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livery Man From Murim RAW novel - Chapter 114
113화. 태극기가 펄럭인다 (1)
그곳은 언제나 어두웠다.
보랏빛과 붉은빛이 기묘하게 섞인 하늘과 검은색 흙이 불길한 땅.
그곳이 바로 어둠의 족속이 사는 곳이었다.
그리고 지금 뮐렝은 그 하늘 아래 부복해 있었다.
뚝, 뚜욱.
뮐렝의 주인은 더할 나위 없이 정제된 손길로 정원의 장미를 자르고 있었다.
핏빛의 붉은 장미는 뮐렝의 주인이 아끼는 장미였다.
그 아끼는 장미조차 필요 없는 가지는 가차 없이 잘라 버렸다.
“다곤은?”
“지금 두 번째 중간계인 지구라는 곳의 한국 각성자 협회의 아공간 감옥에 수감되어 있는 것으로 파악됩니다.”
툭, 투욱,
바닥으로 잘린 장미가 떨어졌다.
“네가 갈 수 없는 곳인가?”
“주군의 권능을 조금만 주신다면, 충분히 드나들 수 있습니다.”
뮐렝의 말에 주군이라 불린 자는 손가락을 튕겼다.
그 순간 뮐렝이 들고 있던 지팡이에 검은색 기운이 맺혔다가 사라졌다.
“주군의 은혜에 감사합니다.”
“처리해.”
“알겠습니다. 추출한 영혼은 늘 그래 왔듯이 게이트 마수 제조에 사용하겠습니다.”
뮐렝의 말에 그의 주군은 건조하게 말했다.
“그렇게 하도록.”
뮐렝은 허리를 숙여 예를 갖추었고, 물러나려 할 때 주군이 그를 멈춰 세웠다.
“잠깐!”
“네. 주군!”
“다곤이 만약 우리의 일에 대해 불었다면 그에 대한 대가는 치르게 한 후에 마수의 재료로 사용해야겠지.”
“주군의 명을 기다립니다.”
“만약 다곤이 입을 가벼이 놀렸다면 화염지옥에 한 3년 처박아 두도록. 그리고 그와 별개로 다곤의 지파에서 본보기로 열 명을 골라 처형하고, 다른 자가 콜렉터의 지위를 잇도록 해라.”
“그리하겠습니다.”
“가 보도록.”
“그럼 소신은 물러나겠습니다.”
뮐렝은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고개를 숙여 보인 후 정원을 나갔다.
뮐렝은 생각했다.
‘별것도 아닌 작은 나라에서 벌써 몇 명의 콜렉터들이 당한 것인지! 그곳이 그리 강대한 곳이었던가?’
코발이나 다곤과 같은 어둠의 종족은 절대 인간의 힘으로는 해할 수 없는 자들이었다.
격이 높은 자는 격이 낮은 자에게 손을 댈 수 있어도, 격이 낮은 자는 격이 높은 자에게는 손을 댈 수 없었으니까.
‘아주 오래된 그 약속만 없었다면 인간 따위는 벌써 멸망했을 하등한 존재들이지!’
아무튼 어둠의 종족과 대등한 존재라 하면, 딱 하나의 종족이 있었다.
정황상 그들이 손을 쓴 것이 틀림없었다.
그게 아니면 위대한 힘을 가진 어둠의 족속이 그렇게 간단히 당할 리가 없었다.
문제는 그 고고한 족속은 절대 신탁 없이는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설마, 그렇다면 신이 우리의 움직임을 눈치챈 것인가? 그렇다면 주군께서 언질을 주셨을 텐데?’
뮐렝의 고민이 깊어 갔다.
* * *
유하영은 두 손에 태극기를 들고 열심히 율동을 하고 있었다.
“하나, 둘! 하나, 둘!”
선생님의 구령에 맞추어 앙증맞은 팔과 다리를 움직이는 아이들 사이에서 유하영이 단연 돋보였다.
그 모습에 선생님들은 하나같이 ‘유명해지는 데는 이유가 있구나!’ 하고 생각했다.
새싹 유치원은 헌터총회에서 운영하는 유치원이다. 그 말은 이런저런 국가 행사에 많이 동원이 된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리고 지금 유하영이 태극기를 들고 율동을 하는 이유는 이번 수복절 행사를 위해서였다.
그래서 유하영뿐만 아니라 새싹 유치원의 5세, 6세, 7세 반 아이들은 열심히 율동을 익히고 있었다.
8월 18일 수복절은 마수로부터 대한민국을 다시 되찾은 것을 기념하는 날이다.
그렇기에 아이들의 손에 작은 태극기가 들린 것이다.
“자, 그럼 이제 하영이와 민호가 앞으로 나와서 멘트 해야지?”
“네!”
“네!”
선생님의 말에 유하영과 한민호라는 아이가 얼른 앞으로 나왔다.
한민호는 도깨비였다.
한민호의 양육을 맡은 도깨비가 각성자 협회에서 근무하기 때문에 인간 세상에 머물렀고 그러다 보니 아이를 유치원에 보내는 것.
이번 수복절 행사의 멘트를 맡은 유하영의 파트너를 두고 엄청난 경쟁이 있었다.
유하영이 멘트를 하는 건, 이미 정해져 있었다.
5세 아이들 중 가장 예쁘고 귀엽고 똑똑했을 뿐만 아니라 대외적으로 알려져 있었으니까.
문제는 유하영의 파트너였다.
유하영은 새싹 유치원에서 가장 인기가 많은 여자아이이다.
그러다 보니 많은 남자아이들이 서로 자기가 유하영과 멘트를 하겠다고 하여 결국 오디션까지 벌어졌다.
선생님이 써 준 멘트를 누가 가장 잘 말했느냐를 두고 아이들의 거수투표로 마침내 파트너가 결정되었다.
심사 결과 송정훈과 한민호가 동점이었다.
그 둘은 재오디션을 보았고 아깝게 1표 차이로 한민호가 유하영의 파트너가 되었다.
그건 아마 한민호가 도깨비여서 잘생기기도 했고 사람들을 휘어잡는 매력이 있기 때문에 그랬을지도 몰랐다.
선생님은 그들을 위해 앞에 멘트를 쓴 커다란 종이를 붙여 주었다.
하지만 유하영은 이미 모든 멘트를 외운 상태였다.
5살이었지만, 천재라는 소리를 듣는 그녀였으니까.
“나쁜 마수들로부터 대한민국을 되찾아 주셔서 감사합니다. 우리도 씩씩하고 바르게 커서, 대한민국 수복의 영웅들처럼 훌륭한 어른이 되겠습니다.”
짝짝짝!
선생님들은 박수를 쳤다.
“너무 잘했어요! 행사 때도 이대로만 하면 되는 거예요.”
“네!”
“자, 그럼 우리 처음부터 다시 해 봐요!”
“네!”
* * *
그 시각.
양춘각은 점심 장사를 준비 중이었다.
“단무지 세팅 끝! 김치도 세팅 끝났어요!”
“수고했어. 이제 좀 쉬어.”
“네.”
김지은은 얼른 의자에 앉아 다리를 톡톡 두들겼다.
그때 강소는 밖에서 누가 다가오는 것을 느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집배원인가 보다.”
강소는 정수기에서 냉수를 한 컵 받아 문 앞으로 갔고 때마침 문이 열렸다.
딸랑.
“안녕하세요!”
강소의 말대로, 집배원이었다.
“편지 왔습니다.”
“아! 감사합니다.”
강소는 집배원에게 물 한 컵을 내밀었다.
“여기, 물 한잔 드십시오.”
“아이쿠! 이거 매번 정말 감사합니다!”
강소가 집배원에게 물을 대접하는 건 단순히 친절한 사람으로 보이고 싶어서라든지 배려 같은 것이라고 설명하기에는 무리가 있었다.
단도직입적으로 말하면, 사람답게 보이고 싶었기 때문이다.
강소의 의도가 어찌 되었든, 집배원은 더운 날의 시원한 물 한 잔이 참 달았다.
“잘 마셨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럼 저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네. 안녕히 가십시오.”
집배원이 나가고 문이 닫혔다. 강소는 집배원이 두고 간 우편물을 집어 유순태에게 주었다.
“오늘은 뭔가 많네.”
“그렇군.”
유순태는 그 우편물들을 분류했다.
“음, 전기세와 전화 요금, 그리고 청첩장인가? 근처 철물점 사장님 아들이 결혼하는군. 축의금 깨지겠네.”
중얼거리며 편지를 분류하던 유순태는 고개를 갸웃했다.
“어라? 이건 뭐지?”
유순태가 집어 든 것은 하얀색 봉투였는데 그 앞에는 봉황과 용이 노니는 문양이 금박으로 찍혀 있었다.
그리고 [귀하를 수복절 행사에 초대합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게다가 발신인은.
“국가보훈부 장관님이 보내셨네?”
격변의 시대 이전에는 국가보훈처였지만, 지금은 국가보훈부였다.
그건 워낙 많은 사람이 마수와 싸우다가 죽었기 때문에 할 일이 많다는 뜻이었다.
사실 거기에는 각성자 협회장이 죽은 헌터들의 예우에 대해 상의하려는데, 처장이 단독으로 결정할 수 있는 일들이 별로 없자, “그냥 독립시켜야겠군.”이라고 한 말 때문에 그리되었다는 비하인드 스토리가 있었다.
하지만 사정을 아는 사람은 몇 없는 이야기였다.
“국가보훈부 장관님이요?”
“어.”
김지은의 물음에 유순태는 고개를 끄덕이며 봉투를 뜯어보았다.
그 내용은 유순태 가족을 이번 수복절 기념식에 시민 대표로 초대하니 꼭 참석해 달라는 것이었다.
“내가 TV로는 수복절 기념식을 많이 봤는데, 직접 초대되는 건 처음이네.”
“그 말은 너에게 초대장이 왔다는 거냐?”
강소의 물음에 유순태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 맞아.”
그리고 설명을 이었다.
“매년 수복절 기념식에는 무작위로 선발된 대한민국 국민 천 명이 함께하거든.”
“그렇군. 그런데 그 선발은 정말 무작위인가?”
“네.”
강소의 물음에 대답한 건 김지은이었다.
“전국의 모든 국민들의 주민등록번호를 컴퓨터에 넣고는 돌려서 선발하는 것이라서 그 어떤 조작도 개입되지 못해요.”
“그걸 지은 씨가 어떻게 알아?”
유순태의 물음에 김지은은 움찔했다.
그녀가 그것에 대해 아는 건 직접 봤기 때문이었지만 그렇게 말할 수 없었기에 배시시 웃으며 대답했다.
“전에 TV에서 봤거든요.”
“그렇군.”
다행히 유순태는 별 의문을 표하지 않고 넘어갔다.
“그럼 그날은 가게 문을 닫아야 하는 거냐? 휴일이라서 장사가 잘되는 날인데 아쉽군.”
강소의 말에 유순태는 피식 웃었다.
“아쉽기는. 원래 수복절에는 점심 장사 못 해.”
“어? 무슨 뜻이냐?”
강소의 물음에 대답한 건 김지은이었다.
그녀는 강소가 고립인이었다는 것을 알고는 이것저것 많이 설명해 주고 있었다.
“사실 수복절에는 모든 상점 및 회사가 오후 3시까지는 쉬거든요. 그리고 노래방과 게임방 같은 유흥을 위한 곳은 하루 종일 문을 닫아요.”
“이유가 무엇입니까?”
“당연히 추도의 의미이지요.”
유순태가 설명을 이어 갔다.
“너도 수복절이 무슨 날인지 알지?”
“물론이지. 마수로부터 대한민국을 되찾은 날이라고 책에서 봤다.”
유순태는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기쁜 날이지. 마수로부터 나라를 되찾은 날인데 얼마나 기쁘겠어.”
“기쁜데 왜 추도하는 것이냐?”
“그거야 기쁜데, 슬프니까.”
강소는 고개를 갸웃했고, 유순태는 설명을 이어 갔다.
“마수와 맞서 싸우다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죽었잖아. 그리고 그 죽은 사람들은 타인이 아니야. 누군가의 부모 혹은 형제자매, 또는 친척이지.”
“아…….”
강소가 말했다.
“네 말은, 마수와 싸우다 죽은 사람들이 내 곁에 있던 사람들이고 또 자신이 직접 겪은 일이니 마수로부터 나라를 되찾은 것이 기쁨보다는 슬픔이 더 크고, 그렇게 추모를 할 정도로 뜻깊은 날이라는 것이군.”
“맞아.”
“알겠다. 그럼 잘 다녀와라.”
그 말에 유순태는 피식 웃었다.
“무슨 소리야?”
“응?”
“우리 가족이 전부 가는 건데.”
유순태가 내민 초대 명부에는 유순태 가족과 강소까지 총 4명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너희 가족이 초대된 거잖아.”
“쯧쯧. 고립인은 정착 후 5년이 지나기 전에는 법적으로 보증인의 가족 구성원으로 간주되거든.”
“아, 그러냐?”
“그러니까 강소 너도, 내 가족이라는 거다.”
그 말에 강소는 미소 지었다.
“가족이라…… 그렇구나.”
가족.
그 말이 주는 어감이 무척 따뜻하게 느껴졌다.
그리고 강소의 그 미소를 본 순간 김지은은 자신도 모르게 두 손을 가슴에 올렸다.
“응? 왜 그래?”
유순태의 물음에 김지은이 대답했다.
“영혼과 안구 정화 중이에요.”
이제 대놓고 덕질하는 김지은이었다.
그때 유순태가 말했다.
“아, 참! 너 정장 있냐?”
“정장이라면, 전에 맞춘 거 있는데.”
“그건 봄가을 정장이고, 지금 8월이고 엄청 더운데 그거 입고 갔다가는 쪄 죽는다.”
“그런가?”
“여름 정장을 맞춰야 하는데…….”
그때 김지은은 번개 같은 속도로 얼른 손을 들었다.
“저요! 저요!”
“응?”
“제가 같이 가서 알바 오빠의 정장을 맞출게요!”
살짝 고민하던 유순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 해.”
수영복도 아닌 정장을 맞추는 것이니, 단둘만 보내도 괜찮을 것 같았다.
“오늘은 이따 하영이 하원에 따라가야 하니 안 될 것 같고, 내일 다녀오는 것으로 해야 할 것 같군요.”
“네!”
대답하는 김지은의 표정은 왜인지 무척이나 행복해 보였다.
무림에서 온 배달부 114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