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mon God wants to live in peace RAW novel - Chapter 87
마신은 평화롭게 살고 싶다 87화
* * *
최성균이 가게로 들어왔다.
그는 저번과 달리 동료들과 함께였다.
팀원들이리라.
“오늘은 회식이신가요?”
최성균이 팀원들을 돌아보며 고개를 끄덕거렸다.
“예. 그리고…… 먼젓번에는 죄송했습니다. 진상도 그런 진상이 없었죠?”
“아뇨. 곱게 주무시기만 하셨는걸요.”
“그래도 집까지 바래다주시느라 많이 힘드셨을 텐데요.”
서준은 생긋 웃었다.
사실 고생은 박연이 했다.
박연이 집까지 데려다줬으니까.
“괜찮습니다. 그리고 축하드려요.”
“축하요?”
“TV에 나오시던데요?”
서준이 웃으며 말하자 최성균이 쑥스러운 듯 머리를 긁적거렸다.
“보셨구나.”
최성균은 대한민국에 몇 없는 S등급 각성자가 되었다.
미디어에서는 연일 그에 대한 보도를 내보냈다. 대기만성형 각성자라는 헤드라인을 달고서.
그 덕에 그는 하급 각성자들의 희망이 되었다.
“그것 때문에 팀장님이 한턱 쏘시는 거예요.”
최성균의 옆에 있던 이가 말을 보탰다. 임천수였다.
“그렇군요.”
서준은 임천수의 팔을 곁눈질했다.
멀쩡해 보이니 다행이었다.
“사장님.”
“네?”
“혹시 김밥도 될까요?”
“김밥이요?”
“저번에 먹은 김밥이 아주 맛있더군요. 그게 계속 아른거려서 아내한테도 한번 만들어 달라고 해 봤는데 도통 그 맛이 안 나서요. 아, 물론 재료가 없다면 괜찮고요.”
“아뇨. 재료야 사 오면 됩니다.”
“재료가 있는 거면 몰라도 굳이 그렇게까지 하면 죄송스러워서…….”
“김밥은 언제 먹어도 맛있잖습니까. 내일 또 먹으면 됩니다.”
“그럼 재료는 제가 사 오겠습니다. 뭐가 들어가는지만 말씀해 주시면…….”
“아닙니다. 편하게 앉아 계세요.”
“그래도 될까요?”
“그럼요. 손님이신데요.”
성균이 멋쩍어하며 팀원들과 테이블로 가자 서준은 박연을 불렀다.
연이은 부름에도 그는 방에서 나오지 않았다. 서준은 결국 방문을 열어젖혔다.
넋이 나간 박연이 보였다.
“이봐.”
“…….”
“박연!”
“응? 아…… 그래. 드라마 할 시간인가?”
“아니. 심부름 좀 다녀올 수 있나 해서.”
“심부름?”
“저번에 그 손님 있잖아.”
“손님이 한두 명이어야지.”
“일전에 그대가 부탁한 손님.”
“기억나는군.”
“그 손님이 김밥을 먹고 싶다는데 난 자리를 비울 수 없어서 말이지.”
“그래서 심부름을 가라 이 말인가? 용사인 나더러?”
고개를 끄덕이자 박연은 의외로 순순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대의 심부름 때문이 아니라 마침 바람도 쐬고 싶어서 가는 것이다.”
그렇게 말한 박연이 손을 내밀었다. 서준은 그의 손에 카드를 쥐여 주었다.
“콜라는 안 사도 된다.”
흠칫!
“난 용사다. 그대처럼 상대를 기만하는 짓은 하지 않아.”
“그럼 다행이고.”
박연이 심부름을 하러 가자 서준은 밥에 간을 했다. 마침 간을 끝마쳤을 무렵 박연이 돌아왔다.
그는 퉁명스러운 표정으로 봉투를 내밀었다. 봉투 안에 콜라는 없었다.
다만 있어야 할 다른 것도 없었다.
“영수증은?”
“영수증? 그건 안 주던데?”
“그럴 리가.”
“진짜 안 줬다. 아마 마트 직원이 깜빡한 것 같군. 하긴 좀 바빠 보이긴 했다.”
이 시간에 마트가 바쁘다?
말도 안 되지만 서준은 모른 척 넘어갔다.
서준은 서둘러 김밥 만들 준비를 했다.
먼저 단무지와 햄, 맛살 따위를 접시 위에 펼쳐 놓았다.
“마왕.”
“왜 그러지?”
“영화에서 보면 김밥은 연인들 간에 데이트를 하면서 먹던데 맞나?”
“꼭 그런 건 아니지만 뭐…… 대체로 그런 경우가 많긴 하지.”
“그렇군.”
고개를 끄덕인 박연은 볼일을 다 본 것 같은데도 주방을 나가지 않았다.
그저 묵묵히 팔짱을 낀 채 서준이 김밥 만드는 걸 지켜보았다. 딱히 동선에 방해가 되진 않아서 굳이 쫓아내진 않았다.
속 재료를 접시에 다 펼쳐 놓은 서준은 계란 지단을 만들었다.
“왜 계란 지단부터 만드는 거지?”
박연의 질문에 어린 시절의 자신이 떠올랐다.
-왜 계란부터 부치는 거예요?
-그건 서준이가 크면 말해 줄게.
피식 웃은 서준이 말했다.
“그건 그대가 이 지구의 환경에 완전히 적응을 하면 말해 주지.”
“별게 다 비밀이군. 뭐 대단한 것도 아닐 것 같은데.”
다음은 당근이었다.
타타탓!
곱게 채 썬 당근을 팬에 넣고 볶아 줬다. 물론 소금은 조금만 넣었다.
“그 정도 가지고 되겠어?”
역시나 옛날의 자신이 떠올랐다.
-소금은 조금만 넣어야 돼.
-왜요?
-많이 넣으면 짜잖아.
“많이 넣으면 짜잖아.”
“그런가? 당근은 원래 쓴 채소라서 좀 더 넣어도 될 것 같은데.”
“이 정도가 적당하다.”
그 후 서준은 오이 안에 있는 씨를 빼고 시금치도 데쳤다.
모든 재료 손질이 끝나고 서준은 김밥을 말았다.
몇 줄이나 만들어 달란 주문은 없었기에 넉넉하게 10줄을 말았다.
‘썰지 않은 김밥을 더 좋아했지.’
저번에 최성균은 썬 김밥보다는 썰지 않은 김밥을 선호했었다. 그게 기억나 서준은 김밥을 굳이 썰지 않고 내갔다.
“많이 기다리셨죠?”
“아닙니다. 생각보다 금방 나와서 놀랐네요.”
“썰어 드릴까요?”
“이게 더 좋겠네요. 다들 그렇지?”
모두들 상관없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최성균이 김밥을 통째로 집어 들고 입에 넣었다. 그리고 우걱우걱 씹었다.
그의 얼굴에 미소가 피어올랐다.
“맛있네요. 저번에 먹은 그 맛 그대로예요.”
“와, 진짜네요? 술집에서 무슨 김밥을 주문하시나 했는데, 이거 맛있는데요?”
“그러게요. 이거 팔아도 되겠…… 아, 파는 거구나.”
최성균과 그 일행들을 뒤로한 채 서준은 주방으로 돌아갔다.
박연이 어색하게 웃으며 그를 반겼다.
“하하…… 이게 생각처럼 잘 안 되네.”
터진 김밥 재료들이 어지럽게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 * *
임천수는 술이 얼큰하게 취한 모습으로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그의 손에는 검은 봉지가 들려 있었다.
봉지 안에 든 김밥을 새삼 확인한 천수는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술 한잔해요에서 먹은 이 김밥은 무척 맛있었다. 혼자 먹기에는 너무 아까울 정도로.
그래서 포장을 부탁했다.
발걸음은 가벼웠다. 집에 도착하자 그의 아내가 그를 반겼다.
“또 술 마셨어? 으…… 술 냄새.”
아내의 면박에 천수는 봉지를 내밀었다.
“자, 선물.”
“어떤 사람이 선물을 성의 없이 봉지에 담아 와?”
“당신 남편?”
“말이나 못 하면. 김밥이네?”
“오늘 회식하면서 먹은 건데 맛있더라. 그래서 사 왔어. 세연이가 김밥 엄청 좋아하잖아.”
“내 선물이 아니라 세연이 선물이었구먼?”
“당신 선물은 여기 있잖아.”
임천수가 자신을 가리키자 그의 아내가 인상을 찌푸렸다.
“징그러워.”
“근데 세연이는?”
“지금 시간이 몇 신데. 자고 있지.”
고개를 끄덕인 임천수가 비틀거리며 딸아이의 방문을 열었다.
“그러다 깨.”
“얼굴만 볼게.”
천수는 까치발로 조심스럽게 방 안으로 들어가 새근새근 잠든 아이를 바라봤다.
어느 부모에게든 자기 자식은 예뻐 보이고 사랑스러워 보이는 법이다.
임천수도 그랬다.
임천수는 딸아이를 바라보며 끔찍했던 며칠 전의 일을 회상했다.
레오 울프가 달려들었을 때.
그는 죽는 줄로만 알았다.
그래서 이제는 딸아이를 보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용케 살아남았지만, 살아남았다는 기쁨보다는 걱정이 앞섰다.
이제 딸아이를 안을 수 없을 테니까.
그랬는데…… 뜯겨 나간 신경들이 되살아났다.
의사들마저 고개를 저은 팔의 신경들이 말이다.
의사는 물론, 팀원들도 모두 한목소리로 말했다.
이건 기적이라고, 그 말 외에는 달리 표현할 길이 없다고.
하지만 임천수는 확신했다.
이건 기적이 아니었다.
그날.
사경을 헤매던 그날.
천수는 흐릿하지만 미지의 존재가 자신에게 읊조리는 것을 들었다.
-누가 그러더군. 좋은 사람들은 대개 단명한다고.
-맞는 말 같아. 선한 사람들은 대부분 단명하지. 아니면 그대처럼 끝이 좋지 않든가.
-이 말을 한 사람이 또 그러더군. 사람들이 그래서 드라마를 찾아보는 거라고. 현실에서는 몰라도 드라마 속에서는 그대 같은 사람들이 승승장구하길 바라는 사람들의 염원이 담긴 거라나?
-그건 나 또한 같다. 그대 같은 사람들이 잘됐으면 하는 마음이지.
기억은 거기까지였다.
물론 이는 사경을 헤매면서 들린 환청일 수도 있었다.
아니면 마취에 의한 효과이든가.
하지만 뭐가 됐건 이번에 자신에게 일어난 일은 기적이 아니었다.
천수는 그것만은 확신했다.
‘고맙습니다…… 딸아이를 다시 안을 수 있게 해 주셔서.’
* * *
서준은 귀를 후벼 팠다.
왠지 귀가 간지러웠다.
‘누가 내 욕이라도 하나?’
누군지 의심은 간다.
화장실에 있을 박연.
아마 그겠지.
고개를 절레절레 저은 서준은 다시금 손님들이 나누는 대화에 집중했다.
“그래서 그날 시간 돼, 안 돼?”
“되긴 하지. 근데 무슨 뜬금없이 바다냐?”
“다들 취직한 뒤로는 좀처럼 모여서 피서 간 적 없잖아. 이럴 때 가는 거지.”
“나쁘지 않긴 하네.”
“그럼 형석이도 콜?”
“나는 무조건 콜이지.”
손님들은 느지막이 휴가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
‘바다라…….’
서준은 바다를 떠올려 봤다.
파도가 철썩이고 갈매기가 끼룩끼룩 운다. 백사장에는 피서 인파와 파라솔로 발 디딜 틈이 없다.
‘바다 냄새가 어땠더라.’
그런데 정작 바다에서만 맡을 수 있는 특유의 냄새가 기억이 안 났다.
‘오래되긴 했지.’
잠시 고민하던 서준은 테이블을 정리하는 연준에게 다가갔다.
“연준아.”
“어?”
“너 마지막으로 쉬어 본 게 언제냐?”
“갑자기 그건 왜?”
“일단 대답해 봐. 마지막으로 쉬어 본 게 언제야?”
“월요일마다 쉬잖아. 며칠 전에 쉬었네.”
“아니, 그런 거 말고. 휴가 말이야.”
“휴가?”
“어. 여름에 계곡이나 바다로 피서 간다든가 겨울에 스키장을 간다든가 하는 휴가. 언제가 마지막이냐?”
“음…… 6년 전?”
“뭐? 6년 전?”
“응.”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의 연준에 서준은 왜 그가 휴가를 가지 못했는지 알 것 같았다.
생계 때문이었을 거다. 며칠 동안 쉰다는 건 아마 상상도 할 수 없었겠지.
‘월요일마다 가게 문 닫기 시작한 것도 2년 전부터라고 했으니…….’
그전에는 매일같이 일만 했다는 뜻이 된다.
왠지 연준이 안쓰러웠다. 박 터지게 살아왔을 녀석의 지난날이 떠올라 애잔하기도 했다.
“이참에 우리도 피서나 가자.”
“피서? 갑자기?”
“더 늦으면 가고 싶어도 못 가.”
“가게는 어쩌게?”
“며칠 문 닫아야지.”
연준이 멈칫거렸다. 그에게 있어서 연휴란 어색한 단어였다. 격변 이후 하루 이상을 쉬어 본 적이 없었으니 말이다.
그러니 이제는 일이 아예 습관화되었다.
모처럼 쉬는 날에도 그는 제대로 휴식을 취한 적이 없었다. 일종의 강박이었다.
“며칠씩이나 가게 문 닫는 건 좀 곤란하지 않을까?”
연준이 조심스럽게 답했다.
“매상도 이전에 대비해서 몇 배나 올랐다며?”
“그건 그런데…….”
“정 마음에 안 내키면 서우를 생각해라.”
“서우?”
“서우 바닷가 한 번도 안 가 봤다며.”
“……서우가 형한테 그렇게 말했어?”
“그러더라. 큰아빠는 바다 가 봤냐고…… 나중에 가게 되면 자기도 꼭 데려가 달라더라.”
“…….”
“내가 애는 없지만 애들 크는 거 한순간이라더라. 이럴 때 추억 남기는 거지, 언제 남기냐?”
그 말이 결정타였다.
서준의 말이 맞았다.
연준은 서우가 크는 동안 어떤 추억도 만들어 준 적이 없었다.
“형 말이 맞네. 그러자. 며칠 쉬자.”
“잘 생각했어.”
“그럼 휴가 계획은 어떻게 세울까?”
“걱정 마라. 형이 다 짜 놓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