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 Player RAW novel - Chapter 322
#닥터 플레이어 322화
“전하의 모습을 보니, 저도 가만히 있을 수만은 없겠군요.”
그 음성이 끝나는 순간.
허공에 하나의 선이 그어졌다.
거인의 빙창이 그대로 사라졌고, 동시에.
파아아앗!
아크 메이지 유나이스의 목에서 피가 튀어 올랐다.
마왕과도 같은 위압감을 보이던 유나이스는 그대로 쓰러졌다.
죽은 것이다.
“…….”
레이몬드는 멍하니 나타난 인물을 보았다.
‘어떻게?’
기드온 대공은 전혀 광기의 저주에 걸린 모습이 아니었다.
레이몬드는 기드온 대공이 말도 안 되는 정신력으로 저주를 버틴 것임을 눈치챘다.
‘더구나 아크 메이지를 저렇게 간단히 일격에 죽이다니? 마나 폭주로 힘을 소진한 상태라고는 하지만, 도대체 얼마나 강하면?’
레이몬드는 침을 꿀꺽 삼켰다.
페닌슐라 왕국 최강 기사라더니 과장이 아니었던 거다.
더욱 놀라운 건, 서슴없이 마탑의 아크 메이지를 죽였다는 거다.
마치, 마탑의 후환 따위 두렵지 않다는 듯.
실제로 기드온 대공에게는 그런 힘이 있었으니까.
그때, 천천히 기드온 대공이 다가왔다.
그는 잠시 가만히 레이몬드를 바라보았다.
마치 꿰뚫어 보듯, 흡사 노려보는 듯하기도 했다.
“왜 그러신 겁니까?”
“네?”
“왜 이렇게 홀로 나섰냐는 말입니다. 위험하다는 걸 모르셨습니까?”
질책하는 듯한 음성.
레이몬드는 순간 울컥하였다.
‘아니, 나도 나서기 싫었거든!’
하지만 레이몬드는 아무 말도 못 했다.
사실…… 기드온 대공이 방금 보여준 위용에 조금 쫀 상태였다.
그래서 우물쭈물하고 있었는데, 그의 침묵을 기드온 대공은 다소 다르게 받아들인 듯했다.
“하긴, 물어볼 필요도 없는 질문이었군요. 오로지 남들만을 위하는 성자이시니 지금껏 그런 위명을 얻은 거겠지요.”
“…….”
“하지만 전하의 그런 모습. 페닌슐라 왕국과는 어울리지 않습니다. 페닌슐라 왕국에서 살아남으려면 이기적인 모습을 가지는 게 좋을 겁니다.”
레이몬드는 인상을 찌푸렸다.
뭔가 오해를 하는 것 같았다.
기드온 대공이 자신을 너무 성자로만 생각하는 것도 좋지 않을 것 같아, 일부러 말했다.
“뭔가 오해하시는 것 같은데, 전 대공께서 생각하는 그런 인물은 아닙니다.”
“아니라고요?”
“네, 전 스스로의 욕심을 위해 페닌슐라 왕국에 왔으니까요.”
기드온 대공은 의아한 눈빛을 보냈다.
레이몬드는 강한 음성으로 말했다.
“지난번 말했듯, 전 힐러로서 최고의 성공을 거두고자 온 겁니다. 그러니, 그런 걱정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기드온 대공은 픽 웃었다.
뭔가 비웃는 듯한 웃음이라 레이몬드는 기분이 나빠졌다.
실제로 기드온 대공은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건 욕심이 아니라, 대의(大義)라고 표현하는 게 맞을 것 같은데.’
레이몬드는 힐러로서 최고의 성공을 위해 온 거라고 했지만, 기드온 대공은 다르게 해석했다.
환자와 백성을 위해 왔다고.
그걸 ‘욕심’이라고 표현하다니.
참, 뭐라고 해야 할지.
‘재미있군.’
기드온 대공은 웃음을 흘렸다.
사실 그는 레이몬드를 사냥 대회 때 계속해서 지켜보았다.
그래서 생각이 바뀌었다.
원래는 그저 왕가의 후예로서 적당히 이용하려고만 했는데, 레이몬드가 보통 인물이 아니란 생각이 든 것이다.
모든 행동이 남들을 위하고 있었다.
이런 진정한 성자는 지금껏 본 적이 없었다. 뼛속까지 숭고한 모습이었다.
‘순백한 뜻은 꺾이기 십상이지만. 그래도 궁금하군. 앞으로 어떤 모습을 보일지.’
십중팔구 쓰러질 확률이 높겠지만, 그래도 흥미가 들었다.
기드온 대공은 레이몬드의 몸을 살피고는 말했다.
“어쨌든 다치신 곳은 없는 것 같군요. 다행입니다. 다만, 앞으로는 이렇게 위험하게 나서는 것은 삼가는 게 좋을 것 같습니다. 앞으로 전하가 이루실 위업에 기대가 많으니 말입니다.”
레이몬드는 인상을 찌푸렸지만, 기드온 대공은 더는 다른 이야기는 하지 않았다.
“이만 돌아가시지요.”
휙.
등을 돌려 사라졌고, 그렇게 사냥 대회가 마무리되었다.
* * *
이날의 사건은 어마어마한 충격을 일으켰다.
페닌슐라 왕국의 수많은 귀족이 죽을 뻔한 것이다.
하지만 딱히 할 수 있는 게 없었는데 사건을 일으킨 흉수가 멸망의 추종자였기 때문이다.
“이미 망한 놈들이 테러를 일으키다니.”
“최후의 발악을 한 거겠지.”
그 이야기처럼, 멸망의 추종자들은 이미 궤멸 상태였다.
남은 잔당이 원한을 품고 이번 일을 일으킨 거니, 잔당을 색출하는 데 더 힘을 쏟는 수밖에 없었다.
다만, 이번 일은 다른 부분에서 커다란 파문을 낳았다.
새로운 영웅의 탄생이었다.
[당신의 활약으로 커다란 파국을 막았습니다!] [업적, ‘페닌슐라 왕국의 은인(小)’을 달성합니다!] [보너스 레벨 업을 합니다!] [보너스 레벨 업을 합니다!] [스킬 포인트를 150점 얻습니다!] [명성이 오릅니다!] [명성이 오릅니다!] [페닌슐라 왕국의 수많은 사람이 당신을 주목합니다!]레이몬드의 이름이 페닌슐라 왕국의 전역에 퍼지게 된 것이다!
“이번에 레몬드 왕자님이 아니었다면 큰일이 일어날 뻔했다더군.”
“레…… 몬 왕자? 그분이 누군가?”
“아, 그 있지 않은가? 가난의 성자!”
“아! 가난의 성자!”
페닌슐라 왕국의 백성들은 놀란 얼굴을 했다.
가난의 성자라면 많은 이가 알고 있었다.
페닌슐라 왕국은 화려한 낙원 속에서 최악의 가난이 공존하는 곳.
따라서 가난의 성자 같은 이는 꿈속 동경 대상이었다.
“더구나 놀라운 점이 뭔지 안가? 그분이 라스텔 전 왕세녀의 아드님이시라네.”
“……!”
순간, 모두의 눈이 부릅떠졌다.
라스텔 전 왕세녀.
페닌슐라 왕국 백성들 모두의 가슴에 깊이 묻혀 있는 이름이었다.
지금껏 그녀처럼 백성을 위했던 왕족은 없었다.
“그, 그분의 아드님이시라고?”
“그래, 라스텔 전 왕세녀님께서 우리를 가엽게 여겨 아드님을 보내주신 게 분명해!”
“더구나 그분은 블레서에 천무지체에, 선천 마법사라고 하네!”
“와, 레몬 왕자님 만세!”
“가난의 성자 만세!”
순식간에 그런 외침이 페닌슐라 왕국을 뒤덮었다.
레이몬드가 페닌슐라 왕국의 새로운 주인공으로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 * *
사냥 대회가 끝난 후 레이몬드는 왕성으로 향했다.
‘우와, 무슨 도시가?’
셔트폰 위에서 물의 도시 라펜텔을 내려다본 레이몬드 일행은 입을 벌렸다.
휴스톤 왕국, 카탈 왕국의 수도와는 비교도 되지 않았다.
‘여기에 50만이 넘는 사람이 산다고?’
단순히 커다랄 뿐 아니라, 지극히 아름다웠다.
마치 고요히 흐르는 물에 둘러싸인 도시는 에메랄드 보석을 보는 것 같았다.
항만에는 출항을 기다리는 거대한 범선들이 잔뜩 늘어서 있었다.
저 배들 하나하나에 실린 물건들 값만 해도 어마어마하리라.
레이몬드는 절로 호연지기가 일었다.
‘이곳이 바로 내 슈퍼 리치의 전설이 시작될 곳이야!’
하지만 레이몬드는 얼굴을 굳혔다.
마지막에 봤던 기드온 대공의 모습이 떠오른 탓이다.
‘지금껏 만난 이들과는 달라.’
베라드, 리머튼, 카이른, 버몬트.
지금껏 대적했던 이들과는 차원이 다른 존재였다.
‘과연 내가 기드온 대공을 호구로 만들 수 있을까?’
솔직히 자신감이 죽었다.
그러나 레이몬드는 곧 고개를 저었다.
‘해내야 해. 애초에 떼돈을 버는 일이 쉬울 리가 없잖아.’
그래, 그는 빌리언 페나의 억만장자가 되려고 페닌슐라 왕국에 왔다.
험난한 가시밭길이라고는 당연히 예상했다.
하지만 해낼 거다.
‘내 계획대로라면 충분히 할 수 있어.’
계획, 황금귀 프로젝트를 뜻한다.
‘이제 두 번째 단계를 밟을 차례야. 실벤느 왕녀와 접촉해야 해.’
두 번째 단계.
그건 왕녀파의 수장 실벤느 왕녀를 호구로 만들 계획이었다.
‘소피아를 치료할 드래곤 하트도 얻고, 내가 바라는 이득도 취하겠어!’
그가 굳게 다짐하는 사이 왕성에 도착했다.
놀라운 인물이 미리 마중 나와 있었다.
페이안 7세였다!
얄미운 라시드도 있었다.
“전하를 뵙습니다.”
“어디 다친 곳은 없느냐?”
페이안 7세는 노구를 이끌고 달려와 레이몬드의 손을 덥석 잡았다.
“괜찮은 것이냐? 다친 곳은 없고? 왜 그렇게 위험하게 나섰느냐? 잘못되기라도 하면 이 할아비는 어떻게 하라고!”
절절히 느껴지는 걱정에 레이몬드는 어색한 얼굴을 하였다.
이렇게 누군가의 걱정을 받아 본 적이 없어서 어색한 마음이 들었다.
페이안 7세가 돌연 핏대를 올렸다.
“역시 안 되겠다!”
“네?”
“넌 휴스톤 왕국으로 돌아가거라! 이곳은 네가 있을 곳이 아니야!”
레이몬드는 당황했다.
‘아니, 그러면 전 파산하는데요?’
휴스톤 왕국에 돌아가도 위험한 건 마찬가지였다.
로즈 영애.
그녀가 빚 문서를 가지고 기다리고 있으니까.
‘……그 무서운 로즈 영애라면 내가 왕세자라도 아랑곳하지 않고 어딘가에 팔아버릴지도 몰라.’
그러니 500만 페나의 빚을 반드시 갚아야 했고, 그러려면 페닌슐라 왕국에서 대박 나는 수밖에 없었다.
레이모드는 페이안 7세를 달래기 위해 입을 열었다.
“할아버님, 말씀드렸다시피 전 페닌슐라 왕국의 고통 받는 이들을 위해 온 것입니다. 그렇게 돌아갈 수는 없습니다.”
“하지만……!”
“어머니께서 절 지켜주실 거로 믿습니다.”
어머니를 언급하자, 페이안 7세는 더는 입을 열지 못했다.
대신, 눈시울을 붉히더니 생각했다.
‘라스텔. 네 아들이 이렇게나 훌륭히 자랐구나.’
한편, 옆에 있던 라시드도 덩달아 감동하였다.
‘과연, 내 눈은 틀리지 않았어. 아아, 이제 저분의 광명이 본격적으로 페닌슐라 왕국 곳곳에 비추기 시작할 거야!’
라시드는 마치 전설의 서막이라도 마주한 듯한 얼굴을 하였고, 마치 한슨 3호 같은 표정에 레이몬드는 라시드를 흘겨보았다.
‘그런 거 아니거든? 하여튼, 이 얄미운 놈.’
레이몬드는 헛기침을 하고는 말했다.
“어쨌든 그러기 위해서 만나고자 하는 분이 있습니다. 제가 말하는 분을 왕궁으로 초빙해 주실 수 있으시겠습니까?”
“누구입니까?”
“실벤느 왕녀입니다.”
“……!”
페이안 7세와 라시드는 놀란 얼굴을 하였다.
실벤느 왕녀는 페닌슐라 왕국의 네 번째 세력인 왕녀파의 수장이었다.
‘드래곤 하트를 대체할 물건을 구하려면 실벤느 왕녀를 만나야 해.’
그것 외에도 중요한 용무가 있었다.
‘실벤느 왕녀를 ㅎ…… 아니, 동료로 만들어야 해.’
지금 레이몬드의 힘은 너무 미약했다.
만약, 귀족파나 대공파가 안 좋은 마음을 품으면 대적할 방법이 없었다.
‘하지만 실벤느 왕녀와 손을 잡으면 이야기가 달라지지. 국왕파와 왕녀파의 지지를 동시에 받게 되는 셈이니까.’
물론 국왕파와 왕녀파 모두 소수 세력이다.
하지만 둘의 지지를 한꺼번에 받게 되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마냥 무시할 수 없는 힘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