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Academy’s Weakest Became A Demon-Limited Hunter RAW novel - Chapter (344)
〈 344화 〉 악신 토벌전 – 종막 (3)
정실 대전이라니.
카야는 의구심 어린 얼굴로, 루체는 도끼눈을 뜬 채 ‘이번엔 또 무슨 지랄인가’하는 얼굴로, 앨리스는 너그로운 미소를 머금은 얼굴로 도로시를 쳐다보았다.
반면엔 화이트는 상어 무리 사이에 낀 작은 물고기처럼 고개를 숙인 채 덜덜 떨고 있었다.
“왜 나까지…?”하고 누구에게도 들리지 않을 만큼 작은 목소리로 중얼거리면서.
“그게 뭔데?”
루체가 냉소적으로 물었다.
“너희들도 진작 다 알아차리고 받아들여 왔겠지만, 회장은 우릴 전부 좋아해. 그렇다면, 만약 우리 모두가 회장과 이어졌을 때 무슨 문제가 발생할까?”
도로시는 행사장에서 퀴즈를 내는 진행자처럼 물었다.
루체는 눈살을 찌푸리고 신경질적으로 대답했다.
“필요 없고, 아이작은 내 거야.”
“얘야, 아직도 모르겠니?”
“뭐?”
“애기의 지위를 생각한다면 다수의 아내를 맞아할 수 있다는 건 자연스러운 귀결이란다. 그런 이기적인 마인드는 첩실에 적합해 보이는구나.”
“……”
앨리스마저 거들자 루체는 그녀를 노려보았다.
그때, 카야가 쌀쌀맞게 의견을 제시했다.
“정실이니, 첩실이니… 아이작 님께서 그렇게 급을 나누실 리 없잖아요? 만약 우리가 아이작 님이랑 결혼한다면, 다들 아내가 되는 건 당연한 일일 텐데.”
위그드라실의 씨앗이 사라져 [위그드라실]을 사용할 수 없게 되었다지만.
한번 [위그드라실]을 사용한 이후로 높은 경지에 이르게 된 카야다.
상대가 도로시라고 해도 움츠러들지 않을 실력이 이제 카야에게 있었다.
도로시는 웃는 얼굴로 “쯧쯧.”하고 혀를 끌끌 하며 검지를 좌우로 흔들었다.
“뭘 모르는군. 당연히 아이작이라면 우리 전부를 아내로 맞이하겠지. 그럼 넌 ‘몇 번째 아내’가 될까?”
“……!”
카야의 두 눈이 크게 떠졌다.
“설령 다 함께 결혼식을 치르더라도 서열은 무조건 정해질 수밖에 없단다. 즉… ‘첫 번째 아내’는 암묵적으로 ‘정실’의 가치를, 그 외의 나머지는 ‘첩실’의 가치를 지닌단 거지.”
앨리스가 천천히 설명하자 도로시는 흡족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카야는 반박할 수 없었다. 하물며 루체도 자기도 모르게 인정하고 말았다.
이들 중, 과연 누가 아이작의 첫 번째가 될 것인가.
이는 ‘어느 누가 정실이 되느냐’와 다를 게 없는, 심도 있는 논재였던 것이다.
“우릴 하나 같이 좋아하는 회장인데 ‘우리 중 누가 제일 좋아?’라고 물어볼 수도 없는 노릇이니까. 그래서! 우리끼리 암묵적으로 서열을 가르자는 거지.”
“과연… 중요한 문제네요.”
카야는 식은땀을 흘리며 진지한 얼굴로 납득했다.
“그, 그런데요…”
화이트가 용기를 내서 사시나무처럼 떨리는 팔을 슬쩍 들며 말하자, 그녀 쪽으로 모두의 시선이 쏠렸다.
“왜 저까지 데려오신 건지…?”
“응? 너도 회장, 그러니까 아이작이랑 엮인 사이잖아? 스승 대 제자? 그런 느낌으로.”
“그렇긴 한데요…”
“아이작 싫어해?”
“아뇨! 절대요! 절대애!”
화이트는 화들짝 놀라 고개를 격렬히 가로저었다.
잔상이 남고 바람이 불 만큼 빠른 고갯짓이었다.
“알았어. 그럼 좋아하지?”
“……”
홍당무처럼 물들어가는 화이트의 얼굴.
그녀는 다시 고개를 푹 숙이더니 미약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거 참, 풋풋하구만…”
“화이트는 우리랑 다르게 아직 어리잖니.”
“그 발언, 경고야. 꼭 우리가 화석인 것처럼 들리잖아.”
“정신 차리렴. 우린 곧 졸업 2년차니까 화석이 맞단다.”
“아니야, 난 아직 청춘이야! 그런 늙은이 같은 표현은 지양해!”
“히, 귀엽네.”
도로시가 발끈하자 앨리스는 피식 웃었다.
“그래서? 어떻게 겨루자는 건데?”
루체가 관심을 보이자 도로시는 “오오~.”하고 감탄했다.
“우리 친구, 할 맘 들었어?”
“아이작은 내 거니까. 너희들이 인정하게 만들 거야.”
“니히히. 자신감 좋네!”
루체는 예비 졸업생이다.
아이작에게 마음을 열고, 그간 아카데미에서 많은 일을 겪으며… 루체의 대인기피증은 크게 완화되었다.
덕분에 평범하게 대화를 나누는 것도 이젠 당연한 일이 되었다.
이들 중 안 그런 이는 없겠으나, 루체는 아이작을 독점하고 싶은 욕심이 컸다.
그러나 이 자리에 모인 여자들은 자신도 쉽게 어쩌지 못할 어마어마한 강자들.
그렇다면 오늘의 승부로 모두를 처참히 짓밟아주고, 이들 누구도 반박할 수 없는 아이작의 첫 번째 여자로서 자리매김하는 것이 좋을 터.
루체는 그리 판단했다.
“그럼! 종목은 이거야!”
쾅! 도로시는 다른 방에 구비해둔 커다란 술통과 술잔 5개, 술안주를 별빛 마법으로 가져와 테이블에 두었다.
웃는 얼굴의 앨리스를 제외하고 모두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도로시는 거대한 술통을 툭툭 치며 말했다.
“주량 대결. 술로 한판 뜨자!”
“도, 도로시 선배, 항의하겠습니다! 정실을 주량으로 정하자뇨! 이건 너무…”
“이만큼 건전하며 공정하며, 서로 설득까지 할 수 있는 적절한 시합 종목이 또 있나? 아니면 뭐, 가위바위보라도 할까? 더럽게 재미없는.”
“그건 아니지만요…”
카야는 태산 같은 술통 앞에서 지레 겁을 먹었다.
“난 찬성. 웬일로 도로시랑 마음이 통했네.”
“마음 통했다느니 그딴 말은 하지 말아줄래? 기분 나쁘니까.”
“천덕꾸러기”
앨리스는 천역덕스럽게 웃었다.
그때, 루체가 술잔을 쥐고 테이블에 쾅 내려치며 모두를 집중시켰다.
“따라.”
고압적인 명령조였다.
“적극적이구만! 좋아!”
도로시는 웃으면서 술잔 하나하나에 술을 가득 따랐다.
화이트는 눈앞에 놓은 대량의 술을 바라보며 눈을 떨었다.
“시작하자! 자, 다들 건배!”
술잔을 내밀며 소리치는 도로시.
승부의 열기가 방 안에 드리우고.
“건, 건배… 응?”
화이트는 술잔을 내밀며 진짜로 건배하려 했으나, 그녀를 제외한 다른 여자들은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술잔을 부딧치지 않고 곧바로 술을 벌컥벌컥 들이켰다.
“흐애애…?”
화이트는 눈치를 보다 허겁지겁 술울 들이켰다.
쾅! 하는 소리가 네 번. 동시다발적으로 울렸다.
카야, 루체, 도로시, 앨리스가 동시에 텅 빈 술잔을 테이블에 내려둔 것이었다.
화이트도 뒤늦게 표정을 찡그리며 합류했다.
“좋아, 다음!”
그리 비장하게 술을 마시길 반복하다 보니, 어느덧 큰 술통의 절반이 비워졌다.
카야는 취기 탓에 얼굴이 상기된 채 오뚝이처럼 몸을 좌우로 흔들었고, 루체는 말없이 정신을 붙들었고, 화이트는 지친 사람처럼 고개를 숙인 채 술을 홀짝였다.
반명에 도로시와 앨리스는 아직 뺨만 살짝 상기되었을 뿐, 여유로웠다.
그녀들은 애주가로 불렸을 만큼 술을 좋아했으니.
“뭐야, 다들. 벌써 지쳤어?”
도로시가 자기 술잔에 술을 따르며 장난스럽게 물었다.
“그걸 리가요!”
카야는 두 손에 쥔 술잔을 확 내밀었다. 도로시는 흡족하게 웃으며 “마셔라, 마셔!”하고 그 술잔에 술을 가득 따라주었다.
술을 거침없이 들이켜는 카야. 그녀는 술장을 테이블에 세게 내려놓고 트림을 참아냈다.
별안간 카야는 딸꾹질하며, 힘없이 뜬 눈으로 다른 네 명의 여자들을 훑었다.
“그런데 말이죠… 다들 너어어무, 건방진 거 아닙니까?”
“응?”
뜬금없는 공격에 다들 카야에게 시선을 집중했다.
카야는 흐느적거리며 말을 이어갔다.
“맞잖았다. 이 아카데미에서, 아이작 니이랑 차음으로 엮인 여자는 바로 저예요. 아이작 님의 계획에 가장 처음 가담했던 사람도, 아이작 님의 정체를 가장 먼저 파악했던 사람도, 바로 저란 말입니다…! 당연히 제가 첫 번째여야죠! 논리적으로!”
첫 번째 인연 어필.
그러나 카야의 주장은 강한 설들력을 갖지 못했다.
“그게 정실 되는 거랑 무슨 상관일까?”
“네에?”
“애기랑 첫날밤을 보냈던 것도 아니고. 첫 번째로 엮였다는 게 뭐 대수니?”
앨리스가 눈을 감고 술을 마시며 태평하게 반박했다.
자극적인 언사에 카야에 얼굴이 잘 익은 사과처럼 더욱 빨갛게 물들었으나, 그녀는 힘차게 대응했다.
“아카데미에서 테러나 저질렀던 주제에! 그리고 저어! 아, 아이작 님이랑 밤, 같이 보내본 적 있거든요?!”
“뭐?”
카야의 갑작스러운 주장에 화이트를 제외한 모두가 놀란 반응을 보였다.
“예전에, 같이 노숙한 적 있어요. 마족 해치우고 단둘이, 시냇물 졸졸 흐르는 소리와 모닥불의 온기를 만끽하며… 텐트에서 동침했었죠!”
동침 경험. 카야의 두 번째 패가 드러났다.
“첫 동침…!”
놀라워하는 도로시.
아이작과 가장 먼저 엮였던 카야다.
즉, 아이작과 같이 잤던 경험을 누구보다도 먼저 누려본 자가 카야라는 사실이 이 자리에 드러난 것이었다.
“심지어 저 자고 있는 척할 때… 저보고 몰래 예쁘다고까지 하셨습니다…! 아이작 님께서 가장 먼저 마음을 주셨던 게 저라는 얘기죠!”
“망상이 정신병 수준이네.”
“진짜라구요. 루체 엘타니아 당신, 때립니다?”
루체가 대수롭지 않게 넘기자 카야는 눈을 좁히며 자신의 주장을 못 박았다.
하지만.
“말 그대로 잠만 잔 거잖니?”
“그, 그건…”
“애기가 예쁘다는 말을 진짜로 했다고 쳐도, 딱히 별일 없었을 것 같은데.”
“……”
“너무 의미 부여가 심한 것 같구나, 애야.”
앨리스의 지적대로 잠만 잤을 뿐.
그 뿐이었다.
“그리고 애기는 모두를 예뻐하고 있단다,. 결구, 애기가 예쁘다고 말했다고 해서 뭘 어떻게 판단할 수가 없단 얘기지.”
“…하고 싶은 얘기가 뭡니까?”
“중요한 건 누가 애기를 가장 많이 사랑하느냐의 문제겠구나.”
앨리스는 특유의 자상한 미소를 지었다.
“가령 막말로, 내가 애기의 대소변 따위를 봤더라도 내 사랑엔 일말의 변화도 없을 거란다. 이미 그런 적도 있고”
“더럽게 무슨 얘기냐…? 이미 그런 적도 있다는 건 또 뭔 얘기고?”
“더러워.”
도로시와 루체가 눈을 찡그리며 혐오감을 내비쳤다.
“난 애기를 있는 그대로, 모든 걸 품어줄 수 있다는 얘기란다. 그만큼 사랑한다는 소리…”
쾅!
“아이작 님께선 대소변 따위 보지 않아요!!”
카야는 발끈하더니 버럭 소리쳤다.
다들 깜짝 놀랐다. 루체마저도.
“신성한 아이작 님께 워? 대소변? 말씀이 지나치시네요!”
“아니, 내 말은 그런 뜻이 아니라…”
“신성 모독이야!! 아이작 님은 신이나 다름없는 존재라고요!”
“아니, 애기도 사람…”
“아이작 님은 인간을 초월한 경지에 올라 있습니다! 설령 대소변을 보신다고 해도 그것은 성수! 더럽고 하찮은 용변 따위가 아니란 말입니다!”
카야는 아이작을 연모하면서, 동시에 그의 열렬한 신봉자이기도 했다.
술에 취한 탓에 카야의 솔직한 심정이 수도꼭지를 튼 것처럼 줄줄 흘러나왔다.
“으응, 그렇구나… 진정하렴, 언니가 미안하단다.”
마치 사이비 종교의 교주처럼 열의를 띠고 설교하는 카야 앞에서, 앨리스는 경솔하게 말했음을 인정하며 꼬리를 말았다.
“냐하하하!! 맞아! 회장은 신인야! 신성 모독이다!”
도로시는 깔깔 웃으며 앨리스를 손가락질하면서 카야의 주장을 거들었다. 물론 도로시는 장난의 의미였다.
“시답잖네…”
루체는 술을 마시다가 한숨을 내뱉더니 한심하다는 뉘앙스로 독백했다.
“딸꾹…”
“응?”
시끌벅적한 분위기를 가라앉힌 건 화이트의 딸꾹질 소리였다.
화이트는 술잔을 테이블에 내려놓더니, 이내 고개를 들었다.
반쯤 뜨인, 이미 맛이 가버린 눈이 허공을 응시했다.
“뭐야, 저 눈? 무섭게 왜 그래?”
“딸꾹… 아이작 선배느으은요오…”
늘어지는 화이트의 목소리
“카를로스 폐하께서어… 저와 맺어주시려는 인연이라고요오오오! 이거어언 국가족인 사안이에요…! 이런 식으로, 저희끼리 왈가왈부할 게 아니란 말이에요!”
조용해진 방 안에 화이트가 눈을 질끈 감고 내지른 목소리가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이걸 공적인 논제로 끌고 오다니…”
“이 녀석, 권력을 등에 업었어…!”
앨리스와 도로시는 당황했다.
“푸훗!”
“……?”
별안가 누군가 웃음소리를 터뜨렸다.
다시 고요가 찾아왔다.
고작 웃음 한 번으로 분위기가 그리 된 것은, 웃은 사람이 예상 밖의 인물이기 때문이다.
루체. 그녀는 고개를 숙이고, 흘러내리는 로즈골드색 머리카락에 얼굴을 감춘 채 애써 소리를 죽이며 키득거렸다.
“친구야, 웃었어…? 아니, 웃을 줄도 알았어?”
도로시는 루체가 웃은 모습이 무척 신기했다.
술 기운에 용기가 생긴 화이트가 루체를 응시했다.
한번 찔러보기로 했다.
“저와 아이작 선배는 국가가 맺어주려는…”
“푸하하하!!”
푸체는 그만 폭소를 터뜨렸다.
“무려 카를로스 페하께서 결혼하라고 작정하신…”
“그만! 너무 웃겨…! 배 아파..!”
루체가 배를 잡고 깔깔 웃는 모습은 그 자리에 모인 여자들을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다.
이내, 카야와 도로시, 앨리스도 루체를 따라 웃기 시작했다. 술에 취한 화이트의 엄숙한 목소리가 웃기기 때문이었다.
그 후, 밤이 깊어지는 동안 그녀들은 술잔을 기울이며 즐겁게 시간을 보냈다.
그간의 모험을 이야기하고.
앞으로 뭘 하면서 살아가고 싶은지, 모두 허심탄회하게 털어 놓으면서.
* * *
“애기야, 어서 와.”
“어…?”
도로시가 얘기했던 약속 장소, 아이리스 숙소에 도착하자 앨리스가 문을 열며 반겨주었다.
방 안이 무척 시끄러웠다. 불안감이 밀물처럼 들이닥쳤다.
마침내 안으로 들어가자 눈앞에 참상들이 펼쳐졌다.
“흐아아앙…! 난 버러지야아… 난 무능한 쓰레기야아…1”
“아이작 님을 숭배하라아…!”
“아이작, 나만, 나만… 바라봐주면… 좋을 텐데… 지하실에 가두고… 내 사랑만 갈구하면 충분히… 행복해질 수 있을 텐데…”
“냐하하하! 개판이구만!”
이, 이게 다 뭐냐…
술 냄새가 진동했다.
도대체 무슨 대화는 나누 것인지 화이트는 엉엉 울며 자기 비하를 하고 있었고, 카야는 나를 신처럼 추양하고 있었고, 루체는 테이블에 고개를 처박은 채 뭐라 중얼거리고 있었고, 도로시는 배를 잡고 세차게 웃고 있었다.
광란의 현장이었다.
테이블에 놓인 커다란 술통이 보였다. 안이 텅 비어있었다.
얘네들, 대체 얼마나 마신 걸까…?
“설명해, 앨리스.”
“다들 술 파티를 벌였단다.”
앨리스는 싱긋 웃으며 대답했다.
“넌 멀쩡하네?”
“안 멀쩡한데?”
와락. 대뜸 앨리스는 나를 꼭 껴안았다.
그녀에서도 술 냄새가 폴폴 풍겼다.
“여보, 힘이 안 나… 더워…벗겨줘…”
“약한 척하지 말고.”
“진짠데? 문 열어준 게 마지막으로 힘쓴 거였어.”
거짓말 같았는데, 진짜로 앨리스는 술에 잔뜩 취한 사람처럼 힘없이 내게 무게를 싣고 있었다.
겉만 멀쩡했던 거구나.
“오셨습니까, 아이작 니임…”
나를 찬양하던 카야가 바닥을 기며 내 다리를 붙들었다.
“회장, 왔어? 어서 와.”
도로시는 고개를 갸웃거리며 활짝 웃었다. 그녀도 정상은 아닌 듯 보였다.
“……”
이윽고, 내 입꼬리가 비죽 올라갔다.
다들 친해진 것 같았으니까.
외투를 벗어 옷걸이에 걸며 도로시에게 물었다.
“도로시 선배, 술 남았어요?”
“니히히, 남았지! 회장도 합류하게?”
“네. 저도 마실게요.”
“좋아!”
그날, 나도 거나하게 술을 마시며 그녀들과 여러 이야기를 나누었다
‘여러 이야기’라고 해봤자 맥락도 없고,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겠고, 자고 일어나면 기억도 안날, 그저 웃기기만 할 뿐인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
너무 마신 탓인지 머리가 어지러워 몸을 제대로 가누기 어려웠다.
여기저기 엉겨 붙어 쌔근쌔근 잠들어 버린 다섯 사람에게 이불을 덮어준 뒤, 불을 끄고 빈자리에 누웠다.
“흠냐…”
도로시가 몸을 돌리며 잠꼬대하다가 나를 껴안았다.
그러고 보니 얘, 시한부 인생으로 살아갈 때 곰 인형 치웠았지, 미련 없애려고.
부유섬을 토벌한 이후로는 다시 곰 인형 꺼냈었고.
워, 도로시의 곰 인형이 되는 경험도 썩 나쁘지 않았다.
창밖에 여명이 밝아 오고 있었다. 해가 뜰 때까니 이렇게 놀아본 건 빙의 이후로 처음이었다.
아무런 근심도 없었다.
마치 철갑 같았던 모든 족쇄를 풀어헤친 듯한, 자유로운 기분만이 진한 취기와 함께 온몸에 감돌고 있었다.
나는 웃으면서 눈을 감았고, 금방 잠들었다.
꿈속에서 1회차 도로시와 과잣집 마녀를 만났다.
도로시에게 사랑한다고 말했고, 과잣집 마녀에게 감사하다고 말했다.
문득 고시 생활 도중 돌아가셨던 어머니도 보였다.
내게 대견하다고 하신 당신은 세상 누구보다도 사랑스러운 미소를 머금었다.
그녀들은 광채가 내비치는 머나먼 지평선을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그 뒷모습을 나는 하염없이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