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hwa Manri RAW novel - Chapter 206
기수와 석초, 그리고 다섯 사매는 행인마다, 객잔마다 물어보며 시체처럼 눈이 퀭한 키다리 남자의 행방을 물었다.
그러나 호중만을 봤다는 사람은 찾을 수 없었다.
꽤 특이한 외형인데 본 사람이 한 명도 없다는 것은 그가 인적 없는 길로 이동했거나 밤에 움직였다는 걸 의미했다.
“꽤 신중한 걸.”
기수가 못마땅한 표정을 짓자 석초가 말했다.
“어쩌면 이곳에 진짜 강시 소굴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니까 그렇게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겠지요.”
“강시라면 이미 무덤에서 찾아냈잖아?”
“일월신교의 차기 교주 자리를 노리는 유지상의 지원을 받아서 만드는 건데, 고작 그 정도 규모에서 그쳤겠습니까?”
“흐음…. 듣고 보니 그러네.”
연구소 따로, 공장 따로 운용했을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었다.
“좋아. 석초 너. 여기서도 관군을 동원할 수 있지?”
“물론입니다.”
“그럼 사람 좀 풀어서 지난번에 압수한 것들과 같은 재료를 살 수 있는 약재상들을 모두 조사해 줘.”
“예. 알겠습니다. 구매자를 찾으면 놈들도 찾아낼 수 있겠군요.”
기수는 그동안 한적한 객잔을 찾아 머물기로 했다.
일부러 외진 곳을 찾은 이유는 혈매궁의 흔적이 알려지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었고, 마당이나 근처의 숲으로 찾아가서 연공을 하려는 의도도 있었다.
지난번에 유성추로 악차명의 요혈을 정확히 명중시킨 것은 그에게 짜릿한 쾌감을 안겨주었다.
줄에 묶인 불안정한 무기로도 그런 정밀한 타격이 가능하다는 것, 특히 몸을 휘감아 돌렸는데도 성공시켰다는 사실이 그를 유성추에 더욱 빠져들게 만들었다.
어렵고 까다로운 무기를 연습하는 것은 마치 악기 연주를 익히는 것과 비슷했다.
처음엔 C코드 잡기가 그렇게 힘들지만 나중엔 B7같은 코드도 착착 잡게 되고, 그때마다 재미를 느끼게 되는 것이다.
사매들은 자기들과 놀아줄 시간에 추를 돌리고 있는 기수를 살짝 원망도 했지만 기수는 연공시간을 줄이지 않았다.
그의 유성추 실력은 짧은 기간 동안 장족의 발전을 거듭했다.
기수가 만약 처음부터 유성추로 무공에 입문했다면 그것은 참으로 머나먼 길이었을 것이지만, 그는 이미 분광권이나 여러 가지 검술을 익히고 그 묘의를 깨달은 고수였다. 그리고 북궁천을 만난 이후 무학에 눈을 떴기 때문에 비록 무기의 종류가 바뀌었다고 해도 공통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부분이 많았다.
유성추 특유의 움직임에만 익숙해지면 얼마든지 변형이 가능한 것이다.
이를테면, 월영검법이나 탈백도, 동굴검법의 초식들을 유성추 스타일로 구현해낼 수도 있었다.
며칠이 지난 뒤.
석초는 구매자의 위치까지 알아내는데 성공했다.
“무석산에 단양관이라는 도관이 있다고 합니다. 약재상마다 그 이름이 겹쳐서 언급되고 있습니다.”
“좋아! 수고했어.”
석초는 기쁜 표정으로 웃었다.
기수는 혈매궁 유니폼을 챙겨 입고 무석산을 찾아갔다.
포구에서 꽤 먼 거리였는데, 골짜기가 깊고 봉우리가 연달아 있어서 뭔가 숨어서 나쁜 짓 하기에 어울릴 것 같은 지형이었다.
기수는 근처 마을사람에게 단양관에 대해 물었다.
그러자 동네 노인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대답했다.
“단양관은 이제 없습니다.”
“예? 불이라도 났나요?”
“그건 아닙니다만 도관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럴 리가요…”
“예전엔 나도 그 도관에 향을 올리러 가곤 했습니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요괴들이 차지하고 앉아서 참배객들을 죽이더니 아예 도관이 통째로 없어져 버렸습니다. 이젠 산으로 올라가도 그 도관을 찾을 수 없습니다.”
기수는 사매들과 시선을 맞추고 씩 웃었다.
아주 익숙한 스토리였다.
기문진으로 접근을 차단하고 요괴 놀이로 겁을 주는 방식이라면 기수 쪽이 전문가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
“예전엔 어떤 식으로 올라갔는지 가르쳐주실 수 있겠습니까?”
“물론입니다.”
노인은 막대기로 땅에 선을 그으며 최대한 자세히 길을 알려주었다.
기수는 감사의 표시로 은전 하나를 주고 헤어져 무석산을 오르기 시작했다.
노인이 말한 큰 바위를 지나 한참을 걷던 일행은 놀라운 광경을 보게 되었다.
큰 바위가 다시 나타난 것이다.
“기문진이다!”
사매들은 기수를 봤다.
그러나 기수도 전혀 알아차리지 못한 진법이었다.
그는 세상에 다시 있기 힘든 절진, 무극환혼진을 마스터하고 있었다.
그리고 아는 진법은 그게 유일했다.
검법에 정통하면 권법에도 통하는 게 있듯이 기문진도 하나에 정통하면 다른 진법을 알아볼 수 있어야 하는데, 기수는 그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그래도 약한 모습을 보일 수는 없어서 일단 주변 지형을 잘 살펴봤다.
“자! 나를 따라와.”
그리고 탁지연에게 배웠던 구궁 팔괘진의 기초와 무극환혼진의 변화들을 면밀히 조합시켜서 1시간 정도 열심히 산을 올라갔다.
그리고 마침내 큰 바위에 도착했다.
기수는 낯을 들 수 없었다.
석초와 사매들은 기수 체면을 생각해서 아무 말고 하지 않았고, 시선도 마주치지 않으려고 했다. 그래서 더 창피했다.
‘아! 씨발… 네비라도 있었으면….’
석초가 조심스럽게 말했다.
“형님. 제가 한 번 길을 찾아볼까요?”
“아! 기문진법에 대해 배웠나?”
석초는 자신 있는 어조로 대답했다.
“물론입니다. 장수 될 사람이라면 응당 제갈량의 팔진도부터 공부해야지요.”
기수는 그가 미웠다.
‘그럼 진작 나섰어야지!’
어떻게든 웃는 낯으로 그를 앞장세웠고, 석초는 손가락을 짚기도 하고 중간에 태양의 위치를 확인하기도 하면서 1시간 넘게 길을 열었다.
그리고 마침내 큰 바위에 도착했다.
기수는 그를 놀려주고 싶은 마음을 억지로 꽉 눌러 참았다.
“일월신교에도 진법에 능통한 사람이 있었군.”
적어도 무극환혼진과 동급은 된다고 할 수 있었다.
그보다 하위 레벨이었다면 두 사람 중 한 명은 길을 찾거나 적어도 파진의 힌트라도 발견했을 것이었다.
춘매가 말했다.
“이 정도까지 준비한 걸 보면 여기가 진짜 강시 제작장이 분명해.”
기수도 동감했다.
“호중만도 이 산에 있을 거야.”
거의 다 따라와 놓고 마지막에 막혔다는 사실이 별로 기분 좋지 않았다.
“확! 불을 싸질러 버릴까?”
홧김에 한 말이었는데 나름 괜찮은 생각 같았다.
좌우를 둘러보았지만 산불조심이란 팻말은 없었다.
자연보호는 600년 뒤부터 하기로 하고 일단 기문진의 형태를 바꾸는데 효과적인 수단을 동원하기로 했다.
화섭자로 모닥불을 피우고 일곱 명이 거기에서 불씨를 옮겨 숲에 불을 지르려 하자 갑자기 숲 속에서 귀곡성이 들려왔다.
소름끼치는 소리였지만 기수는 오히려 기뻤다.
“오케이! 드디어 요괴가 나오는구나.”
역시 불 지르기가 옳은 선택이었다.
잠시 후 파공음과 함께 20여명의 사내들이 기수 일행의 위쪽과 아래쪽으로 각각 모습을 드러냈는데, 다들 얼굴에 괴물 형상의 가면을 쓰고 손엔 무기를 들고 있었다.
그들 중 한 명이 음산한 어조로 말했다.
“감히 우리 산에 불을 지르려고 하다니. 죽고 싶어 환장했구나.”
기수가 나섰다.
“어이! 가면이 뭐냐? 화장을 해야지. 얘들이 성의가 없네.”
“무, 무슨 소리를 하는 거냐!”
“너희들 일월신교지? 호중만은 어디 있냐?”
그러자 상대가 당황하는 게 보였다.
가면 때문에 얼굴 표정은 볼 수 없었지만 몸이 흠칫했다.
기수는 제대로 찾아왔다는 생각에 쾌재를 불렀다.
‘됐다!’
이제 이들을 생포해서 길잡이로 삼으면 기문진 문제를 해결할 수 있고, 그러면 자기는 호중만을 잡아 소서시의 복수를 하고, 석초는 강시를 찾아 백무영에게 점수를 딸 수 있게 되는 것이다.
그런 기수의 계산을 복면인들은 알지 못했다.
“쳐라! 한 놈도 살려두지 마라!”
“와아!…….”
일제히 함성을 지르며 위아래에서 동시에 공격해 들어왔다.
기수는 석초와 사매들에게 외쳤다.
“전부 뒤쪽을 맡아! 앞은 나 혼자 맡을 거야.”
그리고는 유성추를 꺼내어 맵시 있게 휘두르기 시작했다.
“크아악!….”
“으윽!….”
달려들던 복면인들은 무릎과 정강이를 움켜쥐며 쓰러졌다.
쇳덩어리에 뼈를 정통으로 맞았으니 파울 타구에 맞는 것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아플 것이었다.
기수는 신이 났다.
대충 다리를 목표로 때리는 게 아니라 무릎 혹은 정강이를 특정해서 노렸는데 정확하게 목표에 적중하는 쾌감은 대단한 것이었다.
기수는 상대의 무기를 쳐내기도 하고, 팔꿈치나 발바닥으로 휘감아 돌리기도 하면서 재미를 만끽하다가 문득 궁금해서 뒤를 봤다.
석초와 사매들은 이미 적을 모두 제압한 상태였다.
뒤쪽의 적은 10여명이었기 때문에 한 사람이 2명만 제압하면 끝이었다.
‘어쩐지 조용하다 했더니…’
기수는 씩 웃은 후 사매들 보는 앞에서 더 화려하고 복잡한 유성추 테크닉들을 펼쳐 보이기 시작했다.
쓰러지지 않은 적의 수가 계속 줄어들어 마침내 대여섯 명밖에 남지 않게 되었을 때 숲에서 소리가 들려왔다.
“모두 물러서라! 못난 놈들…”
그 말에 남은 복면인들이 황급히 뒤로 후퇴했다.
그리고 숲에서 한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기수는 유성추를 거두어들였다.
상대의 기세가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다.
나타난 자는 50대 정도의 깡마른 얼굴에 머리카락과 수염은 전부 백발이었다.
그런데 그 모발들이 전부 빳빳하게 사방으로 뻗어 있었다.
큰 키에 팔다리도 길었고 어깨엔 커다란 낫 2개를 교차하여 멘 상태였다.
석초가 긴장한 어조로 말했다.
“흰 머리에 2개의 낫. 다, 당신은 혹시… 박피왕?”
“흐흐흐….. 나를 알아볼 정도라면 무명소졸은 아닐 터. 너희들은 누구냐?”
기수는 자기도 모르게 침을 꿀꺽 삼켰다.
일월신교 9마왕 중의 한 명을 여기서 만나게 될 줄은 몰랐던 것이다.
‘유지상 쪽에선 이 강시에 전력을 기울이고 있구나. 9마왕 중 하나를 보낼 정도라니. 그렇다면 강시의 위력도 그만큼 대단하다는 뜻이 되나?’
기수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뜻밖의 적이긴 하지만 어쨌거나 호중만을 처단하는데 방해가 된다면 모두 쓰러트릴 뿐 다른 선택은 없었다.
“우리는 호중만을 잡으러 왔다. 방해하지 않는다면 네놈 목숨을 살려주겠다.”
그러자 박피왕은 기수를 빤히 보다가 앙천광소를 터뜨렸다.
“크하하하! 살려주겠다고? 나를? 크하하….! 감히 내게 그런 말을 하다니!”
그가 발을 구르며 호통을 치자 무석산 전체가 쩌렁쩌렁 울렸다.
기수는 움찔했다.
내지르는 기합에 실린 내공만 해도 보통이 아니었다.
‘천마교의 3천제와 일월신교의 9마왕이 비슷한 레벨일지도 모르겠는 걸.’
그렇다면 심각한 상황이었다.
자기가 열심히 존슨을 움직여 업그레이드 시켜주기 이전의 혈천제.
그 수준으로도 그녀는 이미 엄청난 고수였다.
지금 눈앞의 박피왕은 당시의 그녀를 연상시키는 기도를 보이고 있었다.
‘내가 이길 수 있을까?’
동창의 천호 진유룡과 싸울 때도 그를 압도해서 이겼다고는 볼 수 없었다.
정말 간발의 차이로 파천강기가 먼저 그의 심장을 꿰뚫었기 때문에 붉은 암경에 빗겨 맞고, 지금 살아 숨 쉬고 있는 것이다.
‘이겨야만 한다!’
자기가 쓰러지면 사매들과 석초 모두 이 자리에서 죽을 수도 있었다.
기수는 유성추를 땅에 떨어트리고 장검을 뽑았다.
최선을 다해야 하는 상대였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쩔 수 없구나. 너를 쓰러트리고 호중만을 잡는 수밖에…”
“흐흐흐….. 아이야. 네 이름이 무엇이냐? 도대체 어떤 놈이기에 이토록 무모하고 건방진지 참으로 궁금하기 짝이 없구나.”
기수는 가슴을 펴고 당당하게 대답했다.
“난 혈매궁의 궁주 양칠이다!”
“혈매궁?”
박피왕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는 기수와 사매들의 옷에 수놓인 매화를 확인한 후 물었다.
“철마방을 습격한 혈매궁이 바로 너희들이란 말이냐?”
기수는 사매들 쪽을 돌아보고 씩 웃었다.
“우리 벌써 유명해진 것 같은데?”
신흥 방파가 지명도 올리는 데는 역시 한 판 아수라장을 만드는 게 최고인 듯 했다.
춘매가 긴장한 표정으로 턱짓을 했다. 전방을 주시하라는 뜻이었다.
그녀뿐만 아니라 석초와 사매들 모두 안색이 잔뜩 굳어 있었다.
그들도 박피왕이 강함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는 것이었다.
기수는 미소를 지어 보였다.
“다들 걱정하지 마. 이놈은 내가 처리할게.”
그러자 사매들운 억지 미소를 지어 보였지만 석초의 겁먹은 표정은 풀리지 않았다.
기수는 박피왕을 돌아보았다.
그리고 내공을 서서히 끌어올렸다.
박피왕이 기수를 노려보며 물었다.
“네게 이 일을 시킨 자가 누구냐?”
기수는 코웃음을 쳤다.
“물어볼 걸 물어봐라. 의뢰인의 신분을 비밀에 붙이는 건 기본 중 기본이라고.”
“대도왕이냐? 아니면 마추왕? 도산왕?”
“염라대왕이다.”
“흐흐흐…. 오냐. 네놈을 제압한 후 천천히 고문하면서 물어보기로 하지.”
“그게 잘 될까?”
기수는 검에 진기를 주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