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etatron RAW novel - Chapter 140
00140 에필로그 =========================================================================
메타트론의 초코우유 공장 자랑을 실컷 들어준 뒤, 업무차 밖으로 나왔다.
이제 슬슬 아이도 생각해 봐야 하나.
결혼하고 삶도 안정됐다. 후계자를 생각해 봐도 좋을 것 같다. 지아 누나는 조카 언제 보여줄 거냐고 진작 난리였고. 그나저나 누나가 남자는 관심 없고 계속 나랑 살거라고 해서 요즘 좀 무섭다.
“흠…….”
그냥 혼자 그런 생각들을 하며 내 궁의 후원을 걸었다.
나는 경복궁보다 다섯 배는 큰 궁을 만들어서 많은 천사들과 함께 거주하고 있었다.
화려하고 아름다운 건물로 가득 찬 이곳은 작은 도시나 마찬가지였다. 천문학적인 돈이 이 궁궐을 만드는데 사용됐고, 아직도 들어가는 중이다.
그러나 세계 제일의 갑부인 나는 능히 그걸 감당하고도 남는다. 석유 부자도 내겐 안 될 정도니 얼마나 돈이 남아도는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몬스터 부산물과 부산물을 가공한 자재 따위는 인류에게 절대적인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어떤 몬스터의 뼈에서 추출한 성분은 새로운 배터리의 재료로 각광 받았고, 또 어떤 몬스터의 지방에서 추출한 조직은 실리콘의 후계자가 됐다.
그런데 이런 놀라운 물질을 세계로 내보내는 역할을 하는 게 바로 나다.
나는 모든 천사의 지배자이고, 그 천사들에게 소속된 헌터를 총괄한다. 헌터들이 이 만주에서 끝없는 싸움을 벌이며 수확한 마정석과 몬스터 부산물은 내가 구매 후 팔아넘긴다.
그래서 외부에 나는 만주의 왕으로 알려져 있다.
반신격에 오른 사실은 일부로 숨겼다. 지금도 말발이 잘 먹히는데 일부러 밝힐 필요까지는 없었다. 미국이고, 중국이고, 러시아고 내겐 순한 양에 불과했다.
자기들 나름대로는 뒤에서 우리를 상대할 방법을 연구 중인 것 같은데, 어림도 없는 얘기지. 그리고 몬스터들은 만주를 벗어나지 못하기에 내 독점체재는 절대 깨질 리가 없다.
나는 유송연과 상의해서 헌터와 몬스터, 이 양 진영이 늘 균형을 이루게 조절한다. 물론 헌터고 몬스터고 이런 비밀을 모르며, 상대를 섬멸하기 위해 결사적으로 노력한다.
나는 이데올로기를 조성해 양측을 모두 통제했다.
그들은 마치 좌파와 우파처럼 끝없이 반목한다. 양 진영에서 많은 영웅들이 나타나 싸움의 열기를 후끈하게 달아오르게 했다. 그리고 그들은 내가 지켜보는 가운데 명멸해 갈 것이다.
자신들이 서사시를 쓰고 있다고 생각하겠지만, 결국 다 내 패일 뿐이며 죽는 순간까지 자신들이 진정 뭘 위해 움직였는지, 누구에게 이용당했는지도 모를 거다.
안타깝게도 내 돈벌이 수단에 불과했지만 말이다.
하지만 세상은 원래 그런 것 아니겠나. 사회적 갈등은 결국 통치자에 의해 조장되고 군주를 향한 미움을 분산시키는 법이다.
“천사장님.”
누가 날 부르기에 돌아보니 미카엘라였다.
이 금발의 미녀는 메타트론이 은퇴한 후 대천사 서열1위에 오른, 내 가장 충실한 수하이다. 오른팔이라고 해도 좋았다. 동시에 내게 구혼해 오고 있는 여자 중 하나였다.
며칠 전에는 늘 하던 셀카 공세가 무용해졌다고 생각했는지 급기야 상의를 벗은 파격적인 사진을 보내왔다. 보고 놀라서 심장이 쿵쾅쿵쾅 뛰더라.
멜론처럼 크고 하얀 젖가슴과 그 위에 연분홍색 꼭지는 정말 아름다워서, 나는 그 사진을 소중히 저장할 수밖에 없었다. 물론 아내에겐 들키지 않았다.
“응?”
애써 태연한 척하고 묻자 미카엘라는 업무 때문에 찾아왔다고 한다. 이 여자는 기본적으로 공과 사가 철저한 타입이라 며칠 전 셀카에 대해 입도 방긋하지 않았다.
하지만 메신져를 할 때는 전혀 다른 인물이 되는 것 같다. 애정 공세가 꽤 대단하달까. 미카엘라와 메신져를 하면 솔직히 바람피는 기분이 됐다. 그래서 그만하자고 하려고 해도 그녀와 폰으로 대화를 나눈 게 오래되어 매정하게 끊기도 어렵다. 수년 이상 폰으로 유대를 다져온 사이라고 할까. 핸드폰을 들고 있는 순간만큼은 미카엘라가 내 마누라 같단 생각이 들 정도였다.
“지난 번에 말씀하신 부분이 거의 진행되었습니다. 함께 가서 보여드리고 싶은데 괜찮겠습니까?”
“물론이지.”
“안내하겠습니다.”
미카엘라를 따라간 곳은 땅밑이었다.
내가 사는 궁전 아래는 거대한 벌레들의 도시가 있는데, 이들은 날 위해 비밀스러운 일을 많이 해주고 있다. 만주에 몬스터를 부화시켜 풀어놓는 자들도 벌레들이다.
사실 이런 걸 보면 몬스터란 건 가축이나 다름없었다. 그리고 몬스터를 사냥하는 헌터는 도축업자고.
“여깁니다.”
미카엘라을 따라 비밀스러운 장소에 도착했다. 그곳은 아리엘을 비롯해 천사 몇이 지키고 있었다. 그들은 과거 전역에서 내 명에 의해 땅밑에서 싸운 천사들이다. 그 이후로도 계속 벌레들과 함께 일하고 있었다.
“영광의 주인님을 뵙습니다!”
모두 정중히 예를 표해온다. 나는 고개를 가볍게 끄덕인 후 굴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그 안을 보며 나직히 감탄을 끄덕였다.
그곳에는 초록색 액체로 가득 찬 거대한 관들이 수십 개 세워진 실험실이었다. 그리고 그 한눈에도 비범한 몬스터들이 눈을 감은 채 떠있었다.
“말씀하신 예정대로 실행했습니다. 이들 중 다섯이 한 달 안에 땅으로 나갈 수 있습니다.”
“좋군. 그렇게 되면 싸움이 다시 백중지세가 되겠지.”
현재 전투는 헌터 진영이 몬스터를 밀어붙이고 있었다. 그래서 나는 몬스터의 세력을 보충해줄 필요를 느꼈다. 그래서 이곳에서 군주급 몬스터를 직접 배양하고 있었다.
자연적으로 탄생하는 군주급 몬스터의 수는 매우 적고 그 성장도 느리다. 그래서 지난 몬스터 사태 때도 증명된 것처럼, 군주급 몬스터가 죽으면 몬스터는 그 수를 회복하지 못하고 그대로 밀려버린다.
하여 나는 제때 군주급 몬스터를 보급하기 위한 프로그램을 만들었고, 그 결과가 이것이다. 수십의 개체가 확보된 이상 앞으로 군주급 몬스터의 부족은 걱정하지 않아도 좋았다.
“좋아, 차질없이 잘해줬군. 7인 위원회 쪽은 어때?”
“그쪽도 걱정 없습니다.”
몬스터에게 군주급이 있다면 헌터에겐 7인 위원회가 있다.
과거 12인 위원회였던 조직은 대천사가 여럿 죽어나간 이후로 7인 위원회로 축소됐다. 그래서 위원회 위원의 역량을 강화할 필요를 느꼈고 난 그들이 군주급 몬스터와 맞서 싸울 수 있게 힘을 부여했다.
덕분에 지금 위원회는 과거의 위원회를 압도한다. 그 탓인지 예전 위원들은 모두 은퇴한 상태다.
유일하게 엽왕 임철웅은 강화된 신예들과 대적할 힘이 있었으나 그는 몬스터 사태의 끝에 미련없이 낙향했다. 대부분의 헌터들이 헌터란 직업을 그만두지 못했는데, 그는 지금까지의 삶을 깔끔하게 정리했다.
게다가 현상황을 정확히 꿰뚫어 보는 해안까지 있었다. 만주에서의 싸움이 더는 몬스터 사태와 무관하다는 점을 말이다. 듣자니 충청도 해안가에서 전원주택을 짓고 살아간다고.
띠리링.
그때 핸드폰이 울었다.
받아보니 스이엘이었다.
“주인님! 어디세요! 오늘 방송국 촬영 스케쥴인 거 모르셨나요!”
스이엘은 내 비서 역할을 맡고 있었다.
그녀는 금전 감각이 뛰어나고 뭐든 똑 부러지는 스타일이었기에 그 일에 제격이었다.
“아차.”
“얼른요! 얼른 와주세요.”
“뭐 기다리라고 해.”
나는 미카엘라와 작별하고 궁으로 돌아왔다. 그러자 스이엘이 호들갑을 떨며 날 맞아줬다.
“주인님도 참!”
“미안, 미안.”
“다음부터는 제 말에도 좀 귀를 기울여 주세요.”
스이엘에게 사과하고 창 밖을 내다보니 방송국에서 한창 허락된 궁의 이곳저곳을 찍고 있다. 천사 일부와 인터뷰 하는 모습도 보인다.
어쩐지 귀찮은 기분이 든다.
원래 인터뷰를 해주기로 했지만 나중으로 미뤄야겠다.
“주인님!”
“알아서 하라고 해. 기다리기 싫으면 그만두는 거지. 나야 아쉬운 거 없다. 촬영도 지들이 하도 해달라고 해서 그런 거 아냐.”
나는 그렇게 스이엘을 내버려두고 궁궐 뒤로 빠져나갔다. 방송국 사람들은 스이엘에게 상대하고 말이다.
후원에서 좀 더 안으로 들어가면 개방되지 않은 비원이 있는데, 그곳에서 쉴 작정이다. 비원에 출입이 허락된 건 오로지 내 가족 뿐이다.
메타트론, 지아 누나, 그리고 마지막 인물이 바로 처제인 산달폰이다.
“어머? 형부.”
플라티나 블론드라 불리는 밝은 금발을 가진 그녀가 햇살을 받으며 활짝 웃어 보인다.
화훼에 큰 취미가 있는 처제는 비원을 가꾸는 일에 열심이었다. 모종삽을 들고 얼굴에 흙은 묻힌 산달폰은 아주 건강해 보였다.
“제가 보고 싶어서 오신 거죠?”
“아닌데.”
“에이 좀! 그럴 때는 그렇다고 해주세요.”
말은 그렇게 해도 산달폰은 딱 잘라 말하는 내 태도에 익숙한지 얼른 다가와 나를 이끈다.
“이리 오세요. 정자에 제가 만들어온 도시락이 있어요. 같이 먹어요.”
“혼자 먹으려고 갖고 온 거 아냐?”
“양이 많아요. 오늘따라 누가 올 것 같은 예감이 들어서 말이죠.”
우리는 둘이서 즐겁게 도시락을 까먹었다.
그러면서 산달폰은 자기가 새로 산 라이트 노벨이 있는데 읽어보지 않겠냐고 권해왔다.
“뭔데?”
준 걸 받아서 제목을 보니 다음과 같았다.
[내 처제가 이렇게 귀여울 리가 없어] [어떤 처제의 금서 목록] [처제모노가타리] [역시 내 처제의 러브코메디는 잘못됐다]뭐지 이거… 제목이 굉장히 일관성이 있네.
당황스러웠지만 일단은 고맙다고 받아서 마법 주머니 안에 챙겨넣었다.
“형부, 이제 뭐할까요? 언니랑 같이 볼링 칠까요?”
“미안, 가볼 곳이 있어요. 이따 저녁밥 먹고 하자.”
“좋아요! 이번에 제가 이기면 꼭 받고 싶은 상품이 있어요.
뭐지, 불안한데. 그래도 난 볼링이라면 아주 강하다. 그래서 흔쾌히 승낙하고는 날아올랐다. 드넓은 만주를 가로질러서 어느 한적하고 작은 산에 내려앉았다. 이곳은 아무도 찾지 않는 이름없는 산으로 몬스터와 헌터 모두의 발길이 닿지 않는 장소다. 그저 토끼와 꿩 같은 야생동물만이 돌아다닐 뿐이다.
우연히 발견한 뒤로 매우 맘에 들어 조용히 휴식을 취하고 싶을 때는 가끔 온다.
그런데 오늘은 선객이 있었다.
등산복을 입은 인자한 노인이었다. 그의 주위로 토끼들이 몰려와 풀을 뜯고 있었다. 무척 선해 보이는 인상이라 나는 그에게 곧 호감을 느껴 다가갔다.
“안녕하십니까? 노인장.”
“오, 이런 산에서 나 말고 다른 사람을 만나다니 재밌구먼. 안녕하신가, 젊은이.”
나는 그의 곁에 앉았고 우리는 자연스럽게 서로 대화를 나누게 되었다.
노인은 평범한 인상이었지만 말투는 따뜻했다.
“그래, 요즘은 어떻게 지내는가?”
그리고 이유는 모르겠는데, 놀랍게도 나는 그의 물음에 평소에 비밀로 하던 많은 걸 술술 얘기하고 있었다. 대체 원인은 알 수 없었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그게 내게 해가 되지는 않을 거란 사실을 말이다.
“밖에선 만주의 왕이라고 불리더군요. 하이에나 시절에는 제가 이렇게 될 줄 정말 몰랐습니다. 하하하.”
“껄껄걸. 원래 다 그런 법이야. 사람은 말일세, 고뇌하면 자기가 무엇인지 알 수 있지만, 무엇이 될지는 끝까지 모르는 법이야.”
“그렇군요. 앞으로도 잘할 수 있을까요? 귀여운 마누라가 있어서 언제나 지켜주고 싶어요.”
“껄껄. 한창 좋을 때지.”
인자하게 웃던 노인은 곧 내게 용기를 주듯이 말한다.
“걱정하지 말게. 자네는 잘할 수 있을 걸세. 내가 살다 보니 알게 된 건 말이야…. 어떤 일이 가능하다고 자신해도 막상 해보면 계획보다 훨씬 나중에 겨우 이뤄지는 일이 많아. 하지만 불가능하다고 판단한다면 그건 아주 틀린 말이야. 신께서는 우리에게 무한한 가능성을 줬네. 설령 예상보다 힘들고 더뎌도 자네는 결국 해낼 거야.”
“말씀 감사합니다. 어르신. 저는 계속 노력해 나가야겠군요.”
“물론이지.”
노인은 절대 정체되지 말라고 강조했다.
“계속 발전하게. 발전하지 않고 고정된 정신은 우주의 질서에 녹아서 사라질 거야. 왜 그런지 아나? 발전이 없이 고정된 정신은 길고 긴 시간에서 보면 단순반복 회로에 불과하기 때문이야. 자네가 아무리 태산을 옮길 수 있어도 천 년의 시간에서 보면 태산의 옮기는 것밖에 못 하는 단순한 반복회로지. 하지만 자네가 태산은 못 옮기지만 나무를 할 수 있고, 토끼를 키울 수 있고, 그리고 또 무언가를 계속 배운다면 단순반복 회로라고 할 수 있겠나?”
“아니겠죠.”
노인은 잘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네.
“그러니 발전하게. 그게 우주의 질서에 막 편입된 자네에게 해줄 내 조언이네.”
“감사합니다, 어르신.”
웬 우주의 질서인지 모르겠으나 세월이 느껴지는 조언이라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 나는 이만 가보겠네. 할멈이 혼자 날 기다리고 있거든.”
“네, 반가웠습니다. 어르신. 이 산에서 또 뵐 수 있겠습니까?”
유유자적하게 나아가던 노인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손을 올려 흔든다.
“인연이 닿으면 말일세.”
노인은 그렇게 떠났다.
나는 혼자 앉아서 그가 남긴 소리를 곱씹었다.
그러다 한 가지 생각이 퍼뜩 떠올랐다.
만주에 일반인이 있던가?
헌터의 가족들이 살긴 하지만 이 지역에는 절대 없다.
그들은 몬스터로부터 안전한 도시에만 있을 텐데.
놀라서 노인이 떠난 방향으로 달려가 그를 불러보았다. 그리고 흔적을 찾았지만 아무 것도 발견할 수 없었다. 결국 한 시간 뒤 나는 포기하고 말았는데, 이상하게도 노인장의 얼굴도 떠오르지 않았다.
하지만 딱 하나는 잊지 않고 가슴에 남았다.
“우리가 무엇이 될지는 아무도 모른다인가….”
하이에나 시절엔 상상도 못했는데 나는 반신격이 되었다.
그다음은 무엇이 될까?
노인장의 말대로 아무도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알 수 없다는 건.
아직 내 모험이 끝나지 않았다는 얘기였다.
(메타트론 完)
============================ 작품 후기 ============================
*그동안 부족한 작품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는 새로운 작품으로 다시 찾아뵙겠습니다. 차기작은 아마 판타지가 될 확률이 높습니다.
*다음주 월요일이나 화요일에 제 라노벨 이 서점에 깔릴 예정입니다. 라노벨 좋아하시는 분들 한 번 봐주시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