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 Player RAW novel - Chapter 316
#닥터 플레이어 316화
“괜찮습니다. 다 잘 회복되었으니, 안심하십시오.”
그렇게 안심시켜 주었지만, 칸트 자작의 상태가 이상했다.
하얗게 질려 식은땀을 뻘뻘 흘리기 시작했다.
‘뭐지?’
로소는 다시 한번 거인의 축복을 펼쳤다.
하지만 호전되지 않았다.
여전히 통증을 호소했고, 곧이어 깜짝 놀랄 일이 일어났다.
골절 부위의 다리가 파랗게 변하기 시작한 거다!
레이몬드는 그 모습을 보고 화들짝 생각했다.
‘구획 증후군이야!’
골절 발생 후 해당 부위의 압력이 상승해 안의 조직에 괴사가 오는 상태였다.
이런 때 단순히 골절만 치료할 게 아니라, 응급 수술로 높아진 압력을 감압해 줘야 했다.
‘처치가 늦어지면, 다리를 못 쓰게 돼.’
문제는 환자가 레이몬드의 치료를 순순히 받아들일지 의문이었다.
하지만 레이몬드는 굳게 생각했다.
‘일단 나서봐야 해. 조금만 더 시간이 지나면, 신경 손상이 진행되어 돌이키지 못할 거야.’
그런 마음으로 환자에게 다가갔다.
“혹시 제가 환자를 치료해 봐도 되겠습니까?”
세인트 로소가 인상을 확 찌푸렸다.
“죄송합니다, 전하. 환자분의 상태가 중한바. 전하의 기이한 놀이에 보조를 맞추어 드리긴 어려울 것 같습니다.”
기이한 놀이.
대놓고 의술을 무시하는 말이었다.
하지만 레이몬드는 물러서지 않았다.
“그러면 경께서는 이 환자분을 치료할 수 있습니까?”
“네?”
“확실히 치료할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세인트 로소는 입을 우뚝 다물었다.
사실, 자신이 없었다.
그는 거인의 축복을 소유한 세인트답게 수많은 골절 환자를 치료해 봤고, 이런 비슷한 현상을 경험한 적이 몇 번 있었다.
‘이 증상은 거인의 저주가 분명해.’
거인의 저주.
지금 칸트 자작이 보이는 현상의 치료 학계에서의 명칭이었다.
골절은 치료되었지만, 거인에 진노를 받아 알 수 없는 원인으로 다리가 썩어들어가는 끔찍한 질병.
‘힐을 써도 다리가 썩어들어갈 확률이 높아.’
아니, 분명히 그렇게 될 것이다.
거인의 분노는 다른 신의 분노와 마찬가지로 힐로 치료할 수 있는 질병이 아니었으니까.
스페셜 힐도 속수무책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물러설 수는…….’
수많은 이가 지금 이 광경을 목격하고 있었다.
절대로 물러설 수 없었다.
그런데 그때, 세인트 로소의 눈에 한 인물이 들어왔다.
저 멀리 차가운 미남자가 이 사태를 지켜보고 있었다.
‘기드온 대공 전하!’
세인트 로소는 침을 꿀꺽 삼켰다.
수하가 중상을 입었다는 이야기에 보러 온 게 분명했다.
머리가 차갑게 식었다.
‘대공 전하가 직접 보러 오다니. 절대 볼썽사나운 모습을 보이면 안 돼.’
기드온 대공.
왕국 최고의 권력자.
다른 이면 몰라도, 그런 기드온 대공 앞에서 못난 모습을 보일 수는 없었다.
‘빌어먹을, 하필 이럴 때 거인의 저주가 와서. 거인의 저주는 치료할 수 있는 질병이 아닌데.’
그때, 칸트 경이 다급한 비명을 내질렀다.
“크, 크윽. 다, 다리의 감각이 잘 느껴지지 않습니다.”
“……!”
세인트 로소의 얼굴이 무거워졌다.
거인의 저주가 진행하고 있었다.
지금껏 경험으로 미루어 봤을 때 첫째로 감각이 변하고 이후 다리가 썩어들어가게 된다.
레이몬드도 비슷한 생각을 하였다.
‘신경 손상이 오고 있는 거야. 당장 응급 수술을 해야 해.’
시간이 더 지체되면 그때는 끝이었다.
세인트 로소는 초조한 얼굴을 했다.
‘제길, 어쩌지?’
째깍.
장내의 모두가 긴장감 어린 시선으로 그 광경을 지켜보았다.
그리고 기드온 대공의 곁에 있던 화려한 인상의 삼십 대 후반 남성이 입을 열었다.
대공파의 이인자 맥필드 후작이었다.
“칸트 자작의 상태가 생각보다 심각한 것 같군요.”
“그런 것 같군.”
“얼간이 같이 나서더라니. 쯧.”
맥필드 후작은 혀를 차더니 기드온 대공의 반응을 살폈다.
기드온 대공은 말없이 칸트 자작을 치료하는 현장을 지켜보고 있었다.
‘뭘 저렇게 열심히 보시는 거지?’
맥필드 후작은 의아한 얼굴을 했다.
기드온 대공은 수하의 부상을 챙기는 따뜻한 군주가 아니었다. 지금 이 모습은 평소의 기드온 대공답지 않았다.
역시, 기드온 대공은 다른 걸 보고 있었다.
‘레이몬드 왕세자를 살피고 있군.’
레이몬드 왕세자.
페닌슐라 정계의 새로운 핵으로 부상한 인물이었다.
다만, 아직 뭐라고 판단을 내리기가 어려웠다.
‘이번 일로 과연 어떤 인물인지 확인해 보시려는 거군.’
맥필드 후작은 어깨를 으쓱했다.
‘별 볼 일 없이 신경만 쓰이는 날파리면, 아예 치워버리는 게 나을 수도 있으니까.’
마침, 그때 칸트 자작을 앞에 두고 진땀을 흘리던 세인트 로소가 이를 악물었다.
‘이대로 물러설 수는 없어. 거인의 축복을 최대한 강하게 발현해 어떻게든 치료해야……!’
스르르.
세인트 로소의 손에 짙은 갈색의 빛이 다시금 모여들었다.
전력을 다한 스페셜 힐이었다.
“오오. 저렇게 강한 스페셜 힐은 처음 봅니다.”
“역시 광명의 탑의 촉망 받는 세인트답군요.”
주륵.
잔뜩 무리한 탓에 세인트 로소의 이마에서 식은땀이 송골송골 맺혔다.
‘거인의 진노든 뭐든 다 치료해 내겠어!’
그의 스페셜 힐이 다시금 칸트 자작의 정강이에 스며들었다.
마치 강력한 생명이 깃든 진흙이 다리로 스며드는 듯한 모습이었다.
하지만.
“크아악!”
칸트 자작이 찢어질 듯한 비명을 질렀다.
아까보다 더욱 괴로워하는 모습이었다!
다리의 색깔도 더욱더 파래졌다. 힐을 받은 후 도리어 악화한 모습이었다.
‘어, 어째서?’
세인트 로소의 눈이 파르르 흔들렸다.
이 자리에서 단 한 명, 레이몬드만 원인을 짐작했다.
‘재생력을 촉진하는 스페셜 힐을 받고 조직의 압력이 더 올라간 거야!’
이제 더는 기다릴 시간이 없었다.
“제가 치료하겠습니다.”
“아니, 무슨 말도 안 되는…….”
“제가 치료하겠다고 했습니다, 세인트 로소 경.”
“……!”
세인트 로소의 눈이 커졌다.
평소 부드러운 레이몬드의 음성이 아니었다.
[‘진상’이 환자 치료를 방해하고 있습니다!] [상대의 진상력은 ‘높음’!] [‘진상 특수기 : 진상 퇴치’가 발현됩니다!] [해당 스킬이 ‘강철의 심장’, ‘의사의 카리스마’와 시너지 효과를 이룹니다!]강한 위압감이 레이몬드에게서 흘러나왔다.
“당신이 자존심 높은 힐러인 것은 압니다. 하지만 그 자존심 때문에 환자의 다리를 썩게 할 생각입니까?”
“…….”
“당신에게 조금이라도 환자를 생각하는 마음이 있다면, 당장 물러나십시오.”
환자를 위하는 온갖 스킬로 무장한 레이몬드의 위압감은 고작 오만한 힐러 따위가 받아낼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세인트 로소는 자신도 모르게 주춤 물러났고, 레이몬드는 칸트 자작에게 향했다.
크리스틴, 메이가 뒤를 따랐다.
메이가 힐끗 로소를 보더니 나직이 중얼거렸다.
“멍청한 애송이.”
“……뭐, 뭐?”
“아무 말도 안 했는데요? 헛것이 들리시나.”
우직한 곰 같은 메이, 메리 쌍둥이 자매에겐 하나의 별명이 더 있었다.
조용한 독설가.
말이 은근히 험했다.
크리스틴이 헛기침하였다.
“메이, 그래도 그런 말은 조금. 진짜 멍청한 사람한테 그런 말을 하면 실례예요.”
“아무 말도 안 했다니까요?”
“저도 그냥 해본 말이에요. 혹시나 이 자리에 있는 멍청한 누군가가 환청이라도 들어 발끈하기라도 하면 들었으면 곤란하니까요.”
세인트 로소는 어안이 벙벙한 얼굴을 하였다.
이놈들이 지금 뭐라고 하는 거지?
“이……! 감히 무슨……!”
그때, 린든이 끼어들어 세인트 로소를 초롱초롱한 눈빛으로 바라보았다.
‘우와, 이분이 그 유명한 세인트 로소 님이구나. 사교계에서 그렇게 인기가 많다던데. 나도 이분처럼 유명해져서 인기 많아지면 좋겠다.’
모태솔로 린든의 소원 중 하나는 인기쟁이!
따라서 순순한 선망의 시선이었지만, 세인트 로소는 반대로 그 시선을 해석했다.
자신을 ‘당신이 그 멍청이군요’라고 보는 것으로 오해한 거다.
“이놈…… 어딜 감히!”
“시끄럽습니다!”
“……!”
레이몬드가 낮게 음성을 높였다.
“위중한 환자를 앞에 두고 소란이라니. 당신이 그러고도 힐러라고 할 수 있습니까? 당장 저리로 물러가십시오.”
“…….”
세인트 로소의 얼굴이 붉어졌다.
그는 억울했다.
‘아니, 시비는 그쪽에서 먼저…….’
하지만 메이와 크리스틴의 비꼼은 굉장히 조용해 남들에게는 들리지 않았고, 세인트 로소 혼자서 소란을 피운 것처럼 보였다.
그렇게 세인트 로소는 매우 추한 꼴로 물러났고, 진료에 집중할 수 있게 된 레이몬드는 칸트 자작의 다리를 살폈다.
“여기 제가 만지는 감각이 느껴지십니까?”
“느, 느껴지기는 하는데 희미합니다.”
레이몬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손가락으로 다리 말단부의 맥을 확인했다.
다행히 사라지진 않았다. 하지만 미약했다.
‘아직 골든 타임이 지나진 않았어. 지금 바로 치료하면 후유증 없이 회복할 수 있을 거야.’
하지만 문제가 남아 있었다.
칸트 자작을 설득해야 했다.
“걱정하지 마십시오. 맞는 치료를 받으면 회복할 수 있을 겁니다.”
“맞는 치료라면?”
“수술을 해야 합니다.”
수술이란 소리에 칸트 자작의 눈동자가 파르르 흔들렸다.
“그, 그건…….”
칸트 자작도 수술이 뭔지 이제 알고 있었다.
세인트 로소가 신나게 욕한 덕분이었다.
‘칼로 내 몸을 째겠다고?’
상상만으로도 끔찍했다.
하지만 이미 스페셜 힐로도 실패한 상황이다. 다른 치료 방법은 없었다.
‘하, 하지만. 그래도…….’
쉽게 결정을 못 내리고 있을 때 레이몬드가 입을 열었다.
“걱정하시는 것 이해합니다. 하지만 분명히 말씀드리겠습니다. 제 치료술을 통해 자작의 다리를 회복하게 하겠습니다.”
따뜻하고, 신뢰가 담긴 음성이었다.
칸트 자작이 입을 다물었다. 조금 마음이 흔들렸다.
그리고 조용해진 건 칸트 자작뿐이 아니었다.
장내의 모든 사람이 우뚝 입을 다물고 레이몬드를 지켜보고 있었다.
레이몬드는 절호의 홍보 기회가 왔음을 직감했다.
마침 칸트 자작이 딱 시의적절한 질문을 해주었다.
“스페셜 힐로도 치료하지 못했는데…… 전하의 치료술로는 가능하단 말입니까?”
레이몬드는 굳게 고개를 끄덕였다.
홍보 타임 시작이었다.
“네, 가능합니다. 의술은 하늘이 내린 또 다른 축복이니까요.”
하늘의 또 다른 축복이라는 말에 사람들이 술렁였다.
레이몬드는 주변에 늘어선 사람들을 천천히 둘러보았다.
그리고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