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667
제 667화
스승님의 은근한 시험.
진천희는 즉답했다.
“우선 무인 오십을 추려 화려하게 입힌 후, 가씨세가에 백린신단을 보내야 할 것입니다. 또한 이렇게 무사히 치료가 된 것은 사람의 힘뿐만이 아니라, 하늘이 답하였기에 가능한 것이라고 표현하는 게 좋겠지요.”
하늘의 뜻.
하늘이 가월을 가주로 정하였다는 의미도 되었다.
“그래. 가완은 가월을 후계로서 확고하게 굳히는 작업을 할 것이니.”
“피바람이 불까요?”
“그러진 않을 거란다. 가주 가완은 부지런한 농부이니 이미 피가 불 만한 것은 정리해놨을 터란다.”
“사실상 통보가 되겠군요.”
“약간의 소란은 있겠지. 하지만 밖 시끄러운 짓은 하지 않겠지. 그게 가씨세가가 가진 저력이니까.”
평생 도를 닦는 무당파나 소림도 후계 싸움에 피가 터지는 판에 권력을 탐하는 제국팔가.
그것도 거대한 가씨세가를 거머쥐면서 이리도 부드럽게 넘어갈 수 있다는 것은 경이로울 지경.
“나쁘게 말하면 처음부터 모험할 일을 만들지 않지. 가완, 그 자는.”
“그러면 저희도 비슷하게 대응하면 되겠군요.”
“할 수 있겠느냐?”
“의원이 할 게 무어이 있겠습니까. 그저 잘 받았다고 말하고 선물 자랑이나 하고 말겠지요.”
능글거리는 제자의 머리를 스승님은 한번 쓸었다.
“그리고 괜찮다면 몸을 보하는 약을 보내고자 합니다. 정양할 때 도움이 되겠지요.”
“자상하구나. 가완의 성정을 생각했을 때 거기까지는 사례로 돌려주진 않겠지만……. 음.”
스승님은 생각에 잠기다가 이렇게 말했다.
“그 또한 네 장점이기도 하지. 그러도록 하렴.”
스승님은 봉투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곱게 접혀있는 밀서는 용으로 봉인이 되어 있었다.
“……이건…….”
“동창들이 은밀히 다녀갔단다.”
봉인을 뜯어 읽으니 황궁으로 오라는 황상의 명령이 들어 있었다.
“몰래 보내신 걸 보니 또, 뒷문으로 가야겠군요.”
“그렇지. 네가 수습한 일이 한둘이 아니지 않느냐.”
진천희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상을 주실까요?”
“상만 주시겠느냐. 아마 일도 주시겠지.”
“관리가 아니라 동창이 왔다 가서 다행이네요.”
“그래. 차려입을 필요 없이 평범한 강호낭중 행색으로 다녀오면 되겠더구나.”
진천희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 가씨세가와 함께하며 깨달은 게 있다.
‘아, 나는 절대로 벼슬은 하지 말아야겠다.’
지금처럼 비밀리에 있는 게 좋지, 권력의 중심부나 그런 곳에 갔다가는 눈 뜨고 코 베일 것 같았다.
그렇게 진천희가 밖으로 나간다.
제갈린은 그런 제자의 등을 빤히 보고 있었다.
조용히 서있기만 하던 유호가 물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이 시기에.”
“이 시기이니 오히려 괜찮지. 혈선교 놈들에 대해 더 찾아보기 좋은 시기 아닌가.”
그리 말하며 숨겨 왔던 책 두 권을 꺼내들었다.
봉신방-비의(秘意).
산해경-음석(陰釋).
“혈선교에 대해 알 수 있는 몇 안 남은 책이군요.”
“그래. 세상의 뒷부분에 대해 알 수 있는 저서이나, 암호와 비유로 이뤄져 있으니 작업이 좀 걸릴 듯하네.”
유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해석이 완료되면 주인님께서는…….”
“별거 없네. 혈선교를 죄다 족쳐야겠지. 그런데 좀 더 효율적으로 족칠 수는 있겠지.”
제자에게 붙은 해충들이다.
그것도 얼마나 많은지 근절이 안 된다.
심지어 이 제자는 해충을 박멸하겠다면서 자기가 달려가서 다치고 오고 있다.
“끈질기고 강하니 귀찮군.”
해충을 죽이려면 일단 알아야 한다.
그렇게 제갈린은 혈선교 농약 연구에 들어갔다.
* * *
컹컹컹컹!
“아, 알았어. 이번에는 진짜로 황구 타고 갈게!”
컹! 커엉! 커커커컹!
“진짜 탄다고, 탄다!”
삑, 삐이이익!
“탈 거라니까? 날 믿으라고.”
황구 입장에서는 죽을 맛이었다.
대체 왜 자기가 느린 말에게 발을 맞춰야 하는가.
제아무리 준영물급 명마라고 해도 준영물은 그냥 준영물이다. 진짜 영물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진천희가 말을 타고 다니면 그 말의 걸음걸이에 자기가 맞춰 줘야 하는데 황구 입장에서는 속 터질 지경이었다.
비록 자신이 개라서, 개를 타고 다니는 게 좀 많이 눈에 띌 수는 있겠지만.
인간들은 원래 남과 다르게 튀고 싶어 안달인 존재들 아닌가.
대체 왜 이 진천희 놈은 안 튀려고 말을 타려고 한단 말인가!
컹컹컹!
“봐봐, 짐 얹을게! 짐 얹는다!”
컹컹!
“아니야. 아니야. 속이는 거. 더 얹는다!”
이미 황구는 몸으로 절벽을 가르는 수준에 올라섰다.
빨리 갈 수 있는 길을 그놈의 말 때문에 관도 따라 빙 돌아간다는 게 말이 되나.
절벽도 못 타는 놈을 대체 왜 타고 있단 말인가.
컹컹컹!
“알았어. 알았어. 올라탔다!”
결국 진천희는 마지못해 거대한 황구 위에 올라탔다.
삐익!
뇌진도 속이 시원한지 부리를 딱딱 부딪쳤다.
그렇게 진천희는 황구를 타고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순간 속도는 진천희가 훨씬 빠르나 지구력이나 힘은 영물인 황구가 우위.
그렇게 지난번보다도 훨씬 빨리 황도에 도착할 수 있었다.
‘스승님은 좋아하시겠네.’
제자가 용무만 빨리 끝내고 오는 것을 누구보다 바라시는 분이 아니던가.
그렇게 황궁 앞에서 감찰패를 보여 주고 들어가려고 하니 제독태감이 달려 나오는 게 아닌가.
“아이고, 벌써오셨습니까요?”
그리 말하더니 진천희를 밖으로 밀어낸다.
“지금은 황상께서 외인을 받기 어려우니 며칠만 뒤에 오시지요.”
“으음?”
“쉬고 계시면 따로 서신을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뭔가 황궁에서 일이 벌어진 모양이었다.
‘잠깐 튀어 있어야겠군.’
전생과 현생의 사회생활을 고려했을 때 제독태감께서 몸소 나와서 이 소리를 한다는 건 호의다.
아무리 나쁘게 보려고 해도 이건 호의일 수밖에 없다.
“알겠습니다. 당장 나가도록 하지요.”
“아이고, 이렇게 죄송할 데가 있나. 후후후후.”
제엔장, 빨리 튀자.
우리 사악한 황상께서 사람을 붙잡아 감자튀김이라도 하는 모양이야.
어쩐지 바람도 스산한 것이 을씨년스러운 기분이 들더라니.
특히나 가씨세가의 환자를 치료하며 그 동네 돌아가는 판을 아주 조오금 엿본 후다 보니 더욱 몸을 사리게 될 수밖에.
‘튀는 게 상책, 무조건 상책이다!’
황상’s도 그들을 상대하는 제국팔가도 인간의 감성과 거리가 한참은 멀어진 존재들 아닌가.
괜히 다가갔다가 몹쓸 화라도 당하는 건 사양이니까.
진천희는 그렇게 생각하며 일단 황궁을 나와 객잔으로 향했다.
‘이참에 가씨세가에서 받은 객잔을 찾아볼까.’
장부에 있던 위치를 떠올리며 찾아가니 거대한 객잔이 모습을 드러냈다.
현판에는 ‘백학루(白鶴樓)’라고 쓰여 있었다.
입구에는 예인들이 비파를 뜯고 있었으나, 딱히 예인들을 양옆에 끼고 술을 빠는 곳은 아닌 것 같았다.
정갈한 분위기에 6층 정도 되는 대객잔.
‘가주인 가완이 내 성정을 알고 있구나.’
음악과 춤을 파는 건 예인으로서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사람을 파는 것은 언제나 금지했으니까.
거대한 입구에는 관운장 상이 서 있었다.
‘……아무래도 사마현과 도원동 일도 알고 계시는 것 같은데.’
좋아할 거라고 생각하고 갖다 놓은 것 같다만, 진천희가 관심 있는 건 완벽한 균형감과 무게였을 뿐. 그게 무엇인지는 상관없다.
그때 입구에 대기하고 있던 호위 무사가 달려왔다.
“소주인님을 뵙습니다. 어서 안으로 드시지요!”
소주인?
생소한 호칭에 진천희는 살짝 당황했다.
“소주인보다는 소각주라고 불러 주실 수 있을까요?”
“네. 알겠습니다. 소각주님!”
호위의 우렁찬 목소리에 점장으로 보이는 인물이 달려 나왔다.
그는 빠르게 진천희와 호위 무사를 쓱 보더니 차분한 목소리로 예를 표했다.
“소각주님을 뵙습니다. 이 객잔을 운영하는 직위에 있는 점장 가준화라고 합니다.”
‘가씨네.’
아마 분가의 분가 어딘가인 듯싶다.
아무리 유교 랜드 중원이라고 해도 보통 그 정도면 남이라고 불러도 무방한 사이지만, 이런 대형 객잔의 점장씩이나 맡고 있는 걸 보면 뭔가 연이 있기야 하겠지.
본인 객잔을 차려 주는 것은 아니나 점주를 맡기는 정도의 사이.
가준화는 진천희를 안으로 안내했고 진천희는 그를 쫓아 안으로 들어갔다.
“저는 가가(賈家)의 사람이긴 하나 먼 방계로서, 이곳에서 일한 지 이제 햇수로 이십 년이 되었습니다.”
추측이 맞았다.
그가 말을 이었다.
“이 백학루는 문을 연지 백오십 년이 된 전통 있는 객잔으로서, 대대로 대숙수를 통해 요리 비법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습지요.”
꽤 체계적이다.
‘그리고 전통이 백오십 년이라. 이런 곳을 줄 줄이야.’
황도의 역사를 생각하면 백오십 년 정도 가지고는 전통 취급도 안 할 수도 있다.
그래도 백 년이 넘으면 황도에 뿌리를 내렸다는 취급은 해주고, 상단 회의에 끼워줄 수 있다.
그렇기에 신흥 세가들은 일부러 오래된 객잔을 인수하려는 시도를 하곤 한다.
황도의 상단 회의는 그만큼 제국 전체를 아우를 만큼 거대한 돈들이 오가는 곳이니까.
그만큼 가완이 진천희에게 지불한 대가는 컸다.
“감사합니다. 저희 백린의각이 이번에 백학루의 주인이 되었으니, 점검은 한번 해 봐야겠습니다.”
진천희의 말에 가준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를 말씀이시겠습니까. 바로 장부를 꺼내 오겠습니다.”
그리 말하며 6층 가장 높은 곳의 객잔주 집무실로 안내했다.
내부는 담백하게 면과 선으로 이루어져 있으나, 황도 전체가 내려다보이는 것이 그야말로 호화스럽기 그지없었다.
‘이래서 사람들이 뷰 좋은 곳을 찾는구나.’
황도, 이 인구 과밀집된 곳에서 뷰 좋고 채광 좋은 곳을 찾기는 참 힘들다.
하지만 여기는 그게 되었다.
‘음. 하지만 가장 좋은 곳을 객잔주 집무실로 쓰는 건 좀 아깝군. 비싸게 돈을 올려서 손님을 받는 게 더 좋아 보여.’
고칠 곳이 군데군데 보였다.
“여기 있습니다.”
이윽고 점장 가준화가 장부를 산더미처럼 내려놓았다.
“고맙습니다.”
진천희의 눈이 푸르게 빛났다.
서류를 읽어 가며 출납을 하나하나 속독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며 가준화가 살짝 놀랐다.
‘주판은 장식이시군. 거의 쓰지 않고 계산을 하시는데?’
보통 이런 일은 아랫것들을 데려와서 장부를 보게 시킨다.
그건 제국팔가의 가씨세가라고 해도 다를 게 없다.
허나, 진천희는 개 한 마리, 새 한 마리가 전부.
혼자서 이 모든 걸 처리하기 시작했다.
‘제갈세가를 상대로 돈을 떼어먹는 건 무던히 힘든 일이라 들었는데 진짜로 그렇겠구나.’
만약 그가 객잔에서 헛짓을 했다면 심장이 쫄깃했을 터.
이십 년 동안 백학루에서 지내며 단 한 번도 그런 부정을 저지른 적이 없다는 게 스스로 자랑할 거리였다.
“다과를 내오겠습니다.”
얼마나 지났을까.
해가 져버릴 즈음이 되어서야 진천희가 탁, 하고 장부를 덮었다.
“으으으! 다 봤다!”
고양이처럼 몸을 쭉 뻗어 기지개를 켜더니 이렇게 말했다.
“깔끔하네요.”
하루 반나절, 그사이에 전부 다 읽었다는 건가.
점장 가준화는 소름이 돋았다.
진천희가 말했다.
“꼼꼼하게 장부를 꾸며 주셔서 쉽게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계산이 틀린 부분이 몇 개 있었는데, 이건 휴먼 에러인 것으로.”
무슨 뜻이지?
제갈가라서 그런지 알 수 없는 말을 쓰고 있다.
아무튼 문맥을 봐서는 별문제는 아닌 듯싶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