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ctator From Outer Space RAW novel - chapter 49
영국도 금수조치를 당한 것은 마찬가지지만 그쪽 자동차기업은 폐허 상태였다.
게다가 EU 소속도 아니라서 상대적으로 부담이 덜했다.
그러나 프랑스는 최전선에 있었던지라 도저히 침묵하고 있을 상황이 아니었다.
뤼디 알레베크 프랑스 대통령이 직접 독일을 비방하고 나섰다.
―독일의 배신은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것이다. 독일은 유럽의 단결을 헤쳤을 뿐만 아니라 유럽의 안보에도 지워지지 않을 상처를 남겼다. 즉각 사과하고 문제를 해결하라!
이에 호응하듯 프랑스 유력 언론에서도 포문을 열었다.
대단히 원색적인 비난이 가해졌음에도 독일의 반응은 시큰둥했다.
―애초에 중국의 유혹에 빠져 적극적으로 나선 것은 프랑스였다. 우리는 똘똘 뭉쳐서 한 개인에게 압력을 가하는 것이 EU의 정체성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독일의 언론에서도 이에 호응해 양국은 치열한 말싸움을 벌였다.
완전히 격앙한 한 프랑스 방송국에선 당장 국경을 폐쇄해야 한다고 주장할 정도였다.
서로 날선 공격을 주고받다 보니 유구한 혐성의 역사가 빠질 수 없다.
―프랑스는 인류의 평화를 얘기하기 전에 아이티에 사과부터 하는 게 어떤가? 식민지를 근대화시킨 비용을 받아내겠다고 국가 예산의 80%를 뜯는 경우가 어디 있나?
―네놈들이 마지노선을 우회하는 일만 없었어도 세상은 더 평화로웠을 거다!
양국은 그 영향력만큼이나 전 세계에 끼친 민폐가 만만찮았다.
서로에게 공격을 퍼부으면 퍼부을수록 그게 자신에게도 돌아왔던 것이다.
이렇듯 EU의 실질적인 수장이라고 할 수 있는 두 국가가 싸우기 시작하자 그 영향력이 장난이 아니었다.
EU 집행위원회를 비롯해 이사회까지 거의 마비되었다.
이탈리아나 스페인이 나섰지만 어차피 공범이라는 북유럽, 동유럽 회원국들의 공세에 찍소리도 하지 못했다.
이렇듯 유럽 대륙이 불타오르는 와중에 영국은 조용히 특사를 파견했다.
하지만 신라그룹에선 그의 방문을 거절했을 뿐만 아니라 이런 성명까지 내놓았다.
―회장께선 앞서 내건 조건 중 단 하나라도 지켜지지 않는다면 만날 이유가 없다고 하셨습니다.
유지하 회장은 EU의 완전한 굴복을 원했던 것이다.
하지만 자존심 강한 EU 국가들이 그걸 쉽게 받아들일 수는 없는 일이었다.
각국 언론은 싸우다가 지쳐 잠시 휴전하고 이런 평론을 내놓았다.
―블랙메탈과 언옵테늄은 뼈아프지만 당장 치명타를 입진 않았다. 조금 더 지켜보자.
―스타필드가 내세운 이온빔 핵융합로는 블러핑일 가능성이 높다. 그 어떤 국가도 상용화 근처에도 가지 못했는데 2년 안에 그에 준하는 수준이라는 건 말도 안 된다.
―언제까지 EU에 금수조치를 취하진 못할 것이다. 미국이 보고만 있지는 않을 것.
그러거나 말거나 스타필드는 새로운 구상을 발표했다.
바로 달 개발 계획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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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여 명의 승객을 태운 차세대 발사체가 나로우주센터에서 솟아오른다.
이 발사체는 단 분리도 하지 않고 지구를 벗어나 곧장 달로 향한다.
달 궤도에 무사히 진입하기까지 걸린 시간은 고작해야 50시간.
이제 승객들은 달 궤도를 돌면서 로봇들이 언옵테늄을 채굴하는 과정을 지켜본다.
그리고 고요의 바다에 도착하자 제법 큰 우주기지가 그들을 반긴다.
로버를 이용해 달 극점의 얼음을 나르던 우주인이 승객들을 향해 손을 흔든다.
그리고 승객들은 우주기지에서 채굴한 헬륨3 캡슐이 발사체에 탑재되는 과정을 관람하고 지구로 돌아온다.
5일간의 달 여행.
이번에 스타필드가 내세운 달 개발 계획의 일부다.
지금 이곳은 서울의 한 컨벤션 센터로, 각국의 우주 관계자들과 관료, 우주에 관심이 많은 민간기업의 CEO들까지 초대되었다.
배제된 것은 중국과 독일을 제외한 EU 전체, 그리고 영국이다.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가운데 유지하는 천천히 재생되는 영상 앞에 섰다.
“지금까지 보신 영상은 향후 스타필드가 추진할 달 개발 계획, 통칭 문라이트 프로젝트입니다.”
“문라이트 프로젝트엔 방금 보신 모든 것이 포함됩니다. 헬륨3와 언옵테늄 채굴시설, 극지의 얼음을 채굴하고 정화하기 위한 시설, 그리고 화물을 실을 도킹선과 통신위성, 마지막으로 우주기지까지.”
유지하가 하나하나 언급할 때마다 커다란 화면에 정교한 CG 영상이 재생되었다.
하이라이트는 고요의 바다에 위치한 우주기지였다.
그것은 미국이 아르테미스 프로그램을 통해 계획한 것보다 몇 배는 컸다.
저게 과연 가능할까?
사람들 사이에서 의문이 커져가자 유지하는 새로운 발사체를 소개했다.
“소개하겠습니다. 5월에 쏘아 올릴 뉴 테라 발사체입니다. 기존 발사체에 비해 추력이 3배로 늘었고 사이즈는 작아졌습니다.”
“이 발사체는 유인 우주선으로 계획되었으며 다량의 화물을 실을 수 있습니다. 화물 1kg을 달까지 운반하는 비용은 200달러 미만입니다.”
원래의 520달러도 믿을 수 없이 저렴했는데 거기에서 더 낮춘 것이다.
이 정도면 본격적으로 달 개발을 시도해볼 단가가 된다.
관계자들의 얼굴에 환호가 떠오르는 한편 우주여행 상품을 비싸게 팔고 있던 미국의 민간기업들은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우주의 경계선이 고도 83km인지 100km인지를 가지고 최근까지 싸우고 있었는데···
이제 스타필드의 프로젝트가 가동되면 그런 것 따윈 아무런 의미가 없어진다.
유지하가 마지막이라며 소개한 것은 나로우주센터 주위의 우주인 훈련시설이었다.
“스타필드는 독자적으로 우주인을 훈련시킬 시설을 계획 중에 있습니다. 달 여행에 참가할 민간인도 속성이지만 이 시설에서 훈련받을 것입니다.”
“이 모든 계획을 추진하기 위해선 막대한 자금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한 가지 동의가 필요합니다. 지금 여기엔 달에 땅을 사신 분들이 제법 있는 걸로 압니다.”
몇 명이 헛웃음을 터트렸다.
실제로 달에 땅을 가진 사람이 제법 있다.
물론 그것은 아무도 인정하지 않는 허상에 불과했다.
직접 가지도 못하는데 종이쪼가리 따위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하지만 문라이트 프로젝트가 시작되면 이야기가 좀 달라진다.
유지하는 사람들 중의 한 명을 지목했다.
“빌 라이언씨, 제가 읽었던 기사에는 고요의 바다에 상당한 넓이의 땅을 사들였다고 되어 있었습니다, 맞습니까?”
미국의 사업가인 그는 웃음을 참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습니다. 1만 에이커가 넘는 땅을 서류상으로 보유중입니다.”
“어쩌죠? 스타필드의 우주기지가 그 땅을 침범하게 될 수도 있는데요.”
“어···만약 내 땅을 필요로 한다면, 무상으로 스타필드에 기증하겠습니다. 대신···”
“달 여행 예약 리스트에 빌 라이언이라는 이름을 첫 순위로 해두겠습니다.”
“바로 그걸 원했습니다.”
관객석에서 웃음이 터져 나왔다.
무시해도 상관없을 텐데 이렇게 나온다는 것은 그만큼 스타필드가 공정하다는 것을 보여준다.
중국과 유럽 국가들의 걱정은 모두 부질없었던 것이다.
이제 사람들은 유지하의 발언 하나, 행동 하나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문라이트 프로젝트는 단순히 달을 식민지화하는 계획이 아니었다.
“문라이트 프로젝트는 심우주 탐사를 위한 교두보일 뿐입니다. 이 대담한 프로젝트엔 많은 기술과 자금이 절실히 필요합니다···”
화면에 여러 우주기관과 민간기업의 이름과 심볼, 그리고 국기가 나타났다.
그러나 이번 사태를 일으킨 국가는 단 하나도 포함되어 있지 않았다.
테러에 대비하는 방법
EU의 반독점법 횡포 사건은 상당한 파장을 몰고 왔다.
결과적으로 무리수를 쓰긴 했지만 EU의 반독점법 적용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보는 견해는 별로 없었다.
신라에너지의 블랙메탈에 대한 독점적인 가공은 해석하기에 따라 반독점법을 적용할 구석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EU가 박살나자 미국은 조용히 반독점법을 적용하려던 생각을 접었다.
한국은 애초에 반독점법을 적용할 의사가 없었다.
법률도 허술하거니와 기껏 잘 나가는 기업에 찬물을 끼얹을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하여튼 EU의 반독점법 적용과 그에 따른 유지하의 대응은 여러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개인은 국가 앞에서 숙여야만 했는데 이젠 그것도 아니구나···
ㄴ유지하라서 그런 거지 보통은 어지간한 초기업들도 꼼짝 못함.
ㄴ과징금 좀 내고 말지 정부에 대항할 생각 못하지.
ㄴ크 국뽕 차오르네.
ㄴ근데 이거 주모 찾긴 좀 애매하지 않나 한국은 개입도 못했는데.
ㄴ개입하긴 했지. 유감 운운하면서.
ㄴ솔까 그 성명 신경 쓰는 나라 몇이나 됨? EU도 신경 안 썼을 걸.
ㄴ한국은 약한 건 아닌데 묘하게 존재감이 약함···
ㄴ왜냐면 주위에 더 쎈 놈들이 있거든. 중국, 러시아, 일본+미국···
ㄴ십라 동북아 완전 헬게이트네.
―근데 이젠 어케 되는 거임? 독일은 선빵 날려서 제재 해제됐고, 다른 유럽 나라는?
ㄴ기다리자는 쪽임. 핵융합하고 달 개발 계획 그거 블러핑이라고 생각하는 거 같음.
ㄴ만약 그게 블러핑이 아니면?
ㄴ개좆되는 거지 뭐···
―EU가 망하거나 하진 않겠지만 뒤쳐지는 건 확실하겠지. 남들 핵융합하고 달 여행가고 이러는데.
ㄴ아니 EU 지금 주가 빠지는 거 보면 충분히 망한 상태임. 이건 무슨 서브프라임 때보다 더 빠지네.
ㄴ그만큼 블랙메탈하고 언옵테늄이 중요하다는 거지~
―야 근데 핵융합에 달 개발에 진심 미친 거 아니냐? 아무리 천재라도 이거 다 하는게 가능하긴 해?
ㄴ소문에 의하면 신라그룹 서버에 진짜 루시아가 있다고 함.
ㄴ진짜 루시아 그건 뭐하는 거냐?
ㄴ인공지능 본체. 시중에 출시된 루시아는 기능이 엄청나게 제약된 열화판이라는 거지.
ㄴ와 그게 열화판이면 본체는 쩔겠네.
ㄴ농담으로 특이점 운운한 건데 그게 진짜 온 건가??
ㄴ어쩌면 진짜 왔을지도 모르지. 우리가 모르고 있을 뿐···
―님들 근데 유지하가 이거 다 하는게 가능햐나고 그러는데, 직접 한 건 별로 없음···
ㄴ그러네. 블랙메탈 배터리나 이온 추진기 이런 건 천재라서 한 건 아니잖아. 그런 능력을 가지고 있었던 거지.
ㄴ드론 알고리즘이나 루시아가 진짜인데, 유지하 이쪽으로 유명하지 않았나?
ㄴ한국에서 조금 유명세를 탔던 거하고 세상을 선도하는 건 완전히 다르지.
―루시아가 진짜 강인공지능이면 어케 되는 거임?
ㄴ어케 되긴 뭘 어떻게 돼 루시아 만세! 저를 노예로 삼아주세요 해야지.
ㄴ인공지능이 지배하는 세상, 그건 어떤 것일까?
ㄴ루시아가 하는 거 보면 의외로 합리적일 수도?
ㄴ합리적으로 인간들 다 갈아버릴 수도 있음. 안드로이드가 대체할 수 있다면서.
ㄴ야 이거 기술발전 흐름이 갑자기 가속화된 느낌이 드는데?
ㄴ유지하 얘 진심으로 외계인 평행세계인 미래인 중에 하나인 게 분명함.
ㄴ전에는 평행세계인 미래인만 있었는데 외계인이 늘어났네.
―그나저나 지금 유지하 적이 어디어디냐? 너무 많이 만들었는데.
ㄴ독일 제외한 EU 전체, 중국 전체. 인구수만 16억이 넘음.
ㄴ세계의 2할을 적으로 돌렸네···
ㄴ유지하가 돌린 건 아니지. 그냥 지들이 뻘짓하다 쳐맞고 징징거리는 것뿐.
ㄴ진심으로 유지하 암살당하는 거 아니냐? 유럽은 그나마 선을 지키는데 중국 얘네들은 무슨 짓을 할지 걱정되는데.
ㄴ지금쯤은 국정원 요원들이 지키고 있을 걸? 사설 경비원도 있을 거고.
ㄴ아니 그냥 중국이 미친 척하고 핵미사일 날리면 끝장이잖아···
ㄴ그러면 전쟁하자는 거지. 미국 핵우산 가동임.
ㄴ북한은 모르겠는데 중국에도 핵우산이 가동될까? 난 좀 회의적인데.
ㄴ그렇지···서울 대신 뉴욕을 희생할 수 있느냐에 대한 질문이니까.
ㄴ아무리 그래도 핵무기를 쓰는 건 선 넘었는데.
ㄴ그리고 중국은 지금 눈이 완전히 뒤집혀져 있는 상태임. 중국 기자놈 쌍욕하면서 끌려 나가는 거 봤잖아.
ㄴ불매운동이 신라그룹에 안 먹히는 걸 아니까 한국 전체에 한다고 난리일 걸.
ㄴ진짜 이거 어떻게 해야 되냐 깝깝하다···
―난 진지하게 유지하가 대통령 한 번 했으면 좋겠음.
ㄴ이제 서른 넷인가? 6년 남았네.
ㄴ십라 그때까지 언제 기다리냐 우리는 핵맞을지도 모르는데.
ㄴ유지하면 핵무기 대처방법도 있지 않을까? 무슨 레이저 같은 걸로 요격해서.
ㄴ레일건도 뚝딱 만들었으니 모르는 일이긴 해. 그거 미군도 스펙 듣고 놀랐다던데.
ㄴ어떤 놈이 또 미군에 스펙 흘렸냐?
ㄴ어거지로 한국 해군이 초대해서 이온 추진기 시연도 보고 갔다는데.
ㄴ러시아 트위터에 이온 추진기 사진 올라와서 그런 거임. 왜 줬냐고 지랄했겠지.
―난 대통령 말고 걍 인공지능 이용해서 한국을 지배했으면 좋겠음. 신라그룹 본사에 루시아 본체 있다며.
ㄴ드디어 미쳤구나 니가.
ㄴ아니 루시아 말 듣다 보니까 그런 생각이 듬. 이 좆같은 나라는 완전히 썩었으니까 싹 뒤집어 엎어야 된다고.
ㄴ독재는 함부로 입에 올리는 게 아님. 국민이 권력을 갖기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데.
ㄴ그 권력으로 뽑아준 새끼들이 죄다 쓰레기에 빡통이잖아. 뭐가 달라졌는데?
ㄴ루시아로 체크해 보니까 국회의원들 여야 할 것 없이 죄다 공염불에 헛소리만 하고 있잖아. 이 새끼들 진지하게 나라에 도움 되긴 하는 거임?
ㄴ이번에 대통령이 은행 금융망에 루시아 도입하는거 검토한다니까 기업이고 국회의원이고 전부 반대하더라. 뒤가 구리다는 소리 아니냐 이건.
ㄴ전부 뒤집어서 중형 때렸으면 좋겠다.
ㄴ우리나라 경제사범에 되게 관대함.
ㄴ그러니까 루시아가 판사 역할까지 해야 된다고. 분심위에 루시아 도입되고 보험사 새끼들 더 이상 7:3 이지랄 못하잖아.
예전과는 분위기가 많이 달라졌다.
독재 하면 치를 떨던 이들도 소극적으로 변했다.
너도나도 루시아를 가지고 있으니 팩트 체크가 쉬워졌고 그만큼 지저분한 사회상을 마주보게 되었기 때문이다.
―어차피 나라 망하게 생겼는데 독약이라도 가능성은 보이니까 밀어주자는 거지. 일단 살리고 봐야 할 거 아냐.
이런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소수였지만 크게 비판하는 사람들도 없었다.
그만큼 분위기가 바뀐 것이다.
그리고 그 무렵 유지하는 청와대의 주인과 만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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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처럼 만난 조형근 대통령은 거의 10년은 늙어버린 듯했다.
이마의 주름과 희미하게 뿜어내는 담배연기에서 그간의 고생이 보였다.
하긴, 취임하자마자 EU와의 마찰에 온갖 사건이 터졌으니 오죽하겠나.
실질적으로 그가 한 것은 없지만 대통령이란 자리엔 온갖 부담이 가해진다.
그는 의자에 머리를 기대고 눈을 감고 있다가 떴다.
“···미국 국무장관에 EU 사무총장에 중국 국무위원에 프랑스 대사에···대체 몇 명을 더 만나야 이 난리가 끝날지 모르겠어요.”
“미국을 제외하곤 분명히 만나지 않겠다고 했는데 못 알아들은 모양이군요.”
“유 회장이 만나주질 않으니까 나한테 오는 거 아니겠습니까?”
“그래서 어떻게 말씀하셨습니까?”
“별거 없지요. 대충 둘러대며 시간만 보내다 일어서는 겁니다. 정치인들은 말 돌리는 데는 아주 선수거든.”
여기까지 말한 조형근 대통령은 자세를 바로 했다.
“유 회장, 2차 세계대전이 어떻게 일어났는지 압니까?”
“미치광이 히틀러 때문이란 답을 원하는 건 아니실 테고···설마 베르사유 조약?”
“맞습니다. 1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승전국들은 독일에 엄청난 배상금을 물렸죠. 제재도 대단했고···그리고 그 결과 독일인들은 승전국들에 대한 증오심을 불태웠죠.”
“EU를 풀어주란 말씀이시군요.”
“···중국도 포함해서입니다. 과한 제재는 반발심을 불러올 뿐입니다. 그건 인류의 역사가 증명해요. 내가 유 회장의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16억을 적으로 돌려서 뭘 어쩌겠단 말입니까.”
이 양반에게 이런 면모도 있었구나.
유지하는 조형근을 불독 정도로 보고 있었는데 확실히 정치인은 조금 다른 모양이다.
아니면 자리가 사람을 만드는 것일지도 모르고.
“그러니까 EU와 중국에 고개를 숙여라?”
“고개를 숙이란 말은 안 했어요. 저쪽이 숙이고 들어올 때가 있을 테니 적당히 받아줘도 되지 않겠냐는 거지. 물론 모든 결정은 유 회장이 하는 거지만, 현실적인 문제를 지적하지 않을 수 없지요.”
“어떤 현실적인 문제입니까?”
“···테러.”
조형근 대통령은 그 말을 하고 나서 목이 탔는지 물을 조금 마셨다.
“유 회장은 모르겠지만, 최근 공군 긴급출격이 많이 늘어났어요. 정확한 수치는 말 못하지만, 거의 두 배로 늘었습니다.”
“중국 공군기 때문이겠군요.”
“이놈들이 우리 공군기체 수명을 줄이려고 이 난리인지 의심이 될 정돕니다. 그나마 동해 쪽이 깨끗해서 다행이지만.”
푸틴 대통령이 엄명을 내렸을 테니 당분간 동해는 일본을 제외하면 조용할 것이다.
하지만 그게 끝은 아니었다.
“중국 여론이 지금 장난이 아닙니다. 공산당은 여러 파벌로 나뉜 상태지만, 군은 여전히 강력하고 인민들은 유 회장에 대한 증오로 불타오르고 있죠. 그걸 어떻게 감당합니까? 지구 반대편이면 모를까, 바로 옆인데.”
“보통은 그런 걸 적반하장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납치까지 시도한 마당에 오히려 화를 내다니요.”
“그게 강국이 가진 특권이지. 불행히도 우리는···강국이 아닙니다.”
“그래서 하고 싶은 말씀은?”
조형근 대통령은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
“당장 중국에 대해서 유화책을 쓰라고는 안 하겠습니다. 하지만 EU에 손을 내밀어서 감정을 조금 가라앉힐 필요는 있어요. 우리와 얽힌 게 너무 많아.”
“대통령님, 한 말씀 드려도 되겠습니까?”
“분명 내 의견에 반하는 발언이겠지. 들어나 봅시다.”
“굳이 우리가 나설 필요까진 없습니다. 저쪽도 기다리고 있을 테니까요.”
“우리가 실패하기를?”
정확히는 내가.
유지하는 그걸 내색하지 않고 말했다.
“이온빔 핵융합, 달 개발 계획···누가 봐도 무모하다고 생각할 만하죠. 실제로 리스크가 크긴 합니다. 저들은 그 실패를 기다리고 있는 겁니다.”
“내 듣기로 절대 실패하지 않는다는 소리처럼 들리는데, 맞습니까?”
“절대까진 아니지만 확신이 있습니다. 급한 건 우리가 아닙니다. 독일에 상용 핵융합로가 들어서면 프랑스가 보고만 있을까요?”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뒤집어지겠지.
프랑스인들의 자존심은 대단해서 독일이 가진 건 우리도 가져야 한다고 외칠 것이다.
“···EU는 그렇다 치더라도 중국은 어쩔 겁니까? 그렇게 선언을 해버렸으니.”
“저쪽이 진지하게 사과하고 재발방지 약속하면 이야기를 해볼 수는 있겠죠. 직접적인 거래는 힘들더라도 3국으로 우회하는 건 안 막겠습니다.”
“정말입니까?”
물론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중국은 인류연합의 옆에 있기에 너무 크고 위험했다.
생존법은 단 하나, 갈기갈기 찢어져서 여러 중국으로 나뉘어 사는 것뿐이다.
아르마는 그걸 위해 지금도 공작을 계속하고 있었다.
괜히 파벌이 갈린 게 아니다.
조형근 대통령은 한시름 놨는지 담배를 빼물었다.
“난 말입니다, 요즘 아침에 일어나면 살아있긴 하구나 한숨부터 내쉬어요.”
“중국이 핵미사일을 날릴까 걱정되십니까?”
“미친 장성 하나가 미친 짓을 저지를 줄 누가 압니까? 그나마 유 회장이 유화적으로 나온다니 다행이지만.”
아르마가 그렇게 못하도록 막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