이 별로 없어서…?
생각해 보니 남 찍어봤자 남 좋은 일만 해주는 것 같다. 날 잘 찍는 방법이나 연구해 봐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