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livery Man From Murim RAW novel - Chapter 569
568화. 추석 풍경 (6)
격변의 시대가 오면서 아이들의 놀이는 그 양상이 바뀌었다.
컴퓨터나 핸드폰으로 게임을 할 수 있는 인프라가 전부 파괴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다 보니 컴퓨터 게임이나 핸드폰 게임이 없던 그때의 놀이가 다시 등장했다.
인간은 본능적으로 놀이를 추구하는 존재니까.
그렇게 거의 30여 년의 세월이 흘렀고, 하나둘씩 사회 기반 시설들이 복구되기 시작하면서 땅바닥에 말판을 그려 가면서 놀았던 놀이들은 다시 사라지기 시작했다.
박민애가 유하영에게 알려 주고 있는 사방치기가 바로 그 사라지는 놀이 중 하나였다.
박민애의 대답에 유하영은 고개를 갸웃했다.
“정말 그거만 있으면 돼요?”
“물론이지.”
“빨리 알려 주세요!”
“그래그래.”
박민애는 땅에 커다랗게 그림을 그렸다. 그건 얼핏 보면 커다란 방패연 같기도 했다.
“그다음에 이렇게 각 칸에 1부터 8까지 숫자를 쓰는 거야. 그리고 맨 위에 있는 반원은, 하늘이지. 여기까지는 이해했지?”
“네!”
“이게 서로 땅을 따먹을 수 있는 판인데, 여기를 지나갈 땐 특별한 규칙이 있어.”
박민애는 두 발, 한 발, 두 발, 한 발, 두 발, 그리고 뒤돌아서 다시 그대로 돌아오는 모습을 보여 준 후 말했다.
“이게 기본 규칙이야. 이해했니?”
“네. 쉬워요.”
“호호호. 이렇게 쉽다면 이게 놀이가 아니지.”
박민애는 돌멩이를 1번에 던졌다.
“맨 처음에는 이렇게 여기 1번에 돌멩이를 던지는데, 그럼 1번에는 발을 대면 안 돼.”
“그럼 어떻게 가요?”
“이렇게, 2번을 한 발로 딛고, 그다음 3번도 한 발로 디딘 후 4번과 5번을 한 번에 밟으면 되지.”
“아, 그러면 그다음에는 2번에 돌을 던지는 거예요?”
“똑똑하네!”
박민애의 칭찬에 유하영은 쑥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렇게 설명이 이어졌다.
8번까지 같은 방식으로 갔다가 하늘에 올라가 뒤로 돌을 던져 땅을 따먹는 것까지 설명한 후 본격적으로 놀이가 시작되었다.
유하영의 상대는 강소였다.
“얍! 얍얍!”
유하영은 사뿐사뿐 칸을 밟았다.
강소가 볼 때 사방치기라는 놀이는 순발력과 판단력 그리고 균형 감각을 동시에 익힐 수 있게 해 주는 훌륭한 놀이었다.
툭-!
데구루루르.
3번을 향해 던졌던 돌이 데구루루 굴러가면서 말판의 선에 닿았다.
“앗!”
“하영이, 이번 판은 죽었네?”
“히잉…….”
유하영은 속상한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괜찮아요. 규칙이잖아요. 그리고 규칙을 잘 지켜야 한다고 했어요.”
“그래, 맞아. 규칙은 잘 지켜야 하는 거야.”
다음은 강소의 차례였다.
사방치기라는 놀이는 강소에게 있어 무척이나 쉬운 놀이었다.
하지만 상대는 유하영이다.
S급 각성자였지만, 그래도 아직 7살 아이다.
강소는 유하영을 상대로 이길 생각은 1도 없었다.
하지만 처음부터 ‘일부러’ 실수를 한다면 유하영이 알아차릴 것이 분명했다.
왜인지 유하영은 강소의 생각은 알 수 없는 듯했지만, 그래도 눈치가 굉장히 빨랐으니까.
그래서 4번 칸을 공략할 때, 일부러 돌멩이가 다른 칸에 넘어가도록 했다.
톡.
데구루루르.
“이런! 돌이 다른 곳으로 갔군.”
“와! 내 차례다!”
그렇게 한참 재밌게 놀고 있을 때, 펜션 안에서 임소영의 목소리가 들렸다.
“식사하세요.”
이제 놀이를 마칠 시간이었다.
“손 씻고, 밥 먹자.”
“네.”
유하영은 밖에 마련되어 있는 개수대에서 비누로 깨끗하게 손을 씻고 펜션 안으로 들어갔다.
오늘 저녁은 삼겹살이다.
펜션에 고기를 구워 먹을 수 있는 시설이 갖추어져 있었다.
치이이익-!
불에 달구어진 철망 위에 고기가 올라가자 치익 하는 소리를 내며 고기가 익어가기 시작했다.
숯불에 떨어지는 기름이 타면서 연기가 피어올라 고기에 훈연을 입혀 주었다.
“역시 야외에서는 바비큐가 최고지.”
“네 말이 맞다.”
맛있게 고기를 먹던 강소가 물었다.
“아, 그러고 보니 오늘이 디텍티브 포의 마지막화지?”
“맞아.”
방송 시간은 저녁 10시.
당연히 모두 함께 마지막 방송을 시청할 예정이다.
그리고 내일은 디텍티브 포의 뒷이야기라든지 NG 장면 등등을 모아서 보여 주는 메이킹 필름을 방송했다.
옆에서 유건영이 유하영에게 물었다.
“하영아, 결말이 어떻게 되는 거야? 이 할애비한테만 말해 주면 안 될까?”
“안 돼요.”
유하영은 단호했다.
“미리 알려 주면 재미없어요.”
“하하하. 아주 단호하구나.”
“그리고 감독님이 스포는 나쁜 거라고 했어요.”
옆에서 유순태가 말했다.
“그래서 저희도 몰라요.”
임소영이 말을 이었다.
“하영이가 절대 안 알려 주거든요.”
유건영의 시선이 강소에게 향했고, 강소 역시 웃으며 대답했다.
“저도 모릅니다.”
사실 유순태와 임소영 그리고 강소는 마지막 화 내용을 알고 있었다.
유하영이 대본연습을 집에서 하다 보니 자연히 알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 내용은…….
벌써부터 마지막 화를 본 후의 반응이 기대되었다.
식사를 마친 후, 유하영은 온수풀에서 열심히 놀았다.
보통 그 정도면 지쳐서 잠이 들 텐데, 유하영은 아직도 생생했다.
‘역시 S급 각성자의 신체 능력이야.’
강소는 그리 생각했다.
“오빠! 얼른 와! 드라마 시작해.”
“알겠다.”
TV 앞 탁자에 맥주와 안주가 차려져 있었다. 그리고 유하영을 위한 주스도 있었다.
[We are DETECTIVES]속삭이는 듯한 목소리와 함께 오프닝 곡이 들려왔다.
[내 앞에 있는 너는, 내 최대의 미스터리. 하지만 괜찮아. 나는 너를 위한 탐정이니까.]마지막 방송이라 방송 시간이 부족해서인지, 오프닝의 앞은 확 잘라 버리고 뒷부분만 있었다.
그리고 광고 없이 곧바로 드라마가 시작되었다.
정빈이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는 장면부터 시작되었다.
“이런! 내가 놓치고 있던 것이 그거였어!”
“뭔데?”
그 반응에 덩달아 놀라 벌떡 일어난 백설아가 물었고, 정빈은 그녀에게 외쳤다.
“김승명! 그자가 이번 일의 열쇠였어!”
왜 눈치 채지 못했을까?
언제부터인가, 자신의 곁을 맴돌던 이상한 여자아이가 알려 준 증거들.
“어? 저건 뭐지?”
소녀가 알려 준, 작은 천 조각.
“아저씨는 왜 보이는 것만 믿어요?”
“무서운 아저씨였네요. 그런데요, 무서운 건 별로 좋지 않은 거라고 했어요.”
“승명 아저씨가 나쁘다고요? 왜 나쁜데요?”
“사람은 각자가 포기할 수 없는 정의라는 게 있다고 했어요.”
“아저씨는 아주아주 중요한 것을 놓치고 있는데? 그거 때문에 누가 죽는다면 그건 누구 책임일까요?”
그 모든 단서들이 조합되면서, 모든 것이 명확해졌다.
홈즈가 그랬던가?
[세상에는 어느 누구도 관찰하지 않지만, 그 어떤 의심도 받지 않는 것들로 넘쳐 난다]라고.
지금 그 명언을 되새길 수밖에 없었다.
“설마 범인이, 이웃집 노인의 아들 박서우였을 줄이야!”
뇌병변 장애가 있는 남자 박서우.
단순한 어휘로 어눌하게 겨우 대화할 수 있는 그가 바로 진짜 범인이었다.
그리고,
그의 실체를 아는 유일한 인물.
바로 마을의 소문난 불량배 김승명이다.
정빈에게 이진성의 전화가 걸려왔다.
– 정빈아! 승명 씨 지금 집에 있대!
“네! 지금 그곳으로 갈게요!”
– 나도 따라갈게!
그때 백설아의 전화가 울렸다.
“왜, 현민아?”
– 누나! 큰일이야! 지금 아파트 CCTV를 봤는데, 김승명 씨가 베란다에 매달려 있어!
“뭐?”
그 통화에 놀란 백설아가 정빈에게 외쳤다.
“빈아! 지금 승명 씨가 베란다에 매달려 있대!”
“젠장! 벌써 제거하려고 손을 썼군!”
펜션 거실에는 긴장감이 감돌았다.
맥주를 따라 놓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김이 다 빠져 버렸을 테니까.
그 정도로 박진감이 넘쳤다.
유순태와 임소영 그리고 강소는 이미 내용을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조마조마했다.
강소는 왜 송창열 PD가 장르 드라마계의 제왕이라 불리는지 알 것 같았다.
정빈은 기지를 발휘해서 김승명을 구해 냈다.
그리고 박서우를 체포하는데 성공했다.
그렇게 사건은 마무리되었다.
하지만, 그 후 자신들의 곁을 맴돌던 소녀는 흔적도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디텍티브 포 팀은 내심 서운했다.
그리고 며칠 후.
“살려 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김승명이 디텍티브 포 팀을 찾아와 인사를 했다.
“아닙니다. 저희는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이제 정신 차리고 살려고요.”
“잘 생각하셨습니다.”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그럼 저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김승명은 허리를 숙여 인사했고, 그때 툭 하고 그의 지갑이 떨어졌다.
“아!”
그런데,
펼쳐진 지갑에는 누군가의 사진이 있다.
무척이나 낯이 익은 귀여운 소녀의 모습에 정빈은 다급하게 물었다.
“그 소녀!”
“네?”
“그 사진 속 소녀. 아시는 아이입니까?”
“아, 이 아이요?”
김승명은 씁쓸한 표정을 지었다.
“어릴 적 죽은 제 여동생입니다. 참으로 똑똑한 아이였죠.”
사진 속 아이가 입은 옷은, 그들이 그동안 계속 보아 왔던 그 옷이다.
김승명이 떠난 후.
정빈이 중얼거렸다.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알아차렸어야 했어. 매일 같은 옷을 입고 같은 곳에 흙을 묻히고 다니는 아이인데…… 왜 그걸 알아차리지 못했지?”
“그, 그럼 뭐야? 승명 씨 여동생의 영혼이 우리를 도운 거라고?”
“그것 외에 이걸 설명할 게 없잖아?”
“…….”
네 명의 탐정이 있는 사무실이 보이는 계단.
그곳에 서 있는 여자아이는 빙그레 웃었다.
그리고,
화면이 전환되었을 때 그곳에는 아무도 없었다.
곧 클로징 음악이 흘러나오고,
[지금까지 디텍티브 포 시즌 5를 시청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라는 자막이 떠올랐다.그건 전국의 디텍티브 포 시청자들의 뒤통수를 띵 하게 만든 반전이었다.
* * *
추석 연휴가 끝났다.
고영민은 사무실에서 흐뭇한 표정으로 인터넷 뉴스를 보고 있었다.
딱히 RD엔터에서 보도자료를 풀지 않았음에도, 알아서 언론사에서 홍보를 해 주고 있었다.
그 정도로 유하영은 완벽한 연기를 보여 주었다.
게다가 추석 당일에 방송된 [짝꿍 요리사]는 예상보다 더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고, 다음 날 저녁에 방송된 [제 고민을 들어 주세요]는 엄청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무려 한 멤버가 각성했다는 사실을 방송을 통해 알린 사건이었으니까.
그 두 특집 방송에 대한 기사도 계속해서 쏟아지고 있었다.
“내가 하영 양 덕분에 일할 맛이 난다니까.”
그는 그렇게 중얼거리며 가방 안에서 제안서들을 꺼냈다.
그건 유하영의 출연을 요청하는 제안서들이었는데, 사실 그것보다 훨씬 많았다.
가수 3실에서는 그 제안서들을 거르고 걸렀고, 최종적으로 3개의 제안서만을 남겼다.
이제 그가 해야 할 일은 명확했다.
유하영에게 제안서를 내밀고, 그녀가 고른 제안서를 바탕으로 열심히 판을 깔아 주는 것.
그래서 그녀가 마음껏 재능을 펼칠 수 있게 해 주는 것이 바로 그가 할 일이었다.
* * *
다시 양춘각은 일상으로 돌아왔다.
“좋은 아침이에요!”
김지은은 활짝 웃으며 출근했다.
“좋은 아침이야.”
“사장님. 보셨어요? 디텍디브 포?”
“물론이지.”
“와! 진짜 반전이 엄청나지 않아요? 저 고추냉이 먹은 것 같았다니까요.”
그렇게 오늘도 활기찬 하루가 시작되었다.
점심이 되자, 강소는 배달을 했고 그릇을 수거했다.
매일 매일이 반복되는 일상.
누군가는 지루하다고 할지도 모르겠지만, 강소에게 그건 행복이었다.
그날 밤.
가게 정리를 마치고, 식탁 앞에 앉았다.
오늘 야식은 어묵탕이다.
유하영과 임소영은 이미 각자의 몫을 해치우고 2층으로 올라갔다.
그래서 1층에는 유순태와 강소 그리고 허만철이 남아 소주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때 허만철이 ‘아!’ 하는 소리를 내며 말했다.
“아, 아까 말하는 것을 깜빡 했는데요. 조만간 형님께서 한 번 찾아오신다고 하네요.”
“응? 만철 씨 형님?”
유순태의 물음에 허만철이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인사드리러 오신다고 하시네요.”
“안 그러셔도 되는데.”
“형님이 좀 고집이 세셔서요.”
“참 좋은 형님이시네.”
“하하하. 네.”
“잘 해 드려.”
“그럼요.”
하늘의 달은, 살짝 찌그러졌지만 그래도 둥근 모양이었다.
술기운 때문에 살짝 감성적이 되었는지, 유순태가 말했다.
“언젠가 그런 글귀를 본 적이 있어. 예전에는 좋은 일이 있기를 기도했지만, 요즘은 아무 일도 없기를 기도한다. 라는 글귀였지.”
그는 말을 이었다.
“그땐 별 감흥이 없었는데, 요즘은 그 글귀가 가슴에 와 닿아. 좋은 일 없어도 되니까 아무 일도 없었으면 하거든.”
유순태는 하하 웃었다.
“나도 이제 나이 먹었나 봐.”
강소가 그 말을 받았다.
“그건 나이 때문이 아니라, 완숙해졌다는 거겠지. 걱정하지 마라. 아무 일도 없을 거다.”
강소는 이곳에 와서 보낸 명절 하나하나를 전부 기억하고 있었다.
그 모든 건 자신의 소중한 일상이고, 추억이다.
지금 함께 있는 이 순간도.
그러니까,
자신은 그 모든 것을 지킬 생각이다.
아무 일도 없도록 말이다.
그때, 유순태가 고개를 갸웃했다.
“어? 그런데 왜 어묵이 없지? 서른 개나 있었는데?”
“저는 다섯 개 먹었습니다.”
“나는 네 개…….”
“…….”
그 순간,
유순태와 강소의 눈이 딱 마주쳤다.
무림에서 온 배달부 569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