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hwa Manri RAW novel - Chapter 405
내공을 끌어올린 기수는 잔백지로 사마연합 병력을 제압하기 시작했다.
파공음 한 번에 한 놈씩.
기수의 이동은 스포츠카 속도에서 마라톤 속도 정도로 늦추어졌지만 두 눈으로는 현현각 각주를 찾았고, 두 손은 쉬지 않고 적을 쓰러트렸다.
몰리던 무림맹 병력은 갑자기 나타나 숨통을 트이게 해 준 고수에게 감사와 의문을 동시에 느꼈다.
그때 뒤따라 온 무당 제자 육월성이 큰소리로 말했다.
“이 분은 우리를 돕기 위해 온 혈매궁 궁주 기소협입니다! 함께 적을 물리칩시다!”
그러자 한두 명씩 기수를 알아보는 사람이 나타났다.
“홍안산에서 우리를 구해주었던 기대협이다!”
“와아!…”
기수는 그 와중에도 양손을 쉬지 않고 움직이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가 경공을 펼치지 않고 전방을 신중하게 살피는 것은 현현각주를 찾는 것보다 더 신경 쓰이는 일이 한 가지 있었기 때문이다.
바로 혈천제였다.
그녀와는 되도록이면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공주가 때리는 건 애교지만, 그녀와 마주치면 죽기 살기로 싸워야 할 것 같았기 때문이다.
사실, 그녀에게 붙잡혀 지내던 시절의 기억이 유쾌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침상에서 남자 대 여자로 지낸 정을 생각하면 적으로 대하기도 애매했다.
언젠가는 재회를 해야겠지만 지금 현현각주라는 강적과 함께 만나기는 싫었다.
거리가 점점 좁혀지자 뚜렷한 기도가 하나씩 감지되었다.
현현각주의 기도는 알아차리기 쉬웠다.
아주 강력하고 날카로운 금류의 기운.
그리고 그 주변에 무림맹 고수들로 여겨지는 기도들이 바글거렸다.
기수는 안도했다.
‘아직 전멸하지 않았구나.’
그러나 곧바로 그들 근처에 강력한 기도가 하나 더 감지되었다.
아무래도 혈천제를 피하고 현현각주만 만나기는 그른 것 같았다.
“어쩔 수 없군.”
기수는 결국 진기를 모아 경공을 시전했다.
기수는 현현각주 근처로 접근하면서 화류 호신강기를 끌어올렸다.
요란하게 들리는 징소리와 피리소리 때문이었다.
내공이 증진된 지금도 그 소리를 들으니 기혈이 흔들렸다.
‘이런 정도라면 무림맹 수뇌부라 해도 위험하겠군.’
예전에 봤던 대성률인가 뭔가 하는 합주를 하는 게 분명했다.
흙먼지가 걷히면서 주변을 살펴보니 무림맹은 하나의 커다란 원형 방진을 짜고 현현각의 대성률에 대항하는 중이었다.
그러나 그 방진은 이미 형태가 무너져 있었다.
칼로 자른 케이크처럼 갈라진 중심엔 필경 현현각주가 있는 게 분명했다.
진형이 무너졌음에도 불구하고 무림맹은 도망조차 치지 못했다.
사마연합에 완전히 빙 둘러 포위된 상태였기 때문이다.
공격은 외부에서도 이루어졌다.
천마교 고수들이 바짝 기세를 올리고 있었다.
그들은 음공에 휘청거리는 무림맹 군웅들을 잔인하게 살해하는 중이었다.
기수는 사방에 흩어진 시신들을 보고 무림맹이 얼마나 긴 시간 동안, 얼마나 처절하게 싸웠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승복, 도복을 입은 구대문파의 제자들뿐만 아니라 개방 방도, 4문과 5가의 무복을 입은 시신도 사방에 널려 있었다.
기수는 내공을 끌어올린 후 대성률을 연주하는 현현각 루주와 징잡이들 배후로 접근했다.
사마연합의 호위병들이 기수를 발견하고 대응하려 했지만 지풍 한 번에 한 명씩 쓰러지는 마당에 그를 제지하기란 불가능한 일이었다.
기수는 호위병엔 관심도 없었다.
무림맹의 전멸을 막으려면 일단 이 저주의 음공부터 처리해야 했다.
기수는 현현각의 배후에 내려선 후 멸절강기의 스푼 컷을 연달아 발출했다.
“크악!….”
“으윽!….”
비명이 연속으로 터져 나오며 피가 사방으로 튀었다.
실로 끔찍한 광경이었지만 기수는 손을 멈추지 않았다.
예전에 파천강기는 별 타격을 주지 못해서 애를 먹었는데, 멸절강기는 달랐다.
현현각의 심법은 금류. 멸절강기도 금류.
금 대 금의 대결에선 상성 없이 단순하게 더 단단한 쪽이 이기는 것이었다.
비명에 반비례하여 대성률의 연주가 사그러들자 무림맹의 방진은 조금이나마 기운을 회복하는 모습이었다.
그리고 현현각주가 무서운 속도로 달려 나오는 게 보였다.
기수는 정신을 좀 더 집중하고 멸절강기를 더욱 빠르게 펼쳐냈다.
마침내 현현각주가 도착했을 때는 그가 아끼는 루주들이 모두 주검으로 변한 뒤였다. 징잡이 몇 명만 겨우 살아서 몸을 피했을 뿐이었다.
“끄아아아!…..”
현현각주 사공명은 괴성을 질렀다.
너무나도 처절하고 끔찍한 광경에 극도의 분노를 느낀 것이다.
그의 괴성은 기수를 휘청거리게 만들었다.
음종의 전인답게 감정적으로 내지르는 소리조차 예사롭지 않았다.
사공명이 부채로 기수를 가리키며 물었다.
“네놈은 누구냐?”
충혈 된 두 눈, 씹는 듯 한 말투, 온몸에선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
기수 역시 살기를 내뿜으며 말했다.
“너를 잡기 위해 하늘에서 내려온 신장이다.”
사공명은 어이가 없어서 잠시 말을 잇지 못했다.
그러나 루주들의 처참한 시신을 보며 다시금 눈을 번뜩였다.
“네놈이 누구건 상관없다. 천 조각, 만 조각으로 찢어 죽여주마. 그래서 내 제자들의 원한을 열 배, 백 배로 갚아줄 것이다.”
분노로 인해 그의 목소리는 떨리고 있었다.
기수도 턱짓으로 주변을 가리키며 말했다.
“나도 네놈을 용서할 수 없다.”
기수는 무림맹 소속이 아니다. 하지만 수백 구의 시신을 보면서 마음이 흔들렸다.
그들은 비룡검문 호법으로 지내던 시절 자신이 구해주기도 했고, 함께 싸우기도 했던 동료들이었다.
그들이 흘린 피로 누런 황토가 검붉게 보일 정도인데, 어찌 무심할 수 있겠는가.
사공명이 부채 두 개를 활짝 펼치자 기수 역시 화류 호신강기를 강화했다.
순간, 화악! 하는 소리와 함께 뜨거운 불길이 원형으로 퍼져 나갔다.
사공명은 깜짝 놀라 한 걸음 물러서며 말했다.
“이, 이것은 비룡검문 양십일의 수법인데?…”
“다시 만나 반갑구나.”
순간 기수의 양 손에서 멸절강기 스푼 컷이 연달아 발출되었다.
금류 대 금류, 강 대 강의 맞대결!
그러나 사공명은 루주들과 확실히 달랐다.
부채를 회전시켜 멸절강기를 낱낱이 막아냈다.
“으으….”
날카로운 파공음과 함께 부챗살에서 불꽃이 튀면서 사공명은 뒤로 물러섰다.
제 자리에 버틴 채 받아내기엔 무리가 있었던 것이다.
기수는 내공을 더 끌어 올렸고 멸절강기도 더 빠른 간격으로 발출되었다.
우세를 점한 김에 완전히 눌러버릴 생각이었다.
“으으….”
사공명은 신음을 토하며 뒷걸음질의 속도를 점점 빨리 했다.
그는 물러서고, 기수는 따라붙고.
나중엔 거의 전력 질주하는 속도로 밀고 밀렸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끝끝내 사공명의 부채는 뚫리지 않았다.
기수는 생각을 바꾸지 않을 수 없었다.
‘유리하긴 하지만 넘어설 수는 없다.’
그동안 강해진 내공을 믿었는데, 현현각주는 그것만으로는 부족한 것 같았다.
그때 누군가 자기 이름을 불렀다.
“양기수!”
“기소협!”
깜짝 놀라 좌우를 둘러보니 주변에 온통 무림맹 고수들이 가득했다.
사공명이 뒷걸음질 친 쪽이 무림맹 진영이었던 것이다.
다들 음공에 당하고 수세에 몰리느라 탈진한 표정이었는데, 그중에서도 기수를 알아보는 사람, 여인들이 있었다.
바로 보타문의 사하, 사천당가의 당운영, 십절금왕문의 백서린, 사해문의 호운혜, 화양문의 양여옥 등이었다.
기수는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바로 이 대결, 현현각주와 싸우면서 내공을 단 한 줄기도 낭비하고 싶지 않아 역용을 풀기는 했지만, 이런 식으로 무림맹 내의 아는 여인들과 한꺼번에 조우할 거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던 것이다.
일단 사하가 무사하다는 것은 다행이었다.
그리고 얼핏 보니 비룡검문의 문주와 제자들도 살아 있는 것으로 보였다.
기수를 불렀던 여인들은 깜짝 놀라 서로를 돌아봤다.
다들, 네가 어떻게 저 남자를 알고 있냐고 따지는 표정이었다.
기수 입장에선 해명할 틈이 없었다.
사공명은 기수가 빈틈을 보이자 곧바로 반격을 개시했다.
부채 두 개가 돌아가면서 회선참을 난사하기 시작한 것이다.
기수는 이를 악물고 멸절강기로 맞섰다.
강기와 강기가 허공에서 격돌하면서 귀를 거스르는 굉음들이 터져 나왔다.
무림맹 고수들은 난데없이 나타나 현현각주를 몰아붙이는 청년을 보며 다들 희망을 품게 되었다.
무림맹의 현재 상태는 절망 그 자체였다.
천하 각지에서 증원부대가 모여들고 군량이 풍족해지는 데 반해 사마연합과 천마교가 계속 움츠러드는 모습을 보이자, 무림맹주 주일비는 난주 탈환을 결심했다.
그가 무림맹주가 된 것은 전임 맹주였던 소림방장 항마대사의 죽음, 그리고 구파일방 중요 고수들의 죽음에 기인한 바가 컸다.
경과야 어찌되었건, 주일비 입장에선 자기 능력을 인정받고 싶어 했다.
사람이 없어서가 아니라 실력이 있으니까 맹주가 되었다는 평을 듣기 원했던 것이다.
동창과 관군을 끌어들여 사마연합의 공세를 함양에서 막은 것은 그의 공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주일비는 거기서 만족할 수 없었다.
남의 힘을 끌어온 것만 가지고 자기 능력을 자랑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하지만 난주를 탈환한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그래서 약간은 서두르는 감이 있어도 그냥 밀어붙였던 것이다.
결과는 참혹했다.
사라진 줄 알았던 현현각과 천마교의 주력이 기다렸다는 듯이 매복 공격을 해왔고, 무림맹은 난주 땅을 밟기도 전에 전멸하게 될 상황에 놓였다.
그런 그들에게 현현각주를 일방적으로 몰아붙이는 청년의 출현은 놀랍고도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무시무시한 강기의 충돌에 사람들은 놀라서 뒤로 물러섰다.
튕겨져 나온 강기가 땅에 흔적 남기는 것을 보고 괜히 옆에 있다가 봉변을 당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기수는 자신의 내공이 상승했다는 사실을 분명히 느낄 수 있었다.
예전에 그와 겨룰 때는 부채로 펼치는 회선참에 온몸에 수 십, 수 백 군데 베인 자리가 생겼었는데 지금은 화류 호신강기가 얼마든지 막아내고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승리를 보장해주는 것은 아니었다.
자기가 몰아붙일 때는 이 싸움이 쉽게 끝날 거라고 기대했지만, 그것은 혼자만의 생각이었다.
사공명이 펼쳐내는 회선참의 기세는 점점 더 강력해지고 있었다.
기수가 뒷걸음질을 치자 무림맹 수뇌부의 표정이 심각하게 변했다. 만약 이 대결에서 현현각주가 이긴다면 자기들은 더 이상 희망이 없게 되기 때문이다.
마음 같아서는 당장 나서서 도와주고 싶지만, 이제까지 방진 안으로 파고든 현현각주를 막느라 다들 내상과 외상을 입고 탈진한 상태였다.
두 발로 서있기도 쉽지 않은데, 인간의 한계를 넘어서는 것으로 보이는 싸움에 끼어드는 것은 의미 없는 일이었다.
기수는 이를 악물었다.
무림맹 사람들의 염원 어린 눈빛에도 신경이 쓰였지만, 그보다 자신이 납득할 만한 결과를 얻고 싶었다.
‘씨발!… 나도 환우구종의 전인이란 말이다! 게다가 삼태공의 오행류도 이어받았고, 사부님한테서는 북궁심법이라는 절기도 배웠는데 음종 하나에 밀릴까보냐!’
사공명이 생긴 것보다 훨씬 나이 많고 노회한, 게다가 내공까지 깊은 고수라는 사실을 확인한 기수는 루주들을 상대할 때처럼 강 대 강으로 몰아붙이는 것은 통하지 않을 거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상대보다 뛰어난 점이 있다면 당연히 그걸 이용해야지.’
기수는 멸절강기를 운용하는 도중에 중단전에 화류의 태포련을 끌어 올렸다.
그리고 순간적으로 공격을 그것으로 스위칭했다.
갑자기 폭음과 함께 기수의 손에서 불기둥이 뿜어져 나오자 사공명은 깜짝 놀라 공격을 멈추었다.
그리고 한 걸음 뒤로 물러서며 엄밀한 방어 자세를 갖추었다.
기수는 양손으로 불기둥을 뿜어내며 그를 몰아붙였다.
“와아!….”
좌우에서 함성이 터져 나왔다.
일반 무사들이 아니고 구파일방, 4문 5가의 간부들임에도 불구하고 탄성을 쏟아낼 만큼, 기수의 무공은 사람들 상식을 벗어나고 있었다.
기수는 상대의 회선참과 격돌하면서 금류 대 금류일 때보다 자신이 좀 더 우위에 섰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하!… 상성에서 밀리는 기분이 어떠냐?”
기수는 승세를 탄 김에 상대를 완전히 제압하려고 했다.
사도는 아니지만, 이 정도 레벨의 고수와 싸울 때는 가능한 모든 방법을 총동원하여 일단 죽여 놓고, 생각은 나중에 하는 게 옳은 길이라는 걸 경험을 통해 알고 있었다.
그런데 사공명도 쉽게 당하지 않았다.
그는 불기둥을 막던 부채 하나를 공중으로 띄우더니 그 사이 비게 된 손으로 뭔가를 움켜쥐어 비트는 듯 한 동작을 해보였다.
순간, 기수는 귀 주변의 공기가 압박당하는 느낌을 받고 깜짝 놀랐다.
다행히 호신강기는 뚫리지 않았지만, 뭔가 고지대에 올라갔을 때처럼 먹먹하고 답답한 기분이 들었다.
사공명은 던졌던 부채를 받아들고 이번엔 반대편 손으로 같은 동작을 반복했다.
“으으….”
기수는 한 번 더 귀에 느껴지는 불쾌감 때문에 신음을 토했다.
불기둥으로 몰아붙여 태워버리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지만 당장은 오히려 귀에 더 신경이 쓰였다.
기수가 머뭇거리자 순간적으로 사공명의 눈이 빛났다.
그의 부채 두 자루는 팔 위로 누우면서 두 손이 비게 되었고, 쌍장이 동시에 기수를 향해 쭉 펼쳐졌다.
퍼억!
기수는 보이지도 않는 강기에 사오 미터나 뒤로 밀려나고 말았다.
“으으….”
기수가 신형을 바로 세우자 사공명이 입술 끝을 비틀어 올리며 말했다.
“이제 제대로 시작해 볼까?”
기수도 냉소를 지었다.
“좋다. 진짜로 해보자.”
구경하던 무림맹 군웅들은 질린 표정을 지었다.
이제까지 한 건 뭐란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