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rector Lee Saengmang Kim blooms at Moorim RAW novel - Chapter 110
110화
믿는 도끼가 노리는 건 항상 누군가의 발등이다.
용하의 갑작스러운 태도 변화에 인공의 뇌리를 빠르게 스치는 말이었다.
“형님, 제발 그만! 그만하십시오. 제가 잘못했습니다. 진심으로 사과드릴게요.”
계속되는 용하의 성화는 인공을 어리둥절하게 만들 따름이었다.
“왜 자꾸 그래? 새삼스럽게. 넌 인마 항상 나한테는 사과할 짓만 하고 살았어. 하지만 이건 아니잖아.”
“욕을 해도 좋고 비난을 해도 좋으니, 제발! 제발 좀 멈추십시오. 그만하시라고요.”
인공의 말에 용하가 할 대답은 이런 게 아니었다. ‘제가 또 언제 그랬다고. 쓸데없는 소리 집어치우고 당장 그만두세요!’ 뭐, 이런 게 용하에게 어울리는 반응이었다.
그래서 처음엔 그냥 가볍게 하는 소리라 여겼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는지, 용하의 성화는 바람에 떠밀리는 파도와 같이 커져만 갔다. 그제야 심각성을 깨달은 인공의 얼굴에 장난기는 온데간데없이 사라지고, 언제 그랬냐는 듯 순식간에 표정이 달라졌다.
긴장감과 결연함이 교차하는 인공의 얼굴에 불현듯 그늘이 드리워졌다.
“그러니까, 갑자기 왜 그러느냐고? 아까 국밥집에서는 절대음감까지 들먹거리며 그 난리를 치더니, 왜 별안간 하지 말라는 거냐고.”
그러니까 인공의 말은, 하라니까 그냥 했다는 것이다. 나이도 한참 어린 용하의 말이 대체 뭐라고. 그 말이 용하의 심장을 건드려 갑자기 눈물이 차올랐다.
“제가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사실이 있습니다.”
용하의 표정으로 보아, 상황의 심각성은 확실해졌다.
“네 녀석 얼굴 보니, 미처 내게 하지 못한 말이 남아 있다는 표정이구나.”
“말씀을 못 드린 게 아니고, 저도 조금 전에 알게 됐습니다.”
“조금 전에 알게 됐다?”
“네, 형님. …죄송합니다.”
“무엇을 알게 됐다는 건지, 꾸물거리지 말고 냉큼 말해 보아라.”
인공의 말처럼 냉큼 할 말은 아니었다. 꾸물거리며 조심스럽고 신중하게 대답해야 했다.
“형님! 한 가지만 약속해 주십시오. 절대 화낸다거나 이성을 잃는다거나 하지 않겠다고.”
용하가 이유 없이 뜸 들이며 말을 이리저리 돌리는 게 더욱 치밀어 오르게 했다.
“너! 그러니까, 더는 부아 돋우지 말고 어서 말을 하라잖아.”
지금까지 들어보지 못한 카랑한 목소리였다. 아니, 찢어질 듯한 목소리라 해야 옳을 최악의 고성이었다. 용하는 몇 차례 헛기침으로 목청을 가다듬고는 무슨 극비라도 누설하듯 은밀하게 입을 열었다.
“형님……. 형님이 다림질 냄새라고 한 거 말입니다.”
“그게 뭐? 난 그냥 코에서 느끼는 대로 말했을 뿐인데, 뭐 잘못되기라도 했다는 것이냐?”
“그 냄새가 실은…….”
“실은 뭐? 뜸 들이지 말고 어서 이실직고하지 못하겠느냐?”
“그게 실은… 드라이클리닝 냄새였던 것 같습니다.”
“드라이클리닝 냄새?”
인공은 얼핏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고는.
“그 멋쟁이들 양복에서 나는 냄새 말하는 것이냐?”
“네, 바로 그 냄새.”
“그런데 그게 뭐 그렇게 대단한 일이라고 호들갑을 떤 것이냐?”
줄곧 신중한 목소리를 내는 용하. 반면 인공은 아직 상황 파악이 안 된 듯 보였다.
“그게 말입니다. 드라이클리닝에 사용되는 유기용제들이 실은 발암물질입니다.”
“발암물질?!”
인공이 다소 놀란 기색으로 되물었지만, 용하는 그의 반응을 살피기에 바빴을 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럼 혹시 말이다. 그 냄새 맡으면 바로 죽기라도 한다는 것이냐?”
“아뇨. 그런 건 아니지만, 자꾸 맡으면 언젠가는…….”
“그러면 됐다. 이 나이에 내가 살면 얼마나 더 살겠다고 몸을 사리겠느냐. 지금은 무엇보다 트럭을 찾는 게 급선무일 것 같구나.”
인공의 말에 용하는 참고 참았던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형님…….”
“약한 모습 보이지 말아라. 버릇된다.”
“…….”
“그건 그렇고, 그 드라이클리닝인가 뭔가 하는 냄새가 왜 나는 것이냐?”
“아직 거기까지는 모르겠습니다. 처음엔 그냥, 아무래도 시공간 이동체가 기계의 일종이니 기름 냄새가 날 거라는 추측에서 시작했는데, 왜 기계에서 유기용제 냄새가 나는 건지…….”
사실 용하의 계산이 그리 잘못된 것만은 아니었다. 무림! 그 가운데에서도 용하가 도착한 지금은 14세기 중세. 21세기와 비교하면, 하늘과 땅이 열린 태초의 지구라 해도 무방할 만큼 자연환경이 고색창연하다. 어디를 가나 맑은 공기는 물론, 푸르른 산천이 고스란히 간직된 채 말이다. 그런 곳에 시공간 이동체의 연료로 사용되었을 휘발유나 경유 냄새가 공기 중에 떠다닌다면, 어떤 냄새보다도 강렬하고 멀리 날아갈 것이다.
용하는 그것을 단서로 시공간 이동체의 변신인 트럭을 찾아볼 작정이었다. 그런데.
‘발암물질이라는 복병이 있을 줄이야.’
바로 그 순간 용하의 뇌리에 불현듯 무엇인가 스쳤다. 물론 실현 가능성에 대해선 장담할 수 없지만 말이다. 지금 용하의 머릿속을 가득 채우는 건 다름 아닌, 고색창연한 여기 무림의 무한한 자원이었다.
“형님! 만약에 말입니다. 아주 만약에 우리가 들짐승을 잡아서 길들일 수 있을까요?”
“들짐승을 길들이다니, 왜 목숨을 담보로 그런 무모한 짓을 해야 하는 것이냐?”
“아 글쎄, 묻는 말에 대답이나 하세요. 목숨을 담보하든 지랄을 하든, 그게 가능할까요?”
용하의 말투가 거칠어지는 것으로 보아, 뭔가 음모를 꾸미려는 게 분명했다.
“야, 김용하! 너 무섭게 왜 그래, 인마! 난, 네 녀석 그런 말투나 눈빛 보면 무섭더라.”
“자꾸 전투력 떨어뜨리지 말고 묻는 말에다 대답해 보세요.”
지금 용하가 보이는 태도는, 의견을 제시하고 수렴하겠다기보다는, 무례하고 일방적이었다. 찬 기운이 감도는 것을 알면서 냉장고를 더 세게 틀 바보는 없을 것이다. 인공은 한걸음 물러서며 용하의 차가운 기운에 온기를 불어넣기라고 하듯 온화한 목소리로 물었다.
“용하 자네가 무슨 생각으로 그런 질문을 하는지 이제야 좀 알 것 같구나. 그래, 이를테면 어떤 들짐승을 말하는 것이냐? 전투에 사용하려는 것은 아니니, 온순하면서 말을 잘 듣는 뭐, 그런 들짐승이 필요한 거겠지?”
울화가 치밀어도 꾹꾹 누르며 유화책을 썼음에도, 용하의 태도는 좀처럼 달라지지 않았다.
“그냥 대답이나 하시라니까요.”
폭발 직전의 힘을 억지로 꾹꾹 누르면 반발력이 거세져 에너지만 커질 뿐이다. 그런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용하는 변함없이 강압적이었다.
“뭐, 들개나 멧돼지 정도면 어떻게 해보겠지만, 그보다 더 사나운 맹수는…….”
“그 문제라면 걱정하지 마십시오. 우리에게 필요한 가장 사나운 들짐승이라고 해 봤자, 개나 멧돼지가 전부일 테니까요. 형님 말씀대로 개나 멧돼지를 잡아서 길들입시다.”
“그것들은 길들여서 무엇에 쓰게. 여기 무림에서 멧돼지는 그저 배나 든든히 채우는 양식일 뿐인데.”
“아뇨, 우리에게는 형님을 대신해서 시공간 이동체를 찾아 줄 반려동물이 돼 줄 겁니다.”
누가 들어도 기가 막힌 발상임은 틀림없었다. 하지만 인공은 한동안 고민에 빠졌다. 여러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다양한 상상을 해보느라, 미간을 좁히기를 수차례나 반복하며 말이다.
“용하야! 그런 용도로 들짐승을 사냥할 거라면, 차라리 저잣거리에 나가 개를 한 마리 사는 게 낫지 않겠느냐?”
“저잣거리에서 개를 팔까요? 여기 사람들에게 개가 무슨 소용 있다고.”
“아, 왜 없겠어? 모름지기 개는 최소한 2만 년, 아니 그 이전부터 사람의 친구였다고 하지 않더냐.”
“그러면 혹시 이미 길이 잘 들여진 개도 구할 수 있을까요?”
“아, 돈만 있으면 뭐든 못 구하겠어? 내가 보기엔 여기 무림도 21세기 못지않은 자본사회로 보이는데.”
“형님! 저잣거리로 가시죠. 돈으로 할 수 있는 걸 가지고, 어리석게도 형님의 명을 재촉할 뻔했습니다.”
인공의 생각은 들어보지도 않고, 이미 용하는 저잣거리를 향해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저기…….”
용하를 불러 세우려다 말고 잠시 생각에 잠기는 인공. 하지만 그것도 잠시.
“용하야! 잠깐만. 야, 김용하! 너 거기 안 서.”
그리고 한 시진 남짓 시간이 흘렀을 때였다. 용하와 인공, 두 사람은 저잣거리를 한복판을 서성거리며 매대를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구경하고 가세요~”
“필요한 게 뭐죠? 말씀만 하세요.”
“뭐든 말씀만 하세요. 서역국을 뒤져서라도 구해다 드리겠습니다.”
용하는 호객행위를 하는 장사치 가운데 가장 적극적인 한 사람에게 물었다.
“혹시 개도 팝니까?”
“개? 개라면 어떤 개를 말씀하시는 건지…….”
“어떤 개라니요? 그 말씀은…….”
“거, 왜 있지 않소. 이를테면 품종이라든지, 수놈을 찾는 건지 암놈을 찾는 건지, 뭐 그런 것들 말입니다.”
“아뇨, 무엇이 됐든 상관없습니다. 그냥 냄새 잘 맡고 사람 말 잘 들으면 됩니다.”
“아, 개야 사람 말 다 잘 듣죠. 그러라고 먹여주고 재워주는 건데. 사람 말 안 들었다가는 어디 쌀 한 톨이라도 얻어먹을 수 있겠소? 그건 그렇고…….”
한창 잘도 떠들어대던 장사치가 무슨 이유에서인지, 갑자기 말문을 닫으려 했다.
“그건 그렇고, 뭡니까? 속 시원히 얘기해 보세요. 뭐든 괜찮으니까.”
아무리 어르고 달래도 장사치는 눈치만 볼 뿐, 좀처럼 입을 열 기미는 보이지 않았다.
“혹시 얼마를 쳐 줄까, 뭐 그런 염려 때문입니까?”
용하가 넘겨짚고 한 말에, 장사치가 마침내 반응을 보였다.
“아, 그게 말입니다. 아주 귀한 물건이 하나 있는데, 얼마를 받아야 할지 몰라서요.”
“불러 보시오. 내가 만들 수 있는 돈이라면, 얼마든지 지급할 테니.”
“얼마든지? 지금 얼마든지 값을 치르겠다고 했습니까?”
“아, 그렇다잖소.”
장사치는 여전히 풀리지 않은 의심을 감추지 못했다.
“음, 그게 혹시 얼마일까요? 그쪽이 생각하는 그 얼마든지 지급하겠다는 금액이…….”
“그 말은 내가 할 소리인 것 같소이다. 대체 생각하고 있는 금액이 얼마요?”
“아, 물론 물건값이 얼마인지 묻는 건, 당연히 손님 몫이 맞습죠. 그런데 지금 이 거래는 좀 특수한 상황이라.”
그 순간 용하는 장사치가 보통내기가 아니라는 걸 직감했다.
‘이 작자! 수가 장난 아니다. 내가 너무 쉽게 본 건가?’
용하는 느슨했던 긴장감을 조이며 장사치와 맞설 마음의 준비를 새롭게 했다.
“제가 말씀드린, 그러니까 제게 필요한 개라는 확신만 서면 부르는 대로 드리겠습니다.”
용하의 대답에 의구심이 생겼던지, 장사치는 곱지 않은 눈으로 수차례나 용하를 아래위로 훑어보았다. 장사치가 보내는 의심의 눈초리를 용하가 눈치 못 챘을 리 없었다. 무엇이 됐든 손을 써야 하는 순간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
‘지금 장사치를 움직일 수 있는 건 딱 하나다.’
그것이 무엇인지 알면서도 선뜻 내놓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나는 지금 그것을 보여줘야 한다.’
장사치의 마음을 사로잡으려면 용하에게 시간이 필요했다.
‘이 작자, 과연 나에게 시간을 줄 만한 아량이 있는 자일까?’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렇다고 해서 이렇게 망설이고만 있을 때는 아니었다. 그 순간 때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말로만 그러시지 말고 판돈을 걸어 보십시오.”
“판돈! 얼마든지 걸 수 있소. 하지만 예상치 않은 일이니, 반 시진 후에 다시 만나 이 도박 마무리 지읍시다.”
“반 시진 뒤?”
시간을 확인이라도 하듯 장사치가 간략하게 되물었지만, 용하는 달리 어떤 대답으로도 그에 응하지 않았다. 그랬음에도 장사치는 용하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다. 비록 군더더기는 좀 많았지만 말이다.
“뭐, 그럽시다. 우린 서로에게 꼭 필요한 것을 하나씩 가졌으니, 약속이 깨질 리도 없는데. 반 시진이면 어떻고 한 시진이면 어떻겠소.”
장사치에게 먹히지 않을 제안이란 없었다. 용하 못지않게 이번 거래를 놓치고 싶지 않기는 장사치도 마찬가지였으니까.
“좋소! 정확히 반 시진 후에 예서 보도록 합시다.”
간절함이 짙게 묻어나는 용하의 목소리는 장사치에게 확신을 심어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