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truction of the Fortress RAW novel - Chapter 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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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十六章 혈석(血石) (4)
소기(燒氣) 현상이 일어난다.
물이 팔팔 끓어서 수증기가 되어 날아가듯이 소리 없이…… 아무 느낌도 없이 진기가 사라져 간다.
진기가 어느 정도 사라졌는지 알 길은 없다. 허나 점점 진기가 소진된다는 느낌은 뚜렷하다. 진기를 누구보다도 예민하게 관찰하는 그들이기에 아주 뚜렷하게 알 수 있다.
전신에서 힘이 빠진다.
무기력해진다.
가끔 현기증이 치민다. 몸이 아파서 일어나는 현기증이 아니다. 정상적이지 않은 형태로 무엇인가가 빠져나가면서 일어나는 비정상적인 상태다.
삼귀와 오귀는 신나게 격투를 벌였다.
그들은 알고 있는 모든 초식을 동원해서 드잡이질을 했다. 그런 모습은 매우 신선해 보였다.
허나 그들은 곧 손을 놓았다.
“그만하지.”
누가 먼저 말한 게 아니다.
그들은 손을 멈췄다. 다시 그들 곁에 돌아와 쭈그리고 앉았다. 그리고 회색빛 물결을 쳐다본다.
움직이면 움직일수록 진기 소모도 빨라진다.
천력파혈단이 사라지는 느낌은…… 꼭 마약에서 깨어나는 기분이다. 만취한 상태에서 깨어나는 느낌이 아니다. 아니…… 그것과 흡사하기도 하다. 잔뜩 취해서 한참 기분이 좋은데, 갑자기 찬물을 뒤집어쓴다. 퍼뜩 깨어난다.
아주 싫다.
누군가가 아주 맛난 것을 주었다가 다시 빼앗아간다.
전신에 황소도 때려잡을 수 있는 거력이 존재했지만 지금은 조금씩 소멸된다. 소멸되는 정도를 느낄 수 있다. 점점 무기력해지는 과정을 눈으로 지켜본다.
“이거 두 번은 복용하지 못할 물건이군.”
사귀가 중얼거렸다.
“다행히 우리에게는 두 번 복용할 기회가 없잖냐. 한 번으로 그친 것을 다행으로 여겨.”
일귀가 쏘아붙였다.
“쩝! 난 또 복용하고 싶은데. 남은 것 없나? 검왕도 쪼잔하게…… 왜 한 알만 준 거야?”
이귀가 약간 모자란 소리를 했다.
이귀는 가끔 제정신이 아닐 때가 있다. 자주 그런 것은 아니고…… 아주 가끔 보통 사람 이하로 지능이 처진다. 그래서 때때로 실소를 자아내는 말을 한다.
지금이 그런 상태인 것 같다.
천력파혈단이 빠져나가면서 정신적으로 충격을 준 것 같다.
“검왕이 그냥 군산에만 가라고 했죠?”
삼귀가 모두가 알고 있는 말을 되물었다.
“그래.”
일귀도 삼귀가 묻는 뜻을 알고 대답해주었다.
“거 참…… 검왕은 우리가 군산에 도착하지 못할 것으로 생각했나봐. 그러니 무작정 군산으로 가라고만 했지. 무사히 도착할 것을 알았다면 뭔가를 지시했을 텐데.”
“그럴 만도 하지. 우리를 쫓은 놈들이 보통 놈들이야.”
“그렇긴 하죠. 후후!”
사귀가 웃었다.
마군, 혈천성주, 그리고 그 말도 안 되게 강한 놈…… 평소의 그들이라면 눈길도 주지 못할 거목들이다. 감히 그들과 싸울 생각조차도 하지 못한다.
그런 사람들과 손속을 맞댔다는 게 꿈만 같다.
“그런데 그놈은 어디서 왔을까요? 짐작 가는 데라도 있어요?”
“…….”
사귀의 말에 아무도 대답을 하지 못했다.
천력파혈단을 복용한 여섯 명이 합심하여 공격했는데도 한 사람을 잡지 못했다.
마도 최강의 방패라는 마신천강기가 무너졌다.
마도 최강의 창이라는 투살진기가 박살 났다.
방패로 막았고, 창으로 찔렀는데…… 양쪽 모두 박살 나고 말았다.
그들은 상대가 어떤 무공을 사용했는지 보지도 못했다. 단지 생각만 한다. 특이한 점이 전혀 없는, 그저 평범한 권각술에 당한 것 같다는.
그런 놈이 어디서 튀어나왔을까?
중원 어떤 문파가 그런 놈을 배출해 낼 수 있을까?
단언컨대 놈은 중원 최강이다.
놈은 검성 성주를 능가한다. 혈천성주도 상대가 안 된다. 검왕은 물론이고, 적벽검문 그 누구도 놈과 싸울 수 없다.
놈은 누구인가!
“도대체 세상에 무슨 놈의 고수가 이리 많아.”
삼귀가 투덜거렸다.
“십마만 해도 오를 수 없는 나무였는데.”
삼귀가 말을 받았다.
“우리가 뭘 잘못 본 건가? 모두들 검성 성주가 천하제일인이라고 하잖아? 그런데…….”
그들은 회색빛 동정호 물결만 쳐다봤다.
거기에 푸른 하늘이 더해진다. 회색빛 물결과 푸른 하늘이 어울리면서 매우 아름다운 광경을 연출해준다.
“좋군. 조용하고.”
죽음을 앞둔 지금, 그들은 할 일이 없다. 그래서 무심히 눈 앞에 펼쳐진 광경을 쳐다본다. 그러자 군산의 아름다운 진가가 한눈에 들어온다. 그때,
저벅! 저벅! 사박! 사박!
난데없이 멀리서 모래 밟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들은 일제히 고개를 돌려 소리가 들린 곳을 쳐다봤다.
일단의 사람들이 걸어온다.
화려한 화복을 입은 뚱뚱한 사내가 맨 앞에서 걸어온다.
도대체 무슨 살을 저렇게 쪘을까 궁금할 정도인데…… 그런 자가 뒤뚱거리면서 걸어온다.
그의 뒤로 시녀 두 명이 커다란 양산(陽傘)을 받쳐 들고 있다.
그 뒤로는 또다시 하인인 듯싶은 사내들 십여 명이 무거운 짐을 걸머지고 뒤쫓는다.
어느 부호가 산책이라도 나왔나?
“저것들 뭐야?”
이귀가 눈을 부릅뜨며 말했다.
그렇지 않아도 진기가 빠져나가는 탓에 마음이 심란하다. 곧 죽을 목숨들이기에 처연한 심정만 든다. 온갖 후회와 미련이 물밀 듯이 밀려든다.
한 마디로 발작 직전이다.
지금 그들에게 누군가 시비를 붙어온다면 당장 흉성을 토해낼 게다.
건드리지 마라. 간섭하지 마라.
그런 그들에게 여유롭기 이를 데 없는 화려한 화복의 사내는 곱지 않게 보였다.
남은 죽어가는데 한가롭게 나들이나 하다니.
헌데 뚱뚱한 화복 중년인은 눈치도 없는지 그들이 앉아있는 곳으로 태연히 걸어왔다.
“흠! 여기가 좋겠군.”
화복 사내가 음악오귀 옆에 자리를 정했다.
그러자 뒤따라오던 하인들이 급히 나서며 모래사장 위에 돗자리를 깔았다.
시녀가 돗자리 위에 양산을 펼친다.
다른 하인은 돗자리 위에 나무로 만든 의자까지 내려놓는다.
그들 눈에는 죽어가고 있는 음악오귀가 보이지 않는 듯했다. 또 이미 죽은 듯이 누워있는 유화아의 모습도.
“좋군.”
화복 중년인이 만족한 듯 씩 웃으면서 돗자리 위로 올라섰다.
그가 의자에 앉으며 말했다.
“뭐해? 빨리 불 피우지 않고!”
하인들은 이런 일에 익숙한 듯 군소리 한마디 없이 즉각 불 피울 준비를 했다.
그들은 땔감까지 가져왔다.
하인이 땔감을 쌓아놓고 불을 피운다. 그사이에 다른 자는 물통에서 물을 따라 주담자에 담는다. 그리고 곱게 싼 종이를 풀어 바싹 말라버린 찻잎을 넣는다.
보아하니 이곳에서 차를 끓여 마실 모양이다.
참고 참았던 이귀의 부아가 폭발했다.
“이봐, 웬만하면 다른 곳으로 가지! 여기 사람 있는 것, 안 보여!”
음악이귀가 눈을 있는 대로 부라렸다.
화복중년인은 그를 힐끔 쳐다보았을 뿐, 다시 동정호 회색 물결로 눈길을 돌렸다.
헌데 그가 하는 말이 또 가관이다.
“차 끓이면 한 잔씩 돌릴 테니 시비 걸지 말고 가만히 계시우. 이 땅 주인도 아니면서.”
이건 분명히 도발이다.
“어쭈! 이 자식 봐라!”
이귀가 분기를 참지 못하고 일어섰다.
지금 그의 몸에는 진기가 남아있지 않다. 아니, 남아있다. 하지만 진기가 가득 쌓였다가 썰물 빠지듯이 빠져나간 후인지라 텅 빈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이런 몸으로 일초라도 전개할 수 있을까?
허나 아직 진기가 남아있는 것은 확실하다.
걸을 수 있고, 달릴 수 있고, 무공을 펼칠 수 있다. 타격을 일점에 집중시킬 수 있다.
그는 중년인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진득하게 걸어갔다.
중년인은 그런 그를 보았지만 전혀 두려워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중년인이 말했다. 그리고 그 한 마디에 이귀의 발걸음이 거짓말처럼 멈춰졌다.
“수선화의 독을 해독시키려고 왔소만.”
이귀가 걸음을 뚝 멈췄다.
삼귀와 사귀는 벌떡 일어서기까지 했다.
중년인이 말한다.
“필요 없다면 돌아가고.”
그들은 뚫어지게 화복중년인을 쳐다봤다.
솔직히 지금에 와서는 수선화를 해독시킨다는 게 아무런 의미가 없다. 수선화 독도 치명적이지만 지금은 천력파혈단의 독성이 훨씬 더 빠르게 휘돈다
그들이 살 시간, 얼마 남지 않았다.
수선화에 죽는 것보다 천력파혈단의 부작용에 죽는 게 훨씬 빠르다.
수선화는 아무 의미가 없다.
허나 그들은 화복 중년인을 주시한다. 이자는 검왕이 보낸 자이지 않은가.
“당신 누구요?”
삼귀가 정중하게 물었다.
“하하! 난 이곳에 조그만 차밭을 가지고 있는 촌무지렁이네. 대답이 됐는지?”
그는 촌무지렁이가 아니다. 그가 입고 있는 비단 화복은 시중에서 흔히 구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가 동정호에 뱃놀이를 왔다면 믿겠다.
커다란 유람선에 기녀 십여 명쯤 거느리고 술판을 걸쭉하게 펼치는 풍류남아라면 믿겠다.
그는 누가 봐도 부자다. 엄청난 부자다.
군산에 차가 유명하지만 결코 이 정도의 부를 일궈줄 수는 없다.
이런 사람이 검왕과 연관 있다면…… 어쩌면 천력파혈단에 대한 해답도 갖고 있을지 모른다.
삼귀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혹시…… 검왕이 천력파혈단에 대한 말은 하지 않았소?”
“아!”
중년인이 다소 놀란 듯 그들을 쳐다봤다.
“그럼 지금 이 추레한 모습이! 맙소사! 어쩌다가 천력파혈단 같은 마단에 손을 댄 거요?”
“이런 우라질!”
이귀가 불쑥 욕을 내뱉었다. 저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튀어나온 욕설이다.
화복 중년인의 표정을 보아하니 천력파혈단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는 것 같다. 아예 천력파혈단이라는 말을 이 자리에서 처음 들었다는 표정이다.
천력파혈단 때문에 진기가 고갈되어 죽게 생겼는데, 겨우 수선화나 해독시켜 주려고 온 것인가.
화복중년인은 이귀의 욕설을 한 귀로 흘려들었다.
원래 그는 음악오귀와 말을 섞을 생각도 없었던 듯했다. 그들이 말하니 대꾸를 해준다는 식이다.
파르륵!
찻물이 끓었다.
“한 잔씩들 돌려라.”
그가 귀찮다는 듯 하인에게 명했다.
하인은 즉시 작은 찻잔 여섯 개를 꺼내놓고 공손한 태도로 찻물을 따랐다.
아마도 찻물 속에 수선화의 해독제가 들어있는 듯하다. 아니면 처음에 봤던 것, 하인이 꺼내 들었던 바싹 마른 찻잎이 수선화의 해독제이거나.
“한 잔씩들 드십시오.”
하인이 쟁반에 찻잔을 담고 음악오귀에게 다가갔다.
오귀가 찻잔을 받아 단숨에 들이켰다. 헌데!
“컥!”
오귀는 찻잔을 들이켜자마자 마치 못 먹을 것을 먹은 듯 거세게 토악질을 했다.
“쯧! 수선화는 극독인데…… 극독을 해독시키기 위해서는 해독제 역시 극독이어야 한다는 점을 몰랐군. 다른 사람들은 천천히 마시는 게 좋겠소.”
정말 얄미울 정도로 차분한 말이다.
먹기 힘든 해독제였다면 처음부터 그렇다고 말해줄 것이지.
헌데! 오귀가 이상한 행동을 취하기 시작했다.
그는 토악질을 하다 말고 급히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그리고 고요하다.
누가 봐도 운공조식을 취하고 있다.
그에게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 웬만하면 한두 마디쯤 하고 운공을 취할 사람인데.
오귀의 안색이 붉게 물들기 시작했다.
나쁜 의미는 아니고…… 혈색이 무척 좋아졌다고 보면 되겠다.
“음!”
음악일귀가 오귀를 뚫어지게 쳐다보면서 찻잔을 받아 입안에 털어 넣었다. 오귀의 반응을 봤기 때문에 화복중년인의 충고를 받아들여서 천천히 복용했다.
잘못되면 죽기밖에 더하겠는가.
그러잖아도 천력파혈단을 복용한 후, 두 시진이 거의 다 되어 간다. 이제 곧 숨이 떨어진다.
천천히…… 천천히 차를 음미하면서 들이켰다. 헌데!
화악!
갑자기 배 속에서 불길이 치솟는다.
‘헉!’
일귀는 비명도 토하지 못했다. 눈으로 아우들을 보려고 했지만 그럴 정신도 없었다.
그는 황급히 가부좌를 틀고 앉아서 진기를 일으켰다.
온몸이 불길 속에 처박힌다. 전신에 불이 붙는다. 너무 뜨거운 불이어서 급히 꺼야 한다. 누구에게 말을 건넬 정신이 없다. 아니, 아무 생각도 나지 않는다.
쏴아아아아!
불길이 타오르고, 그 위에 진기가 뿌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