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estruction of the Fortress RAW novel - Chapter 86
86
第十八章 태동(胎動) (1)
타탁! 타닥!
작은 모닥불이 타오른다.
음사는 모닥불에 방금 잡아온 토끼를 꼬치에 꿰어 올려놨다.
타타닥! 타타타탁!
불길이 토끼를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휴우!”
음사는 그 모습을 보고는 저도 모르게 한숨을 내쉬었다.
어찌 된 영문인지 요즘 들어서 한숨이 습관처럼 새어 나온다. 아니, 영문을 알고 있으니 쏟아져 나오는 한숨을 막을 수 없다. 너무 답답해서.
그가 고개를 들어 꼭 닫힌 대문을 쳐다봤다.
별로 크지 않은 대문이 굳게 닫혀있다. 몇 날, 몇 달이 지나도 열리지 않을 대문이다.
대문 한 가운데에 글자가 딱 한 자 적혀 있다.
– 봉(封).
이해하지 못할 글자가 아니다.
지금과 같은 상황이 어떤 상황인지 이해하지 못할 바도 아니다. 너무 잘 이해해서 탈이지.
적벽검문은 봉문했다.
세상과 인연을 끊는다고 세상에 선포했다.
적벽검문의 각오가 겨우 종이 한 장에 쓰여져 대문에 붙어 있다.
타탁! 타탁!
그는 모닥불의 불기를 약하게 줄인 후, 망연히 앉아있는 누강에게 걸어갔다.
“오늘도 쳐다만 보실 겁니까?”
그가 누강 옆에 앉으며 말했다.
“…….”
누강은 대답하지 않았다.
사실 이 대화는 오래전에 나눈 적이 있다. 그때, 누강은 순순히 대답했었다.
“들어가지 않을 겁니까?”
“들어가지 못한다.”
“세상에 아무리 봉문했기로서니 제자가 사문출입조차 못 한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습니다. 들어가면 들어가는 거지 못 들어갈 건 뭡니까?”
“들어갈 수도 나올 수도 없다.”
“그럼 여긴 왜 온 건데요? 일단 왔으니 문이라도 두들겨봐야 하지 않습니까?”
“사문은 봉문을 선포했다. 그런 마당에 문을 열어달라고 두들기는 것은 사문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허!”
음사는 기가 막혀서 혀만 찼다.
적벽검문까지 쉬지 않고 달려올 때는 사문의 어른들을 만나서 무엇인가를 상의할 줄 알았다. 헌데 누강은 적벽검문에 도착하자 대문 앞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는 대문만 쳐다본다.
적벽검문에 대해서 일절 요구하는 것이 없다. 소리조차 지르지 않는다.
보다 못해서 음사가 대문 앞에 움막을 쳤다.
일단 비바람은 피해야 할 것 아닌가. 밤에 이슬은 피할 잠자리가 있어야 하지 않나.
나무 네 개로 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풀을 덮었다. 비바람을 막기 위해서 초가로 짚을 짜서 사방 벽을 만들었다.
몸을 눕힐 만한 공간쯤은 금방 마련된다.
음사는 그때까지만 해도 대문 앞 떠돌이 생활이 이토록 오랫동안 풀리지 않을 줄은 알지 못했다.
한 달, 두 달…….
세월이 무심히 지나간다.
적벽검문은 조용하다. 정말 조용하다. 그 누구도 나올 생각을 하지 않는다.
누강은 무엇하러 적벽검문에 달려온 것인가.
검왕이 가라고 하니까, 검왕의 의중이 적벽검문에 있을 것 같으니까 무작정 달려온 것인가.
음사는 누강의 의중을 알지 못한다. 하지만 그가 모시는 주인이 막연히 기다리고 있으니 그도 기다린다. 주인을 위해서 식량을 마련하는 일로 세월을 보내면서.
오늘도 누강은 적벽검문 대문만 쳐다본다.
“오늘도 토낍니다. 저것도 너무 잡아먹어서 씨가 말랐나 봐요. 저놈 잡으려면 멀리까지 가야 돼요.”
“고생하는군.”
“조금 있다가 오세요. 누릿하게 잘 구워놓겠습니다.”
음사는 오늘도 이렇게 지나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면서 몸을 일으켰다.
스읏!
‘웃!’
음사는 무엇인가 불길한 예감을 느꼈다.
문득 등이 따갑다. 아무것도 없는데, 어떤 기척도 느끼지 못했는데 그 사이에 무엇인가 위험한 것이 다가왔다.
툭!
음사는 신경을 등 뒤로 쏟으면서 아무것도 느끼지 못한 사람처럼 하던 일을 계속했다.
나뭇가지를 분질러서 모닥불에 넣었다.
토끼가 잘 익도록 불길을 돋웠다.
하지만 그의 신경은 온통 등 뒤로 쏠려 있었다. 뒤에서 어떠한 기척이라도 감지되면 즉각 검을 뽑아들고 후려칠 것이다. 미세한 느낌만 들어도. 헌데,
툭!
상대가 그보다 한 수 앞선다.
상대는 어느새 등 뒤로 바싹 다가왔다. 그리고 그의 어깨에 손을 얹는다.
“누구냐!”
그는 고개도 돌리지 못하고 침중하게 말했다.
무인이 어깨를 잡히다니. 어깨를 잡히는 동안 어떤 것도 감지하지 못하다니.
등 뒤에서 묵직한 소리가 울렸다.
“오늘은 고기가 모자랄 것 같군.”
음사는 그 소리에 후딱 고개를 젖혀 뒤를 쳐다봤다.
익숙한 음성, 잘 아는 음성, 너무나도 반가워서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은 음성!
“거, 검왕! 검왕님!”
음사가 고함을 빽 질렀다.
으적! 으적!
검왕이 토끼를 맛있게 뜯어먹는다.
누강과 음사는 토끼 다리를 쥔 채 먹을 생각도 하지 못하고 검왕만 쳐다봤다.
“언제부터 이러고 있었습니까?”
검왕이 입에 묻은 기름기를 소매를 쓱 문질러 닦으며 말했다.
“한 두 달 됩니다.”
누강이 즉시 답했다.
“두 달 동안 저 문만 쳐다보고 있었던 겁니까?”
“그럴 수밖에…… 없지 않습니까?”
누강이 달리 다른 수가 있냐는 듯이 반문했다.
“하하하!”
검왕이 맑게 웃었다.
그의 웃음소리를 들으니 달리 다른 수가 있었던 것 같다.
어떤 수가 있었나? 열리지 않는 적벽검문을 무슨 수로 들어가나? 검왕은 왜 웃나?
검왕이 웃음을 그치면서 말했다.
“조카님이야 검문의 문도이니 명을 받들어야 하겠지만…… 음사는 아니지 않습니까?”
“음사?”
“저요?”
누강과 음사가 동시에 말했다. 그러면서 서로를 쳐다봤다.
“저보고 들어가라는 말씀입니까? 저, 적벽검문을요?”
음사가 말도 안 된다는 듯 항변했다.
음사라고 해서 봉문한 적벽검문을 들어갈 방법은 없다. 예의를 지키면 아예 문틈도 열리지 않고, 예의를 지키지 않고 들어가려고 했다가는 목숨을 잃는다.
적벽검문은 어떤 침입자도 용서하지 않는다.
음사에게 예의를 차릴 필요 없이 적벽검문에 들어가라는 말은 검성이나 혈청성을 단신으로 침입하라는 똑같다. 아예, 검성주나 혈천성주 앞에서 재주를 피워보라는 말처럼 들린다.
“지금 무슨 말을 하시는 것인지……?”
누강도 검왕의 말뜻을 이해하지 못했다.
검왕이 혼잣말처럼 말했다.
“후후! 저까짓 글자 하나쯤 무시해 버리면 그만인 것을. 뻔뻔하지 않나.”
나중 말은 음사를 쳐다보면서 한 말이다.
“제, 제가요?”
음사가 무슨 말이냐는 듯 반문했다.
“목숨을 살려줬으면 목숨값을 해야지. 언제나 곁자리만 빙빙 돌 건가?”
“제, 제가요?”
“담을 넘어.”
“워, 월담을? 적벽검문을 월담하라고요? 제가요?”
“들어가보면 알 일…… 하하하!”
검왕이 호쾌하게 웃었다.
“누미는?”
“아이를 낳았을 겁니다.”
“아, 아이! 음……!”
누강은 침음했다.
검왕과 적벽검문 어른들 사이에 모종의 묵계가 있었던 것 같다.
전에는 그런 쪽으로는 생각도 하지 못했는데, 이곳에 와서야 그런 생각이 치밀었다.
적벽검문은 봉문 중이다. 허나 아무리 봉문 중이라고 할지라도 자식이 부모 집을 방문하지 못할 리 없다. 음사에게 지시한 것처럼 담을 넘어가도 되고, 뒷문을 찾아가도 된다. 야산을 빙 돌아서 가산(假山)을 통해 들어가는 수도 있다.
허나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는 적벽검문의 대답을 기다렸다.
적벽검문이 말한다.
침묵하라, 조용하라, 움직이지 마라.
안에서는 아무도 나오지 않았다. 누강이 온 것을 알고 있을 터인데, 일절 연락을 취하지 않는다. 하다 못해서 담 너머로 말도 해오지 않는다.
사문이 그러니 그도 할 것이 없었다.
대신, 그는 지금까지 있었던 일들을 곰곰이 곱씹어봤다. 생각할 시간은 충분하니까.
그 결과, 누미의 실종에 대해 약간의 해답을 찾았다.
누미가 사라졌다.
이 일은 매우 중요하다.
적벽검문은 지금까지 가족을 버린 적이 없다. 가족 중에 한 명만 실종되어도 온 가족이 나서서 중원 전역을 이 잡듯이 뒤졌다. 그래서 반드시 찾아냈다.
가족이 억울하게 죽으면 복수를 한다. 정정당당하게.
가족이 무공이 약해 납치라도 되면 반드시 구해준다. 당당하게.
적벽검문은 사제간이 아니다. 가족들이다. 피와 목숨으로 맺은 가족이다.
오죽하면 성까지 누씨로 바꾸겠는가.
헌데 누미가 사라졌는데도 적벽검문은 조용하다.
검왕은 움직이지 않고, 적벽검문은 조용하고.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적벽검문이 봉문 중이라서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가?
아니다. 봉문 중이라는 말은 중원 사람들에게 둘러치는 말이고, 실제로는 적벽검문이 움직이지 않으려고 작정했기 때문에 움직이지 않았던 것이다.
적벽검문은 그에게도 말한다.
움직이지 마라!
즉, 지켜보는 눈이 있다. 그 자리에서 꼼짝하지 말라. 적벽검문이 봉문 중이라는 사실을 확실하게 알려라. 그것이 네 역할이다. 여기에 온 보람이다.
누강은 적벽검문이 하는 말을 들었다.
누미에 대해서 일절 신경 쓰지 않는 듯한 태도, 누강에 찬밥 취급하는 태도.
누강은 적벽검문이 취하는 태도에서 엄청난 고통과 아픔을 읽었다.
결코 이럴 사람들이 아닌데.
결코 가족을 버리는 사람들이 아닌데.
적벽검문이 이렇게까지 할 때는 아주 속 깊은 무엇인가가 존재하는 것이다.
그래서 검왕과 적벽검문 어른들 사이에 모종이 밀약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지금, 검왕이 옆에 있으니 물어본다. 누미는 어떻게 되었는가?
검왕은 한치 망설임도 없이 즉각 대답한다. 아이를 낳았을 것이라고.
사실 이런 일은 누강도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부분이다. 누미가 어디론가 끌려갔을 것이라고는 생각했지만 아이를 낳았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어, 어쩌다가 아이를…… 누구, 누구의 아이입니까?”
누강이 더듬거리면서 물었다.
“혈오입니다.”
“혀, 혈오!”
누강이 너무 놀라서 말을 잇지 못했다.
혈오는 적벽검문의 천적이다. 혈오가 강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혈오가 탄생하면 혈루마옥이 중원으로 나오기 때문에 절대로 탄생해서는 안 되는 마물이라는 뜻이다.
그런 마물을 누미가 낳았다고?
“그, 그럼 누미가…… 누미가 혈루마옥에…… 거기로 끌려간 겁니까? 혈루마옥으로?”
“혈루마옥에 있습니다.”
“아!”
누강은 말문이 콱 막혔다.
“혀, 혈오가 탄생했다면…… 아!”
그다음도 생각나지 않는다.
적벽검문은 강하다. 하지만 혈루마옥을 막지 못한다. 그들이 중원으로 들어서면 그야말로 지옥이 펼쳐진다. 그들에게 대항하는 사람은 모두 죽는다.
그런 악마들을 중원으로 끌어들인 사람이 누미…… 누미인가? 누미가 혈오를 낳았는가.
검왕이 말했다.
“이 싸움 끝에 저는 죽을 겁니다. 허면 제 머리카락을 잘라서 신을 짜주십시오. 그 신을 누미에게 신겨주세요. 죽어도 갚지 못할 죄를 지었습니다. 후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