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Heavenly Demon Lord Who Doesn't Want to Level Up RAW novel - Chapter 336
* * *
상소윤과 공손혜미는 중원을 돌아다녀 본 경험이 없기에, 이이명이 길잡이 역할을 했다.
이이명은 꽤 철두철미했다.
추격대 대부분이 장백산에 있다는 걸 알면서도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아가씨. 동쪽으로 꺾는 건 어떻겠습니까?”
“그럼 너무 돌아가지 않아요?”
“하지만 이 길은 장백산으로 향하는 이들 중 열에 아홉은 선택할 길입니다. 위험합니다.”
“알겠어요. 아저씨의 의견을 따를게요.”
그렇게 그들은 최대한 은밀하고 험한 곳을 골라 이동했다.
“으, 벌레.”
“좀만 참아. 거의 다 왔으니까.”
“근데 저 아저씨랑은 친해?”
“이명 아저씨?”
공손혜미가 고개를 끄덕였다.
친분이 깊진 않지만, 믿을 수 있는 사람이다.
“내가 아주 어릴 적부터 호위대장이셨어. 가세가 기우는 와중에도 변치 않고 그 자리를 지켜 주셨지.”
“아하. 혹시…….”
상소윤이 이이명을 힐끔 보더니 속닥거렸다.
“저 아저씨가 널 좋아하는 게 아닐까?”
“뭐?”
“너무 헌신적이잖아.”
“말도 안 되는 소리. 누가 나 같은 외모를…….”
“어? 어어. 전혀 아니야. 그게 다 관점의 차이라니까?”
상소윤이 보기에 공손혜미는 예쁘다.
동양의 전통적인 미인상과는 거리가 좀 있지만, 개성 있고 예쁘게 생겼다.
그러나 공손혜미는 픽 웃으며 고개를 저어 버렸다.
그냥 하는 말이라고 확신하는 분위기다.
‘아씨, 열받네.’
그때, 선발대를 자처했던 이이명이 돌아오는 게 보여서 더 이상 말을 하지 못했다.
“아가씨.”
“네.”
“전방의 계곡은 안전합니다. 어서 가시죠. 매복하기 좋은 곳이니 최대한 빠르게 통과해야 합니다.”
장백산은 하나의 산이 아니라, 장백산맥의 가장 높은 봉우리를 뜻했다.
그리고 그들은 동쪽으로 빙 돌아서 산맥에 접근했다.
즉, 이번 계곡만 지나면 장백산으로 향하는 길 자체는 직선로라는 뜻.
“가시죠.”
목적지가 보인다.
그렇게 상소윤, 공손혜미, 이이명 세 사람이 야음을 틈타 계곡을 지나고 있는데.
콰앙-! 콰앙-! 콰앙-!
갑자기 천둥과도 같은 소리가 온 계곡을 올리기 시작했다.
흙먼지가 자욱하게 피어오르고.
동시에 화르르륵! 하는 소리와 함께 계곡의 고지대에서 횃불이 밝혀졌다.
“하하. 독 안에 든 너구리가 되었구나.”
상소윤이 뒤를 돌아보니, 그들의 뒤에 집채만 한 바위들이 잔뜩 쌓여 있다.
굉음은 그 바위가 떨어지면서 났던 것이었다.
뒤로 물러나려면 저 바위를 뛰어넘어야 하는데, 필연적으로 무방비해진다.
그렇다고 바위들 틈으로 파고들어 도망치기엔 좀 무섭다.
적들이 바위에 공격을 퍼부으면 바위가 뒤틀릴 텐데, 그럼 짓이겨진다.
절체절명의 상황이었지만, 공손혜미는 침착했다.
“누구십니까?”
팔이 하나 없는 장년인이 앞으로 걸어 나온다.
“머리를 굴리는구나. 애송이.”
“저승에 가더라도 누구한테 죽었는지는 알아야 할 거 아닙니까?”
하지만 이어진 상황에 공손혜미조차 침착함을 잃어버릴 수밖에 없었다.
퓨퓨퓨퓨퓩!
난데없는 암기 소리가 그녀의 등 뒤에서 들려온 것이었다.
“……!”
등 뒤에는 두 명밖에 없다.
상소윤, 이이명.
그러나 누가 배신자이던 공손혜미는 확인할 수 없을 듯했다.
도저히 피할 방법이 없었으니까.
하지만 그 순간 바람 소리와 함께 암기가 전부 튕겨져 나갔다.
“뭐야! 당신!”
공손혜미를 살린 건 상소윤이었다.
아쉬운 표정을 짓던 이이명이 훌쩍 뛰어오르더니 횃불 쪽으로 합류했다.
장년인이 이이명을 보더니 물었다.
“저년이 소문 속의 고수더냐?”
“그렇소.”
“뛰어난 실력이긴 하지만 천마신교의 교병들을 이겨 낼 정도는 아닌 듯한데…….”
“왜 그런 소문이 났는지 모르나, 여정 중에 천마신교와 충돌한 적은 없소.”
“그래?”
“하지만 굉장한 고수임은 틀림없소이다. 특히 내공의 깊음은 예단할 수 없을 정도로. 다만, 실전 경험이 없고 살수를 못 쓰오.”
“그러면 어려울 것도 없지.”
외팔의 장년인이 상소윤을 힐끔 쳐다보는 순간, 상소윤이 입을 열었다.
원래는 공손혜미가 했어야 할 질문이나, 그녀가 충격에 말을 잃었으니까.
“거기 아저씨. 배신한 거예요?”
“신의를 지켜 왔으나 세가가 나한테 원한 건 여전한 신의뿐이었다. 그 어떤 대가도 내어 주지 않고.”
“…….”
“그 대가를 챙기겠다는 것이다.”
“이제 와서 왜요? 이십 년 가까이 그 자리에 있었다면서?”
“기대했었지. 공손가의 사내들이 줄줄이 병신이 되는 걸 보며, 하늘이 나에게 기회를 주려는 건지도 모르겠다고.”
“……”
“뭐, 나쁘지 않은 일이다. 공손가를 이어받으려면 저 추물과 혼인을 해야 했을 터이니.”
상소윤은 그렇게 말하는 이이명의 눈빛에서 씁쓸함을 읽었다.
그 씁쓸함이 지난 시간을 향한 것인지, 지난 관계를 향한 것인지를 모르겠다.
어쩌면 이이명은 스스로를 합리화하기 위해 악독한 말들을 입에 담고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에 상처받을 공손혜미는 무슨 잘못이란 말인가?
언젠간 진유성이 무공을 가르쳐 주며 그런 말을 한 적이 있었다.
“상소윤, 너는 네 아버지가 어떻게 천마신교의 3인자가 됐는지 아느냐?”
“무공이 강해서 아니야?”
“아니다. 당시에 상림보다 무공이 강한 이들은 생각보다 많았다. 하지만 그들 중 누구도 상림을 죽일 순 없었다.”
“왜?”
“가슴 속에 시퍼런 불꽃이 있었기 때문이다. 무공의 무(武)는 굳세고 용맹함을 뜻한다.”
“……”
“너의 공(功)은 이미 하늘에 닿았으나, 무는 아니다. 네가 무공을 익히기 위해서는 그러한 마음이 필요하다.”
“그냥 네가 지켜 주면 되잖아?”
“틀린 말은 아니지.”
그 뒤로도 상소윤은 무공을 재미로 익혔다.
영화 속 히어로가 된 것 같았으니까.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혜미야. 꽉 잡아.”
상소윤의 굳센 손아귀가 공손혜미의 손을 잡아챘고, 이윽고 그들은 달리기 시작했다.
계곡 뒤로 보이는 장백산의 정상을 향해.
“막아라!”
계곡을 지키는 이들은 오백이 넘었으나, 상소윤은 두렵지 않았다.
“차륜진을 세워라!”
어떻게 싸웠는지 잘 모르겠다.
“입구를 틀어막아라!”
하지만 머뭇거리지 않았다.
“후열을 굳혀라!”
비명을 지르지도 않았고, 두려워하지도 않았다.
그렇게 정신을 차려 보니, 그들은 계곡을 빠져나가고 있었다.
“달려!”
그렇게 상소윤과 공손혜미가 달리기 시작했다.
상소윤이 진유성에게 가장 열심히 배운 게 신법이었다.
허공답보를 사용해 보고 싶다는 단순한 이유에서였는데, 그게 많은 도움이 되었다.
“헉헉…….”
공손혜미가 숨을 헐떡이면서도 따라올 수 있는 것도 그 이유였다.
상소윤이 공손혜미의 손을 잡고 체중을 분산시켜 주고 있어서.
“쫓아라!”
그사이 추격자들은 늘어나고 있었다.
외팔이 장년인이 떨어트린 바위 소리를 들은 주변의 세력들이 모여들었고, 그 세력이 또 다른 세력을 불러왔다.
장백산을 점유하고 있던 대부분의 세력들이 상소윤, 공손혜미의 뒤를 쫓아 장백산의 정상으로 향하고 있었다.
하지만 상소윤과 공손혜미가 가장 빨랐다.
상소윤은 몰랐지만, 이게 원래 소수의 인원이 천라지망을 뚫는 가장 좋은 방법이었다.
일점돌파 후 쾌속이동.
이렇게 되면 보급로를 늘어트려야 하는 일반 병력들은 따라올 수가 없다.
다만 단점이 있다면…….
“여기가 목적지였군.”
“이왕 이렇게 된 거, 장보도를 얻는 데까지 협력하시겠소이까?”
“저 아이가 소문 속의 여고수인가? 너무 어린데?”
이동을 멈추는 순간, 최고수들로 이루어진 정예와 마주친다는 것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상소윤의 속도를 따라올 수 있었던 쉰 가까이의 고수들이 속속 등장하고 있었다.
등 뒤에는 끝을 알 수 없이 깊은 호수.
눈앞에는 한 세력을 이끌던 수장들로 구성된 고수들.
절체절명이었다.
하지만 상소윤은 아랑곳하지 않고, 손을 내밀었다.
“혜미야. 팔찌.”
공손혜미가 상소윤에게 칠성을 내밀었고, 상소윤이 그걸 높이 치켜들었다.
“잘 봐요. 이게 아저씨들이 원했던 보물이니까.”
“그 팔찌가 장보도란 말인가?”
“나도 모르지. 쫓아온 건 당신들이고.”
그 순간, 상소윤이 팔찌의 줄을 뜯어 버렸다.
이젠 팔찌가 아닌, 각각 일곱 개의 보석.
상소윤은.
“……!”
“멈춰라!”
그것을 천지 아래로 던졌다.
분기탱천한 고수들이 상소윤과 공손혜미에게 쏘아지고, 상소윤이 싸울 준비를 하는 순간이었다.
——!
거대한 폭발음이 터져 나오며, 쉰이 넘는 고수들이 일제히 나동그라졌다.
동시에 백두산 천지를 휘감고 있는 물안개가 일점을 중심으로 소용돌이쳤다.
이건 자연 현상이 아니다.
천년무림의 역사 속에서도 감히 상상할 수 없는 끔찍한 양의 내공이 기파를 형성하며, 천지 일대에 영향을 주는 것이다.
그 중심에 무언가 있었다.
두 발이 땅에 닿지 아니하고, 끔찍하리만큼 압축된 내공 때문에 감히 쳐다볼 수 없는.
고수들조차 그저 기감으로 무언가가 존재하리라 짐작할 수밖에 없는.
그런 존재에게서 의념이 울려 퍼졌다.
[여제는 보물과 함께 승천하니, 그대들의 욕망은 호수에 묻어라.] [그대들의 생과 사를 틀어쥐고도 베푸는 호의이니, 삶의 여정을 재정비할지어다.]이윽고.
“이, 이게 무슨.”
“말도 안 돼…….”
장보도를 쫓아 장백산에 올랐던 이들은 모두 산 아래에 있었다.
박색여제(薄色女帝) 전설의 종착지였다.
* * *
모든 무림인들이 씻은 듯 사라진 천지에 네 사람이 있었다.
상소윤, 공손혜미.
그리고 진유성, 신주청.
“수고했다.”
진유성이 상소윤의 어깨를 두드려 주었다.
그가 생각했던 것보다 상소윤은 훨씬 잘해 냈다.
본디 산 아래에서 개입할 생각이었으나, 가만히 놔두는 게 훨씬 좋은 그림일 것 같아서 지켜만 봤다.
진유성이 상소윤에게 유명해지라고 한 것은 ‘전설’을 위해서였다.
상소윤은 중원의 영혼체라서 현재 지구에 있을 이유가 없다.
물론 그런 인과율의 균열은 지난번에 다 메꾸긴 했지만, 신주청에게 한 말도 거짓은 아니었다.
“백만에 하나쯤 발생할 수 있는 일?”
그래서 진유성은 상소윤에게 존재의 전설을 만들어 준 것이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고수가 전 중원의 추적을 뿌리치고 백두산 천지에서 보물과 함께 승천했다.
사람들의 입에 이러한 이야기가 오르내리고 구전되면, 그 자체로 강력한 인과율이 된다.
강한 힘을 지닌 존재가 중원에 있다가 어딘가로 갔으니까.
본디 인과율이란 진실로 그러한 것보다, 마땅히 그러한 것이다.
그와 동시에 ‘칠성’ 자체에도 소문의 힘이 깃든다.
천계를 봉인할 조건까지 함께 갖추는 것이었다.
다만 진유성이 생각지도 못했던 일이 있었다면…….
“두 배! 아니 세 배! 그 가격 아래로는 못 받아. 혜미가 누구 때문에 개고생을 했는데!”
“내 탓은 아니다.”
“준 사람 잘못이지!”
상소윤과 공손혜미가 친구가 된 것이었다.
하긴 상소윤의 성정을 생각해 보면 영 이상한 일은 아니다.
결국 신주청이 원래 가격의 두 배에, 암중으로 공손세가를 도와주겠다는 약속을 하고서야 상소윤의 으르렁거림이 멈췄다.
이윽고 진유성이 품에서 서책을 하나 꺼내서 공손혜미에게 건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