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ctator From Outer Space RAW novel - Chapter 259
258화 목표는 세계정복
레오볼드가 갈리스토 외교관의 팔을 잘라 보냈다는 소문이 돌자 갈리스토는 물론이고 자이움마저 황당해했다.
이 시국에 저 대처가 과연 정상적인지 의문스러웠던 것이다.
더 밑으로 떨어질 것도 없는 자이움과 엘브랑데도 저 정도는 아니었다.
하물며 바그란은 블루 드래곤 건과 황녀 시해 사건으로 상당한 우환에 시달리고 있는 실정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다른 사건을 일으킨다는 건 도대체 이해할 수 없다고 다들 입을 모았다.
―갈리스토야 그렇다 치더라도 판그랄 대공을 어떻게 상대할 건가?
―물론 반다스 섭정 개인의 전투력이야 막강하지만 병력 차이가 너무 심하다. 그리고 그 블랙 나이트는 아직 배치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
―무엇보다 판그랄 대공은 단독으로 미티어 스트라이크를 발동할 권한을 가지고 있다. 이를 막을 방법이 있나?
아스테라인의 시점에서 미티어 스트라이크는 절대적인 파괴력을 자랑하는 마법이었다.
200년 전 대전쟁에서야 일상이었다고 하지만 최근 수십 년 동안에는 한 번도 발동되지 않았다.
자연스레 파괴력이나 범위 같은 것들이 부풀려질 수밖에 없었고 호사가들은 바그란 따위는 한 방에 지워질 거라고 떠들어 대곤 했다.
―엘브랑데도 벼르고 있을 텐데 대체 왜 적을 늘리는지…….
―미티어 스트라이크의 위력이면 바그란 하나쯤 날리는 건 일도 아니다. 반다스 섭정이 자살하고 싶은 게 아니라면 이쯤에서 멈춰야 한다.
―설마 바라크 황태자를 믿는 건 아니겠지? 외교관의 팔을 잘라 보냈는데 그가 뒷배가 되어줄 거라는 착각은 버려야 한다.
이번 사건은 밀약을 맺은 바라크 황태자조차 놀라 발을 뺄 만한 사안이었다.
그는 소식을 접한 즉시 레오볼드에게 연락을 넣어 대체 왜 그랬는지 물어보고 신통치 않은 대답이 나오자 협박조의 말을 했다.
“판그랄 대공이 우습게 보이는 거요? 경 하나의 몸이야 건사할 수 있을지 모르나 나머지는 그렇지 못할 거요. 대체 왜 그의 신경을 건드리는 건지 모르겠소.”
“먼저 저를 건드린 쪽은 대공입니다, 전하.”
“이야기를 들어 보자는 거야 흔히 있는 일 아니오? 그게 엘브랑데 황녀 건이라면 더더욱 그렇지. 아무튼 이번 건은 그냥 넘어갈 수 없소. 크로이츠 백작을 보낼 테니 대체 어떻게 할 건지 해명하시오.”
그녀를 보내는 것은 그나마 그를 배려한 처사였다.
레오볼드는 그녀가 방문하는 틈을 타 측근들을 불러들였다.
워낙 사고가 많이 터지다 보니 그들조차 황당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당장 서부가 쑥대밭이 되었고 황녀 시해 건에다 외교관의 팔까지 잘라놓았으니 사정을 잘 모르는 사람은 이러다 멸망하는 거 아니냐고 쑥덕거리곤 했다.
카밀라가 회의실에 도착했고 레오볼드는 상석에 앉아 그들을 둘러봤다.
“다들 모였군. 이번 사태에 대해서 의문이 많았을 거요. 영주가 미치지 않았나 의심도 했겠지. 하지만 나는 미친 것이 아니오. 지금부터 그걸 증명하지. 지갈레온.”
문이 열리고 푸른 머리카락을 당당히 드러낸 지갈레온이 안에 들어왔다.
그의 체형과 얼굴을 본 사람들은 경악했다.
“지온이… 드래곤이었어?”
“지금까지 한 번도 의심한 적이 없었는데…….”
특히 바로 옆에서 같이 연구한 스테피나의 충격이 심한 모양이었다.
그랜든의 경우는 의심은 하고 있었던 모양인지 근엄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지온은 속이 시원하다는 듯 외쳤다.
“블루 드래곤 지갈레온, 그것이 바로 나다. 알았으면 나를 경배해야 하지…….”
퍽.
옆에 있던 레오볼드의 주먹이 지갈레온의 머리통을 두들겼다.
“끄악!”
비명소리와 함께 측근들이 눈을 감고 목을 움츠렸다.
아무래도 블루 드래곤은 레오볼드에겐 꼼짝도 못하는 모양이다.
“시끄럽고 들어가 있어. 나중에 지시를 내릴 테니까.”
그는 레오볼드를 노려보다가 더 험악한 눈빛이 날아오자 찍소리도 못하고 테이블 반대쪽으로 가서 앉았다.
“여러분들이 직접 봤듯이 지온의 정체가 지갈레온입니다. 2년 전부터 나를 도와주고 있었지. 그러므로 서부 사태에 대해서는 안심해도 좋습니다.”
사람들의 표정에 안심이 서렸다.
사실 그들이 염려하던 것은 갑자기 나타난 드래곤이 섭정의 편이겠느냐는 것이었다.
일단 정의를 외치는 드래곤이니 아무래도 섭정과는 잘 맞지 않겠다고 여겼는데 이런 결말이 나올 줄이야.
레오볼드는 그들에게 선언했다.
“그리고 서부 영지들은 곧 안정화를 시킬 겁니다. 행정권 이관과 재산 파악은 대부분 끝났고 관료들을 재배치하는 것만 남았죠. 그건 아르마가 알아서 처리할 겁니다.”
아르마는 대체 못하는 게 무엇인지 의심이 될 정도로 모든 면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초인이었다.
행정과 재정, 법률 등 온갖 분야에서 사람들을 이끌었고 이번 서부 영지 장악에도 앞장서서 활약하고 있었다.
수백 명에 달하는 귀족들이 사망하거나 쫓겨난 만큼 공백이 장난이 아닌데도 그녀가 나서면 금방 해결되곤 했다.
물론 아직까지 서부 영지가 모두 레오볼드의 수중에 들어온 건 아니었다.
인근의 숲에 숨어 저항을 계속하는 기사들이 있었고 때로는 영지민들이 죽음을 무릅쓰고 반항하기도 했다.
레오볼드에 대한 잘못된 소문을 들은 것이다.
하지만 그들조차 얼마 가지 못한다는 게 지배적인 평이었다.
―섭정의 지배력은 정말 놀랍다. 타운젠트 후작의 땅이 장난이 아닌데도 그걸 벌써 집어삼켰다.
―블랙 나이트의 위력이야 그렇다 치는데 발가드라는 자의 전투력이 상상 이상이다. 영지 하나를 혼자서 분쇄할 정도니.
―관료들도 예전의 관료들이 아니다. 토지 재측량을 그렇게 빠릿빠릿하게 진행할 줄이야 상상도 못했다.
하여튼 레오볼드는 서부 영지를 집어삼킴으로서 바그란 전체를 완전히 합쳤다.
귀족 상당수가 사망하는 바람에 약소 귀족들은 겁에 질려 작위를 반납하기 바빴다.
대체 누구로 경영을 할 것이냐는 비판이 나왔지만 의외로 큰 문제는 없었다.
귀족들이 자취를 감추고 교육을 받은 인재들이 새로 등장한 것이다.
그들은 기존 레오볼드가 소유한 영지의 교육기관에서 몇 개월간 철저한 교육을 받은 사람들이었다.
보통 바그란에서 관료라고 하면 현실과 동떨어진, 탁상행정만 하는 사람들이라고 인식하기 쉬운데 이들은 그렇지 않았다.
사무실에 있기보다는 현장에 있을 때가 더 많으니 말 다했지.
그들이 나서준 덕분에 바그란은 완전한 중앙집권제 국가로 거듭나고 있었다.
중심이 되는 레오볼드와 아르마에게 과도한 업무가 쏠렸지만 희한하게도 문제가 되지는 않았다.
사정을 잘 아는 사람들은 아르마의 행정력이 괴물이라며 혀를 내둘렀다.
―며칠 전에 샘슨네 소가 죽은 것은 어떻게 알아낸 건지 모르겠다…….
―경작 현황까지 꿰고 있어서 도저히 숨길 수가 없다.
이런 아르마의 노력이 있었기에 중앙집권제로의 전환이나 갑작스런 팽창, 그리고 귀족의 공백 등은 전혀 문제가 되지 않았다.
사람들은 여기까지 설명을 들은 뒤에 비로소 납득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지금부터였다.
황녀 시해와 갈리스토 외교관 참사는 외부 문제였기에 결코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그 건에 관해 레오볼드는 미리 약속을 받았다.
“지금부터 보고 들은 것들은 절대 외부로 유출되어선 안 됩니다. 죽음으로 다스릴 테니 그렇게 아십시오.”
대체 무엇이기에 이렇게까지 강조하는 걸까?
“들어오시지요, 전하.”
현 아스테라에 전하라고 불릴 수 있는 사람은 극히 한정되어 있다.
사람들이 그 의미를 깨닫고 입을 벌릴 때쯤 모자를 쓴 여성 한 명이 회의실 안에 들어왔다.
백금발의 긴 머리카락에 녹색 눈동자를 가진 그녀가 모자를 벗자 엘프 특유의 긴 귀가 드러났다.
성격이 급한 카티나가 벌떡 일어났다.
“화, 황녀님?”
죽은 줄 알았던 엘프 황녀가 살아 있었다니.
* * *
“마르그레타 루스텔입니다. 부끄럽지만 지금은 엘브랑데의 황녀를 잠시 내려놓고 반다스 백작께 신세를 지고 있어요.”
“그랑베르시여…….”
“사, 살아 계셨군요…….”
대체 어떻게 된 건지 영문을 모를 일이었다.
황녀는 대체 어떻게 살아 있는 건가?
왜 그녀의 생존 여부를 엘브랑데에 알리지 않는가?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고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크로이츠 백작이 나섰다.
“이건 설명이 필요한 것 같군요, 섭정 각하.”
“우연의 일치라고 할 수 있죠. 마침 근처를 지나가던 지갈레온이 비행선 폭발을 확인하고 그녀를 구했으니까요.”
“정말 아슬아슬했지. 조금만 늦었어도 황녀는 죽었어.”
지갈레온이 어깨를 으쓱하자 마르그레타가 그에게 고개를 숙였다.
“저를 구해주셨음에도 인사를 드리지 못했네요. 이 기회를 빌려 감사드립니다.”
“흠흠.”
지갈레온의 광대뼈는 거의 승천할 기세였고 크로이츠 백작이 급히 물었다.
“비행선 폭발……? 그렇다면 엘브랑데의 짓이란 말입니까?”
“황녀를 눈엣가시처럼 생각하는 세력은 넘치지요. 예를 들면 대의회라든가.”
다들 대의회가 무엇인지는 자세히 몰랐지만 이름만 들어도 꼬장꼬장한 단체라는 건 확실해 보였다.
마르그레타가 주먹을 꾹 쥐며 말했다.
“여러분에게 엘브랑데의 수치스런 모습을 보여드려서 송구스럽습니다. 확실한 건 대의회가 저를 죽이려 했다는 것입니다. 드리즈덴 그자가 주도했겠죠.”
“드리즈덴은 대의회 원로원의 핵심 권력을 차지하고 있는 자입니다. 지금은 거의 엘브랑데 전체를 손에 넣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군요.”
“그런데 왜 해명을 하지 않고…….”
크로이츠 백작의 목소리에선 답답하다는 어조가 묻어났다.
하기야 자이움 내부 분위기는 지금 장난이 아니었다.
그의 지지자라고 할 수 있는 바라크 황태자와 프로잔 후작마저 고민하고 있을 정도니 말 다했지.
레오볼드는 그녀에게 눈짓을 해서 앉힌 다음 말했다.
“여러분에겐 궁금증이 많을 겁니다. 왜 그녀가 살아 있다는 걸 알리지 않는지부터 내 목적이 무엇인가도. 이번 기회에 확실히 말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는 스스로 국왕의 자리에 앉았다.
지금까지 한 번도 보이지 않은 행동에 다들 숨을 멈췄다.
“만약 손톱만큼이라도 나를 신뢰하지 못하거나 함께할 생각이 없다면 지금 즉시 나가십시오. 뒤쫓거나 해를 끼치지 않겠습니다. 지금부터 내가 말할 것들은 극도의 보안을 필요로 합니다. 절대 입에 내어서는 안 됩니다.”
단호한 어조로 경고했음에도 나가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모두가 그를 신뢰할뿐더러 이젠 하나라고 인식하고 있었던 것이다.
레오볼드는 그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나는 아스테라 태생이 아닙니다. 머나먼 곳… 지구라고 불리는 세계에서 왔죠. 신성교국에선 나를 이계에서 온 용사라고 불렀죠. 맞는 말입니다.”
“…….”
“어…….”
사람들은 너무 놀란 나머지 그의 말을 금방 받아들이지 못했다.
일부는 귀를 후비기도 했고 크로이츠 백작은 입을 헤 벌렸다.
이계란 곳이 진짜 있는 거였고 그곳에서 사람이 왔다는 것 자체를 믿기 힘들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게 사실이라면.
레오볼드가 이계에서 왔다면 모든 것이 설명이 된다.
그는 사람들의 얼굴을 둘러보며 말을 이어나갔다.
“신성교국의 성녀가 신탁을 받았다고 했는데, 사실입니다. 나는 거대한 배를 타고 이곳에 왔습니다. 지갈레온과 발가드는 이미 확인했죠.”
지갈레온이 어깨를 으쓱하며 나섰다.
“그건 정말 거대한 배였지. 대전쟁 당시의 거선들도 상대가 안 된다니까. 아스테라 전체를 불태우고도 남을 거야.”
“아스테라 전체를 불태운다고요?”
“길이가 700미터가 넘는다니까. 이계는 우리와는 완전히 다른 곳이야.”
“크낙스시여…….”
“도저히 믿기지가 않는군요…….”
레오볼드가 이계에서 온 용사라는 소문은 많았지만 본인이 긍정도 부정도 하지 않아 물밑으로 가라앉은 상황이었다.
그런 가운데 본인이 직접 말을 해버리니 다들 황당할 따름이었다.
크로이츠 백작은 얼떨떨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럼 당신의 몸은 어떻게 된 거죠? 설마 이계에서도 그 몸을 쓰지는 않았을 테고.”
“이건 내 원래 몸이 아닙니다. 레오볼드 반다스라는 자의 몸을 빌린 거죠. 그는 2년도 더 전에 엘프의 손에 죽었습니다.”
“내 이름은 유지하. 선지자… 그러니까 여기에서는 창조신 라사라고 불리더군요. 그분을 찾아 아스테라에 온 이계인입니다. 내 목적은 그를 찾는 것과 아스테라의 정복입니다.”
“…….”
충격의 연속이었다.
원래부터 성격이 급했던 카티나는 흥분하다 못해 켁켁거렸고 근엄하던 그랜든마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레오볼드 반다스는 이미 죽었고 이계에서 온 용사가 그의 몸을 차지했다니.
크로이츠 백작은 굳은 얼굴을 하곤 그를 직시했다.
“우리를 속였군요.”
“속인 건 아닙니다. 말을 하지 않았을 뿐이지.”
“목표가 아스테라 정복이라니… 이곳이 우습게 보이는가 보죠?”
“나는 승산도 없이 그런 말을 할 멍청이는 아닙니다. 이미 계산은 끝났고 여러분을 끌어들여서 실행하는 것만 남았죠.”
“당신이란 사람은… 그렇게 정체를 밝히면 나는 어떻게 되는 거죠? 나, 나와 맺어진 레오볼드 반다스는 대체 누구인가요?”
“달라진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카밀라.”
부드럽게 이름을 부르자 그녀가 벼락이라도 맞은 듯 몸을 떨었다.
잠자리에서 귓가에 속삭이던 그 목소리였던 것이다.
“달라진 게 없다뇨, 분명 당신은 레오볼드 반다스의 몸을 차지했다고 했어요. 영혼은 다르단 의미잖아요.”
“당신이 이 못생긴 얼굴을 보고 나와 결혼한 건 아니잖습니까.”
뜬금없는 비하에 다들 웃을 뻔했으나 간신히 참았다.
하긴 레오볼드는 그리 잘생긴 얼굴이라곤 할 순 없었고 카밀라 또한 그의 얼굴에 반한 게 아니었다.
“중요한 건 내 능력과 앞으로의 비전이죠. 이 자리에서 명백히 말하건대, 나는 아스테라를 정복하고 인류제국의 황제가 될 겁니다. 당신은 내 옆에 서게 되겠죠.”
“…바라크 황태자를 배신하고 말인가요?”
“필요하다면 누구든지 배신할 겁니다.”
“나, 나도… 나도 배신할 건가요?”
“그런 일이 발생하지 않게끔 이렇게 미리 말해 두는 겁니다. 당신은 내 여자니까.”
그녀의 표정이 복잡해졌다.
지켜보고 있던 발가드가 나섰다.
“뭐 그리 복잡하게 생각하는지 모르겠군. 몸까지 섞은 마당에 그냥 따르겠다고 하면 되지 않소? 황비까지 시켜준다는데.”
갑작스런 폭탄발언에 카밀라가 독이 오른 눈으로 그를 노려봤다.
“그대는 누구인데 입을 함부로 놀리는 거지?”
“나에 대해 소개해도 되겠소?”
레오볼드가 고개를 끄덕이자 발가드는 대검을 테이블에 쾅 찍었다.
“내 이름은 발가드 그란이 아닌 그람. 골드 드래곤 알테마의 챔피언이며 그람 황가의 일원이오. 혹시 그람 제국과 은원이 있다면 말하시오. 내가 해결할 테니까.”
“드래곤의 챔피언이라니…….”
“그런 건 전설에나 있는 줄 알았는데…….”
“드래곤까지 나타난 마당에 내가 신기할 건 없잖소?”
“하, 하긴…….”
“왜 그런 눈으로 날 쳐다보는 거야?”
그동안 지온이 해온 일들이 있어서 다들 드래곤이라는 실감이 안 나는 모양이었다.
레오볼드가 진지한 어조로 말했다.
“내 외모가 어떻든 간에, 당신을 반려로 맞아들였고 사랑한다는 점은 변함이 없습니다. 그거면 충분하지 않습니까?”
“…….”
수십 년간 닦아 온 연기의 길은 이런 낯 뜨거운 고백에도 유용했다.
카밀라는 잠깐 얼굴을 붉혔다가 그에게 싱긋 웃음을 보냈다.
잘 생각해 보니 결국 달라지는 건 아무것도 없었던 것이다.
“그 사랑, 나중에 확인해 보기로 하죠.”
슬쩍 아르마를 쳐다봤지만 그녀는 자신의 가슴께를 살짝 들어 올렸다.
부피와 중량감에서 비교가 안 되었던지라 카밀라는 잠시 어이없는 표정이 되었다.
분위기가 차분하게 변하자 레오볼드는 목소리를 가다듬었다.
“앞서 얘기했듯이, 내 목적은 아스테라의 정복입니다. 나는 여기에 와서 충격을 받았습니다. 지구의 문명에 비해 너무도 낙후되었기 때문이죠. 에테르란 만능에 가까운 에너지가 있음에도 이렇다는 건 누군가가 고의적으로 방해하고 있다는 결론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귀쟁이들.”
발가드가 나직하게 말했고 레오볼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들이 우리의 적입니다. 그러나 엘프 모두를 적으로 돌릴 필요는 없습니다.”
이 대목에서 마르그레타 황녀가 가슴에 손을 얹고 한숨을 내쉬었다.
안 그래도 이계에서 왔다는 말에 혼란스러워하고 있었는데 엘프 전체를 적으로 돌리지 않는다는 말을 들으니 그나마 안심이 되었다.
이제 레오볼드는 그녀를 쳐다보고 있었다.
“세간에 그런 말이 있죠. 착한 엘프는 죽은 엘프뿐이다… 물론 엘브랑데에도 비슷한 말이 있을 겁니다. 내가 여기에 온 건 그런 증오를 완전히 끊어내기 위함입니다. 나만의 방식으로 말이죠.”
“…그게 효율적인 전쟁인가요? 그 방법밖에 없나요?”
“나는 군인이라 그런 것밖에 모릅니다. 혹시 좋은 방법이 있다면 가르쳐주십시오.”
한참을 기다렸지만 대답은 나오지 않았다.
그녀 또한 알고 있는 것이다.
이 질기고도 긴 증오의 고리를 끊으려면 어지간한 수단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그리고 그걸 할 만한 사람은 단 한 명뿐이라는 것을.
* * *
세계 정복 선언을 했다 해서 그게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바그란이야 얼추 내실을 다질 수 있지만 인구가 2배를 넘어가는 갈리스토를 공격하고 지배하려면 많은 준비가 필요했다.
인구수 1억인 자이움이나 아예 종족이 다른 엘브랑데까지 가면 더 말할 것도 없다.
다행스럽게도 레오볼드와 아르마는 이런 일을 아주 많이 겪어왔다.
지구의 그 복잡한 국가 간의 관계와 원자재 공급망, 그리고 군사적 이슈와 정치에 비하면 아스테라는 아무것도 아니었다.
“우주 플랜트 건설이 완료되었습니다. 부유대륙에도 전초기지가 들어섰고요. 골렘을 이용한 공장도 48시간 후에 시범 가동할 예정입니다.”
아르마의 보고가 줄줄이 이어졌다.
그간 지시한 것에 대한 결과물이 홀로그램을 통해 시각적으로 표시되었다.
지구에서 진행하던 것보다는 확실히 소소하지만 아스테라 전체를 뒤엎고도 남을 만한 규모였다.
“갈리스토전에는 뭘 쓰는 게 좋을까?”
“귀족 중심주의를 해체해야 하므로 이것이 좋을 것 같네요.”
아르마가 보여 준 것은 휴대용 에테르 폭탄 발사기였다.
이미르 공화국에서 분석하고 보내 준 정보를 재설계해 병사용으로 작게 만든 것이다.
발사기를 든 병사는 휴대용 대전차 미사일 발사기를 든 21세기의 병사와 별 차이가 없어보였다.
“위력은 어느 정도나 되지?”
“리빙메탈을 채용하지 않은 골리앗은 한 방에 완파시킬 수 있습니다.”
“가격과 사거리는?”
“골리앗의 1/00에 불과하고 사거리는 100미터가 넘습니다.”
로켓을 사용하지 않는 만큼 사거리는 비교적 짧은 편에 속했다.
그러나 골리앗 자체가 덩치가 큰데다 사거리가 짧기까지 해서 큰 문제는 없어 보였다.
시뮬레이션이 재생되자 갈리스토의 제식기인 비네급이 에테르폭탄 발사기에 줄줄이 털려 나가는 게 보였다.
“이렇게 털어 버리면 마법사를 데리고 나오겠는데?”
“실력 있는 마법사는 드물죠. 그에 반해 에테르폭탄 발사기는 돈과 재료만 있으면 얼마든지 만들 수 있답니다.”
“하긴… 저들에게 평민들의 쓴맛을 보여 주자고.”
레오볼드가 이번 전쟁에서 중요시하는 것은 귀족 중심주의의 완전한 해체였다.
그간 아스테라에서 귀족이 절대적인 힘을 가질 수 있었던 건 그들이 전쟁을 독점했기 때문이었다.
타고난 에테르 혈통으로 골리앗을 만들고 조종하기까지 하니 평민들은 완전한 들러리 신세였던 것이다.
하지만 앞으로 그런 세상은 사라질 예정이었다.
고귀한 혈통을 타고난 귀족들이 일개 평민들이 가진 조잡한 무기에 줄줄이 털려나가면 무슨 생각이 들까?
진짜 변화는 그다음부터 시작될 것이다.
“발사기 사수를 양성하기 위한 훈련이 시작되었습니다. 버튼을 누르고 도망가기만 하면 되므로 간단할 것으로 보입니다.”
“골리앗을 상대로는 버튼을 누른다는 것조차 쉽지 않지. 잘 훈련시켜야 할 거야.”
그 다음으로는 마레에 가 있는 루시아에 대한 보고가 이어졌다.
“여기에 동상을 세워 놓았네요. 위성으로 확인한 결과 마스터의 얼굴인 것 같습니다.”
루시아의 둥지 가운데 레오볼드의 거대한 얼굴이 있으니 무척이나 위압적이었다.
그는 쓴웃음을 지었다.
“저런 식으로 충성심을 증명할 필요는 없는데 말이야. 그래서 그녀의 정복 사업은 잘 진행되고 있는 것 같아?”
“전투력과 숫자에서 압도적이라서… 기존 마왕들보단 그녀의 힘이 월등합니다. 몇 개 세력이 연합해도 상대가 되지 않아요.”
아닌 게 아니라 루시아의 군단이 주변 무리를 화끈하게 쓸어버리고 있었다.
기존의 마왕들은 깜짝 놀라 그녀에 대한 연합전선을 구축하는 형편이고 말이다.
마레를 완전히 정복하는 것은 시간문제로 보였다.
별다른 문제가 없는 한 그렇게 예상된다는 의미다.
“루시아는 나름대로 잘 해주고 있군. 그러면 우리도 일을 하자고.”
갈리스토를 박살 내는 데 있어서 자작극을 벌이거나 명분을 찾을 필요는 없었다.
두 나라의 관계는 이미 누가 공격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악화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배에도 문제가 없을 것 같았다.
현재 갈리스토엔 발가드의 후예가 많기 때문이다.
그를 내세운다면 통합은 의외로 쉽게 진행될 가능성이 높았다.
“판그랄 대공이 유일한 장애물인데… 어떻게 나올 것 같아?”
“이번에 마스터의 버릇을 고치겠다고 벼르고 있으므로 그냥 넘어가진 않을 거예요. 아마 미티어 스트라이크로 협박하겠죠.”
“정치력으로 해결하는 게 아니라 힘으로 짓누를 셈이군. 그럼 걱정할 필요는 없어.”
이쪽의 힘이 압도적으로 강하기 때문이다.
판그랄 대공이 그걸 깨달을 때쯤엔 갈리스토는 박살 난 후일 것이다.
레오볼드는 아르마에게 구체적인 지시를 내렸다.
그리고 얼마 후에 티렌델이 바그란에 진입하는 데 성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