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elcome to NBA RAW novel - Chapter 198
웰컴 투 NBA 198화
#198. 위기는 곧 기회
패배는 언제나 쓰라린 법이다.
그것이 3연패이자.
홈그라운드에서 당한 아쉬운 패배이며.
1차전의 승리로 ‘한번 해 볼 만하다!’라는 자신감이 깃든 직후에 당한 것이라면.
게다가 동료가 불운한 부상을 당하기까지 했다면 더더욱.
“…….”
“…….”
“…….”
4차전의 패배 후.
블레이저스 선수단 일동은 그야말로 천당에서 지옥으로 수직 낙하하는 참담한 기분을 맛보고 있었다.
찰칵찰칵찰칵!
복도에 대기하고 있던 기자들이 마구잡이로 카메라를 들이민다.
“킴! 킴! 잠시 즉석 인터뷰 가능할까요?”
“지금 심정이 어떠신가요?”
“맥컬럼의 상태에 대해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크리스 폴의 악의적인 파울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죠? 크라우더 선수는 방금 전 기자회견에서 날 선 발언을 마구 쏟아냈는데요!”
“홈구장에서 무기력한 2연패를 당하셨는데, 응원해 주신 팬들께 드릴 말씀은 없으신가요?”
와. 이것들 선을 아주 숨 쉬듯이 넘네?
기사의 조회 수에 목숨을 거는 미국의 스포츠 언론이 패배자에게 얼마나 잔인해질 수 있는지는 전생에도 익히 봐 왔지만.
그걸 직접 당하는 입장이 되는 건 또 색다른 경험이었다.
‘해럴드 오맥. 휴스턴 미디어 스포츠.’
나는 마지막에 무례한 질문을 던진 기자의 명패를 빠르게 확인했다.
휴스턴 지역 언론 기자네.
그런 놈이 포틀랜드 팬들에게 할 말은 왜 물어봐?
“반응이 참 재밌네요. 시리즈 아직 안 끝났습니다.”
“킴? 킴! 잠깐만요!”
나는 더는 대꾸하지 않고 라커룸으로 향했다.
어차피 샤워를 마친 뒤에는 포스트 매치 인터뷰에 참석해야 하고, 여기서 기사 한 줄이라도 얻으려고 죽치고 있는 녀석들은 인터뷰 룸에 들어가지도 못하는 송사리들이니까.
‘멋대로 선수에게 접근했으니, 스태프들이 곧 퇴장시키겠지.’
아니나 다를까.
경기장을 관리하는 스태프들의 고성이 들려온다.
“젠장, 라이언! 조나단! 저 날파리들 당장 내쫓지 않고 뭐하나!”
“예, 옙! 죄송합니다!”
내게 엄지를 치켜드는 경기장 관리자들.
나는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감사를 표하고 샤워실로 들어갔다.
쏴아아아!
얼음장처럼 찬물을 뒤집어쓰고 나니 조금씩 평정심이 돌아온다.
나는 파르르 떨리는 주먹을 쥐며 숫자를 30부터 1까지 거꾸로 카운트했다.
‘빌어먹을.’
경기에서 패한 뒤에는 언제나 뱃속 깊은 곳에서 뜨거운 게 치밀어 오른다.
오늘처럼 손안에 거의 들어왔던 승리를 경기 외적인 요인으로 빼앗긴 것이라면 더더욱.
“Fuuuuuuck!!!”
……반대편 부스에서 고래고래 소리치고 있는 너키치만큼은 아닌 것 같지만.
“괜히 벽에 주먹질 같은 건 하지 말아요. 여기서 댁까지 다치면 정말 큰일 나니까.”
“……킴? 샤워하고 있었냐?”
“네. 아까부터.”
“……젠장. 시끄럽게 굴어서 미안하다.”
나는 젖은 머리를 털며 샤워부스 밖으로 걸어 나왔다.
“너크. 그거 알아요?”
“뭐가?”
“이건 제 몇 안 되는 인생 신조 중 하나인데 말이죠.”
뚜둑! 뚝!
나는 가볍게 목을 꺾으며 거울을 노려보았다.
거기에는 성격 나쁘게 생긴 검은 머리 동양인이 착 가라앉은 눈으로 나를 응시하고 있었다.
“좆같은 짓을 하는 놈들은, 똑같이 좆같은 짓을 당해 봐야 정신을 차리더라고요.”
덜컹!
나는 너키치를 놔두고 샤워실을 벗어났다.
“……킴? 킴! 야! 벌써 나갔냐? 야!”
경기 후 인터뷰를 하러 갈 시간이었다.
***
플레이오프 2라운드.
비교적 전력이 균등한 동부 컨퍼런스에서는 치열한 접전이 펼쳐지는 가운데.
올해 최대 우승 후보인 워리어스, 로키츠의 2라운드 상대인 스퍼스, 블레이저스는 공교롭게도 나란히 1승 3패를 기록하고 있었다.
당연히, 이미 방송인들의 관심은 컨퍼런스 파이널에서 열릴 로키츠와 워리어스의 ‘운명적인’ 승부로 급격히 쏠리고 있었다.
“이것부터 확실히 해 두죠. 블레이저스는 잘 싸웠어요.”
찰스 바클리는 말했다.
“그 수많은 악성 계약을 용케도 한 시즌 만에 처분하고 컨텐더급 전력을 구축했죠. 아마 동부 컨퍼런스였다면 충분히 파이널 진출을 노릴 수 있었을 겁니다. 스퍼스도 카와이 레너드 없이 여기까지 올라온 건 대단한 성과고요.”
“저기, 척. 동부 컨퍼런스를 싸잡아 무시하는 발언은 조금…….”
난색을 표하는 어니 존슨.
그러나 바클리는 꿋꿋이 할 말을 이어 갔다.
“뭐, 내가 틀린 말이라도 했습니까? 올해는 서부 컨퍼런스 파이널이 사실상의 결승이라는 건 누구도 부정 못 할 이야기잖아요?”
“모두가 동의하진 않을 테지만, 일단 이야기 계속하시죠.”
“스퍼스와 블레이저스가 1-3 상황에 몰린 이유는 간단합니다. 시리즈가 길어질수록 점점 체급 차이가 드러나기 시작하는 거죠.”
“체급 차이요?”
“농구는 모든 구기 종목 중에서 가장 이변이 나오기 힘든 스포츠입니다. 어지간해선 전력이 앞서는 팀이 이기는 게 농구죠. 그 점은 다들 동의하시죠?”
출연자들은 약속이라도 한 듯 일제히 고개를 끄덕였다.
3연전을 치르면 웰시코기에게도 한 경기쯤은 질 수 있다는 농담이 있을 정도로 변수가 크게 작용하는 야구나.
90분 내내 골대를 걸어 잠그고 행운의 세트피스 득점을 노리면 약팀도 강팀을 잡아낼 수 있는 축구.
헤일 메리 패스에 이은 터치다운 한 번이면 막판 대역전이 가능한 미식축구와 달리.
농구는 두 팀이 공평하게 100여 번의 공격 찬스를 가져가는 종목이기에, 운의 영향이 그만큼 미약할 수밖에 없었다.
“그건 어째서인가요?”
“간단합니다. 득점이 많이 나는 종목일수록 변수가 생길 여지가 적기 때문이죠. 한두 포제션 정도는 행운에 따라 슛이 들어가거나 빗나갈 수 있겠지만, 행운이 백 번이나 어느 한쪽으로만 쏠리길 기대할 수는 없으니까요.”
케니 스미스가 고개를 끄덕이며 수긍했다.
“스퍼스는 포포비치 감독의 깜짝 전략으로, 블레이저스는 킴의 경이로운 수비 원맨쇼로 1승을 거둘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일회성 전략으로는 한 경기를 가져올 수는 있어도, 4번이나 승리를 따내기는 어려워요.”
“실제로 하든이 우리가 알던 모습을 보여 준 2, 3차전에선 킴도 수비하길 버거워하는 모습을 보여 줬지.”
“4차전은 또 잘 막았지만 말이죠.”
“예. 사실 아무리 위대한 수비수라고 해도 하든 같은 특급 에이스를 7차전 내내 묶는다는 건 불가능한 일입니다. 올해 하든의 퍼포먼스는 그 마이클 조던을 소환하는 수준이거든요? 지금처럼 반반 싸움이라도 가져가고 있는 게 대단한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킴은 지금도 자신의 역할을 100% 다하고 있어요.”
로키츠는 하든과 크리스 폴, 둘 중 한 명만 터져도 승리할 수 있지만.
블레이저스는 릴라드와 맥컬럼 중 한 명 이상이 터지고, 김시온이 하든을 잘 틀어막는 날에만 승리할 수 있다.
그게 전문가들이 말하는 두 팀의 객관적인 전력 차이였다.
“블레이저스에게 승산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승리를 위해 충족해야 할 전제 조건이 로키츠보다 훨씬 많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렇다면 맥컬럼이 없는 지금은 아무래도 어렵다고 봐야 할까요?”
“글쎄요? 릴라드가 미쳐 날뛰면 한 경기 정도는 가져갈 수도 있겠죠. 하지만 앞으로 한 번도 패하지 않고 3연승을 거둔다? 난 불가능하다고 봅니다.”
“도박사들의 배당도 로키츠 쪽으로 완전히 쏠렸더군요.”
“그래도 굳이 변수를 찾는다면?”
어니 존슨의 집요한 질문에 샤킬 오닐이 턱을 긁적이며 답변했다.
“음…… 일단 맥컬럼이 그런 일을 당했으니 동료들이 단체로 눈이 돌아갔을 거라는 점과 블레이저스의 체력전이 슬슬 효과를 발휘할 때가 되었다는 정도? 하든과 폴은 지금 4경기 내내 40분가량을 출전하고 있으니까요.”
“에이. 그것만으로는 부족하지. 결국 슈퍼스타가 해 줘야 해.”
바클리가 고개를 젓자, 다른 패널들도 동의를 표했다.
플레이오프처럼 높은 무대에서 변수를 창출할 수 있는 것은 오직 슈퍼스타뿐.
바클리는 그 단순하면서도 절대적인 진리를 말하고 있었으니까.
***
5차전을 앞두고 맞이한 짧은 휴식일.
회복 훈련에 임하는 동료들 사이에서는 어색한 침묵이 감돌고 있었다.
덜컹!
“뭐야. 왜들 벌써 탈락한 것처럼 침울하게 굴고 있어?”
“CJ!”
“괜찮냐?”
목발을 짚으며 코트로 들어오는 맥컬럼.
옆에는 윌리 그린 보조 감독이 동행하고 있었다.
스트레칭을 하던 동료들은 반색하며 우르르 입구로 몰려들었다.
“발목 상태는 어때요?”
“경미한 1도 염좌야. 지금도 걷는 데에는 문제없다. 이건 회복 속도를 높이려고 차고 다니는 거고.”
발목 보호대를 목발로 가리키는 맥컬럼.
나는 그 모습을 본 뒤에야 안도의 한숨을 내쉴 수 있었다.
“휴. 천만다행이네요.”
발목 염좌.
쉽게 말하면 발목을 삐어 인대가 늘어난 상태를 의미한다.
‘농구에서 가장 높은 빈도로 발생하는 부상이지.’
다행히 1도 염좌는 큰 통증이 없고, 선수가 원한다면 출전을 강행할 수 있을 정도의 경미한 부상이었다.
물론 오랫동안 방치하면 만성 염증으로 발전할 수 있으니, 시즌이 끝나면 시간을 두고 천천히 치료해야겠지만.
“그래도 5차전 출전은 어려울 거다. 팀 닥터의 소견으론 최소 사흘 정도는 안정이 필요하다더군.”
윌리 그린 보조 감독님이 말했다.
무리해서 5차전 출전을 강행하면 설령 승리하더라도 6, 7차전 출전이 어려워진다.
결국 우리는 맥컬럼 없이 5차전이란 난관을 넘어서야 한다는 의미였다.
선수들이 흩어진 뒤.
나는 벤치에 앉아있는 맥컬럼에게 조용히 다가가 말을 걸었다.
“저기요. CJ.”
“음?”
“그 뭐냐. 크리스 폴 말인데…….”
나는 맥컬럼에게 내심 미안함을 느끼고 있었다.
크리스 폴과 나눈 설전.
이는 객관적인 전력에서 뒤처지니 기세 싸움에서라도 우위를 점하기 위한 심리전이었지만.
결과적으로 맥컬럼이 내 대신 보복을 당한 꼴이 되어 버렸으니까.
“이봐, 루키.”
“예?”
툭!
무언가가 뺨을 툭 건드리는 감촉.
고개를 들어 보니, 맥컬럼이 특유의 아저씨 같은 푸근한 웃음을 지으며 날 바라보고 있었다.
“평소의 당돌한 모습은 어디로 갔어? 설마 이게 너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 생각하냐?”
“아니, 제가 괜히 도발을 한 탓에…….”
딱!
“짜식이 건방지게.”
“아야!”
내 정수리를 쥐어박는 맥컬럼.
이번에는 눈물이 찔끔할 정도로 아팠다.
“야, 임마. 세상일이 전부 네 중심으로만 돌아가는 줄 아냐? 평소에는 애늙은이처럼 굴면서 이럴 때는 또 묘하게 사춘기 꼬맹이처럼 구네.”
맥컬럼은 정수리를 살살 매만지는 내게 눈을 부라렸다.
“CP3는 12년 차 베테랑이야. 그 CP3가 루키가 좀 나댔다고 갑자기 눈깔이 뒤집혀서 평소에 안 하던 짓을 할 것 같아?”
“그건 아니겠죠.”
“그렇지? 크리스는 원래 승리를 위해서라면 뭐든 하는 스타일이야. 그러니까 더티 플레이어란 비난은 받지만 파출리아, 디그린, 델라베도바처럼 의도적으로 사람을 다치게 하려는 녀석들과 동급 취급은 당하지 않는 거고.”
“그래. 네가 인터뷰에서 받아친 건 잘한 일이다.”
옆에서 조용히 이야기를 듣던 릴라드가 고개를 끄덕인다.
“녀석은 우리 팀을 싸잡아 깎아내렸어. 팀을 건드리는 발언은 당연히 받아쳐야지.”
“동의. 이번 일엔 네 잘못 없다.”
“…….”
이런 일이 있을 때면 내가 아직도 스무 살 어린놈이라는 사실이 실감이 된다.
호르몬 때문에 정신연령까지 젊어지는 건가.
어쩌면 회귀자라는 말 못 할 비밀 때문에, NBA에서 일어나는 모든 변화가 정말 날 중심으로 돌아간다고 무의식중에 착각하고 있었는지도 모르지.
맥컬럼이 피식 웃으며 말했다.
“애초에 플레이오프에서 이 정도 부상을 안고 뛰는 일은 일상다반사야. 예전 선수들 중엔 칼에 11번을 찔리고도 멀쩡히 복귀해서 82경기를 소화하거나, 발뼈가 부러진 채로 플레이오프에서 53분을 소화한 선수도 있었다고.”
“올드 스쿨 그 자체지. 낭만의 시대니까 가능한 일이었지만.”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하는 릴라드.
올드 스쿨(Old school).
팀의 승리를 위해 모든 것을 하얗게 불사르는, 옛날 선수들의 사고방식을 일컫는 말이다.
‘당신들도 그런 말 할 처지는 아니잖아.’
릴라드는 복부 부상을 몇 년이나 안고 살며 팀을 지탱했고, 맥컬럼은 척추 골절을 입은 채로 플레이오프 출전을 강행한 상남자들이었다.
‘누군가에겐 미련한 짓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나는 두 선수의 이런 점을 동경했다.
“잘 들어, 킴.”
“예.”
“데임은 무슨 일이 있어도 이 시리즈를 다시 포틀랜드로 가져올 거야. 하지만 혼자 힘으로는 역부족이지. 상대는 그 하든과 CP3니까.”
“…….”
“결국 네가 해 줘야 해. 지금은 너밖에 기댈 데가 없어.”
네가 해라.
네 힘으로 이 시리즈를 승리를 이끌어라.
맥컬럼은 내게 그렇게 말했다.
그건 지금껏 한 번도 동료들에게 무리한 요구를 한 적이 없는 신사 맥컬럼이 내게 처음으로 남긴 부탁이었으며.
더 이상 조역에 머무르지 않고 그 이상의 역할을 해내야 한다는 요구이자.
그동안 릴라드, 맥컬럼과의 공존을 위해 3인자의 자리에 머무르려 한 노력이 끝을 맞이했음을 알리는 신호이기도 했다.
“Whatever it Takes. 무슨 대가를 치르더라도. 그때 나눈 말 기억하지?”
“……그럼요.”
패배한 날의 감정 찌꺼기와는 다른 뜨거운 무언가가 치밀어 오르는 감각에.
나는 굳은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고민은 끝났으니 이제 움직일 시간이었다.
드르륵!
그때 문을 열고 들어오는 한 사람.
“그래서 제군들. 낯부끄러운 이야기는 슬슬 끝났나?”
“감독님?”
밖에서 이야기를 엿듣던 것은 스토츠 감독님이었다.
“코치진과의 작전 회의 결과를 알려 주러 왔는데, 이야기를 끊지 않는 편이 나을 것 같더군. 아니면 혹시 시간이 더 필요한가?”
“아뇨, 아닙니다.”
“좋아. 그러면…… 거기 자네! 자네! 자네! 이쪽으로 오게. 브리핑을 시작할 테니.”
덜컹!
스토츠 감독님의 손짓에, 코트 한편에서 휴식을 취하던 세 선수가 이쪽으로 달려온다.
CJ 맥컬럼 대신 선발 슈팅가드로 출전할 웨슬리 매튜스.
팀의 최고참 격인 알 파룩 아미누.
그리고 마지막 한 사람.
“D?”
그동안 딘위디에게 밀려 플레이오프에서 유의미한 출전 시간을 얻지 못하고 있던 선수.
데릭 로즈가 이쪽으로 걸어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