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ctor’s Rebirth RAW novel - Chapter 989
제 989화
“…….”
그때 스승님이 제자를 빤히 바라본다.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마치 속내를 통찰하는 듯 깊은 눈빛에 제자는 순간 소름이 돋았다.
“!?”
화들짝 놀라서 뒷걸음질을 치자 그제야 스승님이 그 특유의 눈빛을 풀었다.
“생각할 게 있어 쳐다보았단다.”
“아, 네네. 이 제자 예민했던 것 같습니다.”
“괜찮단다. 내가 이렇게 바라보면 의당 당주님들도 그날은 악몽을 꾼다 하던데 너는 그 정도는 아니니.”
‘……그렇구나. 다행이다.’
진천희는 그렇게 생각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제자씩이나 되는 자가 스승님의 눈빛을 못 받아들여서 악몽을 꾸면 그건 그거대로 수치 아닌가.
“네가 본 현상은 일단 비밀로 하자꾸나. 개인적으로 좀 더 조사해 봐야 할 것 같으니.”
“혹시 제가 뭔가 잘못 건드려서 망가뜨린 건.”
“그건 아닌 것 같단다.”
‘휴우, 다행이다.’
가슴이 절로 쓸어진다.
제갈세가 절세의 가보를 자기 손으로 고장 낸 줄 알고 얼마나 걱정했는지 모른다.
진천희가 말했다.
“그러면 이 영약은 제가 황도에 가서 진상을…….”
“…그럴 필요 없단다. 그건 내가 ‘직접’ 할 테니까.”
“스승님께서 직접 황도에 가신다고요?”
진천희가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그래. 제자의 진상품을 스승이 직접 옮겨주는 건데 그게 그리 이상한 일은 아니지 않니.”
……뭔가 이상한 것 같은데?
문득 거기까지 생각하다가 고개를 저었다.
‘아니지. 내가 봤던 무협 소설에 이런 장면이 분명 있었을 거야.’
……없었다.
그때 제갈린이 말했다.
“황상께 진상하기 전, 이 영약을 미리 분석해 봐야 할 것 같고. …또 그렇지 않아도 사천당가에 일이 생겨 네가 가 봐야겠더구나.”
“아!”
그래. 제자가 바빠서 스승께서 대신 일을 처리하러 간다.
이런 경우는 좀 있었지.
진천희는 스승님의 논리에 퍼뜩 납득하며 물었다.
“사천당가요?”
“의술 교류회의 시기가 돌아왔단다.”
“아! 그렇네요.”
의술 교류회란?
백린의각과 제휴를 맺은 사천당가와 하는 행사. 전에도 갔었다.
‘그리고 그때 오독문에서 난장도 피웠었고.’
게다가.
“그곳에 요새 전염병이 다시 돌기 시작했다고 하더구나.”
전염병?!!!
“아, 아니 무슨 전염병인가요!”
“학질(瘧疾)이다.”
제갈린은 망아지 같은 제자 앞에 전염병이라는 이름의 당근을 흔들었다.
학질(瘧疾).
현대어로 치면 말라리아.
대한민국 주수단 대사관 홈페이지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어원을 따지자면 ‘나쁜’이라는 뜻을 가진 ‘mal’과 공기를 뜻하는 ‘aria’가 합쳐져 말라리아라고 칭하게 되었다고.
‘여기서 ‘mal’에는 ‘나쁘다’는 뜻과 함께 ‘미쳤다’는 뜻도 들어있긴 하지.’
열대 말라리아 같은 경우 발작이나 마비 같은 신경 증상을 일으키기도 하는데 옛날 사람이 보기에는 그리 보였을지도 모르겠다.
아주 오랫동안 인류를 괴롭혀 왔던 병으로.
학질에 대한 이야기는 5,000년 전 고대 중국, 아시리아 도서관에서 발견된 점토판, 심지어 고대 인도와 이집트에도 그 기록이 남아 있을 정도.
기원전 1세기 고대 로마에서는 모기 때문에 ‘기묘한 역병’에 사람들이 걸리게 되는데.
특히나 늪지 근처에서 잘 걸리니 다 메워 버려야 한다는 기록이 현대까지 남겨져 있다.
하지만.
‘과학이라는 게 꼭 우상향하는 건 아니지.’
중세 시대를 맞아 인류의 지식이 롤백하면서 19세기까지 그냥 공기 감염이라고 믿었다.
정작 후대의 인류는 그때의 관찰 결과들을 다 잊어버린 셈이다.
기껏해야 늪지에서 나온 더러운 냄새가 원인이라고 믿은 정도.
하지만 이제는 모두가 알다시피 말라리아의 주 감염원은 모기다.
열대 지역에서 주로 번성하는데, 이 모기가 일종의 기생충을 옮겨서 감염시키는 것이다.
모기가 쪽하고 피를 빠는 순간 실 모양의 기생충이 몸으로 쑥 들어가게 되고 이놈이 간에 기생하면서 증식, 또 증식.
마침내 낭포를 만들어 내니까.
그리고 이 주머니가 터지면서 무슨 일이 생긴다?
그 안에 든 베이비 기생충들이 이제 적혈구에서 번식을 시작한다.
이제 얘들이 적혈구 타고 다니면서 장기로 가면.
신장을 망가뜨리고 폐에 염증을 일으키고, 당연한 말이지만 적혈구를 파괴하니 빈혈에 혈당도 훅 가게 된다.
이놈들이 머리로 가게 되면 뇌 말라리아(Cerebral Malaria)라고 하는데 발작, 코마 같은 상태를 일으키고.
초기에 치료하지 않으면 난청, 실명 같은 영구적인 장애도 만들어 낼 수 있다.
더 엿 같은 게 이런 상황에서 어찌저찌 인간이 끈질긴 생명력으로 살아남아도.
간에 원충이 남아 있다 보니 나중에 낭포가 생기고 그게 또 터지고 다시 시작이다.
미친 소리 같지만 강호식으로 이걸 보자면 한번 걸리면 계속 재발하는 지속적인 충독(蟲毒)인 셈!
‘요즘 애들은 말라리아 무서운지 모르지.’
다행히 우리나라는 거의 박멸되어 가는 수준.
거기다 우리나라 토착 말라리아는 생각보다 치료가 쉽고 예후도 좋다.
그러다 보니 이게 얼마나 무서운지 잘 모른다.
하지만 겨울이 없는 열대에 서식하는 말라리아는 여전히 무서운데, 여행을 갈 때 꼭 말라리아 위험 국가는 미리 철저하게 준비해서 조심해서 갔으면 하는 의료진의 마음이다.
위에서 말했던 열대 지역에 서식하는 모기 때문이기도 하고.
그런 위험한 걸 해외 가서 걸려 오면 난리 나는 거니까.
“사천성에 말라리아…? 아니, 근데 거기… 말라리아 잘 퍼질 만한 동네긴 하지.”
지구 별 고대 중국에서도 이 학질 없애려고 많은 이들이 고생을 했다.
그때에도 사천, 광동, 절강, 운남 등의 지역에서는 말라리아가 자주 번지고는 했는데.
실제로 말라리아 치료제를 개발해서 노벨상을 받은 중국의 의학자 투유유가 그 신약을 개발하게 된 경위도 1950~60년 당시에 말라리아가 중국 내에서 크게 유행했기 때문이라는 글을 본 적이 있다.
필요는 곧 발명을 부른다.
인류는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자신의 삶을 불태워 다음 세대에 전해줄 기술을 만들어 내고 있으니까.
“학질(말라리아) 치료제는 이미 있지 않나요?”
지난번 진주언가의 유적으로 깨달았듯이.
‘이 세계에도 선인 갈홍이 있지.’
그것도 진짜 선인.
그러니까 인간이 도를 깨달아 등선이 가능한 세계에서 진짜 선인(仙人).
그가 쓴 저서 포박자도 있고.
특히 포박자의 경우 비전은 갈홍이 세운 문파인 나부파에 전해지지만, 일반적인 단약과 제약의 방법은 민간에도 널리 퍼져 있다.
그리고 그 포박자에 보면 학질 치료제가 있다.
“널리 알려진 치료제가 있긴 해도 효과가 완전히 먹히는 건 아니란다.”
‘실제로 학질 치료제를 써도 살 수 있는 확률은 반반이라고 하지. 전통적인 방법으로 만들기 때문이기도 하고.’
반반이라는 것도 체감상 반반이지, 현대 의학에서 하듯 통계를 내는 것은 아니니 더 낮을 가능성도 크다.
거기다가.
‘약값이 비싼 데다가 품질도 들쑥날쑥한 게 가장 큰 문제인가.’
각 약방에서 옛날부터 전해져오는 방식대로 만들다 보니까 약방마다 품질이 다르다.
혹자는 이렇게 물을지도 모르겠다.
‘그러면 가장 뛰어난 약방만 살아남지 않겠냐고.’
현실은 조오금 다르다.
왜 점쟁이도 미래를 잘 맞히는 사람보다 말발이 좋은 사람이 더 많이 번다고 하지 않던가.
통계로 무언가를 측정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시험을 봐서 의원 자격증을 주고, 그 사람만 의방 차릴 수 있는 제도가 있는 것도 아니기에 결국 인간은 그때그때 개인적인 경험, 그리고 호감으로 움직이기 마련.
‘거기다 인터넷 후기 제도가 있는 것도 아니고. 외진 마을에 약방 하나 있으면 선택의 여지도 없고.’
그러다 보니 이 시대에는 그냥 대를 이어온 돌팔이도 있기 마련.
미친 소리 같지만 제대로 된 의술이 없어도 용해 보인다는 이미지만으로도 먹고살 수 있는 시대다.
스승님이 말했다.
“사천성주가 사천당가와 아미파에 도움을 요청했고 그 외의 다른 문파와 약방, 의각들에도 도움을 요청했다고 하지만……. 쉬이 가라앉지는 않는다더구나.”
“청성파는요?”
“아, 혈사 중 원인불명의 화재로 장문인께서 돌아가신 후에 계속 쇠락의 길을 걷고 있단다. 안타까운 일이지. 지금은 멸문 직전까지 갔다더구나.”
“아…….”
엎친 데 덮친 격인가.
이는, 강호의 흔한 일이기도 했다.
진천희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말을 이었다.
“음…. 아무래도 병의 원인을 제거하기가 쉽지 않을 테니까요. 특히 그 지역에서는.”
사천성.
모기가 번식하기 아주아주 좋은 지역이다.
덥고 습기 많고. 선황 때 크게 일을 친 이후로는 공공행정력도 거의 닿지 않는다.
거기다가 올해 기온이 이상하리만치 높은데 비는 또…….
다른 지역들은 가뭄인데 이 동네는 여전하단다.
오히려 다른 곳이 가뭄인 만큼 더 내리는 것 같다는 보고서도 존재한다.
덕분에 새로운 늪지가 많이 생겼다고.
‘모기 양식장이군.’
“음……. 그렇군요. 학질 치료제를 들고 가봐야겠는데요?”
“오히려 잘됐구나. 사실상 필요한 절차는 다 끝내놓지 않았느냐.”
“네. 사실상 이름 정하기 전 단계이긴 하죠.”
원래라면 내년 초나 올해 말쯤 느긋하게 세상에 내놓을까 했다.
‘사천당가와 교류를 하면 지금보다 더 개량할 수 있을 수도?’
그 순간, 진천희는 순식간에 말라리아의 역사와 치료제에 대한 기억들을 뇌 안에서 다시 리스닝했다.
위이이이잉!
이번에 새로 얻은 마(魔)의 씨앗.
천마신공의 심마가 갈린다.
작은 진천희들은 함께 갈릴 동지가 생겨 기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뭐지……? 나 미쳐 가는 건가.’
모두 다 현원전단신공에서 파생된 것들뿐인데 기뻐하다니. 이건 꼭 작은 진천희들 하나하나가 자아가 있…….
‘그럴 리가 없지.’
작은 진천희들이 동시에 속삭이자 진천희가 최면이라도 걸리듯 저도 모르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그럴 리가 없어. 이건 그냥 현원전단신공과 양의심공의 현상일 뿐이니까.’
아무튼 천마신공까지 갈아버리는 데 쓰면서 진천희가 몸을 일으켰다.
“가기 전에 준비할 게 많겠네요. 연구당 의원들한테 부탁할 게 많겠는걸요?”
“그래. 넉넉히 챙겨가려무나.”
“스승님. 준비할 게 많은데 유호를 빌려주실 수 있으실까요?”
“그러려무나. 유호가 짐 싸는 데에 일가견이 있지.”
그렇게 유호에게 채비를 맡기기로 했다.
“알겠습니다. 스승님, 의술 교류회 잘 다녀오겠습니다.”
“그래. 잘 다녀오렴. 참, 이번에는 사마 당주도 데려가거라.”
“사마 당주를요?”
사마혜.
진천희의 눈이 살짝 커진다.
“그래. 사천당가의 독 중에 연구하고 싶은 게 있다더구나. 잘만 하면 재생당에서 요긴하게 쓸 것 같다고 하던데.”
그러고 보니 사마혜는 당아를 무척 동경하지 않았던가.
‘우와, 전설의 만남이군.’
혈편왕 당아와 재생당주 사마혜.
역대급 팀이 완성되는가.
“알겠습니다. 제자, 안전하게 잘 다녀오겠습니다!”
진천희가 스승께 예를 표했다.
* * *
의술 교류회.
이는 의각에서 손꼽힐 만큼 중요한 행사다.
논문 시스템이 없는 세계에서 서로의 의술을 교환하는 일은 무척이나 중요하다.
‘새로운 의술 친구는 언제나 환영이야!’
하지만 이번에는 전염병까지 나돈다고 하니 진천희는 특별하게 일행을 꾸렸다.
우선 백린대 백 명을 차출, 청린대는 이백 명을 차출, 도합 삼백 명.
어지간한 중소 문파는 쓸어버릴 전력이다.
장강의 수적이든, 대산의 산적이든 감히 덤비지 못하리라.
그리고 같이 가는 의원들은 삼십 명.
거기에 마차에 가득 짐을 담았다.
각종 약재, 그리고 이 시대 기준으로 나름대로 최신인 의료 기기들도 챙겼다.
그리고 그중 한 마차는 아주 특별하다.
약을 만들 수 있는 제조 공방 설비를 갖춘 마차인 것이다!
그야말로 이동하는 제조 공방!
무빙 메디컬 랩!
물론 이동하면서 만드는 건 아니고 주차해 놓고 제작에 들어가야 하지만 이런 기능을 가지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혁신이다.
백린의각표 최신식 의료기기들!
원심분리기! 냉각기! 기타 등등!
아주 알뜰살뜰하게 들어가 있다!
거기다가 이번에 만든 학질 치료제들도 따로 짐마차에 잔뜩 챙겼다.
“거의 완성했다고는 하나, 아직 세상에 공개하기 전인데 말이죠.”
“이번에 사천당문과 교류하면 부작용을 더 보완할 수 있지 않을까요?”
“후후후, 나의 학질약아. 어둠을 품고 꿈틀거리고 있구나.”
벌써부터 마음만은 사천당가인 연구원들도 있었다.
그만큼 사천당문과의 교류회는 무척 기대가 컸으니까.
‘그리고 보니 지금쯤 남궁 형은 뭐 하고 있을까?’
문득 그가 생각났다.
주영영이 마교의 첩자임을 알린 이후, 남궁세가는 이상하리만치 조용했다.
그때 사마혜가 진천희를 향해 달려왔다.
“은공! 오라버니가 어떻게 알고 혈편왕 장신구들을 잔뜩 보내줬어요!”
사마혜의 손에는 붕대가 감겨있었다.
물론 드레싱용이 아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멋’을 위한 것.
‘당아 패션?!’
사마혜가 말했다.
“은공도 같이 해요!”
진천희는 왜 남궁운이 떠올랐는지 그제야 깨달았다.
그는 세상에서 가장 당아를 잘 다루는 인물 중 하나였으니까.
사마혜가 말했다.
“크크큭, 본좌는 혈편왕. 피를 좇는 어둠의 자객이다. 덤벼라. 어리석은 빛의 협객들이여!”
“…….”
거기 모인 의원 모두가 재생당주를 쳐다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