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 Player RAW novel - Chapter 455
#닥터 플레이어 455화 – 외전 3
레이몬드는 잠시 허탈한 얼굴을 하였다.
황제가 되고, 초인이 되면 뭐 하는가?
여전히 돈 걱정하는 처지인데. 그는 여전히 가난의 황제, 가난의 성자였다. 나아진 게 없었다.
어쨌든 그런 초인이 된 레이몬드를 위협할 수 있는 적은 많지 않았다.
설사 정말 위험한 일이 생기면, 포털 마법으로 튀면 되고 말이다.
‘하지만 내가 강해서 걱정 없다고 이야기해도 믿지 않을 텐데.’
기어스 왕국과의 내전이 끝난 후 딱히 힘을 드러낼 상황이 없어 레이몬드가 이렇게나 강해졌다는 건 누구도 모르고 있었다.
다들 과보호하느라 열중이었다.
‘뭐라고 설득해야지?’
레이몬드가 고심하고 있을 때였다.
깊은 한숨이 울려 퍼졌다.
“그렇게 만류하셔도 다 소용없습니다.”
“……!”
깊은 회한이 담긴 음성.
사람들은 시선을 돌렸다.
“카림 공!”
카림.
레이몬드가 황도에 와서 새롭게 받아들인 수하로 대대로 황제를 보필하는 충신 가문의 어린 가주였다.
그런데 이상한 점이 있었다.
처음 레이몬드를 만났을 때만 해도 소년티가 강한 앳된 얼굴이었는데, 지금은…… 세월의 흔적이 가득했다.
물론 아직도 어린 나이였지만, 2년 만에 팍삭 애늙은이가 된 것 같은?
까마득한 고생을 한 것 같았다. 머리에도 스트레스성 새치가 가득해졌다.
실제로 카림은 2년간 백성들을 위한 레이몬드의 정책을 수행하느라 어마어마한 고생을 하였다.
하지만 가장 힘들었던 건 업무 과다가 아니었다.
바로, 백성들을 위해서라면 물불 가리지 않는 위대한 고구마 황제 레이몬드를 조마조마하게 만류하는 것이었다.
“어찌 아직도 우리 폐하를 모르십니까? 다들 2년간 익히 봐오지 않았습니까? 만류한다고 해서 폐하께서 다른 이를 위하는 행보를 멈추실 것 같습니까?”
사람들은 모두 입을 다물었다.
“다른 이를 위해서라면, 지옥 불에라도 뛰어들 분이 우리 가난의 황제 폐하이십니다. 폐하께 타협 따위는 없습니다.”
“…….”
회의장의 분위기가 숙연해졌다.
그렇다.
지난 2년간 제국은 마냥 무탈했던 게 아니었다.
크고 작은 일이 숱하게 있었고, 레이몬드는 그때마다 항상 앞장서 일들을 해결했다.
오죽하면 제국 사람들이 이제 레이몬드를 가난의 성자를 넘어 ‘가난의 황제’라고 부르겠는가?
가난한 백성들의 눈물을 절대 넘어가지 못한다고 하여 붙여진 영광된 별명이었다.
‘아, 아니. 그런 게 아니라…… 제일 싸게 먹힐 것 같아서 내가 나선 거였는데. 아니면 미래를 위한 투자 목적이거나.’
다른 대신들이 주춤하며 말하였다.
“하지만 그래도 철의 제국 아닙니까?”
“맞습니다. 위험합니다.”
카림은 다시 깊고 깊은 한숨을 파아 내쉬었다.
“그래서, 더욱 말릴 수 없는 겁니다.”
“그게 무슨?”
“폐하께서는 철의 제국에도 본인의 빛을 퍼뜨리려고 다짐하신 게 분명합니다! 그래서 양국의 사이를 진전시켜 백성들을 위하려는 것이지요.”
레이몬드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아닌데?’
로즈를 구하고, 그래서 1억 페나를 사수해 파산의 위기만 벗어나게 되면 얼른 돌아올 것이다.
하지만 대신들은 카림의 이야기에 침음을 흘렸다.
“과연…….”
“폐하께서 철의 제국에 큰 은혜를 입혀 양국의 우호가 증진되면, 그 이득은 어마어마할 테니.”
“하지만 철의 제국에서 폐하의 도움을 거절하면 어떻게 합니까?”
그건 확실히 문제였다.
레이몬드가 로즈를 도우러 가려고 해도, 철의 제국 측에서 거절하면 손을 쓸 수가 없었다.
‘그 얍실한 콘시안 놈이라면, 내가 로즈 님을 도우려는 걸 당연히 반대하겠지. 방법을 내야 해.’
고민하는데, 묵묵히 있던 크리스틴이 나섰다.
“제게 방법이 하나 있습니다, 폐하. 잠시 주위를 물려주시겠습니까?”
“……?”
레이몬드는 의아한 얼굴로 주위를 물렸다.
카림과 정말 최측근만 주위에 남게 되었다.
“제가 판단하기에 이번 일은 공식적인 외교 절차를 밟으면 안 됩니다.”
레이몬드는 고개를 끄덕였다.
옳은 말이었다.
‘이번 일은 시간이 생명이야.’
정식으로 방문 절차를 밟으면 너무 일이 커졌고, 진행도 굉장히 느릴 것이다.
무려 황제의 방문이니, 일정을 잡는 데만 최소 반년 이상이 소요될 게 분명했다. 그래서야 아무런 의미도 없었다.
즉, 방법은 하나였다.
‘……비공식적으로 다녀와야 해.’
비공식.
밀입국해야 한다는 것이다.
황제 주제에 밀입국이라니. 당황스럽기 그지없는 일이었지만, 그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어차피 위험해도 멈추지 않으시겠죠. 괜찮습니다! 폐하가 가시는 길, 이 엘무드가 목숨으로 지키겠습니다!”
[냐옹냐옹!]오랜만에 등장한 엘무드와 미엔이 분연히 외쳤다.
둘 다 2년 동안 어마어마한 성장을 이루어 자신감이 충만한 상태였다.
반면, 카림은 곤란한 얼굴로 말했다.
“아무리 그래도 밀입국입니다. 비공식적으로 방문 시 철의 제국이 폐하께 어떤 위해를 가하려 할지 모릅니다.”
공식적인 외교 절차를 밟아 방문하면 철의 제국이 무언가 수작을 부릴 위험도는 크게 떨어진다.
하지만 비공식…… 그러니까, 밀입국이면 이야기가 다르다.
공식적으로 레이몬드는 철의 제국에 방문하지 않은 것이니,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은밀히 어떤 수작을 부리려 할지 몰랐다.
그런데 크리스틴이 말했다.
“복잡한 외교 절차를 통하지 않으면서도, 안전하게 철의 제국에 갈 수 있는 방법이 있어요.”
“무엇입니까?”
“폐하께서 힐러로서 철의 제국에 방문하는 거예요.”
“……!”
크리스틴은 차분한 얼굴로 말을 이었다.
“마침 목적지인 서공 지방의 군주 렘브란트 대공이 위중하다고 해요. 그자를 치료한다는 명분으로 행차하면, 철의 제국은 폐하께 위해를 가하지 못할 거예요.”
* * *
크리스틴에게 얼마 전 연락이 왔었다고 한다.
서공 지방의 지배자인 렘브란트 대공을 치료하러 와달라고.
“하지만 철의 제국에도 힐러들이 있지 않습니까?”
“역부족인 것 같아요. 서공 지방의 대공자가 직접 제게 연락을 해왔어요. 자신들로서는 손을 쓸 수가 없으니 부디 서공 지방으로 와달라고.”
종종 있는 일이었다.
황제가 된 레이몬드에게 치료를 청하기 어려우니, 밑의 실력자인 크리스틴에게 부탁하는 것이다.
‘좋은 방법이야.’
환자, 그것도 대공령의 군주를 치료하러 가는 것이니 철의 제국 측에서도 그의 방문을 만류하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그에게 섣불리 손을 쓰지도 못할 테고. 환자를 치료하러 온 힐러에게 위해를 가하는 건 국제적으로 엄격히 금지된 일이다.
“그러면 바로 준비토록 하겠습니다.”
빠르게 움직였다.
일행은 어쩔 수 없이 최소화하였다.
황제의 행차가 아닌, 힐러로서 환자를 치료하러 가는 것이니 어쩔 수 없었다.
‘뭐, 그래도 큰 상관은 없지. 숫자보다는 질이니까.’
이제 그는 황제다.
어마어마한 정예들을 호위로 두고 있었다.
그러니까.
“폐하, 또 빛의 행보를! 이 검성! 폐하의 빛에 또 감동하였습니다!”
어전에 쩌렁쩌렁한 음성이 울렸다.
마치 신선이 내려온 듯한 하얀 수염.
십자 연맹 제국 최강 검사 중 한 명인 검성(劍聖)이었다.
‘……검성이 이렇게 시끄러운 할배였을 줄이야.’
레이몬드는 얼떨떨한 얼굴을 하였다.
검성은 원래 황실 소속 기사가 아니었다. 성 로제트 왕국 출신이긴 했지만, 어디에도 소속되지 않고 자유롭게 십자 연맹 제국을 떠도는 프리 나이츠였다.
검성은 정치적 분쟁을 일부러 피하여 과거 레이몬드가 황도에서 여러 일을 겪을 때도 직접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런데 1년 전쯤 우연히 레이몬드가 백성들을 위하는 모습을 보고는 감동했다며 충성을 맹세했다.
‘……홍수에 댐이 무너지는 걸 막으려고 몸으로 뛰며 개고생한 일이었나? 내 재산 보호하려고 그런 거였는데.’
제국이 재난으로 피해를 보면, 그의 돈이 나간다. 황실의 재산이 그의 재산이었으니까.
그러니 재앙이 닥칠 때마다 피해를 막기 위해 필사적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었다.
‘어쨌든 검성이 함께 가니, 크게 위험한 일은 없겠지. 루드비히 놈 같은 괴물이라도 다시 나타나지 않는 한.’
루드비히.
외대륙 요르문드에서 온 혼돈의 괴물이었다.
그런 괴물이 아닌 한 검성을 위협할 수 있는 적은 없었다.
다만 하나 문제가 있었으니.
“너희, 폐하의 빛을 수행하려는 데 결의가 그게 무엇이지?”
“죄, 죄송합니다, 스승님!”
[냐, 냐옹!]엘무드와 미엔이 바짝 얼어 답했다.
둘은 검성의 제자가 되었다. 덕분에 어마어마한 성장을 할 수 있었지만.
“내가 무엇이라고 했지? 기사의 힘은?”
“결의이다!”
[냐옹!]“너희의 결의는?”
“폐하의 빛을 지키는 겁니다!”
[냐오옹!]“부족하다. 봐라, 폐하의 저 빛나는 광채를! 폐하의 빛에 비해 너희의 결의는 한없이 부족해! 어떻게 해야 한다고?”
“폐하의 빛을 지키겠습니다!”
“다시! 목소리가 작다!”
“빛을 지키겠다!”
[냐, 냐옹!]시끄러워 귀가 아팠다.
엘무드 하나만 있어도 시끄러웠는데, 열혈 노친네가 합쳐지니 시너지 효과가 장난 아니었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아아, 어메이징. 드디어 폐하의 빛이 철의 제국에까지.”
촤악, 부채를 펼치며 매혹적인 귀부인이 등장했다.
마탑의 아크 메이지 라이나였다.
그녀가 끈적끈적한 시선을 보내왔다.
“어쩌면, 우리 폐하는 나날이 그레이트해지시는지. 아아, 미라클.”
레이몬드는 어색한 얼굴을 하였다.
라이나도 마탑주의 집중적인 가르침을 받아 2년 동안 발군의 성장을 이루어 2현(賢) 격의 끝자락에 도달해 있었다.
마탑 내에서도 손에 꼽는 실력자가 된 것이다.
그를 보는 시선이 부담스럽긴 했지만, 어마어마한 전력이었다.
‘이 정도면 위험할 일 없겠지. 여차하면 포털을 만들어서 튀면 되니까.’
레이몬드는 안심한 얼굴을 하였다.
호위 인력 말고, 따르는 이들이 있었다.
첫째는 당연히 크리스틴.
처음에 레이몬드는 그녀에게 황도에 남기를 권유했다.
자신이 가니 굳이 크리스틴까지 함께 갈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안 그럴 거로 생각하지만, 혹시나 예상치 못하게 위험한 상황이 생길 확률도 배제할 수 없고.
하지만 크리스틴은 단호히 거절했다.
“전 폐하의 주치의니까요. 함께 따르겠습니다.”
다음은 린든이었다.
“저, 전…… 바쁜데요? 환자도 많고, 강의 일정도 밀렸고…….”
린든은 버벅거리며 거절했다.
크리스틴이 치료원의 환자 치료에 집중하고, 한슨이 후학 양성에 집중하고 있다면, 린든은 다방면에서 활약하고 있었다.
치료원에서 크리스틴 다음의 넘버 투의 실력자로 환자를 치료했고, 새롭게 설립한 의과 대학에서도 교수로 후학 양성에 한 팔을 거들었다.
……즉, 셋 중에 의외로 제일 바빴다.
‘아니, 난 쉬고 싶은데. 왜 날 놔두지 않는 거야!’
린든은 울상을 지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