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hwa Manri RAW novel - Chapter 389
기수는 선풍비로 날아가며 중얼거렸다.
‘소주에서 서쪽이라….’
일단 사득공과 한귀비의 목적지는 남경일 가능성이 크다고 봐야 했다.
예전에 공주도 남경에 옛 영광을 그리워하는 세가들이 많다고 언급한 바 있고, 또 숨어 지내기에는 사람 많은 대도시 쪽이 더 유리하기 때문이다.
하루 늦게 출발한 만큼 기수는 선풍비의 한계를 마음껏 테스트 해보았다.
‘밤에 달리는 건 역시 즐거워.’
나중에 현대로 돌아가도 꼭 해보고 싶었다.
그러나 그 생각은 오래지 않아 포기해야 했다.
현대엔 도시뿐만 아니라 시골에도 전깃줄이 온통 얽혀 있기 때문이었다.
가정집에 들어오는 220볼트만 해도 끔찍한데, 변압기 이전의 22,900볼트에 감전된다면 아무리 반박귀진이니 등봉조극이니 해도 소용없을 것 같았다.
기수는 잠시 떠오른 잡념을 떨쳐버리고 기감을 최대한 끌어올렸다.
더불어 후각에도 집중했다.
사도 특유의 가슴 두근거림 반경까지 접근할 가능성은 높지 않지만 그들의 기도나 사득공의 강시 체취 등 가능한 감각은 총동원해야 했다.
그렇게 얼마나 달렸을까.
멀리 남경성의 불빛이 보이는 곳까지 도달했음에도 아무런 흔적을 찾지 못한 기수는 조금씩 속도를 늦추었다.
‘혹시 너무 빨리 와서 지나쳐버린 건 아닐까?’
만약 한귀비가 아직도 내공을 운용하지 못한다면 하루 종일 걸어봤자 얼마나 왔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기수는 온 길을 되돌아가며 찾다가 뒤따라오는 공주와 사매들을 만났다.
그녀들은 그물을 펼치듯 횡대로 넓게 벌려서 오는 중이었다.
중앙에 있던 탁지연이 기수와 만나자 수신호를 통해 모두 모였다.
“궁주. 왜 돌아와?”
“남경까지 거의 다 갔는데 아무런 흔적도 없어서 혹시 빠트렸나 했지.”
그때쯤 아투사에 이어 조백호까지 당도했다.
두 사람은 공주와 사매들의 경공에 보조를 맞추지 못했다.
“우리는 간격을 상당히 넓게 벌려서 왔는데…”
“아무 흔적도 못 찾았어?”
“아니. 전혀. 한귀비가 궁주보다 고수라면 하루 만에 남경까지 들어갈 수도 있는 것 아닐까?”
기수는 뭐라 대답할 수 없었다.
아투사의 보석은 방향을 지시해줄 뿐 거리는 알려주지 않으니 남경을 지나쳤을 가능성도 있는 것이다.
공주가 말했다.
“일단 여기서부터라도 우리 열 명이 횡대로 충분히 넓게 간격을 벌리고 천천히 남경까지 가면서 찾아보자.”
곧 그녀 뜻대로 수색 대형이 갖추어졌다.
공주는 혈매궁 사매들과 함께 오길 잘했다고 생각했다.
4명과 10명은 수색 범위에서 현격한 차이가 있기 때문이다.
다만, 추매가 기회 있을 때마다 다가오는 건 부담스러웠다.
수색은 남경성까지 이어졌지만 결국 허탕이었다.
새벽이 되어 성안으로 들어간 공주는 조백호에게 물었다.
“여기서 동원할 수 있는 인원이 얼마나 되지?”
“기한에 따라 다릅니다.”
“오늘 저녁까지.”
“60명에서, 많으면 100명까지 모을 수 있습니다.”
“좋아. 100명을 동원해서 날래고 솜씨 좋은 애들 70명은 우리 10명 뒤에 넓게 그물을 펼치고 따라오도록 해. 혹시라도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예. 알겠습니다. 그럼 나머지는…”
“여기서 소주로 가는 경로를 한 번 더 수색하도록 해.”
“명대로 따르겠습니다.”
“아! 그리고 패철을 사람 수대로 좀 구해다 줘. 방향 잡는데 필요할 것 같아.”
“알겠습니다.”
조백호는 밤새 산길을 헤맨 뒤 쉬지도 못하고 인원 동원에 나섰다.
나머지 9명은 객잔을 잡고 쉬었다.
어차피 해가 지기 전까지는 할 수 있는 일도 없었다.
제일 큰 객잔을 잡아 욕실 딸린 방을 전부 다 잡고 이른 아침밥을 먹는데, 분위기가 묘하게 긴장되었다.
그런 낌새를 느낀 공주가 갑자기 젓가락을 탁! 놓으면서 말했다.
“다들 꿈도 꾸지 마. 어제 밤새 수색하느라 피곤했고, 오늘밤도 해 떨어지면 바로 갈 거니까 잠을 자던가, 운기조식으로 결전에 준비하던가, 그도 아니라면 이번에 새로 배운 무공을 연마하는 걸로 시간을 보내. 기수는 혼자 있게 할 거야.”
춘매가 코웃음을 쳤다.
“흥! 그야 당연한 일 아닌가? 괜히 자기가 이상한 생각 했으면서 우리더러 꿈꾸지 말라네. 선수 치면 단가?”
“내가 무슨!”
탁지연이 상황을 정리했다.
“강적을 눈앞에 두고 있으니까 궁주에게 혼자만의 시간을 주는 게 좋을 것 같아.”
기수의 젓가락질이 멈추었다.
‘이번에도 내 의견은 안 물어보네. 자기네들만 참고 자제하면 단가?’
여자뿐만 아니라 남자에게도 욕구란 게 있는데 참 너무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속마음은 그랬지만 평화를 깨트리기 싫어서 다시 밥먹는 데만 열중했다.
공주 옆자리에 앉은 추매가 물었다.
“그런데 예림이 너는 어느 방 쓸 거야?”
공주는 한 뼘 정도 옆으로 물러나 앉으면서 대답했다.
“신경 꺼. 난 아투사와 한 방을 쓸 거니까.”
“아까 보니까 침상이 네 개인 방도 있던데…”
“귀찮게 좀 하지 말라고!”
공주가 빽 소리를 지르자 사매들은 웃고, 추매는 입맛을 다셨다.
그러나 그녀는 끈기가 있었다.
반대편으로 건너가 앉은 뒤 물었다.
“아투사. 너는 그렇게 자주 씻는다면서?”
아투사는 기수를 노려봤다.
기수는 밥그릇을 들어서 얼굴을 가리며 열심히 젓가락질을 했다.
추매가 다시 물었다.
“목욕할 때 등에 손 안 닿는 곳은 어떻게 닦아? 내가 좀 도와줄까?”
“아뇨. 내겐 나만의 방식이 있어요.”
그녀에게 있어서 목욕은 청결의 문제보다 종교의식이었다.
“네 방식으로 하면 등의 모든 지점에 다 손이 닿는다는 거야?”
“그건 아니지만 도움은 필요 없어요.”
“아! 참 딱딱하게 구네.”
추매는 더 이상 두 사람을 귀찮게 하지 않았다.
앞으로도 기회는 얼마든지 있을 거라 생각한 것이다.
그로부터 해가 질 때까지.
기수는 자신의 방에서 운기조식으로 시간을 보냈다.
‘자! 최초로 약속을 깰 사람은 누굴까? 크크크….’
8명의 얼굴을 차례차례 떠올리며 콧노래를 부르며 기다렸다.
그러나 해가 질 때까지 아무도 안 들어왔다.
참으로 실망스럽고 개탄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아! 내 마력이 사라진 걸까?’
모이라는 소리에 밖으로 나가 보니 다들 무장을 갖춘 상태로 아투사의 보석에 집중하고 있었다. 긴장한 기색들이 역력했다.
기수는 섭섭했다.
‘역적 잡는 일이 나와의 러브러브보다 중요하단 말인가?’
한편으로는 이해가 가는 면도 있었다.
자기는 중원무림이 어떻게 되건 사실 별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이들은 본인이 뿌리 내리고 사는 땅이니 천하의 주인이 바뀌는 일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게 당연하다고 할 수 있었다.
특히 주예림은 이해당사자이고, 사매들 역시 그쪽 계통에서 일했기 때문에 사안의 중대함이 남다르게 여겨질 것이었다.
‘그래. 내가 이해해야지. 에휴…’
아투사의 보석이 빛을 발하자 공주는 극히 신중하게 지도 위에 그것을 올려놓았다.
지도 위에서 아주 약간만 각도가 틀어져도 실제로는 엄청난 범위가 벗어날 수 있음을 알기 때문이었다.
“남경을 지나갔어!”
보석의 빛은 여전히 서쪽을 가리키고 있었다.
“조금 북쪽으로 기운 것 같은데?”
“그럼 장안으로 간 건가?”
“그건 모르는 거고. 일단 이 방향에 집중해. 다들 패철을 지도 위에 놓고 선이 어느 방향을 가리키는지 확인해.”
기수도 사매들의 뒤를 이어 방위를 기억했다.
‘이게 네비게이션이라고 해야 하나?’
그래도 어제처럼 대략 감으로 찾아가는 것보다는 훨씬 나을 것 같았다.“
공주는 객잔 1층으로 내려가 조백호에게 말했다.
“남경을 통과한 것으로 확인했으니까 소주까지 수색하려고 했던 인원까지 전부 그물망 수색에 동원한다. 최대한 효율적으로 잘 짜 봐.”
“알겠습니다.”
공주는 그에게 지도를 보여주고 패철 방향을 확인하도록 했다.
그리고 곧장 출발한 일행은 남경 성을 벗어나자마자 9인 횡대로 벌려 섰다.
간격은 30미터에서 50미터 사이. 9명이 그렇게 섰으니까 적어도 300미터 폭의 갈퀴같은 수색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조백호는 뒤에 남아 동창 인원을 지휘하고 만약의 사태가 발생할 시 신호를 보내기로 했다. 그쪽은 수색망의 폭이 더 넓었다.
공주는 이번에야말로 한귀비를 잡을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회남성에 이를 때까지 샅샅이 뒤졌음에도 불구하고 이틀 연속 허탕을 치고 말았다.
새벽에 지친 다리를 쉬며 아침밥을 먹는 자리.
공주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한귀비의 내공이 회복된 게 분명해. 우리도 꽤 빠르게 쫓아왔는데 여전히 따라잡지 못하고 있잖아.”
모두 그녀의 의견에 동원했다. 자신들은 물론 동창 인원까지 동원되었으니까 지나온 길에 놓쳤을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탁지연이 말했다.
“고작 이틀째니까 다들 힘내자고! 이 정도 인원이 추적하는데 제깟 년놈들이 도망가 봤자 아니겠어?”
그녀의 말에 사매들 모두들 기운이 나는 듯 했다.
공주는 탁지연을 유심히 봤다. 체격도 아담하고 나이도 많지 않은데 그녀가 나머지 다섯 사매들의 우두머리 역할을 하는 게 신기했던 것이다.
그때 추매가 귀에 입을 바짝 대고 물었다.
“너. 나보다 쟤가 마음에 드냐?”
“꺅! 언제 다가왔어?”
“하긴 탁매가 좀 귀여운 구석이 있지.”
“무슨 헛소리야! 저리 안 가?”
“눈빛에 감정이 담겨 있던데. 인정하지 그래?”
“내가 주먹까지는 안 쓰려고 했는데…”
공주가 주먹을 쥐고 일어서자 사매 여섯의 눈빛이 동시에 변했다.
그들이 내뿜은 살기에는 공주도 움찔할 수밖에 없었다.
“그냥 안 쓸래. 하지만 앞으로 또 귀찮게 하면…”
“그때고 안 쓰겠지? 호호호!….”
“으으…. 어쨌거나 오늘도 기수는 혼자 놔두기로 약속!”
기수는 또 한 번 아무 의견도 내지 못하고 여자들끼리 협정 맺는 광경을 지켜봐야 했다. 그러나 오늘은 어제처럼 속절없이 당하지는 않을 것이었다.
공주와 다섯 사매는 몰라도 탁지연과 아투사는 의무감이 조금은 덜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특히 아투사는 중원 사람도 아니지 않은가.
그녀의 목을 통과할 때의 느낌을 떠올리면 몸에 짜릿짜릿 전기가 왔다.
여자들이 모두 각자의 방으로 찾아 들어갈 때, 기수는 안 보는 척 하면서 누가 어느 방으로 가는지 면밀하게 파악했다.
그리고 곧바로 좌절감을 느꼈다.
공주와 아투사가 한 방으로 갔으니 기회는 사라졌다고 봐야 했다.
다행히 탁지연은 풍매와 둘이 한 방을 쓰는 것 같았다.
‘좋아! 풍매만 설득하면 되는구나.’
기수는 일단 자기 방에 들어가 운기조식을 한 시간 정도 했다.
그리고 기감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려 각 방의 상황을 살핀 후 마루가 삐걱거리지 않도록 조심스럽게 아동하여 탁지연과 풍매가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
“어머! 궁주. 어쩐 일이야?”
풍매가 반가이 맞았다.
“응. 새로 익히는 무공에 뭐 막히는 거 없나 해서…”
“막히는 거 투성이지. 그 서역 여자가 하는 번개 번쩍거리는 거, 나도 꼭 해보고 싶은데 도저히 안 돼.”
“그건 한 번 해봐서 안 되면 포기하는 게 좋아. 그보다 사득공의 독에 대비하랴먄 멸절강기가 더 효과적일 텐데…”
그러면서 방에 강기막을 펼쳤다.
탁지연과 풍매는 좌우를 두리번거렸다.
주변 소음이 일시에 차단되는 게 언제 봐도 신기했다.
풍매가 웃으며 말했다.
“밀폐된 곳에 궁주와 있으니까 은근히 딴 생각이 나네.”
그러면서 탁지연에게 눈짓을 했다.
기수는 알아 이렇게도 잘 풀릴 수 있나 싶어서 입이 쩍 벌어졌다.
그러나 당황스럽게도 탁지연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궁주. 딴 생각 하지 말고 어서 나가요, 다른 사매들 몰래 우리만 궁주와 시간을 보낼 수는 없어요.”
사매들과 함께 지내면서 꽤 의리가 깊어진 것 같았다.
“내가 무슨 딴 생각을 했다고 그래?”
풍매도 기수의 팔을 잡았다.
“맞아. 그냥 멸절강기 시범을 보였을 뿐이잖아. 궁주. 가지 마요.”
그러나 탁지연은 냉정하게 등을 떠밀었다.
“다른 방에도 가지 말고 곧장 궁주 방으로 돌아가서 저녁때까지 나오지 말아요.”
“아, 알았어. 알았다고. 밀지 마.”
복도에 혼자 서있으려니까 어이가 없었다.
‘아니. 마누라가 8명인데 나 혼자 독수공방이라니… 이게 말이 돼?’
그때 계단 쪽에서 무슨 소리가 들렸다.
다가가 보니 추매와 아투사가 실랑이를 벌이고 있었다.
“너. 말 안 들을 거야?”
“도대체 왜 이러시는 거예요?”
슬쩍 보니 호리병을 들고 올라오는 아투사를 추매가 가로막고 있었다.
아마 호리병에 술을 직접 골라 넣어가지고 오는 모양이었다.
추매는 공주가 드세게 나오니까 만만한 아투사부터 어떻게 해보려고 약간의 완력을 동원하던 참이었는데, 아투사가 엄지와 검지를 들어 두 손가락 사이에 불꽃을 만들어보이자 흠칫 놀라 길을 비켜줄 수밖에 없었다.
그때 기수가 나섰다.
“어! 여기서 뭐하고들 있어?”
추매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 계단을 내려갔다.
“응. 난 저자에 볼일이 있어서 나가던 참이야.”
아투사와 둘만 남게 되자 기수가 그녀에게 물었다.
“공주에게 뭐라고 하고 나왔어?”
“술병 좀 채우고 오겠다고요.”
“그럼 시간이 많지 않네?”
“무슨 시간이요?”
아투사는 대답하면서 배시시 미소 지었다.
무슨 시간인지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급히 기수의 방으로 들어간 두 사람은 강기막을 펼치자마자 자세를 잡았다.
아투사는 옷을 하나도 벗지 않고 기수도 하의만 무릎까지 내린 상태.
둘은 그것으로 충분했다.
기수에게 아투사는 정말 사막의 오아시스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