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 Player RAW novel - Chapter 456
#닥터 플레이어 456화 – 외전 4
레이몬드가 황위에 오른 후. 얼떨결에 작위도 받게 되었고, 이제 행복을 찾게 될지 알았다.
하지만 개뿔.
끝없는 일 지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중 가장 큰 지옥은.
“힘들지, 린든?”
“네? 네, 네, 페하.”
“힘드니까. 몸 보양해야지. 철의 제국에 가면, 철의 제국산 소고기 많이 먹도록 해줄게.”
‘소고기 싫다고요!’
레이몬드를 따라다니는 일이었다.
서포트가 장기인 린든이라 자연스레 레이몬드가 가는 곳마다 따라다녔고, 그때마다 소고기 지옥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다.
“한슨 자작은 카탈 왕국에서 쥬드 국왕과의 일이 마무리된 후 합류한다고 합니다.”
레이몬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한슨은 의술 홍보를 하려는 목적으로 부르는 것이었다.
‘이왕 철의 제국에 가는 것 로즈 님을 구하면서 의술 홍보도 하면 좋겠지. 철의 제국도 거대 시장이니까.’
빚쟁이 거지 황제가 되었다고 꿈을 포기한 건 아니다.
그는 탐욕의 화신이니까.
언젠가 황제 자리를 벗어던지고 온 세상의 부를 한 손에 움켜쥘 생각이니, 철의 제국 시장도 미리 개척해 놓아야 했다.
“그러면 다 준비된 것 같군요.”
“네, 폐하.”
일행이 굳건한 눈빛으로 답했다.
다들 철의 제국으로 향하는 역사적인 행보를 앞두고 결의를 단단히 한 모습이었다.
레이몬드도 속으로 결의를 다졌다.
‘로즈 님과…… 내 1억 페나, 그리고 미래의 부귀영화를 위해 출발!’
* * *
철의 제국은 거대 제국이다.
면적으로 따지면 십자 연맹 제국 못지않았고 지닌 국력은 오히려 훌쩍 앞선다.
총 다섯 개의 구역으로 나뉘어 있는데, 중앙의 황제 직할령과 동서남북의 대공국들이었다.
로즈가 실종된 곳은 서쪽의 대공국인 서공 지방이었다.
페닌슐라 왕국과 자유 도시 연합 쪽에 인접한 지역.
그래서 일행은 미리 레이몬드가 설치해 놓은 포털로 페닌슐라 왕국 쪽으로 이동 후 그곳에서부터는 셔트폰들을 이용했다.
[크라라, 착한 인간! 아니, 착한 황제! 오랜만이구나! 셔트폰, 그간 열심히 강해졌다!]“……그래, 더 커졌구나. 소고기…… 많이 먹었니?”
[그렇다. 착한 인간, 너를 위해 소고기를 아주 열심히 먹었다!]“……아니, 굳이 그렇게 많이 먹을 필요는. 여물도 같이 먹어야 성인병 예방이…….”
[소고기는 날 강하게 해준다! 최고이다!]레이몬드는 얼떨떨한 표정을 지었다.
‘왜 이렇게 아깝지.’
셔트폰은 하루에 소를 한 마리 이상씩 먹는다.
황제가 되어 새롭게 생긴 빚이 워낙 많아 이제 그 정도 지출은 전혀 타격이 없지만, 괜히 아까운 기분이 들었다.
‘황제인 나도 하루에 소 한 마리씩은 못 먹는다고. 어쨌든 진짜 커지긴 했네.’
셔트폰은 이제는 진짜 집채만 해져 기어스 왕국과의 내전 때와 비교하면 1.5배는 더 커졌다.
‘저거 하늘에 뜰 수는 있는 거야?’
레이몬드는 걱정했다.
마치 닭 같아서 못 날 것 같았다.
하지만 기우였다.
셔트폰의 말처럼 소고기가 놀라운 효과를 발휘하기라도 한 건지, 셔트폰은 덩치뿐만 아니라 힘도 강해져 S급 마수인 ‘엘더 그리폰 로드’가 된 상태였다.
“말도 안 돼. 소고기를 많이 먹었다고 엘더 그리폰 로드가 되다니. 이건 사기야.”
린든이 하얀 얼굴로 고개를 저었다.
[출발한다! 다들 꼭 잡도록! 특히 비리비리한 인간은 소고기를 더욱 열심히 먹도록 하고! 소고기를 많이 먹으면 강한 힘을 가질 수 있게 된다!]로드가 된 셔트폰의 비행은 한층 더 빠르고 강력해졌다.
즉, 탑승감이 훨씬 나빠졌다.
“으아아아!”
린든은 질리지도 않은지 늘 셔트폰을 탈 때마다 비명을 질렀고, 레이몬드도 지그시 눈을 감았다.
고소 공포증이 사라지지 않은 건 레이몬드도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3일 정도의 비행을 한 이후, 목적지에 도착했다.
서공 지방이었다.
‘이곳이 철의 제국.’
레이몬드는 광활하게 펼쳐진 대지를 보며 새삼스러운 얼굴을 하였다.
대륙에서 가장 강대한 국가에 발을 들인 것이다.
저 멀리 서공 지방의 주도(主都)인 라인시(市)가 보였다.
‘십자 연맹 제국에서 가장 큰 도시인 황도와 비슷한 규모이네.’
황도보다 살짝 작기는 했지만, 그래도 어마어마한 규모의 도시였다.
‘대공국 하나하나가 십자 연맹 제국의 최강국인 기어스 왕국을 넘는 국력을 지니고 있다고 하니까.’
레이몬드는 의지가 불끈 생겼다.
‘역시 세상은 넓어. 철의 제국 시민들도 다 내 호구로 만들어주겠어!’
그런데 저 멀리서 반짝이는 빛 하나가 다가왔다.
‘날개? 비행형 마수인가?’
아니었다.
더 가까이 와서 보니 인간이었다.
날개 달린 인간.
일행은 놀라 눈을 크게 떴다.
“천족?”
십자 연맹 제국, 철의 제국과 더불어 대륙의 또 다른 주축인 성국(聖國)의 지배 종족이었다.
“철의 제국에서는 종종 천족을 볼 수 있다고 해요. 십자 연맹 제국과 다르게 성국과 사이가 나쁘지 않다고. 철의 제국에서 시민권을 받고 사는 천족도 적지 않다네요.”
라이나의 설명에 레이몬드는 신기하단 얼굴을 하였다.
천족을 직접 보는 건 처음이었다.
‘아, 한 명 있었지. 루드비히. 놈의 정체가 타락한 천족이었나.’
천족은 레이몬드 일행에게 다가왔다.
하얀 날개가 눈에 띄었다.
빛에 반짝이는 것이 마치 빛에 감싼 것만 같았다.
“레이몬드 폐하 일행입니까?”
대표로 엘무드가 셔트폰 앞으로 나섰다.
이제 제법 의젓한 친위 기사의 자태가 나는 엘무드였다.
“그렇다. 이분이 십자 연맹 제국의 위대한 빛이자 소금, 찬란한 광명, 경이의 기적, 만인의 구원자 되시는 레이몬드 황제 폐하이다.”
“…….”
그 현란한 수식어에 잠시 천족은 침묵했고, 레이몬드도 침묵했다.
‘……저거 민망해서 하지 말라니까.’
친위 기사가 되었어도 여전히 고구마인 엘무드였다.
천족은 당황을 감추고, 허공에서 고개를 숙였다.
“……십자 연맹 제국의 황제 폐하를 뵙습니다. 서공국의 주도, 라인시의 경비를 책임지는 경비대장 로하라고 합니다.”
“그래, 로하 경. 무슨 일입니까?”
레이몬드가 물었다.
단순히 귀빈을 마중하러 온 것으로 보이지 않았다.
과연, 천족, 로하가 무거운 눈빛으로 말했다.
“본국에 변고가 생겨 폐하께 급히 말씀드리고자 찾아뵙게 되었습니다.”
“변고라면?”
“서공국의 군주이신 렘브란트 대공께서 갑작스레 상태가 악화하여 임종 직전의 상태에 이르셨습니다.”
“……!”
레이몬드의 안색이 변하였다.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병환 때문에? 하지만 그렇게 급하게 나빠질 상태는 아니라고 들었는데?’
렘브란트 대공의 추정 병명은 암이었다.
임파선 암.
현대 지구에서도 쉽게 치료하기 힘든 암종.
그래서 철의 제국의 힐러들이 속수무책으로 도움을 청했던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갑자기 나빠지다니?
“정확히 어떤 상태인 겁니까?”
“말씀드린 대로입니다. 본국의 철탑 소속 힐러들의 소견으로는 오늘을 버티기 어려울 것 같다고 하더군요.”
레이몬드는 곤란한 얼굴을 하였다.
“그러면 어서 빨리 대공을 봐야겠습니다. 치료해야 하니.”
“그게…… 곤란합니다.”
천족이 딱딱한 얼굴로 셔트폰을 막아섰다.
레이몬드는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을 하였다.
“대공께서 갑자기 나빠지신 이유 때문입니다. 대공께서는 독살을 당하셨습니다.”
“독살이라고요?”
원래 앓던 병환이 나빠진 게 아니라 독살이라니.
생각지 못한 이야기였지만, 그게 그를 막을 이유는 되지 않았다.
천족은 깊게 한숨을 내쉬었다.
“대공께 독을 투여한 흉수가 폐하를 초청한 대공자십니다.”
“……!”
“그래서 대공자가 초청한 폐하를 성에 들이기 곤란한 상황입니다.”
일행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이게 어떻게 된?’
레이몬드는 이해할 수 없다는 듯 크리스틴에게 물었다.
“대공자가 독살이라니. 그런 일을 저지를 인물로 보였던가요?”
“……아니요. 저와 이야기를 나누었을 때만 해도 아버지를 크게 걱정하는 인물이었습니다.”
이상했다.
물론, 레이몬드 일행은 철의 제국 내 사정을 정확히 모르니 쉽게 단언할 수 없는 문제이지만 석연치 않았다.
무엇보다 아버지를 해칠 작정이었다면, 왜 구태여 거창하게 타국의 힐러인 그들에게까지 도움을 청했겠는가?
앞뒤가 맞지 않았다.
“로하 경, 하나만 묻겠습니다. 경께서는 대공자가 정말 대공을 독살했다고 생각합니까?”
“……저도 사실 믿기진 않습니다. 그럴 분은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대공자가 비밀리에 구해 온 약을 복용 후 대공께서 급속도로 악화한 건 사실입니다.”
“어떤 약입니까?”
천족, 로하는 잠시 망설이다가 말하였다.
“폐하의 약입니다.”
“……뭐라고요?”
“대공자가 구해 온 약은 바로, 폐하께서 직접 개발하셨다는 비약입니다.”
* * *
레이몬드는 당황하였다.
‘내가 개발한 약이라니?’
로하는 긴 한숨과 함께 설명을 이어갔다.
“대공께서 어떤 병을 앓고 계신지는 폐하께서도 들었을 겁니다. 끔찍한 악마의 열매들이죠.”
악마의 열매. 암을 부르는 레이펜타이나 식 명칭이었다.
“최상급 힐러들의 치료도, 철탑(鐵塔) 학자들의 최신 치료도 전혀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러면?”
“네, 대공자께서는 십자 연맹 제국에 가서 직접 치료제를 구해 왔습니다. 바로, 폐하께서 직접 개발한 악마의 열매들에 사용하는 치료제입니다.”
레이몬드는 황망한 얼굴로 침을 꿀꺽 삼켰다.
‘이런 고구마 같은. 항암제를 몰래 가져가 사용했다고?’
2년간.
레이몬드는 여러 약을 개발했다.
레벨이 오르면서 새롭게 생긴 그의 또 다른 보조 직업인 ‘메디컬 알케미스트’의 능력을 발휘한 것이다.
그렇게 개발한 약 중에는 항암제도 있었다.
‘항암제는 적절히 쓰지 못하면 독이나 다름없는데.’
항암제의 원리 자체가 그렇다.
세포를 파괴하는 것이다.
그런 항암제를 함부로 썼으니, 문제가 생기는 것도 당연하다.
‘왜 조금 더 기다리지 못하고.’
레이몬드는 한숨을 내쉬었다.
이야기를 들으니, 레이몬드가 오기 전 대공의 상태가 나빠지며 더 기다리지 못하고 투약하였다고 한다.
“대공자께서는 페닌 치료원의 용법 그대로 맞추어 사용했다고 하지만, 투약 후 곧바로 문제가 생겼습니다.”
“…….”
“그런 이유로 폐하께서 오시기 곤란한 상황입니다.”
레이몬드는 상황을 이해했다.
이유야 어쨌든, 그가 개발한 약을 복용 후 대공의 상태가 악화하였다.
그러니 비난의 화살이 쏠리게 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