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livery Man From Murim RAW novel - Chapter 41
40화. 종이 카네이션 (2)
강소는 유순태를 보았다.
조리복으로 갈아입었음에도, 유순태의 가슴에는 유하영이 만든 카네이션이 달려 있었다.
그 눈에는 뿌둣함이 가득했다.
“순태야.”
“왜?”
“멋지다.”
강소의 말에 유순태는 피식 웃었다.
“고맙다.”
사실 강소가 지금까지 결혼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없다고 하면 거짓말이었다.
살수 조직에 납치당한 후, 죽기 싫어 매일 필사적으로 수련을 하던 그였다.
하지만 살수 조직을 궤멸시키고 중원의 최강자가 된 후 소녀와 함께 살면서 혼인에 대해 생각해 본 적이 있었다.
그러나 곧 포기했다.
무림 최강자의 반려 자리는 평범한 여자가 견디기에는 버거운 자리였기 때문이었다.
불타는 사랑만으로 버틸 수 있는 자리가 아니었다.
그 후 혼인에 대한 생각 없이 살던 강소는 오늘, 딸에게 카네이션을 받는 유순태가 부럽게 느껴졌다.
바스락.
강소는 자신의 손을 펴 보았다. 그의 손바닥 위에는 카네이션의 꽃잎 하나가 있었다.
그건 유하영이 준 것이었다.
그걸 주면서 유하영은 새침한 표정을 지었고, 그 표정에 강소는 웃었다.
뭔가 기뻤기 때문이었다.
딸랑.
그때 문에 달아 놓은 종소리가 들리며 김지은이 들어왔다.
“안녕하세요!”
“어서 와!”
“좋은 아침입니다.”
유순태와 강소가 김지은의 인사를 받아 주었다.
강소는 김지은을 보았다.
그는 뭔가 머뭇거렸지만 이내 살짝 고개를 저었다.
‘할 말이 있는 건가?’
하지만 강소는 모른 척했고 그런 그의 반응에 김지은은 안심한 표정이었다.
그때 김지은이 유순태의 가슴에 있는 카네이션을 보고 물었다.
“아! 그 카네이션! 하영이가 달아 준 건가요?”
“맞아.”
“어머! 귀여워! 그거 보니까 저 어릴 때 생각이 나네요!”
“지은 씨 어릴 때?”
유순태의 물음에 김지은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저도 새싹 유치원을 나왔거든요.”
“그 유치원이 역사가 오래된 유치원인가 봅니다.”
강소의 말에 대답한 건 유순태였다.
“그렇지. 무려 20년이나 된 곳이니까.”
김지은이 말을 이었다.
“헌터총회에서 세운 유치원이 바로 새싹 유치원이거든요. 그래서 헌터총회 바로 앞에 있는 거예요.”
그래서 새싹 유치원이 서울에서 제일 인기 있는 유치원이었다.
격변의 시대인 지금, 가장 좋은 유치원은 가장 안전한 유치원이었으니까.
“아무튼 저도 유치원 다닐 때 아버지에게 드릴 카네이션을 만들었거든요.”
“아버지가 기뻐하셨겠군요.”
“아마도요?”
“……?”
김지은은 배시시 웃었다.
“아버지는 무척 바쁘셨거든요. 출장이 무척 많으셔서 한 달에 한 번 얼굴을 볼까 말까 했어요. 그래서 직접 달아 드리지 못하고 아버지 책상에 놓았었는데, 어느 날 보니 없더라고요.”
그녀는 어깨를 으쓱했다.
“뭐, 버리셨겠죠.”
* * *
격변의 시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있어 가장 중요한 존재에 대해 물으면 모두 헌터라고 말할 정도로 헌터의 존재는 특별했다.
헌터가 있어야 마수에 대항하여 삶을 영위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마수는 강했고, 헌터 개개인은 약했다.
누가 그랬던가!
개인은 약하지만 집단은 강하다고!
헌터들은 마수에 맞서기 위해 힘을 합쳤고, 그것이 길드의 시작이었다.
초창기 때 등장한 A급 각성자가 있었다.
그는 검과 화염마법을 동시에 사용한 마검사로서 마수 사냥에서 엄청난 공훈을 세웠다.
그 활약에 헌터총회에서는 적룡이라는 칭호를 부여했으니, 그의 이름은 김해철.
그가 세운 길드가 바로 적룡 길드였다.
지난 25년 동안 헌터 길드의 수는 급격하게 늘어났지만, 명실상부한 대한민국 3대 헌터 길드라 하면 적룡, 레전드 그리고 이성을 꼽았다.
그러나 누가 뭐래도 탑 오브 탑은 적룡길드였다.
그 적룡 길드의 길드장 김해철은 자신의 사무실 안에 앉아 있었다.
예전처럼 전국을 누비며 마수를 사냥하지는 않았지만 오히려 지금이 그때보다 더 바쁜 것 같았다.
“길드장님. 오늘은 SEF그룹의 총수와 오찬이 있으시고, 오후에는 대통령님과의 만찬이 있습니다. 그리고 대통령님과의 만찬 전에 잠시 헌터총회에 들려 달라는 회장님의 부탁이 있었습니다.”
비서의 일정 브리핑에 김해철은 관자놀이를 손가락으로 누르며 말했다.
“은탑에서는 아직 답변이 안 왔나?”
“취조 중이라고 합니다.”
“빨리 알아내라고 압박 좀 해 봐. 감히 내 딸을 위협한 놈들이야!”
“알겠습니다.”
김해철은 이를 갈았다.
어린이날 있었던 일 때문이었다. 당시 딸이 앉아 있던 VIP석에 오러탄이 날아왔다는 것 자체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비서는 말을 이었다.
“그리고 전에 알아보라고 하신, 양춘각에 대한 조사 자료입니다.”
“지은이가 요즘 오전마다 간다는 그곳 말이지?”
비서는 봉투를 내밀었고, 김해철은 그 봉투 안의 내용물을 보았다.
“오? 양춘각 사장이 이 친구야?”
“그렇습니다. 아시는 분이지요?”
“그럼! 내가 전에 신세 졌던 짐꾼이었는데 지금은 은퇴하고 중국집을 하는 건가? 잘 생각했지! 목숨은 귀한 거니까.”
비서는 공손히 물었다.
“어찌 처리할까요?”
“처리하기는 뭘 처리해? 그냥 지켜보기만 해. 아내가 죽은 후 복수심에 오직 전투 속에서만 살았던 딸이 처음으로 관심을 보이는 곳이야. 소중한 곳이란 말이지.”
“알겠습니다.”
“그럼, 나가 봐.”
“네.”
비서가 나가고, 잠시 멍하니 있건 김해철은 책상 아래의 금고를 열었다.
찰칵.
문이 열리고, 김해철은 그 안에 있던 무언가를 꺼내 흐뭇하게 바라보았다.
그건, 서투른 솜씨로 만든 카네이션이었다.
자신의 딸이 여섯 살 때 만든 것이었다.
당시, 부산에서 마수와 싸우고 지쳐 돌아왔을 때 그의 눈에 그 카네이션이 보였다.
– 아빠. 감사합니다. 사랑해요.
카네이션에 달린 녹색 리본에 쓰인 그 글을 읽는 순간 신기하게도 모든 피곤이 싹 사라졌었다.
의미 없는 마수와의 싸움에 의미가 생겼다.
그 후, 그 카네이션은 김해철의 금고 안에 자리 잡게 되었다.
딸이 처음 만든 카네이션을 도저히 버릴 수가 없었으니까.
* * *
저녁이었다.
강소는 배달 후 양춘각으로 돌아가는 중이었다.
“어? 저 아이는?”
그는 혼자 놀이터에 나와 있는 아이를 보았다.
다섯 살 아이가 혼자 나와 있기에는 늦은 시간이었으니 마음이 쓰이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그는 그 아이에게 다가갔고, 아직 갈아입지 않은 유치원 원복의 이름표를 보았다.
송정훈.
강소는 그 아이가 유하영이 말했던 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부모를 잃고 이모와 함께 산다는 아이 말이다.
사실 그건 이름 때문이 아니라 그 표정이, 예전의 강소와 많이 닮아 있었기 때문이었다.
“꼬마야! 여기서 뭐 하냐?”
“집에 있기 심심해서 나왔어요.”
“집에서 걱정하신다.”
“지금 집에 아무도 없어요. 이모 출장 갔어요.”
송정훈의 손에는 카네이션이 있었다.
“카네이션, 만든 거니?”
“네. 오늘 아침에 달아 드리고 싶었는데, 어젯밤에 출장 가셨어요. 내일 오신대요.”
“그러냐?”
“……오늘 꼭 달아 드리고 싶었는데…….”
강소는 송정훈을 보았다.
그 아슬아슬한 미소에 강소는 마음이 쓰렸다.
그 미소를 강소는 알고 있었다.
자신이 어릴 때, 살수 집단에 납치되었을 당시 자주 짓던 미소였으니까.
세상은 그에게 포기를 알려 주었고, 포기해야 함을 느꼈을 때 그는 그런 미소를 지었다.
‘마음에 안 들어. 아주…… 마음에 안 들어.’
다섯 살 어린아이가 그런 미소를 짓는다는 것이 특히나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반은 충동적으로 말했다.
“사실 이 형이 아는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에게 부탁해 볼까?”
“네?”
“그 카네이션을 이모한테 배달해 달라고 말이야.”
“하, 하지만 이모는 아주 멀리 있다고 했어요.”
“그 사람은 멀리 있어도 하루 안에 갔다 올 수 있다.”
“각성자예요?”
“그런 셈이지?”
송정훈이 말했다.
“하, 하지만 그러면 돈을 줘야 하잖아요.”
“물론 그렇지만, 첫 의뢰는 공짜다.”
“……정말요?”
강소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부탁할게요! 제 이모에게 이 카네이션을 배달해 주세요!”
아마 송정훈이 어른이었다면, 아니 초등학생만 되었더라도 강소의 말을 의심했을 것이었다.
하지만 아직 순수한 다섯 살이기에 송정훈은 강소를 믿었다.
강소는 그 믿음에 부응하기로 했다.
* * *
오은옥은 지친 몸을 동굴 벽에 기대었다.
“내일이면 끝날까요?”
“그러면 좋겠습니다.”
“하긴, 이틀 만에 레이드가 끝날 리 없죠.”
그녀는 동료의 말에 그리 말하며 눈을 감았다. 조금이라도 쉬어야 했기 때문이었다.
그녀는 문득 언니 생각이 났다.
지원과인 자신과 달리 언니는 은탑의 엘리트였고, 하여 집행과에 배속되었다.
하지만 그게 불행의 시작이었다.
헌터였던 형부가 죽고, 그녀의 언니 오금옥은 블랙맨에게 살해당했다.
졸지에 고아가 된 언니의 아이 송정훈을 보육원에 보낼 수 없어 오은옥은 아이를 맡아 키우게 되었다.
하지만 지원과의 기본 월급으로는 아이를 키우기에 빠듯했고, 결국 이렇게 수당이 나오는 게이트에 출입하는 일에 지원할 수밖에 없었다.
게이트에서 레이드를 도는 헌터들의 후방을 지원하며통신을 담당하는 동시에 헌터들을 감시하는 일 말이다.
직접 싸우는 헌터들에 비해 쉬운 일이었지만 그래도 게이트라는 건 언제 어디서 위험이 닥칠지 모르는 일이었다.
그걸 알지만 그래도 그 수입을 포기할 수 없었다.
‘여기서 나오는 수당만 해도 정훈이가 먹고 싶어 하는 것을 맘껏 사 줄 수 있으니까. 그리고 정훈이가 학교 들어갔을 때도 생각해야 하고…….’
그때였다.
“피, 피하십시오! 게이트 웨이브입니다!”
“뭐? 게이트 웨이브?”
그 말에 오은옥은 놀라 벌떡 일어났다.
게이트 웨이브.
그건 게이트 안의 마수들이 갑자기 미쳐 날뛰는 현상이었다.
그 원인에 대해 여러 가지 설이 있었지만 아직 정확하게 밝혀진 건 없었다.
단지, 게이트 웨이브가 발생하면 게이트의 역류까지의 시간이 반으로 단축되고 마수들이 더 흉포해진다는 것만이 확실했다.
“젠장! 갑자기 왜 게이트 웨이브가!”
“후퇴! 후퇴하라!”
그 외침과 함께 저 멀리서 수십 마리의 개미형 마수가 그들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아…….”
오은옥은 마법사의 스태프를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이대로는 사망 또는 큰 부상을 입게 될 터!
그때였다.
펑-!
뭔가 공기가 터지는 소리와 함께 개미형 마수들의 몸이 터져 나가기 시작했다.
펑펑펑-!
주먹 한 방에, 어른의 키보다 큰 마수들이 터져 나가는 모습은 그들에게 두려움을 주었다.
그보다 우선 살았다는 마음이 먼저였지만.
“어, 어떻게 이런 일이?”
“어…… 개미 마수들뿐만 아니라 다른 마수들도…… 죽었어?”
“허…….”
눈 깜짝할 사이에, 그것도 게이트 웨이브로 인해 흉포해진 마수들이 시체 조각이 되었다는 사실에 당황해하고 있었다.
오은옥도 마찬가지였다.
그때였다.
“오은옥 씨 되십니까?”
“네?”
그녀는 깜짝 놀랐다. 옆에서 낯선 남자의 목소리가 들렸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왜인지 몸을 움직일 수 없었다.
“이모에게 카네이션을 배달해 달라는 송정훈 어린이의 의뢰입니다.”
“……?”
“빠른 귀가를 돕기 위해 대부분의 마수는 처리했지만 전부 처리하면 마정석 같은 수익을 얻을 수 없다고 해서 조금은 남겨 놨습니다.”
“아…….”
“그럼 안녕히 계십시오.”
그리고 그 남자는 사라져 버렸다.
그제야 그녀는 움직일 수 있었다. 그녀의 발치에는 봉투 하나가 있었다.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봉투를 집어 들어 열어 보았다. 그 안에 있는 종이 카네이션이 들어 있었다.
서툰 솜씨로 꽃잎을 붙이고 녹색 종이 리본에 ‘이모 감사합니다.’라고 쓴 카네이션이었다.
오은옥은 오늘이 어버이날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왈칵 눈물이 쏟아졌다.
오늘은 그녀에게 있어 잊지 못할 어버이날이었다.
무림에서 온 배달부 41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