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livery Man From Murim RAW novel - Chapter 180
179화. 김장하는 날 (1)
이른 아침이었다.
딸랑.
양춘각에 채소 등을 납품해 주는 김진섭 사장이 들어왔다.
“유 사장! 채소 왔어!”
“안녕하십니까?”
강소는 그에게 인사를 했고, 김진섭은 웃으며 그의 인사를 받아 주었다.
“알바 청년이구먼! 좋은 아침이여.”
“네. 좋은 아침입니다.”
이내 주방에서 유순태가 나와서 주문서를 확인한 후 채소들을 식재료 창고로 옮겼다.
오늘도 빠르게 재료를 나를 수 있었던 것은 강소의 활약 덕분이었다.
“역시 힘이 좋아! 하하하!”
김진섭의 칭찬에 강소는 뺨을 긁적였다.
“아무래도 각성자라서 그런 듯합니다.”
“뭐, 힘이 좋으면 좋은 거지. 유 사장, 커피 한잔혀도 되지?”
“물론입니다.”
김진섭은 식당 커피 자판기에서 커피를 뽑아 마시며 물었다.
“전에 부탁한 김장거리는 내일 오전에 가져오면 되는 거지?”
“네.”
“이번에도 여기 가게 안에다가 쌓아 놀 거지?”
“그렇죠. 양이 많으니까요. 뭐, 가게 한 이틀 쉬고 여기에 쌓아 놔야죠.”
“허긴, 그럴 수밖에 없겄지.”
커피를 다 마신 김진섭이 모자를 고쳐 쓰며 말했다.
“커피 잘 마셨어. 그럼 내일 봐.”
“네. 사장님. 내일 뵙겠습니다.”
김진섭 사장이 나가자 강소는 유순태를 보았다.
“김장거리라면…… 혹시 김장을 하는 거냐?”
“맞아. 내년에 먹을 김치가 필요하니까. 그런데 너 김장이 뭔지 아는 거야?”
그 물음에 강소는 고개를 끄덕였다.
“TV에서 본 적이 있다.”
이미 11월 말부터 김장철이 시작되었고, 그래서 TV에서는 김장하는 모습을 보여 주고 있었다.
강소는 그걸 본 것.
“그런데 지금 김장을 하면 늦은 거 아니냐?”
“늦지 않았어. 무랑 배추가 얼기 전까지만 하면 되니까. 그리고 기온이 좀 내려가야 무와 배추가 달아져서 김치가 더 맛있어지거든.”
“그렇군.”
강소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배추 몇 포기나 하는 거냐?”
“천오백 포기 정도 할 거야.”
그 말에 강소는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그래? 양이 상당히 많네.”
“그야, 식당이니까. 그래서 일손을 좀 구해야 하는데 걱정이야.”
이때만 해도 강소는 알지 못했다.
김장배추 천오백 포기의 위력을.
* * *
RD엔터.
그곳 소속 보컬 트레이너 손정식은 올해 서른 살의 건장한 남자다.
노래라면 전국에서 논다는 실력이었고 그래서 RD엔터의 보컬 트레이너가 될 수 있었다.
그 실력으로 가수가 되지 못한 것은 슬프게도 그의 외모가 따라 주지 않았기 때문.
……이라고 그는 생각했다.
그래서 평소 내로라하는 현역 가수들을 만나, 술자리에서 진솔한 대화를 할 때면 투정을 부리곤 했다.
“아, 진쫘~! 내가 얼굴만 잘생겼어도 데뷔해서 형보다 훨씬 더 잘나갔을 거야.”
“그랬을 수도 있겠지. 그런데 정식아, 너는 노래가 뭐라고 생각하냐?”
“그야 물론, 감정을 표현하는 방법 중의 하나로서 목소리를 그 수단으로 사용하는 거 아니야?”
“그래, 맞아. 그런데 너는 감정을 표현하는 것이 어렵지 않냐? 나는 어려워 미치겠는데.”
“어려울 게 뭐가 있어? 그 정도는 기술로 커버할 수 있는 거 아니야?”
손정식의 말에 그가 형이라 부르는 현역 가수는 쓰게 웃으며 소주를 들이켰다.
그리고 철없는 아이를 본다는 눈빛으로 말했다.
“만약 그런 기술이 있다면 나는 내 영혼을 팔아서라도 배울 거다.”
“?”
“네가 내 말을 이해하면 그때 알게 되겠지. 내가 이런 말을 하는 이유를.”
그때 손정식은 그 말을 흘려들었다.
어느 날.
그가 보컬 수업을 위해 연습실 안으로 들어가려고 할 때, 연습생들의 목소리가 들렸다.
“야, 어제 하영이 노래. 엄청나지 않았냐?”
“어제 여기서 연습할 때 말이지?”
“나는 넋 놓고 들었다니까.”
“노래로 사장님을 울린 아이라고 해서 대체 얼마나 노래를 잘 부르기에 그런 말이 나오나하고 궁금했는데 진짜 대단하더라.”
“그런 말을 들을 만하지.”
“솔직히 나는 손 선생님 노래보다 하영이 노래가 훨씬 좋더라.”
“야! 누가 들으면 어쩌려고?”
“너도 그렇게 생각하잖아?”
“그야 그렇지만…….”
“노래는 감정이 중요하다고 하면서, 정작 그 선생님 노래를 들을 때 그런 거 별로 느껴지지도 않잖아.”
“그래도 노래 부르는 기술은 좋잖아.”
그 대화에 손정식은 자존심이 팍 상했다.
다섯 살 꼬마보다 못하다는 말을 들었으니 당연한 일.
거기에 자신의 노래에는 감정이 느껴지지 않는다니?
‘대체 얼마나 잘 부르기에 저 녀석들이 저딴 소리를 하는 거지?’
손정식은 유하영의 노래를 들어 본 적이 없었다.
아무리 화제의 노래라 해도 아이들이 부르는 노래를 들어 봤자 귀만 버릴 거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의도적으로 듣지 않은 것도 있었다.
좋은 실력을 위해서는 좋은 것만 들어야 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이기도 했으니까.
그런데, 자신이 지도하는 연습생들이 그런 소리를 하니 뭔가 오기가 생겼다.
그는 곧장 고영민 실장에게 전화를 했다.
“실장님. 저 손정식입니다.”
– 어? 손 선생이 웬일이야?
격의 없는 사이이기도 했고, 손정식 역시 RD엔터의 연습생 출신이기도 했기에 고영민은 그를 편하게 대했다.
손정식 역시 그게 편했다.
“유하영 양의 녹음, 언제 있습니까?”
– 응? 갑자기 그건 왜?
“우리 회사에서 런칭하는 앨범인데, 저도 한 번 들어보고 싶어서요.”
– 전에는 관심 없다지 않았어?
“제가 그랬나요? 아무튼, 들어 보고 싶습니다.”
– 뭐, 안 될 것도 없지. 오늘 오후 2시에 녹음 있으니까 그때 들어와서 들으면 돼.
“알겠습니다.”
그날 오후.
손정식은 유하영의 녹음이 이루어지고 있는 녹음실로 들어갔다.
노민아와 유하영의 듀엣곡을 녹음하는 날이었고, 녹음실 안에서 두 아이의 어머니와 스탭들이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가 그들과 가볍게 인사를 나누는 사이, 녹음이 시작됐다.
약간 발랄한 느낌이 드는 반주가 울려 퍼졌다.
“음, 노래가 좋군요.”
손정식의 말에 작곡가가 말했다.
“그렇게 말씀해 주시니 감사합니다.”
“박자가 제법 까다로운 것 같은데, 저 아이들이 소화할 수 있는 겁니까?”
그 물음에 작곡가가 웃으며 답했다.
“연습할 때 보니까 문제없었습니다. 게다가 제가 원하는 바를 정확하게 끌어내더군요. 아주 완벽했습니다.”
“?”
고작 어린애들인데 칭찬일색의 답변.
손정식은 고개를 갸웃했지만, 이내 유하영의 노래가 들려왔다.
“나 그대에게 선물 하나 드릴 거예요. 오늘 우연히 찾은 네 잎 클로버를…….”
노래가 이어졌고, 그는 그 노래를 들으며 자신도 모르게 어릴 적 네 잎 클로버를 찾던 기억을 떠올렸다.
“헉!”
그는 깜짝 놀랐다.
자신도 모르게 유하영의 노래에 푹 빠져 있었다는 것을 깨달은 것.
그러다 고영민과 눈이 마주치자 왠지 모르게 얼굴이 붉어졌다.
.
.
.
“선생님……?”
“…….”
“저, 선생님?”
손정민은 자신을 부르는 목소리에 얼른 정신을 차렸다.
그는 보컬 연습실에 있었다.
토요일.
오늘은 이번에 데뷔를 앞둔, 오창수가 리더로 있는 팀의 보컬 트레이닝 날.
앞에서 오창수와 팀 멤버들이 그를 바라보고 있었다.
“아, 미안. 내가 잠시 딴생각을 했네. 그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 볼까?”
“네.”
아직 신곡이 나오기 전이었기에 기존의 노래를 부르는 것으로 보컬 기술을 연마했다.
오늘 부를 노래는 다가오는 크리스마스 시즌에 맞춘 캐롤이었다.
오창수가 먼저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거리마다 오고 가는 많은 사람들이…….”
크리스마스 캐롤로 유명한 ‘실버 벨’이라는 노래.
그 노래를 들으며 손정식은 자신이 어릴 때, 부모님과 함께 크리스마스 트리를 장식하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 행복했던 기억에 가슴이 아련해졌다.
‘어……?’
순간 느껴진 묘한 기시감.
‘이 기분, 유하영의 노래를 들을 때 느꼈던 것과 같은…….’
그러고 보니 언젠가부터 오창수를 비롯한 팀 멤버들의 노래가 달라지기 시작했다.
기술적인 부분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근본적인 뭔가에 변화가 있었고, 그건 노래에 담겨 있는 감정과 그 감정을 전달하는 능력이었다.
그의 촉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분명 내가 모르는 일이 일어나고 있어.’
그는 최근 오창수와 그 팀원들이 매주 일요일 밤마다 어딘가에 간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최근 생긴 스케줄은 그것 하나뿐.
그 스케줄에 비밀이 있는 것 같았다.
하지만 단도직입적으로 물어봐도 순순히 이야기해 줄 것 같지 않았다.
‘현장을 덮쳐야겠군.’
그렇게 그는 미행을 결심했다.
* * *
강소는 미리내 공원에서 보컬 트레이닝을 시키기 위해 오창수와 그의 팀 멤버들을 기다리고 있었다.
얼마 있지 않아 그들이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안녕하세요. 형.”
“오랜만이에요. 형.”
“왔구나.”
오창수의 팀원 일곱 명은 모두 강소를 형이라고 불렀다.
그는 딱히 호칭을 정정하지 않았다.
“그런데, 뒤에 꼬리를 달고 왔구나.”
“네? 꼬리요?”
그들이 당황할 때, 강소는 공원 한쪽을 보며 말했다.
“거기 있는 거 다 압니다. 그냥 나오시지요.”
그 말에 부스럭 소리가 들리고, 한 남자가 그들 앞으로 나왔다.
그 남자를 본 오창수 팀은 놀라 소리쳤다.
“어?”
“선생님?”
강소가 오창수에게 물었다.
“아는 사람이냐?”
그 물음에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저희 보컬 선생님이십니다.”
“그렇군.”
한편, 손정식이 강소를 보자마자 든 생각은 하나였다.
‘뭐야, 저 미친 외모는!’
하지만 자신이 온 이유는 그게 아니기에 얼른 정신을 부여잡고 말했다.
“당신입니까? 당신이 이 녀석들에게 노래를 가르치는 겁니까?”
“그렇습니다만.”
그 대답에 손정식은 그에게 따져 물었다.
“당신이 뭔데 나 몰래…….”
오창수가 다급히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었다.
“서, 선생님! 저희, 잘못입니다. 그러니까 여기 이 형에게 그러지 마세요.”
그러자 이번에는 불똥이 오창수에게로 튀었다.
“이런 배은망덕한 녀석들! 나에게 숨기고 이런 발칙한 짓을 해? 고 실장님은 알고 계시냐?”
서로 눈치를 보더니 홍석원이 고개를 끄덕였다.
“뭐? 알고 계신다고?”
그 말에 손정식은 갑자기 불안해졌다.
마치 자신이 RD엔터의 보컬 트레이너 자리에서 짤리는 수순을 밟는 것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래서 더 버럭 했다.
“그렇게 안 봤는데! 사람 뒤통수를 이렇게 치네?”
“저, 그, 그런 게 아니라…….”
홍석원이 그를 진정시키려 하는데, 강소가 조용히 끼어들었다.
“이런 말이 적절할지는 모르겠지만 마치 영역을 침범당한 것 같은 반응이군요.”
“뭐요?”
“하지만 이건 영역 침범이 아닙니다. 나는 저들에게 노래 부르는 기술을 가르치지 않았으니까.”
“방금 노래를 가르친다고 했잖아요?”
“내가 알려 준 건 노래에 감정을 담는 방법뿐입니다. 보컬 기술은 당신이 더 뛰어날 겁니다.”
강소가 순순히 손정식의 실력을 인정하자 그는 오히려 당황했다.
“네?”
“저도 서로의 영역은 지키는 것을 선호하는 편이라서 말입니다.”
하지만 강소의 그 말로도 손정식의 상처받은 자존심이 회복되지는 않았다.
“도대체 노래에 감정을 얼마나 잘 담길래 그걸 가르친다는 건지 원…….”
“고 실장님이 확인하셨으니 문제는 없을 것 같습니다만.”
“제가 직접 확인해서 판단하겠습니다. 당신에게 지도를 받아도 되는지 아닌지! 만약 실력이 안 된다면 이 일에 대해서 회사에 직접 항의할 겁니다.”
그 말에 오창수의 팀원들은 난감한 표정으로 말했다.
“선생님. 그건 좀…….”
“왜? 안 될 게 뭐가 있어?”
그때 강소가 물었다.
“어떤 방식으로 판단하실 겁니까?”
“노래방에서 승부를 봅시다. 제가 이긴다면 이런 엉터리 지도는 없는 것으로 하죠.”
그 말에 강소는 순간 기분이 상했다.
‘엉터리 지도라니…….’
나름 열과 성을 다해 지도하고 있는데 말이다.
그는 손정식에게 물었다.
“내가 이긴다면요?”
“그때는, 이 지도를 묵인하죠.”
“그건 지금도 하고 있는 겁니다. 저에게 득이 되지 않습니다.”
“그럼 뭘 원합니까?”
문득 강소는 유순태가 일손이 필요하다고 했던 말이 떠올랐다.
“한 이틀, 일손이 필요합니다.”
무림에서 온 배달부 180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