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hwa Manri RAW novel - Chapter 399
장안이 가까워지면서, 기수는 음양대법에 약간 변화를 주었다.
그동안은 하단전을 비워 자신 쪽의 효율을 약간 더 높이는 식이었다면, 반대로 하단전을 꽉 채워 상대를 더 빨리 끌어 올리는 식으로 운용한 것이다.
그것은 오해를 낳았다.
“궁주! 왜 나만 차별대우 해?”
불만을 드러낸 사람은 공주였다.
사매들이 저마다 요즘 들어 갑자기 대법의 효용이 더 커진 것 같다고 말하는데, 그녀는 별 차이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이다.
“혹시 내가 뭔가 부족한 게 있어? 말해 봐.”
기수는 차분히 설명해주었다.
“그건 네 내공이 다른 사매들보다 훨씬 높아서 그런 거야. 원래 고수가 될수록 증진속도가 느려지잖아.”
“하지만 사매들이 달라졌다는 건 뭐야?”
“아! 그건 전에 얘기했던 오행류의 상생순환 때문에 그런 거야.”
“궁주의 내공이 깊어져서 다들 덕을 보는데, 난 이미 꽉 차 있어서 큰 차이를 못 느낄 뿐이다. 그런 거야?”
“꽉 차 있다는 표현보다는 나와의 차이가 별로 없다는 게 맞겠지.”
“그런 이유였군.”
공주는 약간 마음에 들지 않는 표정이었지만 더 이상 따지지 않았다.
기수는 오행류 순환을 발견한 게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이전에 좀 짜게 굴었다는 사실을 고백하지 않아도 되었기 때문이다.
사실, 사매들 쪽이 유리하게 운용해도 현재의 기수는 예전보다 내공 두터워지는 속도가 더 빨랐다. 오행류 덕분이었다.
마침내 장안을 하룻길 정도 남겨 놓게 되자 기수는 사매들을 깊은 산속으로 데리고 들어갔다.
사매들은 뭔가 흥분되는 표정이었지만 기수의 목적은 따로 있었다.
“자! 그동안의 성과를 최종적으로 시험해보자. 우선 설매부터.”
한 명씩 나오도록 해서 1:1로 대련을 해보았다.
대륙을 가로질러 오면서 매일 밤 노력한 덕분인지, 사매들의 성취는 놀라웠다.
그러나 기수는 칭찬을 아꼈다.
8명을 모두 테스트하는 동안 평소와 달리 엄하게 다루고, 지적도 많이 했는데, 그것은 앞으로 다시 이런 기회를 갖기 어려울 거라는 판단 때문이었다.
“다들 애썼어. 하지만 앞으로도 연공을 게을리 하면 안 돼.”
공주가 분을 삭이지 못하는 표정으로 말했다.
“이젠 우리가 궁주의 성취를 시험해 볼 차례야.”
“나를?”
그녀가 화 난 이유는 자기와 비슷하다는 기수의 말과 달리 실제 대련에선 운룡비결을 자기보다 더 능숙하게 쓰면서 한 번도 기회를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수가 자기보다 약간, 아주 약간은 강하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막상 꼼짝없이 당하고 보니까 기분이 좋지 않았다.
“그래. 궁주 실력도 확인해봐야 하지 않겠어?”
그러자 순식간에 매화육궁진에 두 사람이 추가된 팔궁진이 만들어졌다.
다른 사매들도 겉모습은 가녀린 미녀들이지만 그 속엔 전사의 기질이 흐르고 있기 때문에 기수에게 당한 게 은근히 자존심 상했던 것이다.
기수는 침을 꿀꺽 삼켰다.
여덟 명이 내뿜는 기도는 가히 폭발적이었다.
본래의 매화육궁진도 예전에 비해 훨씬 강력해진 데다, 공주와 아투사가 이젠 검진에 완전히 녹아들기까지 해서 그 위력을 배가시키고 있었다.
기수는 은근히 호승심을 느꼈다.
“좋아! 해보자. 하지만 먼저 얘기해둘 게 있어.”
“뭔데?”
“우리의 목표가 한귀비인 만큼, 이번 대련은 실전과 비슷한 수준으로 해볼 생각이야. 그러니까 다치지 않도록 각자 조심해.”
“그건 우리가 할 말이라고!”
아홉 사람은 8:1로 마주 섰다. 그리고 공주의 멸절강기 공격을 신호삼아 일제히 서로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기수는 자신의 능력이 예전에 비해 크게 증진되었다고 해도 공주가 낀 매화육궁진과 정면 대결해서 이기기 어렵다는 사실을 잘 알았다.
그래서 처음부터 변칙스타일을 펼쳤다.
양손에서 쉬지 않고 내뿜는 파천강기.
사매들은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기수의 파천강기가 치명적이지는 않았지만 무시하고 맞아도 될 만큼 약한 것도 아니었다. 손을 휘저을 때마다 다섯 발씩 연달아 날아오는 파란색 송곳 같은 공격에 진형 유지가 쉽지 않았다.
탁지연이 날카롭게 외쳤다.
“절대 물러서지 마! 앞으로!”
기수가 검진에 대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물러섰다가는 더 큰 틈을 보일 가능성이 컸다. 그래서 오히려 공격적인 운용을 선택한 것이다.
선두에 공주가 있기에 가능한 전술이기도 했다.
그러나 기수에겐 파천강기뿐만 아니라 새로 개발한 화염방사기가 있었다.
검진과 가까워지자 그의 양손이 불을 뿜기 시작했다.
“꺄악!”
공주가 제일 먼저 뾰족한 비명을 질렀다.
기수가 객잔 태워먹은 일은 알고 있지만 이렇게 근접전 도중에 자유자재로 화염을 운용할 거라고는 예상치 못했던 것이다.
기수의 화염방사는 중장거리에서 속도가 느려진다는 단점이 있지만, 화염의 폭발력이 최고조로 되는 구간에서만큼은 어떤 암기보다 빨랐다.
그 길이가 2~3미터에 달했기 때문에 공주뿐만이 아니라 포위대형을 갖추던 검진 역시 주춤하며 더 이상 다가오지 못했다.
불꽃에 시선을 빼앗긴 그 짧은 틈에 기수는 검진 내부로 파고들었다.
아투사가 황급히 뇌전격을 끌어올려 쌍칼로 기수를 베었다.
기수는 정신을 집중하고 새로 만든 목류의 호신강기를 펼쳤다.
빠지직! 거리는 불꽃이 사방에서 일어났지만 감전은 발생하지 않았다.
‘뇌전격을 막아냈어!’
기수는 뛸 듯이 기뻤다.
거기에 더해서 강기막을 커다란 공 모양으로 급격히 확장시키자 아투사와 추매, 춘매가 진 밖으로 밀려났다.
“하하하!…..”
기수는 통쾌하게 웃었다.
매화육궁진이 안으로부터 붕괴된 것이다.
사매들은 다들 멍한 표정이었다.
설마하니 이렇게 쉽게 와해될 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던 것이다.
탁지연이 말했다.
“다시 해 봐요!”
“하하! 몇 번 반복해도 소용없어.”
“잠깐 시간을 줘요.”
탁지연은 일곱 사매를 모아 대책을 숙의했다.
의견은 주로 공주와 탁지연이 주고받았는데, 기수의 무공이 워낙 상식을 벗어나다 보니 쉽게 제압할 방법은 떠오르지 않았다.
결국 방어 위주의 전술로 나가면서 상황에 따라 대처하기로 했다.
“궁주. 다시 해요.”
“좋아.”
재개된 8:1의 대결.
기수의 파천강기와 화염방사가 동시다발적으로 펼쳐졌지만, 사매들은 이미 한 번 봤기 때문인지 처음처럼 당황하지 않았다.
기수는 탁지연과 공주의 계획이 선 수비 후 역습임을 알아차렸다.
막상 굳게 지키면서 공주를 서포트하는 식으로 나오자 그의 입장에서도 공격이 쉽지 않았다.
공주는 운룡비결과 멸절강기를 자유롭게 사용하며 당당히 버텼고 상당수준의 반격까지 가해왔다.
그로 인해 사매들도 조금씩 공세 전환이 늘어갔다.
기수는 밀리지 않기 위해 조금씩 내공을 끌어 올렸다.
사매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렇게 양측이 경쟁하자 주변의 나무와 풀, 땅과 바위들이 남아나지 않았다.
아홉 사람은 거의 30분 넘게 치열한 대결을 펼쳤고, 결국엔 승부를 가리지 못한 채 대련을 중단하게 되었다.
“그만! 이러다 사람 죽겠다. 그만!”
“궁주. 항복하는 거야?”
“항복은 무슨…”
“좋아! 끝까지 승부를 보자고!”
“항복.”
기수는 바로 백기를 들었다.
여자들한테 이겨서 무엇 하겠는가.
사실, 목숨 걸고 싸우면 질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러나 사매들을 다치게 하면서까지 이겨야 하는 승부는 아니었다.
사매들은 기쁜 표정으로 환호하는가 싶더니 곧바로 자기네끼리 진법 운용에 대한 개선사항을 토론하기 시작했다.
기수를 막아내긴 했지만 결국 제압하지는 못했다는 사실이 아무래도 마음에 들지 않았던 것이다.
탁지연에겐 머리가, 공주에겐 황궁비고의 풍부한 지식이 있었다.
그들의 조합은 매화육궁진에 둘을 더하는 방식으로는 궁극의 경지에 도달하기 어렵고, 차라리 매화육궁진의 기본 운용방식을 유지하면서 구궁팔괘진의 요소를 추가하자는 쪽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기수도 한 자리 끼어서 조언을 하고 함께 연구했다.
“이건 매화팔괘진이라고 해야 하나?”
“일반적인 구궁팔괘진과는 구성요소 자체가 다르니까…”
“하핫! 열심히 해 봐. 그래봤자 나한테 통한다는 보장은 없지만.”
“방금 항복한 거 잊었어?”
“아! 그랬나? 어쨌거나 열심히 해 봐. 8명이니까 거기 맞는 옷을 입어야겠지. 하지만 여덟이면 구궁 중 중궁 자리는 비게 되지 않나?”
“매화육궁 식으로 운용한다면 중궁은 비어도 상관없을 것 같아. 나중에 정 필요하면 궁주가 들어가도 되고.”
“그러긴 하겠네.”
탁지연과 공주는 내친 김에 팔괘 대형 연습을 시작했다.
사매들도 적극적이었다.
기수와 실전 수준의 대련을 한 이후 다들 전의가 불타오르는 모습이었다.
이제 객잔 잡고 대법에 몰입하자고 조를 거라 생각했던 사매들이 의욕적인 모습을 보이자 기수도 궁주로서 새 진법 연구에 적극 동참했다.
이론적인 보완뿐만 아니라 실전을 통한 단점 찾기 역할도 수행했다.
모처럼 대법이 아닌 무공에 모두가 열중한 채 날이 어두워졌고, 사매들은 내친 김에 밤을 새기로 했다. 건량으로 간단히 요기를 하고 밤새 새로운 진법에 매달렸다.
그렇게 집중하고 아침 해가 뜨는 광경을 보게 되니 다들 성취감을 느끼는 모습이었다.
“궁주. 최종적으로 시험 부탁해.”
“좋았어.”
아침 햇살 속에서 다시 8:1의 대련이 시작되었다.
결과는 고무적이었다.
짧은 기간에 그런 성과를 이루어낼 수 있었던 것은 기존 운용방식을 고수하면서 대형만 인원에 맞춰 효율적인 것으로 바꾸었기 때문이다.
그 이후에도 사매들은 육궁진과 팔괘진 사이를 자유롭게 오갈 수 있도록 시간만 나면 진법 훈련에 매진했다.
장안이 가까워지자 탁지연은 분장을 제안했다.
한귀비뿐만 아니라 그녀 패거리까지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라 얼굴을 드러낼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다들 콧수염, 턱수염까지 붙인 뒤 남자 옷을 입고 피풍에 죽립까지 썼다.
사매들은 서로의 변장한 얼굴을 보며 재미있다고 깔깔거리며 웃었다.
탁지연은 제대로 얼굴을 바꿔서 옛날 수로맹 시절 강달의 모습이 되었고, 기수는 오랜만에 본래 모습으로 돌아갔다.
언제 강적을 만날지 모르니까 공연히 역용술에 약간이라도 진기를 낭비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대신 아는 사람을 만나면 귀찮을 것 같아서 죽립을 깊이 눌러쓰고 다니기로 했다.
마침내 도착한 장안.
기수는 일단 큰 객잔을 찾아 들어가 음식을 시켜 먹으면서 사방에서 들려오는 소음에 귀를 기울였다.
기수 정도의 내력을 가진 고수에게 있어 대도시 객잔은 인터넷 게시판, 내지는 수많은 리트윗이 이루어지는 트위터 같았다.
반 시진만에 무림 정세가 전부 파악될 정도였다.
기수는 들은 얘기들을 정리해서 사매들에게 얘기해주었다.
“무림맹이 난주 수복에 나선 모양이야.”
“난주는 왜?”
“원래 사마연합과 대치하던 중심이 난주 화양문의 장원이었거든. 음종 현현각의 공격 때문에 한 순간에 무너져 밀렸지만, 중원 여러 문파에서 증원군이 도착해서 이젠 되찾을 힘이 충분하다고 판단했나 봐.”
탁지연이 물었다.
“현현각은 어쩌고?”
“각주가 한 청년 영웅과 싸우다가 부상을 입고 잠적했거든.”
“그 청년 영웅이라는 게…”
“하핫! 나 말고 천하에 누가 그런 일을 하겠어?”
탁지연은 피식 웃은 후 다시 물었다.
“사마연합은?”
“제갈세가가 지휘하는 삼황맹, 녹림72채, 수로맹 연합은 수적으로는 엄청나게 많지만 결정적으로 고수가 부족해. 천마교는 그와 달리 고수의 수도 충분하지. 그래서 삼천제가 전부 모여서 무림맹을 치려고 했었어. 그런데 삼천제 중 가장 강한 멸천제가 또 어느 청년 영웅 손에 죽는 바람에 말야.”
아투사가 웃으며 물었다.
“그 영웅도 궁주인가요?”
“하핫! 아까도 얘기했지만 천하에 그런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은…”
“그럼 궁주 혼자 무림맹을, 아니 중원의 정도 무림을 다 지켜낸 거네요?”
“그렇다고 할 수 있지. 어흠!”
“그런데 왜 강호에 그 사실이 널리 알려지지 않았어요?”
“그때마다 다른 얼굴과 이름으로 행동했거든.”
기수는 아투사의 말을 듣고 가만히 생각해봤다.
진짜, 자기 혼자 다 해낸 거나 마찬가지인데 알아주는 사람이 아무도 없다는 게 좀 섭섭하기는 했다. 현현각 각주와 싸운 사람은 비룡검문의 호법이자 용봉련 련주인 양십일이고, 멸천제를 죽은 것은 양십삼이었다.
둘 다 기수 본인이 아닌 것이다.
‘지금이라도 그게 전부 나였다고 밝힐까?’
그러나 믿어줄 것 같지 않았다.
그리고 애당초 조용하게 자신을 감추면서 사도 처치에만 집중한다는 생각으로 그렇게 했던 거라 후회는 없었다.
공주도 나름 들은 게 있었다.
“무림맹은 함양에 일부 병력을 남겨놓고 난주로 진격하는 모양인데, 그럼 제갈세가는 지금 어디에 있는 거지?”
“난주를 지키려고 하지 않을까?”
“그럼 우리도 난주로 가야 하나?”
“일단 합가촌부터 들려야 돼.”
“오늘은 이미 늦은 것 같으니까 여기서 자고 가자.”
기수는 창밖을 봤다. 해가 지기 전이니까 합가촌까지 얼마든지 갈 수 있었다.
그러나 사매들 눈빛을 보니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제부터 본격적으로 제갈세가 찾기에 돌입할 거라고 보면 오늘이 파티를 즐길 수 있는 마지막 날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