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truction of the Fortress RAW novel - Chapter 131
131
第二十七章 난맥(亂脈) (1)
마지막 순간! 최후의 순간!
이제는 정말 마지막이라고 생각되는 순간…… 날수통의 주인은 나타나지 않았다.
조금 더 기다려볼까?
괜한 미련이다. 날수통의 주인은 그들이 죽은 후에도 나타나지 않을 것이다.
이것은 그들도 알고 수월화도 짐작한다.
“제길!”
십절소악이 툴툴거리면서 흑죽을 내려놓았다. 얌전히.
“뭐하는 겁니까!”
음사가 버럭 고함쳤다.
“떠들지 마라. 살아야 구린 밥이라도 먹을 수 있는 법이야. 난 살고 싶으니 뒈지고 싶으면 너나 뒈져.”
십절소악은 음사를 쳐다보지도 않고 두 손을 번쩍 들었다.
“항복!”
어처구니없는 행동이다.
반항다운 반항 한 번 해보지 않고 무작정 두 손 들고 항복을 해버리다니!
“음!”
누강이 신음을 흘렸다.
여인들의 화살은 여전히 그들을 겨누고 있다. 미간을 향해 쏘아지기 일보 직전이다. 활을 든 여인들은 이미 시위를 놓으라는 명령을 받은 후이다.
죽음 직전의 순간, 십절소악은 삶을 택했다.
툭!
누강이 흑죽을 떨궜다.
“다, 당주님!”
음사가 당황해서 소리쳤다.
“저항을 할 수도 없잖아.”
“네?”
“저항을 해보고 싶어도 할 수 없단 말이다. 이런 거, 백 개를 들고 있어도 죽을 수밖에 없어.”
누강이 땅에 떨군 흑죽을 맥없이 쳐다봤다.
“그렇다고 이렇게 두 손 들어버리면…….”
“살아있어야 구린 밥이라도 먹지.”
누강이 힘없이 중얼거렸다.
적벽검문이 멸문했다. 사부, 사숙, 사숙조, 사형, 사제들까지 모두 죽었다.
삶에 미련은 없다.
하지만…… 어쩐지 살아있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날수통의 주인이 흑죽과 황수를 남겼다. 최대한 무엇인가를 하라고 했다.
날수통의 주인이 무엇을 요구했는지 모르지만 자신들은 최대한 할 도리를 다했다고 생각한다. 지금까지 버틴 것이 용하다. 더 이상 할 것이 없다고 여겨진다.
‘됐어.’
누강은 몸을 축 늘어트렸다.
십절소악처럼 두 손을 들고 있는 것이나, 그처럼 사지를 늘어트리고 있는 것이나…… 저항을 포기했다는 점에서는 매한가지다.
“날수통의 주인, 검왕이지?”
“허허! 검왕을 죽인 사람이 당신인데, 당신이 그런 소리를 하오?”
“대답이나 해. 검왕 맞아? 죽은 사람.”
“맞소.”
“틀림없어.”
“틀림없소. 내 손으로 시신을 거뒀고, 묻어줬소.”
“믿지 못하겠는데?”
“허허허!”
누강은 힘없이 웃었다.
사실, 그도 지금에 와서는 검왕이 죽었다고 확신하지 못한다. 혹여 살아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자신이 직접 매장했는데.
검왕에 대한 희망만큼이나 절망도 깊다. 검왕이 확실하게 죽었다는 사실을 아니까.
수월화가 배시시 웃었다.
“확인하는 방법이 있지.”
순간, 수월화의 눈동자가 노란색으로 변했다. 아니, 고양이 눈처럼 노란 눈동자에 타원형의 검은 동공이 드러났다. 그리고 요악하게 반짝거린다.
“무슨!”
누강이 심하게 인상을 찡그렸지만 이미 그의 눈동자는 힘없이 풀어지고 있었다.
“죽은 사람, 검왕 맞아?”
“맞습니다.”
누강이 조곤조곤 대답했다.
“내가 죽인 사람, 확실히 검왕 맞아?”
“맞습니다.”
“그럼 날수통은 누가 쓴 거야?”
“검왕입니다.”
“검왕? 방금 전에 죽었다며?”
“죽었습니다.”
누강은 수월화가 묻는 말에 횡설수설 답했다.
옆에서 지켜보던 십절소악과 음사는 눈만 끔뻑거렸다.
누강은 이지를 제압당했다. 일종의 사악한 사술 같은데, 최면 같기도 하고.
그렇다고 누강을 억지로 깨울 수도 없다.
생각 같아서는 정신 차리라고 고함이라도 치고 싶지만, 이럴수록 침착하게 지켜보아야만 한다.
수월화가 어떤 사술을 사용했는지 모르지만…… 단순한 최면이라면 소리쳐서 깨워도 된다. 최면에 빠진 상태에서 벗어나도 아무런 해가 되지 않는다.
허나 그렇지 않은 사술도 있다.
억지로 혼을 일깨워 일으킬 경우, 자칫 이지가 엉켜서 백치로 전락하는 경우가 있다.
수월화가 어떤 사술을 사용하는지 모르니 지켜볼 수밖에.
“흑죽을 준 사람은 누구야?”
“검왕입니다.”
“확실해?”
“확실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왜 검왕이라고 생각해?”
“마공관의 마학을 자유롭게 쓸 수 있는 사람은…….”
이 부분에서 누강은 잠시 머뭇거렸다. 이지를 상실한 상태에서도 마음 속에 있는 말을 할 수 없을 정도로 극심한 혼란을 겪고 있는 것이다.
누강이 말했다.
“검왕뿐입니다.”
“마공관의 마학을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이 검왕뿐이라 이거지? 그래서 검왕이다?”
“그렇습니다.”
“그 이유를 제한다면?”
“검왕은 죽었습니다.”
수월화가 미간을 찡그렸다.
그는 누강의 마음을 확실하게 알았다. 그가 어떤 말을 하고 있는지도. 누강 자신은 검왕이 죽었다고 철썩 같이 믿고 있다는 사실도 확실하게 알았다.
만약 검왕이 살아있다면 그는 자신도 속이고 누강도 속인 것이다.
“넌 앞으로 뭐할 거야?”
“…….”
누강은 말을 하지 못했다.
“누굴 만날 거야?”
“…….”
이번에도 누강은 대답하지 못했다.
수월화가 묻고 있는 것은 진실이다. 지금 즉시 무엇을 할 것이냐 하는 물음이 아니다. 살아서 할 일이 무엇이냐, 넌 어떤 임무를 맡았느냐 하는 물음이다.
누강은 맡은 것이 없다.
그가 무림에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기껏해야 검성에 찾아가서 당주 역할 정도밖에 하지 못한다.
수월화가 그런 대답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니 대답할 말도 없다.
“하나만 더 묻지. 날수통을 쓴 자가 널 구해준 이유가 뭐야?”
“모릅니다.”
“짐작가는 사람은 없어?”
“없습니다.”
“그럴 리 없잖아. 그는 자신이 드러나는 것도 감수하고 널 감싸줬어. 모르는 사람이 그렇게까지 할 리가 없잖아?”
“모르는 사람입니다.”
“짐작가는 사람이 있냐는 거지.”
“검왕입니다.”
물음과 대답이 돌고 돈다. 대답의 끝은 늘 검왕이고, 검왕을 파고 들면 모른다는 대답으로 귀결된다.
파앗!
수월화의 눈빛이 정상으로 돌아왔다.
누강은 눈살을 찌푸렸다.
자신이 무슨 일을 당했는지 어렴풋이 짐작하는 모양인데, 왜 그랬냐고 따질 형편도 아니다.
누강이 음사를 쳐다봤다.
‘실수한 거 있어?’
누강이 고개를 살래살래 흔들었다.
‘실수한 것 없습니다.’
“휴우!”
누강이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
* * *
“후후후! 손해인가, 득인가.”
증평주가 검왕에게 포획되었다. 그리고 그 대가로 누강을 사로잡았다.
이게 득인가, 실인가.
검왕은 매우 치밀하게 움직이고 있다.
검왕만 치밀한 것이 아니다. 적벽검문의 멸문부터 그 이후의 모든 움직임이 매우 치밀하다.
모두가 계산된 행동들이다.
저들은 적벽검문을 희생했다. 유지오혼도 죽음으로 내몰았다. 왜?
아직은 합당한 답을 찾아내지 못했다.
그만한 희생을 제공할 때는 대가도 충분히 받아내야 하는데…… 겨우 증평주를 포획하는 정도로는 성이 풀리지 않는다. 그러려고 적벽검문을 희생했다면 매우 어리석은 행동이다.
무엇을 획책하고 있는 것일까?
그 이유를 알기 전에는 움직이기가 쉽지 않다. 움직이기가 꺼림칙하다. 하지만 움직이지 않을 수도 없다.
그가 고민에 빠져있을 때, 문 밖에서 낭랑한 음성이 들려왔다.
“소신, 화천입니다.”
“들어와.”
“소녀도 같이 왔어요.”
누미의 음성도 들렸다.
“들어오도록.”
그 말이 끝나자마자 방문이 열리며 일남일녀가 안으로 들어섰다.
화천은 더욱 영준해졌다. 어떤 여인이든 눈길만 받아도 오금이 저릴 정도로 빼어나다.
누미는 더욱 요염해졌다.
누미는 일거수일투족 모든 행동에서 색기(色氣)가 풍겨 난다. 어떤 사내든 저런 여인을 한 번이라도 품을 수 있다면 어떤 대가도 내놓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게 만든다.
두 사람이 나란히 들어섰다.
“출곡해라.”
“네?”
“누산을 잡아라.”
“누산은 사막에 있다고 들었는데…… 사막으로 가야 하나요?”
누미는 누산을 본 적이 없다. 하지만 그가 적벽검문의 재회(財貨)라는 사실은 알고 있다. 그가 적벽검문에서 생존한 마지막 일인이라는 사실도 안다.
그를 죽이고 싶다. 허나 그를 죽이려면 사막으로 가야 한다. 피부가 그을린다. 그게 싫다. 땀을 많이 쏟아야 한다. 그런 것들이 못마땅하다.
“누산은 별것 없는데, 다른 사람 시키시면 안 돼요?”
누미가 미간을 찡그리면서 말했다.
“적벽검문의 마지막 남은 씨앗이다. 가서 제거해라. 가장 확실한 방법으로.”
“누강이 남아있잖아요?”
“누강은 죽었다.”
촌장이 짤막하게 말했다.
누미는 아비처럼 여기던 누강이 죽었다는데도 눈썹 한 올 흩트리지 않았다.
“알았어요. 누산을 제거하죠.”
누미가 남의 일처럼 말했다.
스릉!
촌장을 검을 뽑아 날을 살폈다.
애검은 언제든 사용될 준비를 하고 있다. 지금 당장이라도 천하를 벨 수 있다.
‘무엇을 획책하든…….’
꺼림칙한 것들을 일시에 제거한다.
검왕을 죽이고, 누산을 죽이고, 누강을 죽이고, 하오문을 멸살시킨다. 속에 숨어있는 것들을 일시에 제거하고, 천천히 겉을 멸살시켜 나간다.
검성과 혈천성은 겉에 드러난 세력들이다.
구파일방도 겉으로 드러난 세력이다. 그들의 모든 것이 낱낱이 파악되어 있다.
속에 숨은 것들…….
‘유지자문이 문제군. 어디에 몇 명이 있는지 모르니…… 유지오혼을 죽였다고 끝이 아닌 것을.’
도대체 적벽검문은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 것인가.
지금까지는 차분히 기다렸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몇 번을 고쳐서 생각해봐도 더 이상 기다릴 이유가 없다. 움직이지 않을 이유가 전혀 없다.
그에게는 절대 무(武)가 있다.
혈루마옥이 모두 무너져도, 단신으로도 무림따위는 식은 죽 먹듯이 눕혀버릴 수 있다.
스읏!
그가 일어섰다.
혈루마옥…… 평생을 나고 자란 곳…… 항상 앉았던 자리……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