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 Player RAW novel - Chapter 457
#닥터 플레이어 457화 – 외전 5
“성에 들어갔다가는 곤란한 일을 겪을 수도 있습니다. 이에 죄송하지만 부디 불상사가 생기기 전, 돌아가 주시길 청하옵니다.”
레이몬드는 그 말에 입술을 살짝 깨물었다.
‘어쩌지?’
확실히 곤란한 상황이었다.
특히, 이곳은 철의 제국 아닌가?
괜히 대공 사망의 책임을 같이 덮어쓰게 되면 곤란한 상황이 될 수도 있다.
타국이라도 무려 황제인데, 설마 죄를 묻겠냐고?
황제니까 더 문제다.
이 일을 빌미로 철의 제국 측에서 그에게 정치적 수작을 부리려 들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는 곧 고개를 저었다.
‘그래도 돌아갈 수 없어.’
이대로 돌아가면, 로즈를 구할 수 없게 된다.
그녀와의 개인적인 인연은 차치하고라도, 로즈를 구함으로써 십자 연맹 제국이 얻을 수 있는 정치적 이득은 어마어마했다.
수백 년에 걸쳐 싸워대던 양국의 사이가 좋아지는 것만으로도, 제국이 얻을 수 있는 이득은 이루 말할 수 없으리라.
‘……무엇보다 돌아가면, 난 파산하게 될 거고.’
레이몬드는 눈물을 삼켰다.
사실, 이게 가장 절박했다.
속물이라고 욕해도 좋았다. 속물 맞으니까.
파산하고 싶지 않았다.
‘그리고 또 중요한 문제가 있어. 의술의 미래를 위해서도 그냥 돌아가면 안 돼.’
다른 이도 아닌, 공국의 대공이다.
그런 이가 레이몬드가 직접 개발한 약을 먹고 죽게 되면 철의 제국에 의술을 퍼뜨리는 건 포기해야 한다고 봐야 했다.
대륙 시장의 절반을 날리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 이 문제는 그가 책임지고 해결해야 했다.
‘무엇보다 내가 개발한 약을 먹고 잘못되었으니, 내가 치료해야 해.’
약에 어떤 독성이 있는지.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는 개발자인 레이몬드가 가장 잘 알았다.
구할 수 있었다.
“아니, 돌아가지 않겠습니다.”
“폐하?”
“내가 대공을 살리겠습니다.”
천족 로하는 눈을 크게 떴다.
“진심입니까? 만약, 치료에 실패하면 폐하께서는 곤란한 처지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레이몬드는 늘 그렇듯 겉으로 그럴싸하게 말하였다.
“짐은 황제이자 힐러입니다. 환자가 죽어가는데 가만히 보고만 있을 수는 없습니다.”
천족은 잠시 침묵하였다.
레이몬드의 말에 크게 감탄한 눈치였다.
“……대단하군요. 아국은 엄밀히 말해 폐하의 적국인데. 어째서 폐하를 빛이라 부르는지 알겠습니다.”
“알았으면 어서 길을 안내하여라, 날개 아가야.”
옆에서 못마땅하게 팔짱을 끼고 있던 흰 수염 노친네, 검성이었다.
“위대한 가난의 폐하의 빛이 너희 철의 제국에 강림할 테니.”
퉁명스럽게 말을 이었다.
“너희 철의 제국 놈들은 폐하께서 어째서 위대한 빛이라 불리시는지 알게 될 것이다.”
* * *
곧 셔트폰이 라인시 상공에 도착했다.
분위기가 스산했다.
“도시가 조용하네요.”
겁쟁이 린든이 밑으로 보이는 도시의 분위기에 꺼림칙한 얼굴을 하였다.
밝은 대낮인데, 도로가 텅 비어 있었다.
건물마다 창문도 굳게 닫혀 유령 도시 같은 느낌이 들었다.
“도시에 커다란 변고가 연달아 생겨서 그렇습니다.”
연달아.
황제인 로즈가 행방불명된 후 불에 탄 시체로 발견되고, 대공이 위중해진 것을 말한다.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르니 시민들 모두 몸을 사리고 있는 것이지요.”
레이몬드가 조심스레 물었다.
“로즈테일 황제의 유해는 현재 성 내에 있습니까?”
“네, 여러 절차의 문제로 황도로 운구하지 못한 상태입니다.”
레이몬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만약 황도로 이송했다면 곤란했을 것이다.
그때 로하가 말했다.
“아무래도 폐하…… 이시니까요. 안타깝습니다. 시민들 모두 로즈테일 폐하의 치세를 기대하였는데.”
천족 로하는 무겁게 입을 다물었다.
로즈가 죽었다고 완전히 받아들인 상태인 것 같아, 레이몬드는 덜컥 가슴이 무거워졌다.
‘……발견된 유해가 정말 로즈 님의 것이면 어떻게 하지.’
지금 레이몬드는 로즈가 살아 있다는 가정하에 움직이고 있었다.
하지만 사실 정확한 건 모른다.
어쩌면…… 그 불에 탄 시체는 로즈의 것이 맞을 수도 있다.
어쩌면 레이몬드는 그저 희망을 믿고 있는 것뿐일 수도 있다.
‘아니야. 괜히 쓸데없이 걱정하지 말자.’
지레 걱정해 봤자 변하는 건 없었다.
지금은 로즈가 살아 있다고 믿고 그녀를 도우려 움직이는 것 외에는 답이 없었다.
‘첫째로 발견된 유해가 정말로 로즈 님의 유해가 맞는지 확인해야 해.’
레이몬드는 굳게 다짐했다.
그의 능력이면, 충분히 감식 가능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공을 살려야겠지.’
아무리 그가 타국의 황제여도 다짜고짜 자국 황제의 유해를 확인하겠다고 하면, 얼씨구나 보여줄까?
그럴 리가 없었다.
명분을 얻어야 했다.
‘그리고 누가 로즈 님을 습격했는지 알아내야 해.’
로즈가 실종된 곳은 이곳 서공국이다.
그러니 서공국의 누군가가 로즈를 습격했다고 봐야 했다. 그것도 아마 거물일 것이다.
‘확인해 보면 알겠지.’
곧, 셔트폰이 땅에 내렸다.
서공국 대공의 거처인 내성이었다.
미리 천족에게 연락을 받은 건지, 사람들이 나와 있었다.
“십자 연맹 제국의 황제 폐하를 뵙습니다. 서공국의 이공자 폰트라고 합니다.”
선두에 나와 예를 올리는 젊은 청년을 보며 레이몬드는 눈을 빛냈다.
‘요주 인물이야!’
서공국으로 오며, 대략적인 인물 관계는 파악한 상태였다.
이공자는 대공자와 더불어 차기 후계 자리를 놓고 권력 다툼을 하는 인물이었다.
‘어쩌면 로즈 님에게 일어난 일의 배후일지도 모르는 인물.’
그렇게 생각하는 근거가 있었다.
이공자 폰트는 대공자에 비해 후계 구도에서 밀리는 중이었다.
그러니 차기 대공이 되는 대가로 콘시안과 손을 잡고 로즈를 습격하는 데 조력한 것일 수도 있었다.
“반갑습니다. 짐은 십자 연맹 제국의 황제인 레이몬드입니다.”
간단한 인사말.
대제국의 황제답지 않은 부드럽고 공손한 어투였지만, 철의 제국의 사람들은 감히 경시하지 못했다.
그때 메시지들이 떠올랐다.
[‘빛의 황제’의 칭호 효과가 발현됩니다!] [사람들이 당신에게 빛나는 후광을 느낍니다!] [사람들이 당신에게 경외감을 느낍니다!]그뿐만이 아니었다.
[의사의 카리스마(S등급)가 발현됩니다!] [당신의 언행에 강렬한 빛의 카리스마가 깃듭니다!]“……!”
서공국 측의 인물들은 주춤하였다.
모두 놀란 눈으로 레이몬드를 바라보았다.
‘저런 위엄이라니.’
‘역시 십자 연맹 제국 역사상 가장 위대한 황제가 될 것이라는 가난의 황제.’
‘소문이 과장된 게 아니었어.’
레이몬드의 소문은 철의 제국에서도 유명했다.
혼란을 종식하고 십자 연맹 제국의 절대 황제가 된 인물.
그야말로 빛!
레이몬드와 관련한 일화들은 마치 이야기 속 전설과도 같아 철의 제국에서는 믿지 않는 이도 많았다.
과장된 소문이라 여긴 것이다.
하지만 짧은 만남만으로도 사람들은 레이몬드의 소문이 헛것이 아님을 직감할 수 있었다.
이공자 폰트도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좋았어. 스킬빨 여전히 좋고.’
레이몬드는 속으로 씨익 미소를 지었다.
2년간 스킬빨이 어마어마하게 강해져서, 사람들을 홀리는 건 일도 아니게 되었다.
“짐이 오늘 온 것은 귀국의 요청에 따라, 렘브란트 대공을 치료하기 위해서입니다. 안내해 주시겠습니까?”
“하지만…… 폐하를 초청한 대공자는 아버지를 음독한 혐의로 옥에 갇힌 상태입니다.”
“절 초청한 게 누구인지는 상관없습니다. 중요한 건, 환자를 치료하는 것이니까요.”
“그래도…….”
이공자는 쉽게 승낙하지 않고 머뭇거렸다.
그때, 카랑카랑한 음성이 옆에서 들려왔다.
“송구스럽지만, 제가 한 말씀 드려도 되겠습니까, 폐하?”
꼬장꼬장한 인상의 중년 남성이었다.
“그대는?”
“철탑의 하이 마스터인 무스린이라고 합니다. 미욱하지만, 대공 전하의 주치의를 맡고 있습니다.”
철탑(鐵塔)!
철의 제국 힐러들이 따로 모여 만든 단체였다.
치유의 탑과 유사한 단체였는데, 커다란 차이가 있었다.
이들은 힐을 유일한 치료술로 무작정 신봉하지 않았다.
‘철의 제국의 고유 치료술인 ‘철술(鐵術)’을 함께 사용한다고 하지.’
철술.
철의 제국에서 따온 이름이 아니었다.
철, 칼을 써서 환자를 치료한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었다.
즉, 이들은 힐이 아닌, ‘수술’과 비슷한 방식으로 환자를 치료했다.
‘의술과 유사한 형태의 치료술이야. 레이펜타이나에서 발달한 유사 의술이라고 할까?’
십자 연맹 제국에서는 치유의 탑 위세가 너무 드세 다른 치료술이 발달하지 못했다.
하지만 치유의 탑 영향력이 적은 외부에서는 여러 치료술이 제각각 발달했는데, 자유 도시 연합에서는 마법과 결합한 사이비 치료술이 발달했다.
철의 제국에서는 지구와 유사한 의술이 발달하고 있었다.
‘문제는 너무 낙후된 수준이란 거지만. 현대 지구의 근대에서 그랬던 것처럼.’
그러니까 지금 이대로 200년 정도 더 발달하면 현대 지구의 의술과 비슷한 형태가 될 것이다.
역으로 말하면 지구의 의술에 비해 200년은 뒤처져 있다는 이야기였고, 지구에서도 당시의 의술이 얼마나 끔찍했는지야 말할 필요가 없는 일이었다.
“이런 말씀 외람되지만, 대공 전하께서는 폐하께서 직접 개발한 약을 복용 후 이토록 상태가 악화하였습니다. 주치의로서 폐하께 대공 전하의 치료를 맡길 수 없음을 이해해 주십시오.”
철탑의 하이 마스터는 적개심이 잔뜩 담긴 음성으로 말하였다.
레이몬드는 팔짱을 끼었다.
이런 대우 오랜만이어서 신선한 기분이 들었다.
‘철탑의 힐러들이 의술을 경원시한다고 듣기는 했지만.’
이제 십자 연맹 제국에서 의술을 무시하는 이는 누구도 없다. 레이몬드를 영웅으로 여기는 자유 도시 연맹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하지만 철의 제국, 정확히는 철탑의 힐러들은 의술을 인정하려 들지 않았다.
논문들을 발표해도 코웃음 쳤다.
‘말도 안 돼. 페닌 치료원에서 발표한 논문들은 한결같이 허풍이 심하군.’
‘폐 감염증 환자의 사망률이 그렇게 낮다고? 데이터를 조작한 거겠지. 말도 안 되잖아.’
‘인간이 이 논문에 쓰인 것 같은 수술을 집도하는 게 가능할 리가?’
‘이 논문들의 내용이 사실이라면, 레이몬드 황제는 인간이 아니겠군. 초인도 이런 수술을 하지는 못할 걸세!’
이런 식이었다.
철탑의 철술과 의술은 근본적으로 다른 치료는 아니다.
그런데 자신들의 치료술과 비교도 할 수 없는 치료 성적을 보이는 의술을 믿지 못하고 허풍이라고 치부한 것이다.
‘이 기회에 제대로 실력을 보여주긴 해야겠네.’
철탑의 힐러들에게서 이전 치유의 탑 힐러들 모습이 겹쳐 보였다.
레이몬드는 입을 열었다.
“그대, 무스비라고 했나?”
이전의 습관으로 가급적 경어를 쓰는 레이몬드였지만, 모든 이에게 그러는 건 아니었다.
이름도 모를 힐러에게까지 말을 높이는 건 과례였다. 특히, 상대가 자신에게 적대적인 이라면.
“……무스린입니다.”
“그래, 하나만 묻지.”
마침 상황에 맞춰 스킬이 발현되었다.
[상대가 진상, ‘꼰대’임을 확인합니다!] [진상 특수기, ‘꼰대에는 꼰대질!’이 발현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