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hwa Manri RAW novel - Chapter 497
한윤은 검으로 기수를 겨누며 조심스럽게 간격을 좁혀 왔다.
기수는 그의 움직임을 통해 내공의 깊이를 대략 파악할 수 있었지만 문제는 현재 자신의 몸 상태가 100%가 아니라는 점이었다.
그래도 물러설 수는 없었다.
“내가 초등학교 때 제일 미워한 사람이 누군지 알아? 바로 식품위생법 위반한 학교 근처 가게 주인들이었다.”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냐? 흐흐흐…. 아무렇지 않은 척 해도 소용없다. 넌 이미 그 칼을 들고 있을 힘조차 없을 것이다.”
“그래? 그렇게 생각한다면 한 번 들어와 보지?”
“흐흐흐….”
한윤의 눈빛은 갈등하고 있었다.
그러나 공을 탐내기보다는 자신의 안전을 좀 더 우선하는 게 분명히 드러나 보였다. 시간이 결국은 자기편이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기수는 그런 그의 탐욕과 두려움 사이를 흔들 수 있도록 살짝 미간을 찡그리며 손을 경련해 보았다.
한윤은 입술에 침까지 바르며 탐욕을 키웠지만 먼저 공격해 오지는 않았다.
기수는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도망치지는 않겠지?’
기수는 선풍비를 시전하여 급격히 간격을 좁히며 대도를 휘둘렀다.
순간적으로 살의와 함께 내공을 집중했기 때문에 안 그래도 서슬 퍼런 대도의 날에 푸른 띠 모양의 섬광이 만들어졌다.
한윤은 기수의 빠른 보법에 깜짝 놀라 두 눈을 부릅뜨며 검을 휘둘러 막았다.
그것이 그의 치명적이고 돌이킬 수 없는 실수였다.
쨍! 소리와 함께 장검이 여지없이 부러지면서 대도는 여세를 몰아 한윤의 가슴을 반으로 가르고 지나갔다.
“어!…”
칼을 휘두른 당사자인 기수도 믿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한윤은 부릅뜬 눈으로 기수를 보다가 그대로 무너져 내렸다.
단 일 합에 허망하게 목숨을 잃은 것이다.
기수는 한윤의 부러진 검, 갈라진 가슴, 그리고 대도를 번갈아 보다가 기식을 갈무리했다. 내공이 아닌 무기의 유리함으로 이겨보긴 또 처음이었다.
“넌 죽을 만 했어.”
기수는 그의 품속을 뒤졌다.
그가 언급했던 해약을 찾기 위함이었다.
그때 장군부 무관과 부하들이 우르를 몰려들어 기수를 에워쌌다.
“역도가 한낭중을 죽였다!”
“놈을 포위해라!”
기수는 벌떡 일어나 발을 구르며 호통 쳤다.
“이놈들! 감히 누구한테 역도라고 하느냐!”
장군부 건물이 쩌렁쩌렁 울리는 목소리에 달려들던 무관들은 찔끔하여 멈춰 섰다.
기수는 그들에게 금패를 꺼내 보였다.
“봐라! 난 황상께서 내려주신 금패를 가지고 있다. 내가 직접 여기 들어와 장군부에 숨어 있던 역적을 잡았는데, 너희들은 이놈의 말을 믿고 감히 나한테 역적이라고?”
무관들은 낯빛이 새파랗게 질렸다.
그들 중 직급이 제일 높아 보이는 무관이 나와 말했다.
“죄, 죄송합니다. 어사대인인 줄 몰라 뵈었습니다. 그런데 가지고 계신 그 칼은…”
“개봉성에서 전군도독 황호를 죽이고 그의 칼을 빼앗은 것이다.”
“아! 그, 그렇다면 혈매궁 궁주 기대협이십니까?”
“그렇다.”
기수는 한윤이 자기를 본 순간부터 암살 계획을 세우고 주변에 되도록 알리지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기수는 자기와 대거리 한 장교에게 물었다.
“그대의 직급은 무엇인가?”
“예. 저는 종사 벼슬을 하고 있는 주모라고 합니다.”
종사라면 낭중보다도 낮은 직급이었다.
“그대보다 높은 사람은 없나?”
“있었는데 방금…”
그의 시선이 한윤에게로 향했다.
“장군부 내에 낭중이 가장 높은 사람이라는 게 말이 되나?”
“지금 역모 때문에 모두 다 밖에 배치되어 계십니다.”
기수는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황실의 존망이 걸려 있는데 장군부 건물에 뭐 지킬 게 있다고 고위직들이 남아 있겠는가. 최고 책임자로 낭중 정도를 남겨두었으면 적당하다 할 수 있었다.
“주종사. 저 자는 역도이니 그의 숙소를 샅샅이 뒤져 증거를 찾아내게. 그리고 장군부의 수비를 그대가 책임지고 맡아야 하네.”
“아, 알겠습니다.”
기수는 한윤의 품을 뒤졌다.
그런데 골치 아픈 상황이 벌어졌다.
그의 품 안에 약병이 10여 개나 들어 있었던 것이다.
“젠장!…”
겉에 레이블이 붙어 있는 것도 아니라서 뭐가 독이고, 뭐가 해약인지 알 수 없었다.
한윤이 죽지만 않았다면 그의 얼굴 앞에 병 하나씩 들어 보이는 것으로 간단히 해약을 찾아낼 수 있었겠지만 대도가 너무 잘 들어서 막는 검과 사람을 한 번에 잘라버렸다.
일단 병들을 모두 챙긴 기수는 주종사에게 한 번 더 장군부와 백무영을 부탁한 뒤 밖으로 나왔다.
동창도 안 통하고 장군부도 안 통하니 이젠 직접 부닥쳐보는 수밖에 없었다.
그가 황궁으로 다가가자 곧장 금군이 몰려들어 그를 포위했다.
“웬 놈이냐!”
“무기를 버려라!”
기수는 금패를 보었다. 그러자 금군의 태도가 즉시 바뀌었다.
“어사대인을 몰라뵈었습니다. 여기엔 어쩐 일로 오셨습니까?”
“황궁 안에 볼 일이 있다.”
“안 됩니다.”
기수는 자기 귀를 의심했다.
“안 된다니? 방금 금패를 보지 않았는가?”
“외인의 출입은 물론 연락도 일체 막으라는 조칙이 내려졌습니다.”
“연락도 막으라고? 언제 그런 명령이…”
“이틀 전입니다. 동창이 무력화된 이후, 황궁 내부에 세작이 있다는 첩보가 들어와서 현재 우리 금군이 총동원되어 색출작업이 진행 중입니다. 그래서 조정대신들의 출입도 통제되고 외부와의 연락도 금지된 것입니다.”
“대신들도 못 들어간다고?”
“예. 조회도 열리지 않고 있습니다.”
“하지만 난….”
기수는 황궁 안에 있는 공주와 사매들을 불러내는 게 이렇게 어려운 일일 거라고는 상상도 해본 적이 없었다.
금군 장교와 군사들을 둘러보며 그는 생각했다.
‘이놈들 주 차삐고 드가까?’
삼촌의 말투가 갑자기 떠올랐다.
금군 장교가 말했다.
“꼭 들어가거나 연락을 하셔야 한다면 대장님을 뵙고 정식 공문서를 발급받으시면 됩니다. 저희가 안내할까요?”
기수는 손을 내저었다.
“통제가 풀릴 때까지 기다렸다가 다시 오겠소.”
그리고는 바로 돌아서서 황궁을 떠났다.
관리들 상대하는 건 좀 껄끄러웠다.
자기가 가진 금패는 공주가 임시로 빌려준 거라서 정식 공문서 발행을 하려면 뭔가 문제가 생길 것 같았다.
또 장군부에서처럼 또 다른 역도를 만나지 말라는 법도 없었다.
그럴 바엔 차라리 밤에 와서 몰래 방법을 강구하는 편이 나을 것 같았다.
일단 몸부터 회복해야 어디든 자신 있게 갈 수 있다는 생각에 기수는 포구로 향했다.
수로맹의 배라면 믿고 쉬면서 몸을 추스를 수 있을 거라 기대한 것이다.
포구에 들어선 기수는 수로맹 27채의 깃발을 찾았다.
‘육대기가 기다리고 있겠지?’
그러나 27채의 깃발은 보이지 않았고 수로맹의 배 자체를 찾기 어려웠다.
선착장 맨 구석에서 겨우 수로맹의 작은 배 한 척을 발견한 기수는 수로맹주의 신표를 보여준 후 배에 올라탔다.
선장은 기수가 뭐라 하기도 전에 배를 출항시켰다.
기수는 당황했다.
“배를 멈추시오!”
그러나 늙수그레한 선장이 기수에게 말했다.
“맹주님의 명에 따라 꼭 모시고 가야 할 곳이 있습니다.”
“수로맹주가 날 데려오라 했단 말이오?”
“예. 맹주님의 신표를 가지고 계시니 혈매궁의 기대협 맞으시지요?”
“그건 맞소만…”
“그렇다면 불문곡직하고 무조건 모셔오라 하셨습니다.”
“하지만 난 북경에 볼일이 있소.”
“안 됩니다. 배에서 내리려고 하면 저희들 목숨을 바쳐서라도 막으라고 하셨습니다. 제발 저희들 부탁을 들어주십시오.”
기수는 어이가 없었다.
휴식과 치료를 위해 배를 찾았을 뿐인데 마치 기다리고 있다가 납치라도 하는 행동을 보이고 있었다.
“난 내릴 테니 배를 멈추시오!”
그러자 선장과 선원이 모두 갑판에 엎드려 머리를 쿵쿵 찧으며 애원했다.
“제발 저희들을 살려주십시오!”
기수는 살짝 짜증이 났다.
싫다는데 왜 이러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도대체 수로맹주가 왜 날 데려오라 하는 것이오? 이유라도 말해보시오.”
“그건 저희도 모릅니다. 무조건 모셔오라고만 하셨습니다.”
기수는 수로맹주에게 화가 났다. 늙고 나약한 부하들을 내세워서 이런 식으로 강요하는 건 상당히 결례라고 할 수 있었다.
‘이놈들 주 차삐고 내릴까?’
삼촌의 사투리가 또 나왔다.
그러나 때리기에는 너무 하수들이었고 선장 나이도 많았다.
“수로맹주는 지금 어디에 있소?”
“일단 저희가 양주까지 모시겠습니다.”
“양주? 그 먼 곳까지 가야 한단 말이오? 그리고 일단이라니… 수로맹주가 거기 있다는 거요? 또 더 가야 한다는 거요?”
“저희도 모릅니다. 제발 살려주십시오.”
선장은 눈물까지 흘리며 애원했다.
기수는 선장과 선원들을 내려다보며 대두 자루를 꽉 움켜쥐었다.
공주와 사매들을 만나는데 무슨 장애가 이리도 많단 말인가.
그러나 수로맹주가 이렇게까지 아는 데는 뭔가 이유가 있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다.
“좋소. 갑시다.”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기수는 방해하지 말라 당부하고 선실로 들어갔다.
어쨌거나 사매들을 만나러 가려면 내상 치료가 우선이니까 배에 탄 목적은 우선 달성하기로 한 것이다.
하단전의 상태는 여전히 불통이었다.
하지만 처음에 비하면 많이 느슨해져서 미세하게나마 길이 열리는 느낌이었다.
‘역시 억지로라도 토하기를 잘했네.’
생각보다 피해가 크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약병들을 굳이 챙겨올 필요도 없었던 것이다.
한 시간 정도 운기조식을 하자 하단전은 차츰 정상으로 돌아왔다.
조식이 끝난 후 땀에서 아세톤 냄새 같은 게 났는데, 아마 남아 있던 약기운이 모공을 통해 모두 배출된 것 같았다.
기수는 선원에게 남는 옷이 있는지 물은 후 강에 뛰어들어 수영으로 피부에 붙은 약기운을 모두 씻어내고 나서 배로 올라왔다.
새 옷으로 갈아입은 기수는 내친 김에 오행류 상생 순환과 운기조식을 번갈아 하면서 연공에 집중했다.
어차피 양주에 가서 수로맹주를 만나기로 한 이상 화내도 소용없고, 짜증내도 소용없으니까 내공이나 연마하자고 마음먹은 것이다.
12사도 중 마지막 남은 보스인 척회왕.
검종의 전인검이 복종할 정도라면 최소한 그보다는 고수일 게 분명했다.
그런 상대와 싸울 생각을 하니 자기도 모르게 집중력이 강화되어서 눈을 떴을 때는 어느새 새벽이 되어 있었다.
기수는 선실 입구에 놓인 음식을 먹으려다가 혹시나 하는 마음에 선장과 선원들 모두의 뇌파와 동조를 시도해 혹시라도 독을 타지 않았나 확인했다.
염정구심술 동조는 꽤 번거로운 일이지만 그래도 당한지 하루만에 또 당할 수는 없는 일인지라 귀찮음을 감수했다.
결론적으로, 수로맹은 장군부보다 믿을 만 했다.
주린 배를 채우고 다시 상생순환과 운기조식 병행 수련을 시작한 기수는 다음날 저녁이 되어서야 잠시 쉬고 요기도 했다.
시간이 참 빨리 흐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양주에 도착한 기수는 커다란 배에서 수로맹주를 만났다.
“궁주님. 다행입니다! 무사하셔서…”
반가이 맞는 그에게 막 따지려는 참인데 그의 뒤로 낯익은 얼굴이 보였다.
놀랍게도 수로맹주 뒤로 나타난 사람은 탁지연이었다.
“어! 너!….”
“궁주. 다행이야. 무사히 빠져나와서.”
기수는 그녀 뒤로 다른 사매들도 모두 있는 것을 보고 더욱 놀랐다.
“어떻게 된 거야? 왜 다들 여기에 있어?”
춘매가 말했다.
“수로맹의 육채주 덕분에 위기를 벗어날 수 있었어. 그 사람을 북경 포구에 배치해달라고 한 건 궁주였다면서?”
“그, 그렇긴 한데…”
“역시 궁주는 선견지명이 있어. 고마워.”
“아니. 그보다 내가 너희들을 만나려고 얼마나 애썼는지 알기나 해? 어째서 다들 양주에 와 있는 거야?”
공주가 기수에게 말했다.
“여기서 얘기하기는 그렇고… 안으로 들어가자.”
기수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녀를 따라갔다.
단둘이 선실 안으로 들어간 뒤 공주는 문을 잠갔다.
기수는 그녀가 자기와 함 하자는 건 줄 알았다.
그러나 안쪽에서 인기척이 나더니 화려한 비단옷을 입은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머리와 팔에 붕대를 감았는데 피가 배어 나와 있는 것을 보니 다친 모양이었다.
그는 상당히 오연한 표정으로 기수를 노려봤다.
공주가 기수의 옆구리를 쿡 찌르며 말했다.
“황상께 인사 올려.”
“황상?”
기수는 이해할 수 없었다. 황제가 왜 여기에 있단 말인가?
기수가 엉거주춤한 자세로 바라보기만 하자 남자는 헛기침을 했고 공주는 기수의 어깨를 눌렀다.
“뭘 그렇게 멀뚱거리고 있어? 어서 절 해.”
기수는 비로소 남자가 입고 있는 옷과 신발, 장신구가 범상치 않은 것을 확인했다.
공주가 자기에게 장난을 치는 것도 아닌 것 같았다.
‘진짜…. 황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