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truction of the Fortress RAW novel - Chapter 62
62
第十三章 미동(微動) (2)
하늘의 섭리가 참 묘한 것이…… 누구에게나 숙적을 만들어 준다는 것이다.
적이 없는 세상은 무료해서일까?
쌍첨수괴 도군악에게 던져진 숙적은 검왕이다.
과거, 그들은 서로 만난 적이 없다. 손속을 나눈 적도 없다. 얼굴조차 마주친 적이 없다.
그래도 도군악은 검왕을 숙적으로 생각한다.
도군악뿐만이 아니다. 십마 전체가 검왕을 숙적으로 생각한다.
이런 대결구도는 검성과 혈천성이 만들어냈다.
정도와 마도가 격렬하게 부딪치는 한복판에서 십마라는 인물이 만들어졌고, 검왕이라는 이름이 탄생했다.
십마와 검왕은 양쪽 강안에 있다.
그들은 서로 섞일 수 없고, 화해할 수 없으며, 담론을 나눌 필요가 없다.
분명히 서로 간에 얼굴도 모르고, 본 적도 없다. 하지만 언제 어느 곳에서든 마주치는 순간이 오면 반드시 자웅을 결해야 한다. 한쪽은 죽어야 한다.
십마와 검왕은 그런 관계다.
헌데 언제부터인가 이런 관계가 뒤죽박죽으로 섞여버렸다.
지금도 검성과 혈천성은 자웅을 결하고 있다. 서로들 만나기만 하면 죽이지 못해서 안달이다.
도군악은 한 장의 밀지를 접한 후, 검왕과 자신은 영원히 함께하지 못할 숙적임을 절감했다.
“유화아를 죽인다.”
“……?”
수하들이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를 쳐다봤다.
“음악오귀도…… 최대한 빨리, 가장 확실하게 죽인다.”
“그놈들 죽이는 거야 일도 아니지만…… 그래야 할 필요가 있는 겁니까?”
“…….”
도군악은 대답하지 않고 손에 들고 있던 밀지를 모닥불에 던졌다.
휘릭!
밀지는 모닥불에 닿기가 무섭게 타버렸다.
몇 사람을 죽이라는 명령이 한 줌 재가 되어서 허공을 날아다닌다.
검왕의 생사를 확인하라는 명을 받았다.
검왕을 확인해야 한다. 놈이 살아있다는 확신이 들지만, 아니 살아있지만…… 죽었다고 소문이 났던 놈이니 직접 얼굴을 보고 확인해야 한다.
지금 가장 성급한 일은 놈을 쫓는 일이다.
헌데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고…… 갑자기 신경도 쓰지 않던 유화아와 음악오귀를 죽이란다.
그들이 마공관의 마서를 수련했다는 사실은 안다.
그들이 앞으로 무궁하게 발전할 요지가 있다는 것도 안다.
허나 지금 현재로써는 상대가 안 된다. 그들 정도는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죽일 수 있다. 더군다나 그들은 숨어 있지도 않다. 최대한 빠르게 이동 중이다.
세상에 환히 드러난 놈, 언제든 죽일 수 있는 놈을 가장 빨리 죽이란다.
마음에 들지 않는 명령이다.
“검왕이 코앞에 있을 겁니다.”
“날이 밝으면 한 번 더 수색하죠? 반드시 나올 텐데요.”
수하들이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날이 밝는 대로…… 쫓아간다.”
도군악은 팔베개를 하고 드러누웠다.
유화아를 죽이는 일은 흥분되지 않는다. 아주 귀찮은 일에 속한다. 반면에 검왕을 쫓는 일은 무척 흥분된다. 놈에게 당한 경험이 있어서…… 더 흥분된다.
흥분을 앞에 두고 흥분되지 않는 일을 쫓아야 한다.
‘검왕…… 우린 만날 거야. 반드시. 그때는 마공관의 치욕을 갚아주지. 네놈의 허점을 찾아냈거든. 후후!’
도군악은 눈을 감고 잠을 청했다.
“응? 저놈들이 왜 떠나지?”
귀타가 눈을 번쩍 뜨며 중얼거렸다.
세상은 고요하다. 바람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다. 컴컴한 암굴 속에서는 세상을 볼 수 없다.
그래도 그는 본다.
“유가삼문으로 가.”
검왕이 무뚝뚝하게 말했다.
“유가삼문? 왜?”
“문주에게 전해. 발각됐으니 숨으라고.”
“무슨 말이야?”
“…….”
검왕은 대답하지 않는다.
검왕은 언제나 이렇다. 필요한 말만 하고는 입을 닫아버린다. 심부름하는 사람이 궁금해해도.
“하나만 묻자. 내가 네게 다시 돌아올 거라고 생각하나?”
“…….”
“유가 삼문에 갈 이유도 없다.”
“…….”
“좋아. 그다음은?”
“군산으로 와라.”
“유화아와 음악오귀가 가고 있는 곳?”
“군산에 도착하면 어떻게 해야 할지 알게 될 거야.”
“지금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건데? 뭘 하고 있는 거냐고? 이 일, 성주님도 아는 거지?”
“…….”
“제길!”
귀타가 미간을 확 찌푸렸다.
검왕이 말했다.
“네가 늦으면 삼문주가 죽는다. 이대로 죽기에는 너무 아까운 사람이야.”
유하아와 음악오귀가 가는 곳은 군산이다.
저들의 목적지를 알고 있다. 저들이 어디로 가는지 알고 있고, 지금 어디쯤 있는지도 안다.
그러나 그것과 그들을 따라잡는 것과는 다른 문제다.
저들이 사력을 다해서 치달리고 있으니 이쪽도 그에 버금가는 속도로 쫓아야 한다.
쉬이익! 쉬이이이익!
그들은 진기를 바짝 돋워서 뒤쫓았다.
바람 소리가 귓가로 흘러간다. 두 발에 땋는 땅이 구름처럼 뭉실거린다.
“오늘 하루면 되는데. 쩝!”
백살마창이 뒤를 흘깃 돌아보면서 중얼거렸다.
“두 번 다시 이런 일이 없게끔 확실히 끝내면 되지.”
태황도마가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마신천강기가 육 성에 이르러 있을 것이다. 허면 너희들의 공격을 막을 수 있다.”
도군악이 침착하게 말했다.
수하들은 유화아와 음악오귀를 상대로 보지 않는다. 그들이 저항하기는 했지만, 손쉽게 죽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아주 위험한 생각이다.
수하들은 저들의 무공이 급신장하고 있다는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
검왕이 어떤 놈인가? 그놈이 세상에 내놓은 자들인데 만만할 리 있는가.
귀선부에서 그들을 당장 제거하라고 명령을 내린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그까짓 마신천강기쯤…….”
“마신천강기와 투살진기가 어우러지면…… 그래도 할 말 있나?”
도군악이 귀면사자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쩝! 그 둘의 조합은…… 그것참…… 묘하게 어우러진단 말이야.”
“저들은 연수까지 생각해 냈을 것이다. 그렇다면 마신천강기와 투살진기는 상승효과를 빌어서 칠팔 성에 이르는 효과를 낼 게다. 결코 만만치 않다.”
“알겠습니다. 제 생각, 수정합니다.”
귀면사자가 즉시 답했다.
다른 자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결코 어리석지 않다. 도군악의 몇 마디를 듣자마자 상황을 단번에 깨달았다.
마신천강기 더하기 투살진기 더하기 여섯 명이다.
그 힘이 뭉쳐지면…… 최소한 십마에 버금가는 무력이 튀어나온다.
저들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도군악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검왕이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면 그 자리에서 절명시켰을 것이고, 죽지 않을 수 없었을 게다.
그러나 지금은 다르다. 그들은 급신장했다. 아니, 했을 것이다.
“저희가 전력을 다하겠습니다.”
백살마창이 달리면서 말했다.
도군악은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부족해.”
“네?”
“상대는 검왕이다.”
도군악은 계속 검왕만 생각했다.
검왕이 검성에서 활약할 때, 그는 무적이었다.
어떤 싸움을 해도 이겼다. 필히 질 수밖에 없는 싸움에서도 이겨버렸다.
이가 갈릴 정도로 강하고 무서운 자다.
저들은 검왕이 세상에 내놨다. 그리고…… 저들은 어찌 된 영문인지 자신들이 공격할 것을 짐작하고 있었다. 다른 사람 같으면 쌍첨수괴가 공격했다고 하면 부들부들 떨기부터 하는데, 저들은 당연하다는 듯이 받아들였다.
이미 공격을 알고 있었다는 뜻이다.
이령으로부터 명령을 받고, 저들과 마주치기까지 그 누구도 만나지 않았다.
저들이 어찌 알았을까?
검왕…… 검왕이 귀띔을 해줬다고밖에 생각할 수 없다.
그럼 나중의 상황도 짐작하고 있을까? 지금 자신들이 저들을 쫓고 있다는 것도?
그렇다면 결코 만만치 않다.
지금 자신들은 모두가 합심해서 연수를 할 생각이다.
십마인 자신이, 그리고 수하들이 일시에 들이친다. 자신이 마신천강기를 부수고, 수하들이 투살진기를 친다.
저들의 필패 국면이다.
저들도 연수를 생각해 냈고, 마공관의 마서가 칠팔 성의 위력을 발휘한다고 해도…… 이만한 합공을 이겨낼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런데 묘하게 찜찜하다.
검왕이 과연 이런 상태를 방치할까?
“죽음이다. 죽음밖에 남은 것이 없다. 사면초가. 도망갈 구석이 전혀 없다. 어쩔 수 없는 상황이지. 당연히 발악을 해야 한다. 뭘 하면 좋을까?”
도군악이 지나가는 말처럼 물었다.
“마도 입장까지 포함한 질문이십니까?”
패황도마가 되물었다.
도군악은 고개를 끄덕였다. 예전 같으면 ‘정도 입장’이라고 못 박았을 텐데, 지금의 검왕은 정도와 마도를 모두 아우른다. 마도인보다 더 지독하게 행동할 수 있다.
“뭐든지 미리 준비할 수 있다는 가정하에서죠?”
귀면사자가 도군악의 심중을 읽고 물었다.
“음!”
“하하! 뭐 어려울 것 있습니까? 저 같으면 당연히 천력파혈단을 준비합니다.”
순간, 도군악이 우뚝 멈추어섰다.
그가 멈추어서자 수하들도 따라 멈췄다. 그리고 도군악을 쳐다봤다.
“설마……?”
말을 꺼냈던 귀면사자가 더듬거리면서 말했다.
“저, 정말 천력파혈단이라는 말씀…… 입니까?”
“……”
도군악은 대답하지 않았다. 대신 눈빛에서 싸늘한 한광이 줄기줄기 뻗어 나왔다.
정말이다! 정말 천력파혈단이다!
“맙소사!”
패황도마가 손을 들어 자신의 이마를 탁 치며 말했다.
“이거 무작정 쫓아간다고 되는 일이 아니었네.”
백살마창도 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저들이 천력파혈단을 복용하면…… 두 시진 동안은 무적이 된다. 칠팔 성의 두 진기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증폭할 할 게다. 거의 십 성에 이르는 위력을 떨칠 게다.
공격하는 사람들이 오히려 당한다.
그 정도의 위력이라면 마공관에서 봤던 검왕의 위력에 못지않다.
“설마 그래도 검왕인데…… 검왕이 천력파혈단을 사용했다면…… 에이, 아닐 겁니다.”
“아냐. 그러고 보니…… 이상한 게 한둘이 아냐. 우리가 마공을 쳤을 때 말이야. 검왕, 굉장히 강했어. 원래 강하기는 했지만 그렇게까지 강한 자는 아니었잖아?”
“맞아. 그땐 마치 우리가 장난감이 된 기분이었어.”
“검왕이 마공관에 틀어박힌 게 겨우 이삼 년. 그동안 마공관의 마서를 수련했다고 해도…… 설마 검왕도 천력파혈단을? 아니지. 천력파혈단은 두 시진만 효과가 있지.”
패황도마는 자신이 말하고 자신이 답했다.
한참 동안 묵묵히 서 있던 도군악이 눈빛을 반짝이면서 말했다.
“귀면, 아이들을 모아.”
“제 아이들 말입니까?”
귀면사자가 눈빛을 번뜩이면서 물었다.
도군악은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귀면사자는 가타부타 말이 없이 즉각 대답했다.
그가 포권지례를 취한 후, 다른 사람들에게는 인사도 하지 않고 신형을 쏘아냈다.
쒜에에에엑!
그가 좌측 들판으로 사라져 간다.
“가자.”
도군악이 먼저 신형을 띄웠다.
그는 귀면사자가 사라진 방향을 쳐다봤다.
도군악은 여전히 유화아를 쫓아간다. 하지만 귀면사자는 전혀 엉뚱한 곳으로 달려간다.
“저건 암습인데? 귀면사자가 아이들을 모으러 가잖아.”
귀타가 말했다.
“삼문주에게 가.”
“알았어. 간다, 가. 헌데 도군악이 암습까지 생각한다? 이거 굉장한 일인데? 상대가 누구……? 설마……? 유화아? 에이, 말도 안 돼. 겨우 유화아를…….”
귀타는 말을 하다말고 검왕을 빤히 쳐다봤다.
검왕이 삼문주에게 도피하라고 주문했다. 그리고 도군악은 검왕을 버리고 다른 곳으로 치달린다.
맞다. 유화아다. 저들은 유화아를 죽이러 간다. 헌데 왜 암습까지?
그는 머리를 크게 내둘렀다.
생각을 거듭할수록 머리만 복잡해지니까.
“간다, 가!”
쒜에에에엑!
귀타가 신형을 띄웠다. 도군악이 사라진 방향과는 정반대 방향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