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God wants to live in peace RAW novel - Chapter 125
마신은 평화롭게 살고 싶다 125화
* * *
대통령 주관 긴급 안보회의가 소집됐다.
관리국의 이명섭은 물론이거니와 국무총리, 수방사령관, 국방부 장관, 안보실장, 외교부 장관 및 대한민국 6대 길드의 길드장들이 자리에 참석했다.
비상 대응 단계는 1~10단계까지 존재한다.
높은 숫자일수록 위험 사태라는 뜻인데 9단계부터는 각성자 특별법에 의거해 무조건 참가해야만 했다.
물론 이에 대해 길드장들도 이견은 없었다. 국가가 위험하다는 건 그들의 지반도 위태로워진다는 뜻이니까.
관리국 부국장의 브리핑이 끝나자 장내에는 적막만이 감돌았다.
먼저 말을 꺼낸 건 대통령이었다.
“채널들의 움직임은 어떻습니까?”
“다행히 아직까지 별다른 움직임은 포착되지 않고 있습니다. 다만…… 현장 직원들의 바디캠 동영상을 보신 것처럼 채널 안에는 드래곤이 소환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세 곳 모두 말이지요?”
“예.”
대통령은 참담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일단 일대 주민들을 소개시키고 군 병력과 인근의 민간 길드의 협조를 구해 진을 치긴 했다.
하지만 그건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드래곤이었다. 무려 드래곤이 소환됐단 말이다.
이건 대통령이 알기로 전례에 없는 일이었다.
‘본 드래곤이 소환된 적은 있다만…….’
몬스터 형태의 본 드래곤은 세계적으로도 보고된 적이 많았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드래곤 소환은 국제기구에 보고된 적조차 없었다.
본 드래곤 한 마리도 막기가 벅차다.
일례로 과거 핀란드에서 본 드래곤이 소환되었는데 투입된 각성자 예순 명이 전사했을 정도였다.
그들 모두 최소 B등급 이상의 각성자였는데도 말이다.
물론 당시의 각성자들의 무장 상태가 빈약했다는 것도 한몫하긴 했지만, 본 드래곤의 강력함이 이루 말할 수 없는 건 사실이다.
한데 살아 있는 형태의 드래곤이다. 한 마리도 아닌 세 마리.
그것들이 왜 아직도 채널 안에 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일제히 채널 밖으로 튀어나온다면?
꿀꺽-!
애써 재건한 이 나라는 다시 10년 전으로 돌아가게 될 터였다. 수많은 희생자를 동반한 채…….
똑똑!
노크 소리와 함께 비서실장이 들어왔다.
“대통령님, 백악관에서 S등급 이상의 각성자 파견 요청을 수락하겠다고 합니다. 일본 총리실에서도 S등급 이상의 각성자를 파견해 주겠다고 했고, 중국에서도 협조 의사를 보내왔습니다.”
대통령의 얼굴에 화색이 돌았다. 드래곤 세 마리를 대한민국의 전력만으로 상대하려면 굉장한 피해를 감수해야만 할 터였다.
하지만 미국과 일본의 각성자들이 협조한다면 이야기는 달라질 터.
피해를 최소화시킬 수 있을 것이다.
“한데…….”
“음?”
“조건을 내걸었습니다.”
“조건?”
“미국에서는 한화 80조 원의 비용 청구를 조건으로 달았고, 일본은 국방부와 국토부 소유의 던전과 게이트를 공유해 달라는 조건을 내걸었습니다.”
화색은 잿빛으로 바뀌었다.
현재 대한민국의 1년 세수는 2,000조에 육박했다.
격변 이전과 비교한다면 장족의 발전이지만 물가 상승을 고려한다면 괄목할 정도의 경제성장은 아니었다.
더욱이 올해는 채널과 게이트 사건 사고가 많아서 추경을 집행한 상태였다.
그런데 80조라니…… 또다시 추경을 해야 할 판이었다. 물론 국가 안보와 80조는 맞바꿀 수 없는 것임에 분명했다.
문제는 일본 측도 비슷한 조건을 내걸었다는 점이다.
국가 소유의 던전과 게이트 공유.
이건 80조 그 이상의 가치였다.
물론 두 나라를 탓할 수는 없다. 미국과 일본에서 이 같은 사태가 일어나, 각성자 파견을 요청했다면 대한민국도 비슷한 조건을 내걸었을 테니까.
국가 간의 관계란 실리를 기반으로 하지, 의리를 기반으로 하지 않으니까.
“담배 갖고 있는 분 계십니까?”
외교부 장관이 조심스레 담배를 건넸다.
불을 붙이고 연기를 들이마시자 콜록콜록- 기침이 터져 나왔다.
“오랜만에 피워서 그런지 영 쓰군요. 옛날에는 고소했었는데…….”
“…….”
장초가 단초가 되어 갈 즈음.
대통령이 씁쓸한 표정으로 입을 열었다.
“어쩔 수…… 없겠지요?”
그 어떤 이들도 대답을 하진 않았다.
이건 그들이 모여서…… 아니, 수많은 사람들이 머리를 맞대고 고민한다 한들 대책이 나올 수 없는 일이었다.
불가항력한 일, 그게 바로 지금 그들에게 일어난 사태였다.
그때.
이명섭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괜찮아요. 받아 보세요.”
눈치를 살피던 이명섭이 전화를 받았다.
-국장님, 구의초 채널이……!
* * *
박연은 사색에 잠긴 얼굴로 강변을 따라 걷고 있었다. 그를 고심에 빠뜨린 건 한 통의 문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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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이것이었다. 특히 이 문자에서 박연의 눈길을 사로잡는 건 무직자였다.
한마디로 직업이 없는 사람도 대출이 가능하다는 뜻이었다.
“백만 원은 괜찮을 것 같은데…… 금리도 낮고.”
물론 박연은 딱히 돈이 필요가 없었다.
서준과 연준이 따박따박 일당을 주는 데다 따로 고정적인 지출이 있는 것도 아니었으니까.
그럼에도 그가 이 문자를 받고 혹한 건 서우 때문이었다.
박연은 종종 서준과 마트에 함께 간다. 그리고 가끔 서준은 마트에서 서우의 장난감을 살 때가 있었다.
장난감을 선물로 받은 서우는 정말이지 더할 나위 없이 기뻐하며 서준에게 안겼다.
이때 박연은 그 모습을 무력하게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에게는 장난감을 사 줄 돈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대출을 받는다면……?
가능하다.
서우가 좋아하는 공룡 장난감을 떡하니 사서 선물로 줄 수가 있는 것이다!
“여긴 어디지?”
고심하던 박연이 문득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무아의 상태로 고심하며 걷다 보니 어느새, 낯선 곳까지 와 버렸다.
“왔던 길로 가면 되겠지 뭐.”
당황한 것도 잠시.
박연은 왔던 산책로를 따라 움직였다.
그때.
“뭐지?”
저 강 너머에서 어떤 기운이 느껴졌다. 기운은 분명 희미했다. 너무 희미해서 박연도 긴가민가할 정도로.
하지만 희미한 기운이 점점 짙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짙어지는 기운의 성질은…….
“신성력!”
박연은 눈을 부릅떴다.
착각이 아니다!
이건 분명 신성력이다!
그것도 짙은 농밀도의 신성력!
박연은 귀신에 홀린 듯 블링크를 시전하며 기운이 느껴진 곳으로 향했다.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신성력은 강하게 느껴졌다.
박연의 입가에 화색이 감돌았다. 사실 용사라고 해서 감정이 없는 건 아니다.
그저 용사이기에 그 감정을 꾹꾹 눌러 참았을 뿐.
당연히 다른 이들처럼 향수에 젖을 때도 있었다. 그럴 때마다 그를 위로해 주는 건 한 잔의 콜라였지만 저 신성력을 보라.
적어도 그가 있던 세계에서 넘어온 생명체가 분명했다. 그게 사무치도록 반가웠다.
‘사제인가? 아니면 성기사?’
박연은 신성력의 주인을 기대했다. 사제건 성기사건…… 누구라도 좋았다.
고향의 정서를 향유할 수 있는 이라면 말이다.
미소를 머금고 근원지를 달려 나가던 박연.
‘너무 방대한데…….’
생각 이상으로 방대한 신성력이었다. 이건 고위 사제들, 아니 교황이나 성녀들도 갖지 못할 만큼 방대한 신성력이었다.
이런 신성력을 품을 수 있는 생명체는 하나밖에 없었다.
“인간은 신성한 이곳에 발을 들일 수 없을지니.”
박연은 쓰게 웃었다.
예상대로 드래곤이었다.
기대가 컸기에 실망도 컸지만 박연은 내색하지 않았다. 어쨌든 드래곤도 신을 섬기는 건 매한가지니까.
“저는 신을 섬기는 벨테브레이라고 합니다. 신의 종으로서 신의 대리인인 분께 여쭙습니다. 귀하께서는 어찌 여기 계십니까?”
박연은 최대한 정중하고 공손히 말했다.
인간들이 신의 종이라면, 드래곤은 신의 대리인이라 불린다. 따라서 악룡이 아닌 이상 어떤 드래곤이든 예를 갖출 필요가 있는 것이다.
“……인간은 신성한 이곳에 발을 들일 수 없을지니.”
“예?”
드래곤이 커다란 아가리를 벌리기 시작했다.
“뭔가 오해가 있으신 것 같습니다! 저 또한 신의 종입니다!”
박연은 애써 자신의 기운을 방출시켰다. 신성력을 느끼게 함으로써 적이 아니란 걸 일깨워 주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런 노력이 무색하게도 드래곤은 벌린 아가리를 닫지 않았다.
그리고…….
솨아아아아!
브레스가 뿜어졌다.
박연은 가까스로 공격을 막아 낼 수 있었다.
“신의 사자께서 무슨 짓입니까!”
“인간은 신성한 이곳에 발을 들일 수 없을지니.”
같은 말만 반복하는 드래곤.
그제야 박연은 뭔가 이상하다는 걸 깨달았다. 그러는 사이 드래곤이 다시 브레스를 내뿜었다.
이번에는 블링크를 이용해 피해 낸 박연이 드래곤을 유심히 살펴봤다.
드래곤은 일면에서 인간 이상의 고등 생명체다. 인간은 정신계 마법에 취약할 수밖에 없었다.
그 누구라도 심신이 지쳐 있고 피폐한 상태에서는 정신계 마법에 당할 우려가 있는 것이다.
하지만 드래곤들은 다르다. 그들은 인간과 달리 정신계 마법이 통하지 않는다. 심지어 해츨링들조차 말이다.
그런데 지금 저 드래곤이 보이는 반응은 의식을 잠식당한 이가 보이는 반응과 유사했다.
이게 가능한가, 불가능한가를 따질 여유는 없었다.
박연이 브레스를 피해 내자 드래곤이 또 다른 공격을 시도한 것이다.
쾅!
어느 순간 그의 옆에 불구덩이가 날아와 박혔다. 가까스로 피해 내긴 했지만, 박연은 소스라치게 놀랐다.
‘이게 용언…….’
드래곤은 반신이라 불린다. 신과의 경계에 있는 일종의 관조자들인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타락해 악룡이 될 경우 두려운 이유는 용언에 있었다.
이들은 태생적으로 의지만으로 마법을 시전할 수가 있다. 이는 인간들에게는 재앙과 같다.
인간들은 마법을 사용하기 위해 캐스팅이란 중간 단계를 거쳐야만 한다.
물론 마법을 미리 응축시켜 둔 스태프를 이용해 시전할 수도 있겠지만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게다가 마법은 필연적으로 에테르가 소모되는데 드래곤은 다르다.
그들은 자연의 일부다. 드래곤이 자연이고 자연이 드래곤인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굳이 에테르를 모을 필요도 없다.
그 말은 마법을 무한하게 사용 가능하다는 뜻과도 같았다.
지금처럼.
콰콰콰쾅!
거대한 불구덩이가 그를 덮쳐 왔다. 서둘러 실드를 이용해 막아 냈지만 팔오금이 저릴 정도의 위력이었다.
“크윽……!”
박연이 휘청거리자 드래곤이 다시금 브레스를 내뿜었다.
솨아아아!
순식간에 헤이스트를 걸어 브레스의 반경에서 벗어나긴 했지만 모골이 송연했다.
피했지만 피한 게 아닌 기분이었다. 피했다고 안심할 상황도 아니었다.
곧바로 다음 공격이 들어왔으니까.
드래곤에게서 응축된 기운이 한 번에 폭사되어 쏟아졌다. 기운 자체는 정순한 에테르였지만 아니다.
저주 계열의 마법이 분명했다.
박연은 서둘러 템페스트를 시전했다. 일순 강력한 폭우가 쏟아졌고 폭우는 드래곤에게서 폭사된 에테르를 밀어냈다.
찰나의 시간을 번 박연은 메테오로 반격을 시도했다.
콰콰쾅!
굉음과 함께 드래곤 주변이 화염에 휩싸였다.
하지만 그게 전부였다. 주변의 초목만 불태웠을 뿐, 정작 드래곤에게는 조금의 피해도 주지 못했다.
박연은 입술을 잘근잘근 씹었다. 할 수 있는 게 없었다. 데이카란투를 처치했을 때는 동료들이라도 있었지만 지금은…….
“악룡을 처치했다더니 드래곤이 아니라 와이번을 처치했었나 보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