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ransform or death RAW novel - Chapter 173
Chapter 173 – 신성 (3)
“내가 지다니… 말도 안 돼… 말도 안 돼….”
절망에 빠진 실버 루나를 뒤로 한재중은 몸에 느껴지는 위화감을 확인했다.
형체 없는 무언가가 몸 안으로 들어와 실체가 되었다.
곧 한재중은 위화감의 정체를 확인했다.
상실의 덩어리. 전갈이 빼앗아 간 수많은 것들 중의 일부였다.
‘분신이라도 전갈의 일부. 나름대로 갈취한 것들을 가지고 있던 건가.’
안타깝게도 건강에는 도움이 되지 않았다. 겪지 않았던 기억이나 감정 등을 떠올릴 일도 없었다. 수명이나 경험 따위의 철저한 사적 소유물은 아니었다.
느껴지는 건 광채(光彩). 혈류 속을 자그만 입자들이 채우고 있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이건 분명히 빛이었다.
‘별빛이네.’
원래부터 괴인을 쓰러뜨리면 별빛을 추가로 얻긴 했다. 이건 변신 시스템만의 특이성으로 인한 것.
하지만 지금 몸이 받아들이고 있는 별빛은 그 이상이었다. 아무리 강적이었다고 해도 이 정도의 별빛을 받기는 어려운 일이다.
이 정도의 양은…..
“…!”
순간, 알싸한 고통이 전신을 휘감았다. 혈관 전체가 화상을 입는 듯한 고통. 시야가 하얗게 변하고 소리조차도 내지를 수 없었다.
안 그래도 인간의 평범한 몸으로 감당하지 못할 양의 별빛이었다. 여기에 다시 압도적인 양의 별빛이 추가되었다.
심지어는 큰곰자리를 사용한 후유증과 겹치기까지 했다. 여러 부작용을 일으키는 건 어찌 보면 당연했다.
한재중은 간신히 호흡을 되찾고 사태를 파악했다.
‘방금 전 모순 놈이 내 안에 있는 광량이 별 30개 정도라고 했으니까… 지금 전갈에게서 빼앗은 건 15개 정도의 분량인가.’
수명은 담고 있지 않아도 별빛은 상당히 많이 담고 있었는지 꽤 수확이 컸다. 다음에 큰곰자리를 사용했을 땐 지금보다도 더 빠르고 포악해질 수 있겠지.
‘그에 비례해서 후유증도 거세지고 말이야.’
그렇다고 은하의 짐승을 상대하는 데 힘을 뺄 수도 없는 일이다. 참 난감했다.
‘뭐, 본체만 쓰러뜨리면 어떻게든 손해를 복구할 수 있으니 괜찮겠지.’
호재는 호재였다.
어차피 분신을 쓰러뜨린 걸로 바로 수명을 회복할 수 있으리란 기대는 하지 않았다. 있다면 좋은 일이지만 없다고 실망할 일은 아니었다.
이는 원작에서 마법 소녀와 전갈과의 사투를 보며 미리 기대를 접을 수 있었던 덕이 컸다.
“말도 안 되는 일이라고요…!!!”
“그만. 뚝.”
한재중은 시선을 돌려 무표정으로 실버 루나의 어깨를 토닥이는 마젠타 헬리오스를 보았다.
아마 지금 제일 아쉬워하고 있을 사람. 그 실망감은 실버 루나와 비교도 할 수 없겠지.
느리게 어깨를 토닥이고 있던 마젠타 헬리오스와 눈이 마주쳤다.
“음.”
그녀는 손에 둥근 화염구 하나를 만들더니 망설임 없이 와쳐를 향해 던졌다.
“자, 잠깐만요?!”
레드 베가가 놀라 소리쳤지만 이미 늦었다.
화염구는 거리가 멀어질수록 거대해져, 와쳐의 코앞까지 왔을 땐 거대한 바위에 가까운 크기가 되었다.
방심하고 있던 건 아니다. 하지만 몸의 상태가 너무 안 좋았다. 평소라면 피하던가 맞대응 해 불꽃을 깨뜨리던가 했을 텐데, 지금은 그러지 못했다.
그 순간 화염구 주변의 공기가 일렁거리더니 순식간에 그것의 자취가 감춰졌다.
“그만하시오.”
벨트에서 손을 뗀 제이슨이 불쾌하단 투로 내뱉었다.
“방금 전까지 공투하던 사이 아니오. 이런 예의가 어디 있소?”
“괴인 상대로 예의를 지키라니 헛소리도 가지가지 하네.”
맞는 말이긴 했다. 한재중은 공격당할 뻔했으면서도 무심코 동의해버렸다.
“너희들은 우리 상대로 예의를 갖춘 적이 있었나? 안 그래? 자기 소개도 전에 먼저 이름을 맞추신 거기 괴인 씨?”
역시나. 그녀의 심기를 거스르게 한 이유는 명확했다. 마젠타 헬리오스가 등장 대사를 말하기도 전에 이름을 맞춰버린 것.
이는 확실히 신경이 쓰일 수 밖에 없다.
“내가 활동하던 때엔 못 보던 놈인데… 너 어디 출신이야? 뭐 들은 게 좀 있나 보지?”
“…? 무슨 소리를….”
제이슨은 어리둥절하게 되물었다. 보기엔 열살 남짓의 꼬마아이가 연식이 대단한 어투를 쓰고 있으니 어색할만도 했다.
마젠타 헬리오스의 나이는 겉보기처럼 어리지 않다.
그녀는 한재중이 태어나기 전부터 활동한, 레드 헬리오스 본인이니까.
원작에서 전갈자리의 에피소드는 마젠타 헬리오스를 위한 것이었다.
전갈의 이름을 듣고 그녀도 등장하지 않을까란 예상을 하긴 했지만, 막상 실제로 보니 너무 놀라 마음 속의 소리가 튀어나와 버렸다.
역시 별의 힘이란 참 신비로운 것이었다. 실제로는 지금쯤 저만한 딸이 있어도 이상하지 않은 나이의 사람이 저런 겉모습을 하고 있으니.
세간에 레드 헬리오스는 전갈에게 별빛 대부분을 빼앗기고 마법 소녀에서 은퇴하여 잠적했다고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조금 다르다.
전갈이 레드 헬리오스에게서 빼앗은 건 별빛만이 아니라, 나이였다.
전투 한번에 신생아 수준으로 어려졌으니, 당연히 은퇴할 수 밖에 없겠지. 거기에 별빛 탓에 몸의 성장도 느려졌다. 저 몸이 되기까지 십 년도 넘는 세월이 필요했다.
하지만 전투에 도움이 되는 수준의 별빛은 아니라. 그녀는 마법 소녀의 계약을 파기하고 다시 계약해 완전히 새롭게 단련해야만 했다.
당장 그녀가 가진 광량은 레드 베가의 반절 수준. 한재중과 만난 직후의 레드 베가 수준이었다. 마력만 본다면 대단치 못하다.
그런 헬리오스가 신성과 은하의 힘이 오가는 이곳에서 살아남다 못해 도움까지 되는 이유는 간단했다.
기술.
여기 있는 인원 중에서 압도적으로 스킬이 뛰어나다. 적은 양의 별빛을 최대한 살리는 것도 모자라 전투 중에 공기 중에 나돌게 된 별빛까지 이용한다.
몸에 둘러 있는 분홍색 막. 집중하지 않으면 보지도 못할 정도로 얇은 저 막이 이 기술의 핵심이었다.
탈 수 있는 곳이 있으면 커지는 불꽃처럼, 주변에 마법의 영향을 받을 수 있는 별빛이 있다면 별빛의 일부분으로 삼는다.
저 막은 일종의 필터이자 장작이었다. 막을 투과한 마법은 별빛에 간섭하기 쉬운 상태로 변하고, 공기 중에 흐르는 별빛을 흡수하여 크기를 불릴 수 있다.
사용하는 마법도 변환이 쉬운 불이니만큼 범용성이 좋은 기술이다.
“천조대신(天照大神).”
마젠타 헬리오스가 주문을 외자 그녀의 발 아래에서 거대한 불덩이가 올라왔다. 불덩이는 꿈틀거리다가 하나의 형체가 되었다. 상반신만 있는 거인과도 같은 모습이었다.
불안정한 불로 완벽히 안정한 형체를 만들어 조종한다. 와쳐도 여러 힘을 다루는 만큼 저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를 알았다.
작은 몸이라도 넓은 활동을 가능하게 하는 불의 거인까지. 역시나 마법의 활용에 대해선 다른 마법 소녀가 당해낼 바가 아니었다.
‘원래는 더 요양 중이여야 할 텐데. 전갈이 빠르게 움직이니까 저쪽도 빠르게 대응한 건가.’
일본에서도 그녀의 정체에 대해선 극비 사항이다. 아마 마법 소녀들 중에서도 극히 일부만 아는 사실이겠지.
좀처럼 세상에 내보내지 않는 그녀를 한국까지 파견한 걸 보니 여간 전갈을 죽이고 싶었던 모양이다.
‘역시 저 쪽의 상실의 비밀을 알고 있다.’
잃어버린 만큼 다시 얻을 수 있다. 세월과 힘을 잃은 그녀라면 눈이 뒤집힐 소식이겠지.
그러니 평소 찾아보긴 힘든 전갈을 찾았단 소식을 듣자마자 이 타국까지 귀중한 발을 옮긴 것일 터.
이토록 찾아 헤맨 전갈을 눈 앞에서 빼앗겼으니 분할만도 하다. 거기에 모르는 게 정상인 자신의 이름을 한 눈에 보고 맞추기까지.
위험하다고 판단하는 것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공투는 무슨. 전갈을 약체화 해주면 좋으니 협력한 것뿐이야. 설마 루나가 마지막 한 방을 실패할 줄은 몰랐지만….”
“우우우우….”
마젠타 헬리오스가 한숨을 쉬자 실버 루나가 어깨를 움찔 떨었다.
“내가 널 어떻게 해야 할까? 사실은 이미 결정했어. 내 정체를 눈치챈 데다 전갈에게도 나름대로 원한을 가지고 있는 것 같은 너의 정체가 정말 궁금해졌거든.”
“의외로 수다쟁이였군.”
“이 목소리는 거북해서 말이야. 말하기가 싫어지거든.”
마젠타 헬리오스는 아까 그랬듯이 손 안에 불덩이를 뭉쳤다. 그녀를 받치고 있는 거인의 양손에도 동일한, 그러나 보다 더 거대한 불덩이가 뭉쳐졌다.
“그러니까, 이제부턴 아는 대로 불어.”
슉-! 방금 전 그러했듯이 불덩이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거대해졌다. 세 불덩이의 경로는 서로를 보완하며 사각을 없앴다.
맞대응만이 할 수 있는 전부인데. 안타깝게도 그건 불가능했다. 아직 몸이 상당히 굳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옆에 있는 협력자를 믿었다.
나름대로 괴인이라면 그 값은 하겠지.
“어윽… 이거 진짜 빡센데 말이오….”
제이슨은 불평하며 벨트에 부착된 노를 저었다. 다시 한번 주위의 공간이 일렁거리더니 불덩이가 사라졌다.
펑-! 별안간 어딘가에서 커다란 폭발음이 들려 왔다. 가까운 곳에 떨어진 모양이었다.
“오, 오오… 돼, 됐소.”
“뭐가.”
“능력 말이오! 이 주변의 풍경을 상상했더니 원하는대로 되었소! 자네의 추측이 옳았다오! 내 능력은 단순히 길을 잃게 만드는 것만이 아니라….”
“어 그래 축하한다.”
와쳐는 대충 대답하면서 제이슨을 자신의 뒤로 보냈다. 그리고는 주먹을 휘둘러 날아온 얼음조각을 깨뜨렸다.
“우리 아까까진 괜찮았지 않았나?”
“일시 공투라고 말하지 않았나?”
“참 너 다워서 좋군.”
“그래? 난 너 참 싫은데.”
마젠타 헬리오스만으로 벅찬데 블루 시리우스까지 참전했다.
다행히 몸이 이제 좀 풀렸다. 회복된 몸을 즉시 혹사키는 게 안 좋다는 사실쯤이야 안다. 변신 해제 후의 몰아닥칠 후폭풍을 생각하면 무서웠지만, 지금은 그걸 따질 때가 아니었다.
문제는 블루 시리우스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후, 후후후… 설마 제가 이런 굴욕을 겪게 될 줄은….”
실버 루나가 비틀거리며 일어났다. 이건 좀 곤란했다. 아니, 많이 곤란했다.
그녀는 아직 신성 상태였다.
“하지만 이 역시 기회. 전갈을 쓰러뜨린 당신을 쓰러뜨리면 제가 전갈보다도 강하다는 증명이 되겠죠? 결국 이 전투의 주인공은 제가 되는 겁니다! 어머? 역시 나 천재일지도…!”
말하는 게 참 재밌다. 사적으로 만났다면 말이다. 지금은 저런 말 같지도 않은 헛소리도 농담으로 치부할 수 없었다.
실버 루나가 한 걸음 뻗었다.
“옐로! 엄호 부탁해요!”
쩌저적-!!! 그녀가 서 있던 땅이 마구잡이로 갈라지고. 실버 루나는 순식간에 바로 앞까지 다가왔다. 실버 루나의 눈동자 가득 와쳐의 얼굴이 담기고, 그녀는 주먹을 들었다. 주먹이 너무나 찬란하여 마치 작은 달을 보는 듯했다.
방금 전 전갈에게서 느꼈던 공포와 비슷했다. 그야말로 압도적인 피지컬.
그런 실버 루나의 주변, 이리저리 직각으로 휘며 다가오는 노란색 궤적이 보였다. 옐로 카스토르의 총탄이었다.
손이 뭉개지는 각오를 하며 와쳐가 따라 주먹을 들었다. 총탄은 그냥 맞는다. 괜히 피했다가는 뒤에 있는 제이슨이 죽는다.
‘왜 내가 이딴 놈들까지 신경을 써줘야 하는 거야.’
지켜야할 건 수호자인데.
지금 그 수호자 중 최강에 가까운 이가 자신을 죽이려 하니 어쩔 수 없었다.
“자! 저를 돋보이게 해주세요! 악당!”
“내가 죽인 괴인만 해도 너 나이는 넘었….”
“야 병신! 머리 숙여!”
와쳐는 홀린듯 머리를 숙였다. 그의 머리 위로 화살 하나가 지나갔다. 그것은 정확히 실버 루나의 주먹과 맞부딪혔다.
화살 옆에는 나비가 날았다. 그것은 다가온 총탄 전부와 닿고, 그 모든 궤적을 무로 화했다.
“이…!”
[SET. 역성(逆星).]와쳐는 다시 주먹을 들어 화살에 꽂아 넣었다. 못을 두드리는 망치처럼, 조금 더 강한 힘을 가하기 위해. 지금 쓸 수 있는 모든 힘을 쏟아 부었다.
텅-! 종이 울리는듯한 소리와 함께 충격파가 일고 실버 루나와 와쳐, 제이슨은 반대 방향으로 날아갔다.
화살은 부러졌다.
“너 좀 더 튼튼한 거로 쏴라.”
“내가 쓰는 것 중에서 제일 튼튼한 거야 병신아.”
와쳐는 땅을 구른 다음 이죽거리며 위를 올려다 보았다.
만신창이가 된 궁수와 오데트가 그를 반겨주었다.
“나보다 심하네. 네가 은하랑 싸웠냐?”
“오빠… 아니, 와쳐 당신이 저거랑 싸워봐. 그 소리 나오나.”
오데트가 손을 뻗자 와쳐는 그것을 지지대 삼아 일어났다. 제이슨은 궁수가 쌀포대 처럼 들었다.
“여기 더 있을 이유 없지?”
“어.”
“그럼 바로 튀자.”
궁수가 신호를 하자 오데트가 나비를 다시 꺼내 들었다.
“어, 어딜 도망가시려….”
“루나. 이제 그만. 이 이상의 신성 사용은 곤란해.”
실버 루나가 달려들려 하자 마젠타 헬리오스는 그녀를 말렸다. 적의 퇴각을 허용하는 건 뼈아프지만 여기서 더 대치를 길게 해봤자 좋은 일이 없기 때문이었다.
방금 전 두 번의 빈틈이 있었을 때 해치워야 했는데, 빠득 이를 갈았다.
마력의 소모가 극심하다. 방금 전 그 로브의 괴인과 싸울 때 너무 많이 소비해버렸다.
분노의 이유는 그것 하나가 아니었다.
싸우던 중 힐끔 힐끔 보인 로브 너머의 얼굴과 그 대검술. 틀림 없다.
“그 퇴물 선배가 아직도 방해를….”
과거의 망령이 아직 살아 사람을 방해하고 있다. 사람을 버린 과거의 선배에 마젠타 헬리오스는 분노를 불태웠다.
저딴 게 존경하던 사람 중 하나였다니 스스로가 역겨울 지경이었다.
마젠타 헬리오스는 분노를 삭히며 강하게 적들을 노려 보았다. 다음 번에 만났을 땐 반드시 자신의 이름을 어떻게 알았는지 실토하게 만들 것이다.
그렇게 그들을 노려보던 중, 낯익은 괴인을 발견했다.
허리에 맨 특이한 쇠공. 녹슬었지만 저 갑옷은 틀림없다. 저건….
“…키무?”
“뭐? 나?”
그게 전부였다. 마젠타 헬리오스가 미처 생각을 정리하기도 전에 그들은 사라졌다.
“자, 잠깐! 옐로! 저들의 추격을…!”
“오늘은 그만하라니까….”
실버 루나를 말리면서도 마젠타 헬리오스는 아쉬움을 감출 수 없었다.
낯익은 얼굴이 한 두개가 아니다.
아무래도, 과거의 망령은 자신 하나만이 아닌듯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