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838
제 838화
-물에 독을 푸시면 되는 일 아닙니까. 공손 가주님. 그리 어려운 일은 아니지요.
마치 독사의 혓바닥처럼 그는 느리고 낮은 목소리로 모두에게 속삭였다.
그는 이들이 습격해 올 때를 대비하여, 물에서 서서히 번져나가는 형태의 독을 준비하라고 공손세가를 비롯한 해상 무역을 하는 문파들에 말해두었다.
오륜회는 다섯 거대 문파가 연합했지만, 그 내부를 들여다보면 중소 문파들도 속속 가입하여 그 세력은 더 강성해진 상태.
심지어 그 독을 준비한 것도 다름 아닌 제갈린.
-마비와 수면 독은 이미 많이 비축해두었지요. 제자가 쓸 것도 조금 떼어놓긴 했습니다만 그래도 오륜회가 쓸 양이 부족하진 않을 겝니다.
그때를 떠올리니 소름이 돋았다.
그는 제자가 수천의 살수를 독으로 상대하기 전에 이미 이 모든 것을 예측하고 있었으니까.
‘더 무서운 것은 하나만 안배하고 끝난 게 아니란 점이지. 그는 어디까지나 혈선교의 괴어인을 상대하기 위한 독을 만드는 김에, 제자가 앞으로 뭘 할지 예측까지 해서 백린의각에 두고 간 것이니까.’
-미리 보내드린 해도 위치에 독을 푸시면 적절할 겁니다. 파도가 크게 치지도 않고 암초도 적은 곳입니다. 위치상 꽤 오랫동안 독이 유지될 터. 물고기들은 멀쩡하고 사람만 당하는 독이니 괴어인은 눈치채기 어려울 것이고요.
-그러다 눈치챘을 때는 이미 늦었지요. 어떻게든 물 밖으로 피하려고 안간힘을 쓸 터이니 그때만 잠시 어부가 되면 어떻겠습니까.
-괴어인을 잡는 어부지요. 그물 대신 검진을 짜서 공격하면 다치는 이 없이 쉽게 제압할 수 있을 겁니다.
대체 어디까지 예측한 것일까.
그리고 괴어인, 이들도 인간의 독에 똑같이 당한다는 것.
그것을 백린의선은 어찌 알기에?
직접 하독하여 실험이라도 해본 걸까?
아니면, 설마 그저 운이 좋아 모든 게 다 알아서 짜 맞춰진 걸까.
그럴 리가 없다.
허나 지나치게 신묘하여 마치 하늘의 이치로 모든 게 자연스럽게 이루어진 것만 같았다.
순간, 한번 억눌렀던 소름이 다시 밀려왔다.
‘진천희는 그런 스승이 정녕 두렵지도 않은 겐가.’
그런 사내를 움직이고 있는 건 결국 제자 진천희가 아니던가.
거기까지 생각한 공손현은 얼음 같은 얼굴로 말했다.
“아무래도. 회주가 말한 대로 대대적인 토벌을 조금 할 필요가 있겠구나.”
그녀가 다시 신호를 보낸다.
북소리가 바뀐다.
전투가 끝났다는 뜻.
“압승! 압승입니다! 가주님–!!!”
“다친 사람은 없나? 모두 무사한가!”
“무사합니다!”
공손세가 무인들이 일제히 승리의 함성을 지른다.
“와아아아아아아!”
다친 사람 하나 없는 대승, 대승!
그 어떤 전투도 이런 일이 없었다. 거기다 상대는 처음 보는 괴어인과 강시들 아닌가.
인간이 아닌 자들을 상대로 이렇게 승리한 적이 있던가?
모두의 가슴에 불이 지펴졌다.
평생 술자리에서 이 이야기를 하리라.
함께 소리 지르리라.
팔십을 먹어도, 구십을 먹어도 결코 잊지 못할 승리!
그들은 죽은 괴어인의 목을 쳐서 바다로 던지기 시작했다.
* * *
공손세가의 배와는 조금 멀리 떨어진 곳.
숨겨진 작은 섬.
그곳에는 얇은 천으로 된 면립을 쓴 사내와 그의 종복이 같이 있다.
바람이 불자 면립이 부풀어 오르며 사내의 긴 은발이 모습을 드러냈다.
얼굴은 보이지 않으나 이 은발은 누구라도 알아볼 수 있는 증표와도 같은 것.
백린의선 제갈린.
그가 이 섬에서 공손세가의 첫 해전을 지켜보고 있었다.
“확실히 주술이라는 것은 신비하군. 나도 내 몸을 고치기 위해 주술을 익혔어야 했을까 모르겠어.”
“글쎄요. 주술로도 구음절맥을 치료했다는 이야기는 들은 바가 없습니다.”
“하긴, 나도 들은 바는 없긴 하네. 애초에 강호에 주술이 이토록 범람하는 일이 없었지. 기껏해야 술제님과 같은 자들이 전부였고.”
원래라면 무인도일 섬이 피로 물들여져 있었다.
그것은 그의 천성과도 같은 것이었다.
지금은 사람을 구하며 살고 있지만, 의원이 되기 전에 사내가 가던 길은 언제나 죽음이 가득했으니까.
그의 주변에는 괴물들이 팔다리가 잘린 채로 헐떡이고 있었다.
기묘하게도 잘린 팔다리는 절단면이 어찌나 날카로운지 살아있는 듯 꿈틀거렸다.
그걸 내려다보는 제갈린의 손에는 피 한 방울 묻어있지 않았고.
그것은 새하얀 면립 역시 마찬가지.
의념만으로 상대를 벤 것도 모자라서 그렇게 흩뿌린 핏방울 하나 닿는 것을 허하지 않았다는 뜻.
강호인이라면 모두가 감탄해 마지않을 경지의 무공을 이 사내는 숨 한 번 헐떡이지 않고 펼쳤다는 뜻이었다.
그 괴어인들 중에서 가장 크고 화려한 갑주를 입은 자가 입을 열었다.
“너… 너는 괴물조차도 아니다. 어찌…… 그런 힘이 인간에게 허락되었단 말이냐……!?”
“천하삼존에게는 버젓이 허락되더군. 나라고 못 할 거 있나.”
“……너는 흉재(凶災) 그 자체다……. 네놈의 앞에는 반드시 파멸이…….”
그 말을 듣던 제갈린이 피식 웃음을 터드렸다.
“흉재라니. 그것도 새로운 관점이로군. 그리고 네놈들이야말로 명백한 악물이면서 그런 소리를 하는 거냐?”
괴어인이 방금 전까지 무엇을 뜯어 먹었는지 모를 제갈린이 아니었다.
사람, 그것도 양민들의 사지가 놈들이 먹는 식당에 버젓이 들어있었으니까.
그런 제갈린을 향해 괴어인 대장이 독기를 담아 말했다.
“혈… 혈선께서 네놈을……. 크허헉!”
그 순간, 대장의 몸이 활처럼 휘었다.
순식간에 피가 쏟아졌다.
그런데 쏟아지는 피가 지나치게 많다.
단순히 신체의 어딘가가 터졌다고 쏟아질 양이 아닌 데다가 마공의 부작용이라고 해도 그 모습이 퍽 괴이했다.
허나, 제갈린은 미동도 하지 않는다.
태연히 이 광경을 바라만 볼 뿐.
“어디까지 하나 볼까?”
“주인님 참 성격 나쁘십니다.”
“성격 나쁘다니? 연구자의 마음이지. 해충을 죽이려면 그 해충에 대한 연구가 함께하여야 하는 것 아닌가.”
이윽고 그 피들이 살아있는 듯 꾸물거리더니 크게 서로 엉겨 붙기 시작했다.
“호오, 살아있는 건가? 고(蠱)라도 심은 건가 했는데 마교의 고(蠱)라도 이런 식으로는 불가하겠지.”
이윽고 엉겨 붙어 꿈틀거리던 피들이 이제 여러 가지 얼굴로 변하기 시작했다.
허나 눈코입이 달려있을 뿐, 흉측하기 그지없어서 보통 사람이라면 쳐다만 보아도 악몽에 시달릴 형상이었다.
마침내 그 얼굴들은 각기 다른 목소리로 서로 말하기 시작했다.
-천기를 이겨낸 자여.
-저주받을 제갈가의 마지막 혈족이네?
-웃긴단 말이야. 비틀린 이 세계에서 아직까지 제갈씨가 살아 있는 게.
-공명 놈의 팔진도가 아직도 효험을 다하고 있는 거지.
-지긋지긋하군. 아직도 이딴 세계를 지키고 있는 겐가.
제갈린은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그걸 바라본다.
“혈선. 선계가 있으며, 인간, 또는 짐승도 선인이 될 수 있다는 증거물들이로군. 역시나 선악 상관없이 도를 깨우친다면 거기까지 갈 수 있는 건가.”
도(道).
지성체가 일생을 연마하며 다다르는 곳.
-호오, 우리를 보며 그런 걸 관측하고 있나?
-아아~ 역시 재수 없어. 제 선조랑 비슷한 놈이잖아.
-하지만 이 녀석 때문에 우리도 더 활개 칠 수 있는 거잖아?
-하지만 천기순행 놈들도 슬슬 제대로 움직이겠지.
그것들은 제갈린을 두고서 잡담하듯 떠들어 댔다.
하지만 제갈린은 그런 잡담을 내버려둔다.
이런저런 잡담들. 으스대는 소리들. 어떤 것들은 제갈린을 겁박하여 심신을 무디게 만들려는 목적도 있었다.
그럼에도 제갈린은 듣고만 있는다.
그 이유야 유호는 알고 있었다.
‘혈선들의 잡담으로 그 정보를 캐는 거군.’
굳이 중요한 정보를 빼고 말한다고 한들, 상대는 제갈린이다.
그리고 그 잡담들 속에서 제갈린은 곧바로 가장 중요한 정보를 낚아챈다.
“그렇군.”
호흡 한 번 할 정도의 시간. 이윽고 제갈린이 말을 이었다,
“천하삼존도 곧 움직일 수 있게 되는 건가.”
-…….
그 말에 피로 만들어진 여러 얼굴들이 순식간에 입을 다문다.
어찌 보면 생뚱맞은 말이긴 했다.
혈선들은 분명 천기순행과 천기의 일그러짐을 논하고 있었는데, 갑작스럽게 천하삼존의 이야기를 꺼낸 것.
그러나.
제갈린이 어떤 의미로 그런 말을 꺼낸 것인지 혈선은 알아차렸다.
저 제갈세가의 마지막 혈족은 조금의 단서로, 그에게 가장 필요한 것을 알아차린 것이다.
“현경의 경지는…… 선인과 인간의 경계. 즉, 반선의 경지임을 알고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더 이상 속세의 일에 끼어들지 않지. 선존은 그 성향상 그렇다 할 수 있지만, 마존과 무존의 움직임은 그들의 성격상 있을 수 없는 일.”
혈선들은 입을 다물고 아무 말 하지 않는다.
고작 그것.
고작 그 정도만으로 제갈린은 자신의 추론이 정답이라는 확신까지 얻어내고 말았다.
“결국. 현경이 되는 자는 이른바 ‘천기’에 의해서 속세의 일에 개입할 수 없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너희와 천기순행이 더 활발히 움직일 수 있다는 것은…… 그들도 곧 움직인다는 것이 아닌가?”
이윽고 피로 만들어진 얼굴들이 갑자기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하하하하핫!
-우후후후훗!
-이히히힛!
-크하하하핫!
그들이 만들어낸 기괴한 웃음소리가 울려 퍼진다.
원래라면 진성도 아니고 간접적으로 웃는 목소리만으로도 귀가 터져 죽었어야 할 터인데 제갈린도 그의 종복도 미동하지 않는다.
-역시.
-확실히.
-그렇군.
약간의 침묵. 그리고 그다음에 나오는 말은 광기의 장송곡 그 자체.
-너너너너야야야야말말말말로로로로하하하하늘늘늘늘이이이이없없없없애애애애려려려려했했했했던던던던열열열열쇠쇠쇠쇠구구구구나나나나.
모든 소리가 하나로 합창한다.
자르르-
이번만큼은 제갈린도 체내가 뒤흔들리는 것을 느낀다.
보통의 무인이라면 그 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주화입마에 빠져 칠공에서 피를 토할 터.
허나 사내가 쓴 멱리는 결코 벗겨지는 법이 없다.
그 자리에 우두커니 서 있을 뿐.
“그래서. 제안할 것은 뭐지, 혈선들이여.”
-우리와 손을 잡자.
-곧 인간들의 세상은 파멸하게 될 거야.
-그것은 정해진 미래지.
-천기순행도 그걸 위해서 움직이니까.
-하지만 반선의 씨앗과 네가 생존을 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현경이 된다고 해서. 네가 네 제자를 지킬 수는 없을 거다.
“흐으음.”
제갈린은 잠시 생각에 잠긴다.
탁-
그는 부채를 접더니 소매를 조금 흔들었다.
그러자 허공에 갑자기 강기로 된 구체가 출현하는 게 아닌가!
그저 의념만으로 사내는 현상을 만들어냈다.
그것은 과거 마존, 천마가 보였던 경지와도 비슷한 부분이 있었다.
-아닛!
-이건!
-어찌!
혈선의 목소리가 놀라는 순간.
구체가 내리치며 피로 된 얼굴들을 그대로 분쇄해 버렸다.
콰과과광–!
피에 속한 수분이 흔적도 없이 기화되고, 혈액 안의 유기물은 아예 흔적도 남지 않고 사라진다.
광기의 편린은 단 한 점조차 용납지 않는 잔혹한 손속.
그 뒤로 유호가 뒷짐을 지며 서 있었다.
그런 유호에게 제갈린이 말했다.
“이놈들의 목적은 대충 보이는군그래.”
“그걸 아시겠습니까?”
“어느 정도는. 하지만 아직 완전하지 않아. 천기순행이라는 놈들이 가진 정보의 조각을 모으면 더 완전해지겠지. 혈선교와 천기순행은 서로를 적대하나, 때로는 함께 움직이기도 하니까.”
“그렇군요.”
“마치 화공 두 사람이 하나의 그림을 완성하는 것 같지 않나. 그리려고 하는 것은 같으나, 그 그림에 자신의 것이 더 담기길 바라는 것 같으니 말일세.”
제갈린의 말은 비유가 많아 알아듣기 어렵다.
허나, 그것은 그리 중요치 않았다.
곧 그가 직접 보여주리라는 것은 알고 있기에.
유호는 다른 말을 꺼냈다.
“그나저나…… 경하드립니다. 주인님. 제약을 벗어던져도 되긴 할 모양이로군요.”
“아직은 아닐세. 몇 가지 계획을 위해서 아직은 아니야.”
제갈린은 유호를 보며 빙긋 웃는다.
“뭐어. 느긋이 지켜보게나. 자네는 어차피 금제 때문에 나에게 말해줄 수 있는 게 없지 않은가.”
그 말에 유호가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입니다. 주인님.”
존귀한 존재가 이 땅에 남기 위해서는 제약이 필요하며 그렇기에 유호는 말할 수 없다.
그저 그 눈으로 제갈린을 보필하며 지켜만 볼 뿐.
“모든 것은 도련 놈을 위해서 하시는 일이지요.”
“그래. 그 망둥이 놈을 위해서 이렇게까지 하고 있지.”
진천희는 자신이 누구를 움직이고 있는지 모르고 있었다.
자신의 스승이 진정 어떤 존재인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