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ctator From Outer Space RAW novel - Chapter 149
149화 유지하의 정체
화성에 있던 세틀러호가 지구로 귀환하는 데에는 약 10시간이 걸렸다.
최대 속도를 냈다면 1시간 안에 도착했겠지만 융합로의 출력이 충분하지 않아 무리할 수가 없었다.
융합로를 완전히 수리하려면 세틀러호의 기자재로는 어렵고 루시아와 같은 유물해석에 재능을 보이는 사이커가 나타나야 한다.
지금까지는 대놓고 연구하기가 어려웠지만 앞으로는 이야기가 다를 것이다.
‘슬슬 나에 대한 얘기를 할 때가 됐군.’
지금쯤 각국 정부에서는 어떻게 그를 추궁할지 고민하고 있을 것이다.
특히 눈 뜨고 코쿤을 빼앗긴 프랑스는 전쟁을 불사할 가능성도 높았다.
하지만 이번 일로 인해 유지하가 정체를 조금이나마 밝혀야 할 필요성이 생겼다.
플레이그가 나타난 이상 입을 닫고 있는 것은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다.
산더미처럼 쌓인 의혹을 약간이나마 해소하고 각국에 손을 내미는 게 옳은 방법이다.
유지하의 목표는 결국 플레이그의 박멸이니까.
인류의 적이 나타났는데 인류끼리 싸울 필요는 없지 않은가?
다만 그의 생각에 찬성하지 않을 국가나 세력도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몇 년간 쌓은 갈등의 깊이가 좀 깊어야지.
그들의 분노와 적개심에도 타당한 면이 있고 이해도 가지만 유지하에겐 뒤를 돌아볼 시간이 없었다.
당장 내년에 플레이그 군단이 지구에 출현하지 않는다고 어떻게 장담한단 말인가.
‘지금 필요한 건 최소한의 설득, 그리고 최대한의 속도.’
그걸 위해선 이 플레이그부터 어떻게 해야 한다.
유지하는 세틀러호의 에테르 역장에 붙들린 코쿤을 바라봤다.
사이필드는 진작 차단되었고 역장에 붙잡혔으니 이제 녀석은 오감이 차단된 인간과 다를 바 없다.
큰 상처를 입고 회복 중일 테니 코쿤을 열고 나오는 것도 불가능했다.
유지하는 코쿤에 다가가 손을 대고 사이 필드를 전개했다.
언젠가부터 그는 플레이그의 감정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정확히는 꿈에서 그렇게 느꼈다.
실제 코쿤에 손을 대보니 유생체에 불과한 녀석의 감정이 비교적 선명하게 읽혔다.
‘희한하군… 일개 비스트급에도 감정이 있었던가…….’
플레이그에 지능이 있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상위 개체에 한해서였는데 사실은 그게 아니었던 걸까?
어쨌든 이 작은 녀석은 무언가를 찾고 있었다.
그 이미지가 유지하의 머릿속에 선명하게 나타났다.
‘이건 우주 한가운데의 행성… 그것도 푸른 행성이군.’
지구인가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이미지가 선명하지 않았지만 대륙의 모양이 지구와는 달랐다.
시야가 뒤로 물러나더니 점점 주변 위성의 모습이 드러났다.
알고 보니 이 행성엔 달이 두 개나 있었다.
‘확실히 지구가 아니군. 그렇다면 플레이그는 이 행성을 찾고 있었던 건가.’
유지하는 이미지를 이리저리 움직여 여행을 하게 되었다.
비스트급의 사고 수준이 워낙 하찮아 감정을 읽는 게 어려웠지만 그럭저럭 결론을 도출해 낼 수 있었다.
‘이건 선지자의 고향으로 가는 항로도다.’
예전에 달에 도착한 유물에 기록되어 있던 그 항로도와 완전히 같았다.
그는 코쿤에서 손을 떼고 아르마에게 지시했다.
“예전에 달에 온 유물 안에 항로도 있었지? 잠깐 표시해 줘.”
격납고 가득 선지자의 고향으로 향하는 우주지도가 나타났다.
유지하는 그걸 보며 플레이그가 찾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다.
“이 녀석들도 선지자의 고향을 찾고 있었군. 하지만 녹스에 워프게이트가 있었는데.”
9번째 행성 녹스에선 언젠가부터 거대한 워프게이트가 관측되었다.
인류는 이 워프게이트가 선지자의 고향으로 향하는 관문임을 인식하고 개척선단을 건조했다.
설마, 플레이그는 이걸 몰랐던 걸까?
‘군단의 움직임을 보면 워프게이트가 있다는 건 분명히 알고 있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가 가는 걸 막을 이유가 없었으니까.’
그렇다면 플레이그는 그 워프게이트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왜?
‘혹시 선지자의 고향에 가기 위해 특별한 무언가가 필요한 거라면…….’
예를 들면 열쇠라든가…….
유지하는 새삼 자신의 오른쪽 가슴을 어루만졌다.
화성에서 흡수한 선지자의 유물을 되새겨보면 자신이 흡수한 게 그 열쇠일 가능성이 있었다.
전투에서 패배하고 3년 동안 우주 미아가 되었음에도 플레이그가 그를 탐지하지 못한 건 사이필드를 차단하는 콕핏 때문인지도 모른다.
‘녀석들도 선지자의 고향을 목표로 하고 있었군.’
이유야 모르지만 지구가 목표가 아니었다는 걸 알고 나니 마음이 약간 편해졌다.
‘아니, 이게 아니지. 이 녀석의 사이필드를 차단했으니 의아함을 느끼고 정찰대를 더 보낼 가능성이 있어.’
그때가 언제일지는 모르겠지만 비스트급 하나만 오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그 녀석들마저 죽인다면 본대의 주의를 끌 가능성이 높았다.
정찰대를 보냈는데 계속 통신이 끊긴다면 이상하게 여기지 않겠는가?
‘지금 본대와 싸울 수는 없어.’
겨우 메가시티를 만들 땅을 확보한 시점인데 싸웠다간 멸망은 확정이었다.
심지어 녹스의 워프게이트는 아직 열리지도 않았다.
‘그나마 사이커 유전자를 많이 확보한 게 다행이군…….’
당초 아르마가 짠 일정보다 훨씬 앞당겨졌다.
이대로라면 15억의 인구를 고집할 필요도 없었다.
인류를 보존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건 사이커를 육성할 토양 그 자체다.
“아르마, 지금 페이스를 토대로 우리가 확보해야 할 인구를 다시 계산해봐.”
「계산 중입니다… 약 9억 명이면 되겠습니다.」
“러시아까지 합하면 약 3억이니까… 6억만 더 끌어들이면 된다는 얘기군.”
「메가시티 아프간을 빼놓으셨네요. 거기에도 입주희망자가 상당히 몰리고 있습니다.」
주변 국가가 워낙 시궁창이고 보니 먹고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지원하는 거겠지.
거기까지 계산하면 9억의 인구를 모으는 것 자체는 어렵지 않을 것 같았다.
하지만 그때까지 플레이그가 정찰대를 보내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었다.
어떻게든 에테르 관련 연구를 진행시켜서 녀석들을 속일 방법을 찾아야 한다.
유지하는 코쿤에서 눈을 떼었다.
“이 녀석은 뛰쳐나올 일 없도록 역장으로 따로 보관해 둬. 테라섬을 공개할 때 같이 보여 줄 거니까.”
「알겠습니다.」
테라섬은 관광지로 이름이 높지만 핵심 구역은 공개된 적이 한 번도 없었다.
거길 공개하면 상당한 파장이 일겠지만 앞으로의 일정을 생각하면 필수적인 절차였다.
최소한의 협조는 받아야 한다.
지금껏 각국과 싸우면서도 끝장을 보지 않은 이유이기도 하다.
그건 협조를 받은 후에는 더 이상 눈치를 볼 이유가 없다는 뜻이었다.
같은 인간이니까 최소한의 인내심은 발휘하겠지만 플레이그에 대항한다는 목적에 방해가 된다면 유지하도 어쩔 수 없었다.
끝장을 볼 수밖에.
* * *
우주에서 온 괴물과 프랑스군의 전투는 각국 정부에 상당한 충격을 안겨다주었다.
괴물의 육체는 블랙메탈로 이뤄져 있었으며 전술핵급의 파괴력이 아니면 끄덕도 하지 않았다는 점에서.
또한 프랑스의 하프늄2 탄두 기폭에 타격을 입고 바다로 돌아간 후 사라져버렸다는 점에서 그러했다.
대책회의가 줄줄이 이어졌고 한 명이 용의자로 떠올랐다.
사실 이쯤 되면 정보기관이나 수뇌부가 아니더라도 눈치를 챌 수밖에 없다.
유지하.
그가 어스 플릿을 동원해 괴물과 알을 가져간 것이다.
이유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그건 추궁하면 되는 일이었다.
프랑스 정부를 비롯한 언론에서 맹공을 퍼부었다.
―프랑스의 바다에 몰래 들어와 괴물과 알을 가져간 것, 다 알고 있다. 빨리 반납하지 않으면 큰 코 다칠 것이다.
―기다렸다는 듯 괴물과 알을 가져간 것은 위치를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닌가? 혹시 당신이 괴물을 만들었나?
―우리는 진지하게 괴물의 탄생이 당신과 테라 섬에서 비롯되었다고 추측하고 있다. 이 모든 것을 명료하게 해명하라.
괴물이 사용한 무기가 유지하가 선보인 것과 너무 닮았다는 것이 화젯거리가 되었다.
블랙메탈 육체에 레일건, 이온 추진기와 아이언 빔과 매우 닮은 레이저까지…….
유지하가 만들었다고 해도 전혀 위화감이 없었던 것이다.
이렇듯 프랑스가 공식적으로 문제제기에 나서자 영국을 비롯한 유럽과 다수 국가에서 동참했다.
―개인이 몇 년 동안 말도 안 되는 초기술을 쏟아낸 건 그렇다 치자. 강인공지능을 최초로 만든 것도 이해할 순 있다. 그러나 우주에서 온 금속괴물은 상식에서 벗어난다.
―빨리 해명해라. 안 그러면 전 세계가 당신의 적이 될 것이다.
압박이 거세지는 가운데 백악관에서도 공식적인 성명을 발표했다.
유지하와의 관계를 생각해 최대한 부드러운 표현을 썼지만 추궁하는 내용인 건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미국 의회에선 유지하에 대한 해명촉구 결의안을 통과시키기까지 했다.
―이제 당신의 정체를 드러낼 때가 되었다. 일부의 추측대로 외계에서 왔나? 정중하게 협조를 요청한다면 받아들일 의향이 있다.
―그 전에 당신이 제멋대로 행동한 것에 대한 책임 있는 사과가 필요하다.
이렇듯 압박이 심했지만 유지하가 진지하게 소통에 나설 것이라고 생각하는 곳은 별로 없었다.
언제나 그렇듯 그는 무시할 것이고, 거기에서 또 새로운 갈등이 생길 것이다.
인류의 40%를 적으로 돌렸는데 거기서 몇 퍼센트가 더 추가된들 무슨 의미가 있는가?
다만 미국이 더 이상은 못 참겠다고 나선 것에 의미가 있었다.
이번 우주괴물 사태에서 그만큼 심각성을 느낀 것이다.
그의 처신에 대한 다양한 추측이 이어지는 가운데 유지하가 드디어 공식적인 성명을 발표했다.
“테라섬에 각국의 VIP들을 초대하겠습니다. 물론 오지 않아도 상관은 없습니다만, 가급적 직접 와서 보는 게 이해에 도움이 될 겁니다.”
그는 몇 개 국가를 호명했고 방문 스케줄까지 한꺼번에 발표했다.
미국과 러시아, 독일 등의 우호적인 국가는 물론 비우호적인 국가도 대거 포함되어 있었다.
한데 모아서 암살하려는 게 아닌가 하는 쓸데없는 우려가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대부분은 환영의 뜻을 나타내며 참석 의향을 밝혔다.
그렇게 테라섬에 십수 대의 전용기가 날아들었다.
볼드윈 대통령은 테라섬의 전경을 내려다보며 신음했다.
“위성으로 확인한 건 빙산의 일각이었군.”
“저희도 놀랐습니다. 이렇게 거대한 설비가 있을 줄이야…….”
미국의 정찰위성은 굉장한 해상도를 자랑하지만 테라섬을 낱낱이 들여다보는 건 불가능했다.
어떻게 알았는지 정찰위성이 상공을 지나갈 때마다 형태를 변형시켰기 때문이다.
물론 설비 전체가 아닌 상층 일부부만 변형했지만 위성의 눈을 속이기엔 충분했다.
미국이 자랑하는 고고도 정찰기도 테라섬에는 접근이 불가능했다.
아이언 빔이 고도 8만 피트까지 커버한다는 걸 전쟁에서 증명했기 때문이다.
그 이상도 가능할 거라는 말이 나왔고 미국은 테라섬을 들여다보려는 계획을 깔끔하게 접었다.
그런데 눈으로 직접 확인하게 될 줄이야…….
‘그만큼 이번 일이 심각하다는 거겠지.’
일부의 추측대로 그는 외계인인가?
그 괴물을 만든 게 사실인가?
인류를 어떻게 보고 있으며 진정한 목적은 무엇인가?
이 모든 것의 의문이 지금 풀리려 하고 있었다.
공항에 도착하자 이제는 꽤 익숙한 안드로이드와 워커들이 수행원들을 반겼다.
이토록 큰 행사이다 보면 생각을 바꿀 법도 한데 여전히 의전은 없었다.
그저 언더시티로 내려가 적당한 스마트카를 호출해 타면 그만이었다.
모든 것이 무인으로 작동한다는 점은 더 이상 놀랄 것이 못 되었다.
그러나 시설에 도착한 후 그들을 반긴 아르마의 배가 불러 있다는 점에서는 천하의 볼드윈 대통령도 놀랄 수밖에 없었다.
“실례, 혹시 임신한 겁니까?”
“네, 그렇습니다.”
“아… 일단 축하드립니다.”
“감사합니다.”
볼드윈 대통령은 다른 사람을 맞는 아르마를 보며 작게 감탄했다.
‘완전히 감정이 없는 로봇은 아니었군.’
하긴 둘이 붙어 있었던 게 몇 년인데…….
미국에 있는 부모와도 관계를 끊어 지독한 인간이라는 평까지 나왔는데 최소한의 감정은 있는 모양이었다.
아니면 이것도 그의 외계인설을 불식시키기 위한 하나의 장치일까?
‘무슨 생각을 하는지 알 수가 있나.’
그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안내를 받아 들어간 시설은 VIP와 최소한의 수행원을 제외한 모든 인원의 출입이 금지되어 있었다.
보안상 중요한 곳이니까 어쩔 수 없겠지.
게레로 보좌관이 귀띔했다.
“위치로 봐서 남쪽 해안가의 조선소 근처입니다. 어스 플릿을 건조한 곳이죠.”
“여길 공개한다는 건 의미가 크겠지.”
“어쩌면 의미가 없어졌을 수도 있습니다. 아이언 빔의 크리스탈 제조법을 우리에게 넘겨준 것처럼요.”
모든 걸 의심할 필요는 없겠지만 유지하에게는 그것도 모자란다.
입구를 맡은 안드로이드가 안내했다.
“여기서부터는 VIP만 들어가실 수 있습니다.”
“최소한의 수행원은 필요한데…….”
보좌관들이 나서려 하자 볼드윈 대통령이 만류하며 입구로 다가갔다.
“괜찮아. 내가 여기서 죽으면 그가 곤란해지네. 이대로 들어가면 되나?”
“환영합니다. 볼드윈 대통령님.”
“고맙군.”
안으로 들어가자 놀라운 광경이 그를 반겼다.
허공에 거대한 알 비슷한 무언가가 묶여 있었다.
“이게 그 괴물의 알인가……?”
“맞습니다. 일단 코쿤이라고 부르시면 됩니다.”
유지하가 나타났고 볼드윈 대통령은 새삼 코쿤을 신기한 눈으로 쳐다봤다.
“블랙메탈로 이뤄진 생물이 나타날 줄은 몰랐는데… 유 대통령과는 어떤 관계가 있습니까?”
“그건 지금부터 설명하겠습니다. 아직은 관객이 다 모이지 않았군요.”
얼마 지나지 않아 각국의 VIP들이 들어와 하나같이 입을 쩍 벌렸다.
“블랙메탈로 이뤄진 알이라니, 도저히 믿기지가 않는군요.”
“여기에서 괴물이 튀어나왔다… 대체 누가 만들었는지, 원.”
“어쩌면 진짜 우주에서 왔을 수도 있지요. 유지하 대통령이 그걸 설명해줬으면 좋겠군요.”
이 자리엔 프랑스의 마리 르펜 대통령이 없었다.
하긴 감정이 좋지 않은 상황에서 왔다간 삿대질을 하며 싸웠을 게 분명하니 다행스런 일이었다.
정작 유지하는 그녀는 물론이고 프랑스에 대한 호오조차 드러낸 적이 없지만.
그가 각국의 수장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다들 오셨군요. 지금부터 내 능력과, 이 녀석의 정체에 관해 설명하겠습니다. 일단은 기밀이지만 핵심 관계자에겐 밝혀도 괜찮습니다.”
드디어 그의 정체가 밝혀지는가.
수장들이 긴장하며 마른침을 삼켰다.
* * *
“결론부터 말하자면 나는 외계인이 아니며 이 괴물도 만들지 않았습니다. 이 사태를 예언한 선지자에 가깝죠.”
선지자.
먼저 알게 된 존재라는 뜻이다.
수장들은 의미는 이해했으나 어떤 면에서 그가 선지자를 자처하는지에 대해선 몰랐다.
지금까지 유지하가 예언 비슷한 말이라도 한 적이 있었던가?
이번에 괴물이 나타날 거라고 예언을 했더라면 신뢰가 갔겠지만…….
사람들의 의문과는 상관없이 유지하가 이어 말했다.
“사이커엔 여러 가지 종류가 있음을 잘 알 겁니다. 믿기 힘들지만 에테르파를 쏘기도 하고 가끔은 남의 마음을 읽는 능력도 나타나지요. 블랙메탈 트랜스폼에 특출 난 능력을 보이는 사이커도 있습니다.”
“그리고 나는 예지의 능력을 가졌습니다. 꿈을 통해 미래를 보는 거죠.”
“꿈을 통해 미래를 본다고요?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그렇게 말하기 전에 이 알을 쳐다보기 바랍니다.”
뭔가 부정의 문장을 쏟아내던 이탈리아 총리가 괴물의 알을 쳐다보곤 입을 다물었다.
하긴 우주에서 온 괴물이 있는 상황인데 예지 능력이 있다고 해서 이상할 건 뭔가.
이해가 안 가는 점이라면 왜 그가 그럴싸한 예지를 하지 않았냐는 점이었다.
볼드윈 대통령이 나섰다.
“이런 괴물이 올 줄 알고 있었습니까?”
“시기는 몰랐지만 존재 자체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말을 하지 않았죠?”
“만약 내가 말했다면, 누가 믿었을까요?”
“…….”
누구도 그에 대해 대답하지 못했다.
볼드윈 대통령은 그의 기록에 대한 몇 줄을 기억해 냈다.
‘이한종 박사라고 했나? 분명 그가 꿈에서 힘을 얻었다고 증언했었지…….’
당시엔 이 무슨 오컬트냐며 무시했지만 지금 유지하의 말을 들으니 아귀가 딱딱 들어맞는 느낌이 들었다.
꿈을 통해 이 괴물의 존재를 느꼈고, 거기에서 힘을 얻었다… 최소한 말은 되잖은가?
유지하가 그를 쳐다봤다.
“미국은 내 팬티 색깔까지 알고 있을 테니 거기에 대해 증언해 줄 수 있을 겁니다.”
약간의 웃음이 퍼졌고 볼드윈 대통령은 그의 말을 뒷받침해야 한다는 사실에 약간의 불쾌감을 느꼈지만 그러려니 했다.
“부정은 않겠습니다. 몇 년 전에 나는 유 대통령이 한 말과 비슷한 보고를 접했습니다. 꿈에서 힘을 얻었다고 말이지요.”
다른 누구도 아닌 미국 대통령의 말이니 인정할 수밖에 없다.
사람들이 앞을 다투어 물었다.
“그 꿈이 이 괴물과 연결된 겁니까?”
“이 괴물의 정체는 뭡니까?”
유지하가 손을 들었다.
“답하기에 앞서 당시의 상황에 대해 언급할 필요가 있겠군요. 나는 꿈에서 이 괴물을 만났습니다. 참고로 말씀드리면 이 괴물은 하나가 아닙니다.”
“그러면, 동족이 있는 겁니까?”
“꽤 많습니다. 그리고 이 녀석은 동족 중에서도 아주 약한 개체죠. 아마 가장 작고 약하다고 해도 무리가 없을 겁니다.”
“전장 수십 미터짜리 괴물이 작고 약하다니…….”
“그게 진짭니까? 전술핵급이 아니면 타격을 입은 것 같지도 않던데?”
사람들이 허탈하게 중얼거렸고 유지하가 다시 입을 열었다.
“이 괴물이 어디에서 오는지, 목적이 무엇인지는 모릅니다. 확실한 건 우리와 지구에 무한한 증오를 가지고 있다는 점입니다.”
“무한한 증오라…….”
“나는 몇 년 전부터 나름의 준비를 해왔습니다. 욕은 많이 먹었지만 능력을 가진 나만이 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죠.”
마침 생각났다는 듯 누군가가 물었다.
“혹시 그 신라그룹에서 출시한 게임에 출현한 그 우주괴물이…….”
“맞습니다. 꿈에서 본 괴물을 본 따서 만든 겁니다. 배경이 미래인 건 그런 괴물과 싸우려면 우리도 그 정도는 되어야 한다는 의미이고요.”
“그래서였군요…….”
“확실히 지금까지의 행보에 신빙성이 더해지기는 하는데…….”
솔직히 말한다면 이런 짧은 해명으로는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너무 많았다.
대표적으로 그가 만든 강인공지능 루시아.
하지만 이 자리에 있는 사람들은 그가 알고리즘을 전공했음을 알고 있었다.
우주괴물과 블랙메탈에 비하면 인공지능을 탄생시킨 건 우연으로 치부할 만했다.
몇몇 수장은 유지하의 지금까지 행보가 이해가 되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특히 유지하에 대한 정보가 많은 볼드윈 대통령이 큰 감명을 받은 듯했다.
“의혹이 완전히 해소된 건 아니지만 전체적인 맥락을 설명할 정도는 되는군요. 왜 목적이 인류의 평화인가 했더니…….”
세계 평화라고 하면 마치 인간끼리의 싸움을 종식시켜야 한다는 의미처럼 들린다.
그에 반해 인류라는 단어는 외부까지 포함한 단어였다.
그 외부란 바로 우주에서 온 괴물.
“중요한 건 우리가 힘을 합쳐야 한다는 겁니다. 이 괴물에 대항하기 위해서요.”
“그렇지요…….”
볼드윈 대통령은 뭔가를 곰곰이 생각하는 듯했다.
미국의 수장이니만큼 이대로 유지하에게 얌전히 따라줄 가능성은 낮았다.
그건 미국이 가진 패권을 양보한다는 뜻이니까.
그가 아니더라도 의회와 미국의 주류인 앵글로색슨은 그렇게 생각할 것이다.
볼드윈 대통령이 마침내 입을 열었다.
“인류의 평화를 위해 지금까지 애써 왔다는 건 잘 알겠습니다. 하지만 유 대통령의 행보엔 그것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구석이 많습니다. 다소 과격하기도 했고요.”
“모든 걸 인정받고 싶은 마음은 없습니다.”
“아무튼 해명만으로는 부족하다는 건 인정할 겁니다. 내가 제안하고 싶은 게 있는데, 들어 보겠습니까? 아마 다른 분들도 만족할 겁니다.”
수장들이 호기심에 귀를 기울였고 유지하는 속으로 웃었다.
그가 할 말은 정해져 있었다.
미국의 관리하에 들어오라는 거겠지.
어쩌면 미국과 한국, 그리고 인류연합을 아우르는 인류 역사상 가장 강대한 세력을 꿈꾸고 있을지도 모른다.
“유감입니다. 그건 안 되겠군요.”
“아직 언급하지 않았습니다만.”
“뻔하지 않습니까? 모든 것을 미국이 주도하겠다는 거겠죠. 나는 단순히 미래 예지와 기술만 제공하고. 안 그렇습니까?”
정곡을 찔린 듯 볼드윈 대통령이 입을 다물었다.
역시 그도 어쩔 수 없는 미국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