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hwa Manri RAW novel - Chapter 496
동창은 모두가 미워하지만 국가 권력의 중추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정체불명의 패거리가 습격하여 창주와 환관들을 죽였다?
제독동창 만욱은 기수 레벨에서 봤을 때는 다소 부족하지만 무림맹 기준으로 보면 구파일방의 장문인 정도, 혹은 그들을 능가하는 고수였다.
그,런 고수가 죽었는데 어떻게 황궁에 아무 일도 없다는 보고를 한단 말인가?
기수는 지휘관에게 물었다.
“황궁에는 별 일 없소?”
“예. 습격은 동창을 지나 황궁으로 이어졌습니다만, 금군이 그들을 모두 격퇴하여 10여 명의 사상자가 생기는 것으로 끝났습니다.”
“금군이 격퇴했다니…”
동창을 박살낸 걸 보면 틀림없이 그동안 성 안에 숨겨둔 청탑산 무리가 총동원된 게 분명했다. 더구나 만욱이나 동창 고수들을 모두 죽였다면 사도의 우두머리인 척회왕이 직접 나섰을 가능성도 컸다.
그런 그들을 금군이 막았다는 건 상식에 어긋난 얘기였다.
‘동창을 이 꼴로 만들어놓고 어째서 황궁은 그냥 뒀단 말인가?’
독을 마시면 접시까지 핥는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호랑이 등에 탄 기호지세란 말도 있다.
이왕 칼을 뽑아 동창을 쳤는데 진짜 목표인 황궁을 앞에 두고 고작 금군에 막혀 그만뒀다는 건 말이 되지 않았다.
기수는 그 의문을 풀어야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사매들을 만나 그녀들의 안전을 확인하고 싶었다.
“환관들 중 살아남은 자는 없소?”
“동창 소속은 한 명도 남김없이 모두 죽었습니다. 안타깝게도….”
말은 그렇게 하지만 별로 안타까워 하는 기색은 아니었다.
평소에 동창이 문무 관원들에게 얼마나 적대시 되는지 알 수 있었다.
“그럼 황궁 내부와 연락이 될 만한 사람은….”
“죄송합니다. 저는 직급이 낮아서….”
기수는 답답했다.
공주와 함께 다닐 때는 모두 무사통과였는데 혼자 떨어져 있는 지금은 사매들을 불러내는 일조차 마음대로 할 수 없었다.
‘동창을 통해서 안 되면 장군부를 통해서 연락하는 수밖에 없겠군.’
기수는 지휘관에게 물었다.
“나를 장군부로 안내해줄 수 있소?”
“물론입니다.”
그를 따라 걸은지 20분 만에 기수는 장군부에 도착했다.
“저는 여기까지만 모셔야 하겠습니다.”
“수고했소.”
장군부는 그에게 감사인사를 하고 서슬 퍼런 장군부 정문을 금패로 통과했다.
그를 맞이한 사람은 한윤이란 이름의 경력사 낭중이었다.
30대 후반의 큰 체격에 얼굴빛이 희고 인상이 선해 보이는 자였다.
어사금패를 확인하고 일단 공손히 절부터 한 후 그가 물었다.
“대인께서는 누구신지 여쭤봐도 되겠습니까?”
기수는 낭중이란 벼슬이 상당히 높은 관직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자기 신분을 알면 우습게 여기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얼핏 들었다.
“나는 혈매궁 궁주 기모라 합니다.”
그러나 한윤의 표정이 확! 바뀌었다.
“아! 이렇게 만나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기대협의 활약에 대해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허창에 계시는 줄 알았습니다만….”
얼굴에 미소와 호감이 가득해서 기수는 자기 걱정이 기우였음을 깨달았다.
“허창에 있었습니다만…”
기수는 이제까지의 과정을 대략 얘기해주었다.
한윤은 탄성을 토하며 기수의 대도를 살펴봤다.
“그렇다면 이게 바로 황도독의 청강대도로군요! 어쩐지…”
기수는 가볍게 미소 지은 후 말했다.
“제가 여기 온 이유는 황궁 내부와 연락할 방법을 찾기 위해서입니다.”
“그런 일이라면 제가 얼마든지 해드릴 수 있습니다. 누구와 연락하기를 원하십니까?”
“그러니까….”
동창이란 채널이 끊긴 이후 기수가 연락을 취할 수 있는 사람은 공주가 유일했다.
하지만 그녀의 프라이버시를 생각하면 외인이, 그것도 남자가 함부로 만나자고 해도 좋을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와 혈매궁의 관계를 아는 다른 사람에게 부탁하고 싶었다.
“혹시 백시랑을 만날 수 있을까요?”
“아!… 그라면….지금 이곳에 있습니다.”
“그게 정말입니까? 만나게 해주십시오.”
백무영이 장군부에 있다면 문제는 해결되었다고 할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 얘기를 할 수 있을지…”
한윤은 걱정스런 표정으로 기수를 안내했다.
기수가 그를 따라 가보니 백무영은 침상에 누워 있었는데 온몸에 붕대를 감았고 한 눈에 보기에도 상태가 심각해 보였다.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척회왕을 압송하러 친왕부로 갔다가 이런 변을 당했습니다.”
“아!…”
기수는 그가 사도들의 우두머리라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백무영은 그 정도까지 고수일 거라는 생각은 못한 듯 했다.
한윤이 옆에서 말했다.
“함께 간 무관과 병사들 대부분이 죽고 백시랑만 구사일생으로 빠져나왔다고 합니다. 외상은 모두 치료했지만 내상이 심각해서 지금은 간신히 숨만 붙어 있는 상태입니다.”
“척회왕은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는 지금 행방이 묘연합니다.”
기수는 그가 이번 동창 습격을 주도했을 거라고 생각했다.
자기를 잡으려는 군대가 왕부까지 왔으니 더 이상 기다릴 이유가 없는 것이다.
군대를 이끌고 진격하는 거라면 북경의 성문을 지나기까지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그동안 키운 무공 고수들과 함께 성벽을 넘는 것은 언제든지 가능한 일인 것이다.
‘그런데 왜 황궁에서 멈췄지?’
기수는 백무영을 깨워서 자초지종을 듣고 싶었다.
그리고 공주와의 연락도 부탁하고 싶었다.
그러나 백무영은 사경을 헤매고 있었고 호흡마저 미약했다.
“제가 백시랑의 상태를 좀 봐도 되겠습니까?”
“예. 물론입니다.”
기수는 백무영의 맥을 잡아보았다.
그의 기경팔맥은 완전히 망가지고 토막토막 끊겨 있었다.
형님이라고 부르며 친하게 지내던 그의 그런 모습을 보니 견딜 수 없을 만큼 가슴이 아파 왔다.
“잠시 시간을 좀 주시겠습니까?”
한윤은 기수가 뭘 하려는지 알고 밖으로 나갔고 부하들을 방 주변에 배치하여 아무도 방해하지 못하게 하라고 엄명을 내렸다.
기수는 제대로 의자를 당겨 앉아 자신의 내공으로 백무영의 상태를 최대한 호전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끊어진 혈맥을 잇는 것은 상당히 긴 시간과 노력을 필요로 하는 일이었다.
기수는 백무영의 몸이 단번에 나을 수 있는 상태가 아님을 알았다.
하지만 자기가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최대한 노력했다.
2시간이 넘도록 조심스럽게 추궁과혈을 한 결과 백무영의 얼굴엔 어느 정도 혈색이 돌았다.
기수는 휴식을 취하며 이마의 땀을 닦았다.
백무영의 몸이 너무나 위태로운 상태이기 때문에 이삼일 경과를 본 뒤에 다시 시도해야 할 것 같았다.
“형님. 이겨내십시오.”
그가 듣고 있는지, 아닌지는 알 수 없지만 기수는 진심을 담아 얘기하고 밖으로 나왔다. 그러자 한윤이 반가이 맞으며 물었다.
“백시랑님은 좀 어떠십니까?”
“아직 안정되지 않았습니다.”
한윤은 한숨을 내쉬었다.
“저희 쪽에서도 백방으로 알아보고 있습니다만 지금 모두들 척회왕과 반란군 때문에 정신들이 없어서…”
“그게 더 급한 일이겠지요.”
“아! 치료하시는 동안 숙소와 음식을 준비해 두었습니다.”
기수는 이곳에 묵을 생각은 없었다.
그러나 배는 몹시 고팠다. 밥 먹은 게 언제인지 기억도 나지 않았다.
숙소로 가서 음식을 먹는 동안 한윤은 맞은편에 앉아서 기다렸다.
그러다가 기수가 접시들을 어느 정도 비우자 물었다.
“궁에 연락할 일이 있다고 하셨지요?”
기수는 더 이상 공주의 프라이버시 배려해 줄 여유가 없었다.
“예. 공주마마에게 소식을 전하고 싶습니다만….”
“자운공주님 말씀이군요! 혈매궁주님과 함께 활약하셨다는 얘기는 익히 들었습니다. 제가 곧 내관을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잠시만 기다려 주십시오.”
“고맙습니다.”
한윤은 곧장 밖으로 나갔다.
기수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괜한 걱정을 했다 싶었다.
‘이제 보니 장군부에서도 다 알고 있었구나.’
기수는 젓가락을 들고 고기와 야채를 다시 먹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갑자기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형님은 신중한 성격인데 왜 부하들에게 공주 얘기를 했을까?‘
자기도 그녀의 프라이버시를 걱정해줄 정도인데 백무영이 처제의 강호활동에 대해 부하 장교에게 말해줬다는 게 선뜻 이해가 가지 않았다.
‘얘기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알았지?’
기수는 순간 온몸에 소름이 끼치는 것을 느꼈다.
그는 즉시 손가락을 목구멍에 억지로 집어넣어 이제까지 삼킨 음식들을 모두 토하기 시작했다.
조정에 척회왕의 수하들이 얼마나 숨어있을지 모르는 상황.
장군부라고 해서 예외일 수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문밖에서 한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역도가 칼을 들고 장군부에 침임했다! 모두 와서 놈을 잡아라!”
역시 그는 공주를 부르러 간 게 아니라 문 밖에 숨어 있었다.
음식에 뭔가 수작을 부렸을 거라는 의심이 더욱 깊어졌다.
토할 수 있을 때까지 억지로 다 토해낸 기수는 세워두었던 대도를 들고 문을 박찼다.
어느새 마당엔 장군부 무사들이 수십 명 몰려들고 있었다.
그들의 뒤에 간악한 미소를 짓고 있는 한윤도 보였다.
기수는 왼손을 들어 검지로 그를 가리킨 후 파천강기를 날렸다.
퍽! 소리와 함께 담벼락에 구멍이 하나 뚫렸지만 한윤은 무사했다.
피하는 몸놀림의 민첩함으로 보아 청탑산 고수 수준이었다.
그는 부하들을 향해 소리질렀다.
“뭘 보고만 있느냐! 어서 역도를 잡아라!”
기수는 그의 의도를 알아차렸다.
자기로 하여금 장군부의 무관들을 죽이도록 만들고, 동시에 음식에 탄 독인지 약인지의 효과가 퍼질 시간도 벌려는 것이었다.
‘암수를 택한 것을 제법 현명한 선택이었다만… 상대를 봐가면서 해야지.’
기수는 내공을 끌어올렸다.
순간, 단전에서 극심한 통증이 느껴졌다.
“으으!…..”
자기도 모르게 신음을 토하자 한윤이 큰소리로 웃으며 말했다.
“하하하!…. 네놈은 오룡단정산을 먹었다. 내공을 쓸 수 없는 몸인데 조금 전 무리해서 강기를 운용했으니, 곧 극심한 통증과 함께 주화입마에 빠져들 것이다. 하하하!…해약을 먹고 싶다면 지금 당장 무기를 버리고 무릎을 꿇어라.”
기수는 미간을 찌푸렸다.
얘기를 들어 보니 무슨 산공독의 일종인 듯 했다.
기수는 조심스럽게 내공을 운기해 보았다.
단전에 뭔가 꽉! 뭉치는 느낌이 들면서 기혈 흐름이 턱! 막혔다.
“씨발!….”
한윤이 한 걸음 나서며 웃었다.
“하하하!… 어떠냐? 이제 내 말을 믿겠느냐? 당장 칼을 버려라.”
기수는 화가 났다,
‘왜 나처럼 완벽한 사람이 만독불침이 아닌 거지?’
무협지 읽다 보면 주인공은 모든 면에서 완전무결한데, 자기는 독 때문에 번번이 고생했고, 지금은 죽을 위기에 처한 것이다.
한편으로는 방심이 원인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백무영이나 석초가 아닌, 오늘 처음 만난 사람이 권하는 음식을 먹었다는 게 문제야. 장군부라고 해서 안심할 수 있는 여건이 아니었는데…’
그러나 반성이나 후회를 하기에는 이미 늦은 상황.
우선 위험을 벗어나는 게 급선무였다.
기수는 일단 하단전의 기혈 흐름을 차단시켰다. 그렇게 하면 약기운이 퍼지는 걸 막을 수 있는 대신 자신의 내공 운용도 막힐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기수의 경우엔 단전이 두 개 더 남아 있었다.
물론 하단전을 지날 수 없기 때문에 시간이나 효율 면에서 큰 제약이 걸리겠지만 비상수단으로는 쓸 만 할 거라는 생각이었다.
기수는 우선 잔백지로 겹겹이 서있는 무관들을 쓰러트렸다.
퓨퓨퓨퓨퓻!….
장군부 무관들은 다들 무공을 익힌 몸이지만 그 성취도가 기수와 비교할 바는 되지 못했다.
그들이 추풍낙엽처럼 쓰러지자 한윤은 눈을 부릅떴다.
오룡단정산을 먹고도 몸을 움직이는 게 믿어지지 않았던 것이다.
방 안에서 토하는 소리가 들렸는데, 그로 인해 약효가 덜했을 거라고 추측한 한윤은 부하들을 더욱 다그쳤다.
“역적을 놓치면 너희들도 역적으로 처벌하겠다!”
말도 안 되는 억지로 부하들을 앞세운 뒤, 본인은 잽싸게 돌아서서 도망치기 시작했다. 기수와 싸워서 이길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기수는 잔백지로 장군부 무관들을 연속해서 쓰러트렸다.
장군부와 원한 맺을 이유는 없기 때문에 모두 수혈을 찍었는데, 확실히 진기 흐름이 말도 안 되게 부자연스러웠다.
세 단전 중 하나가 막혀있을 뿐인데도 전투력은 절반 이하, 어쩌면 삼분지 일 정도로 떨어진 기분이었다.
사용하지 않는 것과 막힌 것은 천지차이였던 것이다.
이런 상태라면 청탑산 고수 와 싸우는 것도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설령 위험을 감수하더라도 한윤을 살려두고 싶지는 않았다.
‘너만큼은 기필코 죽여주마!’
기수는 무관들을 쓰러트리며 한윤의 뒤를 바짝 따라붙었다.
한윤은 악을 쓰며 부하들을 불러댔지만 보내는 족족 점혈을 당하고 기수와의 거리는 계속 좁혀져서 결국 궁지에 몰리게 되었다.
“으으….”
한윤은 허리에 차고 있던 검을 뽑아들고 즉시 은혈대법을 끌어올렸다.
바짝 따라붙던 기수는 그가 반격할 태세를 취하면서 기도가 급격히 폭발하자 자기도 모르게 멈칫하고 말았다.
자신의 상태가 정상이 아님을 알기에 무의식적으로 나온 행동이었다.
그 모습을 본 한윤의 두 눈에 기광이 번뜩였다.
“너. 이제 보니…”
그의 입가에 미소가 번지기 시작했다.
기수의 상태를 알아차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