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rector Lee Saengmang Kim blooms at Moorim RAW novel - Chapter 13
13화
세 사람이 객잔 안으로 걸음을 내디디려고 할 때였다.
수문장이 세 사람의 앞을 막아섰다. 전혀 예상치 않았는데 말이다. 그러고는 느닷없이 팔! 이라고 외쳤다.
“팔?”
“팔이 무엇인지 모르시오?”
“그, 그럴 리가?”
“그런데 어인 일로 되묻는 것이오?”
“팔이 무엇인지 몰라서 묻는 게 아니라, 팔을 왜 보자는 것인지 그것이 궁금해 그렇소.”
“뭘 그렇게 일일이 알려고 드는 것이오? 나쁜 거 아니니 어서 팔 내놓으시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무림에서 이유도 모른 채 팔을 함부로 내놓을 순 없는 일이오.”
대체 믿는 구석이 무엇인지, 인공은 수문장과 팽팽하게 대치했다.
수문장은 고집스럽게 다시 외쳤다.
“팔!”
막무가내였다. 수문장의 뚝심에 기가 얼마나 빨렸던지, 인공은 더는 저항을 못 하고 급기야 팔뚝을 찔끔 내밀었다.
“사람이 소심하기는…….”
승리라도 맛보는 것인가. 수문장은 조금 전보다 더 무뚝뚝하게 중얼거렸다.
그러고는 인공의 팔뚝에 감색 천을 묶어 주며 득의양양 말했다.
“됐소, 이 매듭을 절대 풀지 마시오!”
그 광경을 넌지시 지켜보는 용하는 불현듯 생각했다. 뭐야, 삼거리포차도 아니고.
인공은 제 팔에 묶인 감색 천을 요리조리 살펴보며 의아해서 물었다.
“이게 다 무엇이오?”
“아, 그거요? 간혹 예고 없이 객잔에서 아주 특별한 행사가 벌어지고는 한답니다.”
“특별한 행사? 객잔에서 말이오?”
마른침을 삼키며 묻는 인공의 목소리는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다.
구미가 당기는 기색이 역력한 인공의 반응 탓인지, 수문장은 조금 전보다 더 득의양양해서 대답했다.
“그런 게 있으니 잠자코 기대나 하십시오. 혹시 압니까? 운 좋으면 객잔에 묵는 동안 행사가 있을지.”
“운 좋으면? 그 말인즉 좋은 일이 있을 거라는 얘긴데, 대체 얼마나 좋은 일이길래 이리 뜸을 들이는 것이오?”
“아이참, 보기엔 둔해 보이는 양반이 찰떡같이 알아들으시네! 여러 말씀 마시고 뜸 들일 만해서 이러는 것이니 기대하십시오.”
인공이 짐작으로 한 말에, 그러니까 한마디로 찍은 답에, 수문장은 쾌재를 질렀다. 그뿐 아니라. 킥킥거리며 뒷말까지 잊지 않고 전했다.
“잘하면 좋은 인연을 만날 수도, 홋.”
인공의 궁금증은 더욱 증폭했다. 사실 궁금증이라기보다 기대감이었다. 그건 용하와 장설도 마찬가지였다.
“어허, 객잔의 문지기가 객을 농락하려는 것이오? 어서 속 시원히 대답해 보시오.”
작은 체구에 구부정한 장설이 외모와는 달리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호통치듯 말하자 수문장은 기가 질려 대답했다.
“그, 그게 말입니다. 저잣거리 주점의 여인네들이 불시에 찾아와 객들과 함께 마당놀이를 펼치는데, 그때 짝을 제대로 맺어 주려면 각기 다른 색상의 천을 손목에 묶어 놓아야 합니다.”
수문장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이었다. 장설을 필두로 용하조차 어느새 소매를 걷어 수문장을 향해 팔을 불쑥 내밀고 있었다. 그 순간 체면이고 부끄러움이고, 그런 건 중요하지 않았다.
“그러니까 자네 말은 누가 될지는 모르지만, 같은 색상의 천이 묶여 있는 여인과 짝이 된다, 이 말이렷다.”
“맞습니다. 어쩌면 그렇게 찰떡같이 알아들으십니까?”
* * *
객잔에 기거한 지, 날 수로 하루가 지났다.
“이제 어떻게 할 생각이시오?”
안색이 온통 근심으로 얼룩진 인공이 장설에게 물었다.
“호들갑 좀 떨지 마시오. 어차피 엎질러진 물이 아니오.”
“엎질러진 물이라니, 지금 그게 할 소리란 말이오? 어떻게든 살 궁리를 해야 하지 않겠소.”
옆에서 인공과 장설의 대화를 듣고 있는 용하는 한숨밖에 나오지 않았다. 나 원 참, 세상에 이런 꼰대들을 봤나. 보다 못한 용하가 무슨 말인가 하려고 허파에 잔뜩 바람을 채웠을 때였다.
“거, 애들처럼 징징대지 좀 마시오. 이 문제는 내가 알아서 할 터이니, 모든 걸 내게 맡기고 인공께선 걱정 내려놓고 푹 쉬면 되는 것이오.”
장설이 한 말이었다.
“사람이 어찌 그럴 수 있단 말이오. 우리가 원해서 이리된 건 아니지만, 어쨌든 우리는 언제부터인가 공동체 운명이 되지 않았소.”
“공동체 운명?”
공동체, 그 말 한마디가 장설의 가슴 속을 울렸다. 그래서였을까, 분위기는 숙연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마른침을 삼키며 장설이 말했다.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그냥 이 장설의 초대를 받았다, 생각하시고 푹 쉬면 될 것이오.”
장설의 말에 인공은 솔깃해서 물었다.
“지금 이 위기를 비껴갈 무슨 방도라도 있으신 게요?”
살랑거리는 모양새가 누가 봐도 아부가 짙었다. 장설은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혹시 뭘 좀 먹어도 되겠소. 이 집 음식 맛 좀 봤으면 하는데.”
인공의 제안에 장설은 냉담했다.
“그것은 아니 됩니다.”
“아니, 왜요? 그깟 음식값이 몇 푼이나 한다고 인색하게 구는 것이오. 비싼 숙박비를 한 방에 해결할 수 있는 양반이 이깟 탁배기 몇 잔에, 전 몇 조각 가지고, 이리 야박하게 굴어서야 원.”
“어허, 아니 된다는데도 고집을 부리시는구려.”
입을 틀어막는 듯한 장설의 단호함에 인공은 수그러졌다.
“쓸데없는 생각일랑 집어치우고, 객주나 예로 오라 하시오.”
“아니, 장설 씨! 거, 자꾸 사람을 가방모찌 대하듯 하지 마시오. 나도 한 사찰의 주지로서 가호가 있는 사람이라오.”
무엇이 그리도 인공의 자존심을 상하게 했는지 모르겠으나, 그는 눈에 띄게 삐죽대며 주억거렸다.
“아, 내가 본의 아니게 자존심을 건드렸나 보구려. 언짢았다면 사과하리다. 하지만! 지금은 좀 그래도 될 만한 상황이지 않소? 내가 총대 멨으니.”
장설답지 않게 알량함을 드러냈다.
인공이 수문장을 불러 객주를 보자고 청했다. 수문장이 흔쾌히 그러겠노라 대답한 후 물러가고 그리 길지 않은 시간이 흘렀을 때였다. 세 사람이 묵은 방으로 이어지는 복도를 은빛 연꽃이 새겨진 비단으로 지은 도포를 두른 자가 바람을 일으키며 지나갔다. 객주였다. 이윽고 객주가 세 사람 앞에 모습을 나타냈을 때였다.
딸꾹!
객주를 본 인공의 반응이었다.
‘저 눈빛! 그럼 그렇지. 내 처음부터 저 눈빛, 어디서 본 적이 있다 했더니…….’
비로소 객주의 정체를 알아본 인공이, 지금부터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를 고민했다. 그의 고민은 그리 길게 가지 않았다.
‘그래 일단 모른 체하고 지켜보자.’
이렇게 결심한 인공은 시치미 떼고 상황을 관망했다. 하지만 그의 그런 알량함은 금세 속내를 드러낼 뿐이었다.
‘흠, 이제야 날 알아본 모양이군. 그럼 뭐 해? 지가 그래 봤자 어쩌겠어? 생각이 있으면 설마 아는 체하겠어?’
객주는 눈에 띄게 능청을 떨며 세 사람 앞에 섰다. 그리고 이번 게임의 승자라도 되는 듯 도도하게 말했다.
“누가 나를 찾으셨습니까?”
장설이 객주의 앞에 나서며 대답했다.
“제가 좀 뵙기를 청하였소.”
“무슨 일로 나를 보자고 한 것입니까?”
“뭐 한 가지 물어볼 것도 있고, 숙박비도 해결해야겠기에 좀 보자고 했소.”
“오, 숙박비를 치르시겠다! 알겠소. 그래, 궁금한 것이 무엇입니까?”
객주는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빈정거렸다.
“숙박비를 산정할 때 말이오. 하루 묵으면 얼마, 이틀 묵으면 얼마! 뭐, 이런 방식으로 계산하지 않소?”
“잘 알고 계시면서 그런 건 왜 물으시는 겁니까?”
객주의 대답에 장설은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다시 말해 이런 표정은, 전장에서 유리한 고지를 점령했을 때의 표정이다. 조금 전 잔뜩 긴장했던 표정과는 눈에 띄게 다른.
“한 가지만 더 묻겠소. 하루를 정하는 기준은 무엇인 게요?”
“정말 몰라서 묻는 겁니까? 여기서 하루라는 건 열두 시진(24시간)이 아닙니까?”
“아, 그렇군요. 고맙소이다.”
비로소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으며 떠날 채비를 하는 장설.
“그럼 우리는 이만 가 보겠소.”
“가는 건 상관하지 않겠습니다. 숙박비는 정확히 치르고 가십시오.”
“숙박비를 정확히 치르라니, 그게 다 무슨 소리요? 숙박비 나온 게 없는데 무슨 숙박비를 치르라는 것이오.”
“뭐라! 숙박비 나온 게 없다?”
“방금 객주께서 말씀하시지 않았소? 숙박비의 정산 기준은 하루라고.”
“물론, 그리 말했습니다.”
“그뿐 아니라, 하루는 열두 시진이라고도 말한 것으로 기억하는데, 아니시오?”
“그 또한 그리 말했습니다.”
“그런데 왜 물러설 기미를 보이지 않는 것이오?”
“뭣이라! 보자 보자 하니까…….”
“아직도 이해가 안 되었단 말이오. 거, 장사하는 사람이 머리가 왜 그 모양이시오? 내 다시 한번 말하리다. 우리가 이 객잔에 언제 들어왔소?”
“그야 이른 새벽에…….”
“그럼 우리가 들어온 지 열두 시진이 되었소, 안 되었소?”
두 눈을 부릅뜬 장설이 물었다. 객주는 그제야 장설의 속셈을 알아차리고 대답을 망설였다. 객주의 표정을 읽은 장설은 종지부라도 찍듯 말했다.
“이제야 알아들은 모양이군.”
객주는 치를 떨며 돌아서야 했고, 장설은 깔끔하게 셈을 마무리하는 것조차 잊지 않았다.
“우리가 객잔에 들어온 지 열두 시진이 채 안 되었으니, 하루치 숙박비를 낼 이유가 없단 말이오. 아시겠소?”
객주가 멀어지자 인공과 용하는 환호성을 질렀다.
“정말 대단하시오. 말에 실리는 기운이 마치 무림의 김선달 같소.”
“무림의 김선달?”
“아, 뭐… 그런 게 있소이다. 거, 대동강 물도 팔아먹었다는 전설의 사나이…….”
세 사람은 득의양양 객잔의 문턱을 넘었다. 이번에는 세상을 향해.
무림으로 차원 이동한 이후, 지옥 같았던 세상이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같은 시각.
객잔 앞마당에는 잠행 복장을 한 여섯의 협객이, 객주 앞에 도열해 있었다. 여섯 협객 모두 결연한 눈빛이었다.
“가서 잡아 오너라!”
“객잔으로 말입니까?”
여섯의 협객 중 하나가 의아해서 물었다. 지금까지 협객들 사이에서 처음 있는 일이다.
“어찌하여 당연한 걸 묻는 것이냐?”
“보현보살님께 바쳐야 하는 거 아닌가 해서 여쭤봤습니다.”
“보현보살은 나만이 독대할 수 있는 존재시다. 감히 어느 입에 올리는 것이냐.”
객주가 언성을 높이자, 협객이 다시 한번 무릎을 조아렸다.
“죄송합니다.”
“일단 객잔으로 데리고 오거라. 반드시 세 놈 다 산 채로 끌고 와야 하느니라.”
여섯의 협객이 일제히 답했다.
“네, 알겠습니다.”
충성을 맹세하는 대답과 함께 바람이 부는 대로 낙엽처럼 사라지는 여섯의 협객.
협객들이 물러간 자리에 홀로 남겨진 객주의 입가에 비릿한 미소가 피어났다.
“달라지는 건 없어. 단지 계획보다 시간이 좀 지체될 뿐.”
* * *
한 시진이 채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객잔의 앞마당에서 용하, 인공, 장설을 볼 수 있었다. 세 사람은 처참하게 포박돼 있었는데, 차마 그 몰골이 두 눈 뜨고는 볼 수 없는 지경이었다. 어찌 사람을 저리 참혹하게.
굴욕을 견디다 못한 인공이 절규하듯 외쳤다.
“더 이상 욕보이지 말고 나를 어서 아미파 소굴로 던지시오!”
“흠, 이제야 날 알아본 모양이군.”
객주의 대답이었다. 객주는 다름 아닌 호위무사 즉, 7인의 협객을 대표하는 우두머리였다.
객주의 말에 인공은 입술을 깨물며 저항하듯 말했다.
“아니, 진작 알았지만, 굳이 알은체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소.”
체념인지 결연함인지, 그 경계가 분명하지는 않았지만, 적어도 비굴함을 보이지는 않았다.
“음, 진작 알고 있었다!?”
“그렇소. 그러니 어서 아미파 소굴로 나를 넘기시오.”
“그럴 수는 없습니다.”
“왜, 어찌하여 그럴 수 없다는 것이오?”
“그것이 궁금하다면, 한 가지만 말해 주시오.”
“무엇을 말이오?”
“어찌하다 주화입마에 들었으며, 무슨 수로 주화입마에서 벗어날 수 있었는지, 하나도 빠짐없이 소상히.”
“그것은 알아서 무엇…….”
갑자기 무슨 생각이 떠올랐는지, 인공은 하던 말을 멈추고 객주와 여섯의 협객을 훑듯이 바라보았다.
인공의 시선이 객주와 여섯의 협객을 지나 장설에게서 멈췄다. 그리고 생각했다.
‘지켜야 할 건 반드시 지킨다. 나로 인해 빚어진 일인 만큼, 이 문제는 내가 끝까지 짊어질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