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 Player RAW novel - Chapter 410
#닥터 플레이어 410화
‘오로지 환자만을 위한다더니.’
황도에서도 힐러들의 오만함과 탐욕스러움은 유명했다.
그러니 저런 레이몬드의 진심은 모두에게 신선한 충격을 주었다.
한편, 광휘의 성자와 치유의 탑 힐러들은 못마땅하다는 듯 떠들었다.
“제법 번드르르해 보이긴 하지만, 과연 실제로 치료 효과는 어떨지 모르겠군요.”
“그러게 말입니다.”
아무리 환자를 위한다고 해도 치료에 실패한다면 아무런 의미도 없다.
그 사실을 꼬집는 비꼼이었다.
사실 그건 지금 레이몬드도 똑같이 하는 걱정이었다.
‘내가 과연 치료해 낼 수 있을까?’
모른다.
의술에는 한계가 있으니까.
특히 의술은 이미 시력을 상실한 이에게 시력을 돌려줄 수 없다.
그건 오로지 ‘재생’의 기적만이 가능하다.
하지만 한 가지 희망이 있다면, 지금 이 영식의 경우 시력을 완전히 잃은 게 아니라는 것이다.
정확히는 시력 소실 증상이 나타난 ‘급성 진행’ 상태였다.
완전히 시력 자체를 잃은 것.
그리고 갑자기 질환이 나타나 시력 소실 ‘증상’이 나타난 것.
둘의 차이는 컸다.
비유하자면, 전자는 기계 자체가 완벽히 망가진 거고, 후자는 기계가 어떤 원인에 의해 작동을 멈춘 거니까.
따라서 이런 경우 빠르게 손을 쓰면 ‘기계’의 기능을 회복시키고 시력을 되돌릴 수 있었다.
‘그것도 Ex급 힐보다 더욱 완벽하게 시력을 회복할 수 있어.’
누누이 말하지만, Ex급 힐은 ‘재생’의 능력이다.
하지만 이미 죽었던 세포를 ‘재생’하는 거니, 완벽히 이전의 기능을 회복하지는 못했다.
반면, 이 영식의 경우 의술로 재빠르게 정확히 조처만 한다면 완전히 이전의 시력을 되찾게 할 수도 있었다.
‘문제는 어떤 종류의 독이었냐는 건데.’
시력을 잃게 하는 독은 기전마다 종류가 달랐다.
가장 최악은 시신경을 직접 상하게 하는 것이다.
여러 약제로 치료를 시도해볼 수 있지만, 치료 효과는 그야말로 하늘에 맡겨야 했다.
“정확히 증상이 어떻습니까?”
“갑자기 막 수천 마리 벌레가 날아오는 것처럼 시야가 가로막혔습니다.”
벌레.
그 말에 레이몬드는 눈빛을 빛냈다.
‘비문증이야.’
비문증(날파리증, Floaters).
안구 내 유리체에 혼탁한 부유물이 떠 시야를 가리는 증상을 뜻한다.
‘보통은 신경 쓸 것 없는 일반적인 증상이지만.’
하지만 그 벌레, 부유체의 숫자가 수천, 수만 개나 된다면 그건 명확히 하나의 질환을 가리킨다.
‘직접 확인해야 해.’
레이몬드는 말했다.
“린든, 산동제를.”
“네, 마스터!”
산동제.
동공을 열어 안의 망막을 볼 수 있게 해주는 약이다.
안과 진단을 하기 전, 기초적으로 투여하는 약이다.
린든이 후다닥 달려와 처치를 하였다.
“투약했습니다!”
“응, 그래. 근데, 야채만 너무 많이 먹지 말고. 소고기도 같이 많이 먹어. 앞으로 고생할 일 많을 테니.”
“……네.”
막간을 이용해 아끼는 제자의 건강(?)까지 챙겨주는 따뜻한 스승 레이몬드였다.
어쨌든, 그렇게 산동제를 투약 후 레이몬드는 망막을 들여다보았다.
‘원래는 안과 진단용 확대경으로 봐야지만.’
그건 아쉽게도 페닌 치료원까지 환자를 데려가야 사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레이몬드에게는 확대경이 아니라도 대신할 수단이 있었다.
마법이었다.
‘사용, 매의 눈!’
파앗!
레이몬드의 눈이 마치 확대경의 것처럼 바뀌었다.
그리고 동공을 넘어 눈의 기저 부위를 확인한 레이몬드는,
‘이건…….’
침음을 흘렸다.
망막 일부가 부어 망막의 벽이 찢어져 있었다!
‘망막박리야! 망막에 부종을 일으키는 독이었던 거야.’
망막박리.
망막은 시신경이 모이는 부위이다.
참고로, 사람이 사물을 시각적으로 인지하는 과정은 간단히 이러했다.
눈으로 들어온 빛이 안구의 렌즈를 통해 망막에 모인다. 그리고 그 망막의 시신경을 통해 신호가 뇌에 전달되는 것이다.
즉, 망막은 시각 신호를 뇌로 전달시키는 중요한 부위였다.
그런데 망막박리는 이 망막이 찢어진 것이다!
정확히는 안쪽의 감각 신경층과 바깥의 색소 상피층이 박리되어 분리되는 걸 뜻한다.
‘생각보다 흔한 질환이지. 실명의 주요 원인이기도 하고. 현대 지구에서는 치료술이 발달해 망막박리 때문에 실명까지 가는 일은 이제 드물어졌지만.’
그때, 환자가 떨리는 음성으로 물었다.
“치, 치료할 수 있습니까?”
레이몬드는 잠시 가만히 있다가 굳건히 고개를 끄덕였다.
“네, 가능합니다.”
“……!”
그 확답에 환자는 물론 연회장 모두가 눈을 커다랗게 떴다.
눈이 먼 걸 치료할 수 있다니?
‘의술의 힘이 그렇게나 대단하다고?’
‘말도 안 돼.’
‘이 정도면 Ex급 힐에 못하지 않은 것 아닌가?’
다들 경악해 생각했다.
그런데 뜻밖의 일이 있었다.
치료 가능함을 선언했음에도 레이몬드의 얼굴이 좋지 않았던 것이다.
이유가 있었다.
“단, 조건이 있습니다.”
“조건이라면?”
“환자분께서 제가 어떤 치료를 하든 전적으로 믿어주셔야 한다는 겁니다.”
그 말에 영식은 의아한 얼굴을 했다.
하지만 곧 이어진 레이몬드의 이야기에 얼굴이 창백하게 질렸다.
“광(光) 속성 마법으로 눈 안쪽을 소작해야 합니다.”
“……소작이라면?”
“쉽게 말해, 태워야 한다는 겁니다.”
“……!”
“그 치료 과정을 믿고 따라주셔야 합니다.”
‘원래 망막박리의 치료는 레이저로 박리된 부위를 지져 봉합하는 거니까.’
문제는 이 치료 방법을 환자가 믿고 받아들일 것이냐는 점이었다.
‘광 속성 공격 마법으로 눈 안쪽을 태우겠다니. 모르는 사람이 듣기에는 황당하기 그지없는 이야기일 테니까.
만약 이곳이 레이몬드가 활약했던 다른 왕국들이었다면 누구든 별 의문 없이 이 치료를 받아들였을 것이다.
하지만 이곳 황도는 아니었다.
지금껏 처음에는 늘 그랬듯, 황도 사람들에게 의술은 낯선 치료였다.
실제로, 레이몬드의 이야기를 들은 다른 사람들은 말도 안 된다는 듯 웅성거렸다.
“광 속성 마법이면 극악한 살상력을 지닌 마법인데, 그걸 눈에 사용하겠다니.”
“무슨 그런 끔찍한.”
“이건 눈을 아주 멀게 하겠다는 것 아닙니까?”
특히 지금 이 자리에는 마법 왕국 알펜서 출신의 귀족도 많았다.
그들은 다들 마법에 조예가 깊었고 하나같이 황당한 이야기를 들었다는 반응을 보였다.
심지어 이런 이야기를 꺼내는 이도 있었다.
“선천 마법사라면서 저런 황당한 이야기를 하다니. 상상력이 선천 마법사인가 봅니다.”
“그러게요. 광 속성 마법으로 눈 안을 태워 눈먼 이를 치료하겠다니. 그게 무슨 말도 안 되는.”
“만약 이게 성공하면 저분은 정말 선천 마법사가 맞겠네요. 그것도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천 마법사일 겁니다. 어떤 위대한 선천 마법사도 광 속성 마법으로 눈 안을 태워 눈먼 이를 치료한 적은 없으니 말입니다.”
대놓고 비웃는 말이었다.
사실 알펜서 왕국의 귀족들은 알게 모르게 레이몬드에게 억하심정을 가진 이가 많았다.
레이몬드가 선천 마법사란 소문 때문이었다.
‘우리 알펜서 왕국 출신이 아닌 이가 선천 마법사라니. 말도 안 돼.’
이런 마음이었다.
알펜서 왕국은 대대로 마법의 종주국이었다.
역대로 가장 뛰어난 마법사는 늘 알펜서 왕국에서 배출되고는 했다.
그런데 난데없이 기사의 왕국, 장사치의 왕국의 핏줄이 선천 마법사라고 등장한 것이다.
심지어 레이몬드는 선천 마법사라고 하면서 별반 마법에 관심을 보이지도 않았다!
마법의 종주를 자부하는 알펜서 왕국으로서는 자존심이 상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궁금하군요. 도대체 어떤 기행인 건지.”
그렇게 알펜서 왕국 귀족들이 비웃음을 짓는 순간, 날카로운 음성이 가로질렀다.
“어리석은 혀 놀리지 말고 닥치고 있으세요.”
“라, 라이나 님?”
“저분은 당신들 따위와는 비교도 안 되는 위대한 분이니. 조용히 눈이나 똑바로 뜨고 있어요. 저분이 또 어떤 기적을 일으키는지. 분명 이번에도 위대한 기적일 테니.”
라이나는 싸늘히 독설을 날렸다.
‘썩을 것들이. 감히.’
라이나는 잘 알고 있었다.
레이몬드가 이번에도 대단한 기적을 일으킬 것을.
눈 달린 자라면 알게 되리라.
레이몬드의 위대함을!
그렇게 한차례 떠들썩해졌던 장내가 고요해졌다.
한편, 레이몬드는 그런 사람들의 소동을 신경 쓰지 않고 있었다.
지금 그는 힐러로서 오로지 눈앞의 환자에게만 집중하고 있었다.
레이몬드는 부드럽게 상대 영식의 손을 잡아주었다.
“많이 두렵고 걱정되는 것 이해합니다.”
“……!”
“하지만 절 믿어주십시오. 전 당신을 치료해 드리고 싶습니다.”
그 음성을 듣는 순간.
결국, 영식은 참지 못하고 주륵 눈물을 흘렸다.
지금껏 단 한 번도 들은 적 없는 ‘힐러’의 따뜻한 음성이었다.
“아, 알겠습니다. 성자님을 믿을 테니, 부탁합니다.”
승낙이 떨어지자, 레이몬드는 곧바로 치료를 시작했다.
‘사용, 매의 눈!’
일단, 다시 매의 눈 스킬을 사용했다.
박리된 망막이 시야에 들어왔다.
이제 광 속성 마법을 사용해 저 박리된 망막을 봉합할 차례였다.
‘사용, 빛의 레이피어!’
빛의 레이피어.
광 속성 공격 마법이었다.
빛을 작은 일점에 집중시켜 타격을 주는 마법이었다.
일단 목표를 타게팅 하면 피하는 게 거의 불가능해 대인 살상력이 무척이나 높은 마법이었다.
‘그대로 쓰면 안 되지. 마법 출력을 최대한 낮추어서.’
당연하지만, 망막박리 치료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이전 몇 차례 경험이 있었다.
‘마법 출력을 조절하는 게 제일 관건이야.’
만약 출력이 강하면, 시신경을 태워버리게 된다. 반대로 출력이 약하면 봉합 효과가 없고.
그러니 딱 맞는 정도의 출력으로 박리 부위를 지져야 하는데, 워낙 섬세한 작업이라 레이몬드로서도 쉽지가 않았다.
‘한 번 빛을 쏘아 보낼 때마다 일일이 출력이 흔들리지 않게 조절해야 하니.’
광 속성 마법은 빛을 다루는 것이다.
그러니 다른 속성보다 마법이 불안정했고, 조절하는 난이도가 높았다.
특히 이 빛의 레이피어는 한 점에 빛을 무식하게 집중하는 마법이었다.
그러니 출력 조절이 다른 광 속성 마법보다도 훨씬 어려웠다.
‘어쩔 수 없지. 아직 망막박리 치료용 레이저를 상용화하지 못했으니 내가 조심해서 조절하는 수밖에.’
나중에 시간이 지나면 이 치료용 레이저도 상용화시킬 예정이다.
그때는 레이몬드뿐 아니라, 다른 제자들도 안과 수술을 할 수 있을 거고.
‘그 전까지는 내가 고생해야…….’
그런데 거기까지 떠올린 레이몬드는 순간 하나의 생각이 났다.
‘잠깐. 그렇게 고생할 필요 없잖아. 아예 이 기회에 치료 마법을 하나 만들자!’
치료 마법을 만들다!
메디컬 메지션으로서의 능력을 발휘하겠다는 것이다!
레이몬드는 곧바로 생각을 실천했다.
[스킬, 의학 마법 재창조를 사용합니다!] [스킬 포인트를 소모하여 ‘빛의 레이피어’ 마법을 의료용 마법으로 재조합합니다!] [‘의학용 레이저’ 마법을 습득합니다!]의학용 레이저!
원하는 출력을 설정해 고정할 수 있는 마법이었다.
‘이 마법이면, 마법을 사용할 때마다 일일이 출력을 조절하지 않아도 돼!’
레이몬드는 한결 가벼운 마법으로 마법을 사용해 나갔다.
한편, 그런 레이몬드의 치료 광경을 보며 연회장이 침묵에 잠겼다.
“…….”
일단, 치유의 탑 힐러들은 무언가 불안감을 느끼고 입을 다물었다.
레이몬드가 무언가 또 놀라운 사고(?)를 치고 있음 직감한 것이다.
하지만 정작 크게 경악한 건 다른 이들이었다.
바로 알펜서 왕국의 귀족들.
그중에서도 마법에 조예가 높은 고위 마법사들이었다.
그들은 믿을 수 없다는 듯 떨리는 음성으로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