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but or Die RAW novel - Chapter 92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 92화
“…….”
나는 상대와 눈을 마주쳤다. 그리고 작게 중얼거렸다.
“…앞으로 녹음할 때마다 생각날 것 같은데요.”
“하하!”
청려가 손을 흔들었다.
“걱정 안 해도 돼요. 사실, 그냥 제가 지어냈거든요. 녹음실 괴담을 좀 변형해 본 건데.”
“……음, 그렇군요.”
“근데 녹음실 괴담은 진짠 거 아시죠?”
“……!”
청려는 몇 번 웃으며 개소리를 늘어놓더니, 씻고 오겠다며 사라졌다.
“……후.”
넘겼다.
나는 질린 표정을 짓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저거 분명 아는 놈이다.’
이 빌어먹을 상태창이나 회귀에 관해서 아는 새끼가 괴담 연막으로 날 떠본 것이다.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확신하는 눈치는 아니었다. 직접적으로 내 상태를 확인한 건 아니라는 뜻인데… 그렇다면 배경지식이 있는 상태에서 정황만 보고 추리했다는 건가.
…아니, 이것도 애매하다.
‘불확실한 점이 너무 많군.’
나는 머리를 정리하는 척 이마에 식은땀을 닦아냈다. 그리고 다음 행동을 정했다.
곧 청려가 돌아왔다.
“충전식 전기포트 가져오길 잘했네요. 찬물에 적당히 섞어서 쓰세요.”
“아, 정말 감사합니다.”
나는 청려가 내미는 원통형 기기를 받았다.
보온병이 아니라 전기포트였다.
‘어쩐지 아메리카노가 끓고 있더라니.’
쓸데없는 디테일까지 챙기느라 찬물만 나오게 만든 제작진에게 감탄하며, 나는 할 일을 했다.
‘상태창.’
일단, 저놈 상태창부터 확인한다.
지금까지의 경향성으로 볼 때, 특성과 상태이상에는 보통 그 인물이 어떤 인물인지 추측할 만한 힌트가 있었다.
‘확인해서 손해 볼 건 없지.’
하지만 팝업이 뜨는 순간.
기대도 안 한 힌트가 들이닥쳤다.
[이름 : 청려 (신재현)]현재 확인이 불가능한 인물입니다.
※필요조건 : 두 번째 ‘진실’ 확인
“…!”
나는 곧바로 화장실 방향으로 몸을 틀었다. 동요를 감추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느릿하게 화장실로 이동해, 문을 닫았다.
“…….”
화장실 안에는 카메라가 없었다.
“후…….”
하지만 마이크는 여전히 달려 있다. 나는 혹시라도 헛소리를 지껄이지 않도록 입을 다문 채로, 다시 상태창을 확인했다.
[※필요조건 : 두 번째 ‘진실’ 확인]내가 잘못 읽은 게 아니었군.
청려의 상태창을 확인하려면, 내가 보류시켜둔 ‘진실’ 보상을 수령하라는 뜻이다.
‘재촉하는 건가.’
아니면 정말 청려 저놈이 이 사태와 결부되어 있기 때문에 요구하는 걸지도 몰랐다.
‘게임에서 레벨 제한이 걸린 컨텐츠를 보는 것 같기도 하고.’
어느 쪽이든 그럴싸해서 확신하기 힘들었다.
‘…이런 불확실한 힌트로 상태 이상을 다시 시작하라고?’
미친 짓이었다. 그래서 더 찝찝했다.
‘재촉할 목적이면 더 극단적인 수단을 쓸 수 있을 텐데.’
저놈에게 정말 단서가 있다고 상태창이 당근을 흔들고 있는 거라면?
“…….”
결정하자.
‘어차피, 계속 상태이상이 뜨는 채로 살 수는 없다.’
이대로 클리어하다 보면 상태이상이 사라질 것이라는 내 추측도 엄밀히 말하자면 행복회로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이걸 아무리 미뤄도 300일이다. 그 후에는 보상을 수령해야 한다.
‘차라리 지금 얻어갈 수 있는 걸 얻어간다.’
이 타이밍이 지나가면 청려가 어떻게 나올지 몰랐다. 차라리 서로 탐색 중일 때 끝낸다.
‘…팝업.’
[성공적 1위!]당신은 공중파 음악방송 을 통해 1위에 성공했습니다!
!제한시간 : 충족 (대성공)
!상태이상 : ‘1위가 아니면 죽음을’ 제거!
: 진실 확인 ☜ Click!
나는 천천히 손을 들어서, ‘Click!’에 가져다 댔다.
그리고 지난번처럼 시야가 암전되었다.
* * *
차가운 바람이 부는 건물 옥상.
“…….”
한 남성이 담배를 물고 있었다. 쌀쌀한 겨울바람에 밀려 연기가 흩어진다.
찬 공기에 기침이라도 할법하건만, 남자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단지 형형한 안광으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빛나는 야경이 흘렀다. 맞은편의 전광판에서 광고가 나오고 있었다.
한때 그가 찍었던 브랜드였다.
정확히는 그의 그룹이.
‘어디서부터 꼬인 걸까…….’
남자는 화려한 영상의 색감을 보다가, 문득 고민에 잠겼다.
잘못된 시기의 해외 진출? 시류에 맞지 않는 컨셉? 초심을 잃은 멤버들? 쓸데없는 바람만 넣는 소속사의 투자자들?
“…….”
그리고 결론을 내렸다.
‘처음부터 잘못됐다.’
애초에 멤버 구성부터 잘못된 것이다. 쓸모없는 구성원이 너무 많았다.
아니, 쓸모없는 게 아니라 방해가 됐다.
‘내가 짰으면 이렇게 안 했어.’
그는 그제야 인정했다. 자신이 잘못 살았다.
‘감성, 눈물. 그런 건 다 팔아먹을 때만 쓰는 거지.’
사람은 서면 앉고 싶고, 앉으면 눕고 싶은 것들이다. 개인 사정, 어쩔 수 없는 사연… 다 입으로만 지껄이고 싸게 팔아먹는 변명일 뿐이다.
“…….”
인정하고 나니 속이 후련했다. 남자는 빙그레 웃으며, 타고 남은 꽁초를 하늘에 던졌다.
그리고 그대로, 난간 아래로 떨어졌다.
덜컹.
난간을 박차는 소음과 함께, 남자는 고층 건물 아래, 도로로 떨어졌다.
하지만 남자가 정신을 차렸을 때.
“…!!”
그는 가정집 작은 방에서 눈을 떴다.
“……무슨.”
그가 집어 든 구형 휴대폰 액정이 소년의 얼굴을 비췄다.
……청려가 되기 전 자신이었다.
* * *
“허억!”
나는 숨을 들이켜며 정신을 차렸다.
그리고 당장 물을 틀었다.
끼긱.
삐걱거리는 소리와 함께 찬물이 쏟아졌다. 나는 즉시 얼굴에 물을 끼얹었다.
“…….”
‘박문대’ 때와 똑같았다. 제삼자 시점에서 남의 과거 사정 들여다보는 이 구성.
그리고… 이번 놈은 분명 청려다.
‘이런 X발.’
이 새끼도 과거로 돌아왔네.
대충 짜 맞춰봐도 커리어 말아먹었다가 돌아와서 성공한 것 같다.
그쪽이야말로 웹소설 줄거리에 딱 맞는다는 생각에 실소가 나왔으나, 그보다 먼저 빡침이 올라왔다.
‘그래서 상태창 확인 못 하게 막아뒀냐…!’
상태창으로 확인해 버리면 ‘진실’ 보상이 아무 의미가 없으니 말이다.
아니, 그것보다 이게 대체 왜 보상이란 말인가.
‘박문대’의 과거야 내 사정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으니 떠도 그러려니 했다.
하지만 청려가 무슨 지랄을 했든 나랑 무슨 상관이 있다고 거창하게 ‘보상’으로 주냐.
‘상태이상 관련 힌트나 줄 것이지…!’
…치밀어오른 화는 찬물에 꽤 오래 머리를 박고 나서야 겨우 가라앉았다. 그리고 나는 겨우 합리적인 결론을 도출했다.
‘…힌트를 얻을 수 있다는 뜻이겠군.’
이 이상한 초자연적 현상 경험자에게 정보를 들을 수 있다면, 확실히 사태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는 이 상태창이, 마치 게임을 진행하는 것처럼 차근차근 힌트를 주는 것 같긴 한데…….
띠링.
[‘상이 아니면 죽음을’]: 정해진 기간 내로 가장 권위 있는 국내 시상식에서 신인상을 받지 못할 시, 사망
남은 기간: D-365
…또 이 지랄을 하는 걸 보면 그냥 내가 고통받길 원하는 것 같기도 하단 말이지.
‘그래도 이번에는 좀 낫군.’
신인상 정도야 이변이 일어나지 않는 이상 챙길 것 같다.
저 애매한 ‘권위 있는’ 기준이 신경 쓰이긴 하지만, 그래 봤자 후보가… 흠, 3갠데. 객관적인 성적으로 따지면 절대 밀릴 일 없다.
요즘같이 대중성 챙기기 힘든 추세에, 하반기에 어떤 신인이 데뷔해도 출신 테스타를 뛰어넘는 건 무리다.
‘차라리 공중파 1위가 더 힘들지.’
나는 좀 진정한 채로, 얼굴에서 물을 닦아냈다.
그리고 청려에게 받았던 포트를 손에 들고 화장실에서 걸어 나왔다.
“잘 썼습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감사는 괜찮고, 어쨌든 잘 썼다니 다행입니다.”
나는 포트를 반납하고, 청려의 맞은 편에 앉았다.
그리고 배낭에서 주전부리를 꺼내 건넸다.
“밤새야 하는데, 괜찮으면 단 거라도 좀 드시는 게 어떨까요.”
“아, 감사합니다.”
청려는 바로 받아 갔지만, 여는 시늉만 하고 먹지 않았다.
‘관리하는 건지 경계하는 건지 모르겠군.’
나는 배낭을 뒤지는 척하며, 다시 청려의 상태창을 확인했다.
이번에는 제대로 떴다.
[이름: 청려(신재현)]가창 : B+ (B+)
춤 : S+ (S+)
외모 : A+ (S-)
끼 : A (A+)
특성: 감정(A)
!상태이상 : 교정(비활성화)
‘미쳤나.’
무슨 스탯이 X발 고인물급이네.
특성부터 확인할 생각이었는데 저절로 눈이 갔다. 혀 씹을 뻔했다.
‘하지만 잠재력 무한은 아니군.’
스탯 전부 한계가 EX이지 않을까 싶던 막연한 예상은 빗나갔다.
어쨌든, 정신 차리고 원래 확인하려던 내용을 보자.
일단 특성부터.
[감정(A)]: 가치 있는 건 드물고, 쓰레기는 널렸다.
-인적 자원 판단력 +150%
‘기업인 같은 재능이군.’
아까 봤던 ‘진실’ 회상이 진실이면, 죽기 전에 삶을 회상하면서 얻은 재능일 수도 있겠다.
다만 마음에 걸리는 건, 특성이 하나뿐이라는 점이다.
‘특성 뽑기 같은 게 없었나.’
…나와의 차이점이 꽤 선명했다.
어쨌든, 다음으로 넘어가자.
이번에는 상태이상이다.
[교정 (비활성화)]: 다시 해보자
-실패 시, 처음으로 돌아간다.
…소름이 돋았다.
그리고 방금 대화를 떠올렸다.
-이번에야말로 논란 없이 성공한 아이돌이 돼보자고 열심히 도전하는데…… 이게 웬걸. 자꾸 사고로 죽어서 다시 과거로 돌아가는 거죠!
‘아까 지껄인 아이돌 괴담… 본인 이야기였나.’
설마 ‘~하면 죽음을’ 류의 상태 이상 제거에 실패하면 상태창이 처음 생겼을 때로 돌아가는 건가.
섬뜩한 추리였다.
다만, 이 상태이상은 ‘비활성화’ 상태였다.
그것만으로도 큰 수확이었다. 비활성화 방법이 있다는 뜻이니까.
‘일단 정리는 끝났고.’
다음은 추가 조사다.
나는 짐을 내려놓고, 다시 청려를 응시했다.
“간식 확인은 끝나셨나요?”
“예. 별거 없네요.”
“하하.”
너 아직도 긴가민가 싶지?
역시 저 새끼, 나에 대해서 잘 모른다. 그냥 떠본 거지.
그럼 이쪽이 정보력에서 우위라는 뜻이니, 이번에는 내가 떠볼 차례다.
털려라.
“음… 선배님, 혹시 제가 조언을 구해도 괜찮을까요?”
“그럼요. 제가 조언을 드릴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고민이 있나요?”
“예. 다름이 아니라… 혹시, 선배님께서는 같은 팀 선배님들과 어떻게 시작하셨나요.”
“…음, 시작이라면?”
나는 다 식은 커피를 가져와, 일부러 천천히 한 모금 마셨다. 그리고 느릿느릿 말을 이었다.
“저희 팀은 결성 과정이 독특했다 보니까… 확실히 그쪽에 강한 공감대가 있는 편이라고 생각하는데, 다른 그룹분들은 어떤지 궁금합니다.”
“…그러세요?”
“예. VTIC 선배님께서는 어떤 과정을 통해서 함께 데뷔하게 되셨나요?”
“…….”
분명 ‘진실’ 회상에서, 이놈은 VTIC의 근본적인 실패 원인으로 ‘멤버’를 뽑았다.
‘분명 이 새끼가 중간에 멤버를 갈았다.’
일개 연습생이 무슨 수를 썼는지는 모르겠다만, 거의 확실한 추측이다. 현재 VTIC은 튼튼하고 큰 논란 없이 탑티어로 잘만 살고 있으니까.
“음, 재밌는 질문입니다.”
청려가 웃으며 내가 준 간식을 들어 올렸다.
드득. 소리와 함께 견과류가 씹혀 사라졌다. 나는 진중한 얼굴로 묵묵히 대답을 기다렸다.
자, 동요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