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hwa Manri RAW novel - Chapter 510
옛집으로 장소를 옮긴 합비는 춘신공과 진영군의 무공을 하나씩 시전해 보여주었다.
“이건 춘신공의 독문절기인 단월쇄심장이라는 거야. 잘 봐.”
기수뿐만 아니라 태무신궁 사람들도 모두 흥미롭게 지켜보았다.
기수는 그의 움직임이 어딘가 모르게 전군도독 황호와 비슷한 것을 느꼈다.
척회왕은 사부에게서 배운 단월쇄심장의 일부, 혹은 변형시킨 초식을 황호에게 전수해준 것 같았다.
장법의 변화를 모두 보여준 후 합비가 기수에게 물었다.
“어떠냐? 해볼 만 하겠느냐?”
“글쎄요. 생각보다 대단해보이지는 않네요.”
합비가 씩 웃었다.
“그러냐? 그럼 한 번 겨뤄보자.”
기수는 마당 가운데로 나서서 합비와 마주섰다.
그리고 곧바로 단월쇄심장 대 분광권의 대결이 시작되었다.
“어머!…”
조민이 탄성을 토하고 조현을 비롯한 태무신궁 제자들 모두 경악으로 눈을 부릅떴다.
기수가 펼치는 분광권 때문이었다.
분명히 자기네들도 배우고 익힌 무공인데, 완전히 다른 차원으로 보였다.
대결의 당사자인 합비의 표정도 변했다.
‘이 놈 실력이 이 정도였던가?’
남의 무공으로 상대하기는 버거운 수준이었다.
기수는 뒤늦게 자신의 실수를 깨닫고 힘을 뺐다.
진짜 겨루는 게 아니라 단월쇄심장에 대해 배우는 것일 뿐인데 자기가 너무 진지하게 임했던 것이다.
사실, 그 역시 조민, 조현 자매와의 대법 연공 이후 대결에서 진기를 제대로 운용해보는 건 처음이라 이 정도로 기력이 충만하게 발출될 줄은 몰랐다.
기수의 힘 조절 이후 비로소 초식 대 초식의 겨룸이 이루어졌는데, 백중세이거나 분광권의 우세로 보이다가 한 순간 단월쇄심장의 초식이 변하면서 위기에서 빠져나오는 상황이 반복되었다.
기수는 손을 멈추고 말했다.
“변화가 참 독특하군요.”
“알아차렸느냐? 난 흉내만 내는 거라서 서툴지만 춘신공의 전인이라면 훨씬 더 능숙할 것이다.”
기수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합비가 혼자 시범을 보일 때까지만 해도 단월쇄심장은 강맹함을 내세우는 외문기공처럼 보였다. 그런데 막상 손을 섞어보니 그 변화가 참으로 다양했다.
처음엔 힘으로 누르려고 했지만 막상 그게 안 되자 수비 위주로 선회했는데, 도무지 파고들 여지가 보이지 않았다.
이 정도로 수비에 특화된 장법은 처음 보는 것 같았다.
“그런데 어르신. 막기만 해서는 결국 수세를 유지하는 데서 그치는 것 아닙니까?”
“이름이 쇄심장이라고 했지? 바로 그게 무서운 점이야. 손과 손이 닿을 때마다 암경이 스며들어가서 상대의 심장을 옥죄어 결국 부숴버리지.”
“아! 그러면 버티기만 해도 이길 수 있군요.”
“춘신공이 강호에 출도했을 당시, 그보다 뛰어난 고수들도 많았다. 하지만 그를 이긴 사람은 한 명도 없었지. 아무리 뛰어난 명성을 가진 고수라고 해도 결국에 가서 죽는 것은 그쪽이었다.”
기수는 사도들이 쓰던 수법 중 단정홍이 그와 비슷한 수법이란 사실을 알아차렸다.
‘그게 원래 심장을 공격하는 암경이었나?’
척회왕은 사도들을 키우면서 자신의 무공을 다운그레이드시켜 가르쳤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니면 자기가 연구해서 변형시키거나 창안한 무공들을 가르쳤거나…
‘상대가 나보다 약하면 힘으로 눌러버리고, 그 반대라면 상대의 몸속에 암경을 흘려 넣으면서 버티는 장법이라…’
그런 장법과 겨루는 방법은 세 가지.
첫 번째는 더 빠르고 더 강한 무공으로 깨버리면 되는 것이다.
그러나 축구 에이매치 경기에서 상대가 몰디브라면 아무리 텐 백을 서도 골을 넣을 수 있겠지만 이태리가 작정하고 텐 백을 선다면 누가 과연 골을 넣을 수 있겠는가.
두 번째는 이쪽에서도 상대의 몸속에 암경을 흘려 넣어 먼저 쓰러트리는 방법이 있었다. 그러나 단정홍이 오리지널을 이길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았다.
세 번째 방법은 호신강기로 암경을 막아내는 것인데, 과연 마교의 천기오뢰강이 단월쇄심장을 견뎌낼 수 있는지는 해보지 않고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어르신이 포기하라고 하실 만도 하군.’
기수가 생각에 잠겨있는데 합비가 말했다.
“자, 이번엔 진영군의 여의만상권이다. 잘 봐라.”
합비의 시범을 보면서, 기수는 역시 어디선가 본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사도들이 썼던 무공들의 뿌리가 두 사람에게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뿌리만 동일할 뿐 줄기와 가지엔 다른 점이 많았다.
척회왕의 무학에 대한 지식과 연구의욕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부님과 비슷한 기질일지도 모르겠군. 어쩌면 나하고도 공통점이 있는 것 같고.’
이번에도 합비와 대련을 마친 기수가 말했다.
“이건 정말 별 게 없어 보입니다만…”
“그건 내가 모든 초식을 같은 힘으로 펼쳤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가 펼칠 때는 매 초식마다 힘을 자유자재로 바꿔서 넣을 수 있지. 그래서 여의란 말이 붙은 것이다.”
“힘을 바꿔어 넣는다는 게 무슨 뜻입니까?”
“굳이 흉내 내보자면 이런 식이다. 자, 다시 덤벼보거라.”
기수는 분광권으로 여의무상권에 맞섰다.
“어!…”
처음부터 뭔가 어긋나는 느낌이었다.
갑자기 상대의 힘이 확! 늘어나는 바람에 균형이 흐트러진 것이다.
합비가 미소 지으며 말했다.
“이런 식으로 초식 중 언제 힘이 달라질지 모른다.”
“상대하기 까다롭군요.”
“고수들끼리의 대결에선 치명적이지.”
기수는 은혈대법이 어디서 왔는지 알 것 같았다.
한 초식 안에서 특정 시점에 파워를 더블-업 할 수 있는 게 여의무상권이라면, 몸 전체의 진기를 일정 시간 더블-업 하는 게 은혈대법인 것이다.
합비의 말마따나 고수끼리 싸우는 도중에 갑자기 상대의 힘이 늘어나서 이쪽의 균형을 무너뜨린다면 치명적인 결과로 이어질 수 있었다.
이를테면 독일 대표팀이 몰디브 유니폼을 입고 경기에 나서서 밀리는 척 하다가 갑자기 본래 실력을 발휘하는 격이라고나 할까.
이것 역시 단월쇄심장 못지않게 까다로웠다.
‘그런데 한 사람이 두 무공을 모두 쓸 수 있다면…’
동창이 몰살당한 것도 무리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기수는 합비에게 포권을 했다.
“감사합니다. 어르신.”
합비가 미소 지으며 물았다.
“파해할 방법은 좀 떠올랐느냐?”
“엄두가 안 납니다. 하핫!… 그래도 이렇게 미리 접해본 게 어딥니까.”
정말이지, 사전 지식 없이 덤볐다면 한 순간에 당했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엄두가 안 나지. 오늘부터 시작해보자.”
“예? 무얼 말입니까?”
“단월쇄심장과 여의무상권에 대한 파해법 연구를 말이다.”
“어르신과 함께 말입니까?”
“이놈아. 천하에 그 두 무공을 아는 사람이 나 말고 누가 또 있단 말이냐? 척회왕한테 가서 가르쳐달라고 할 거냐?”
“하, 하지만… 어르신은 따로 할 일이 있지 않으십니까?”
합비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 시간 많다. 내가 조급해 한다고 그놈이 한 해에 두 살씩 먹는 것도 아닌데 뭘.”
기수는 합비가 영약 선물에 대해 보답하려 한다는 걸 알아차렸다.
그가 도와주기만 한다면 정말 족집게 과외가 될 것이었다.
“감사합니다. 어르신.”
기수가 고개 숙여 절을 하자 합비는 손을 내저었다.
“사실은 나도 그 두 사람을 이기고 싶었지. 이번 기회에 너하고 머리를 맞대고 한 번 제대로 연구를 해보고 싶구나.”
합비가 두 사람의 무공에 대해 그렇게 자세히 알고 있는 이유는 역시 호승심 때문이었다. 그 역시 삼태공으로 꼽히던 고수 아닌가.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기수는 기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그로부터 두 사람은 마당에서 살다시피 하면서 연구에 몰두했다.
합비는 비록 나이가 많지만 무공에 대한 열정만큼은 아직도 젊은이 못지않았고, 기수도 그런 쪽으로는 집중력이 대단했다.
조민과 조현 자매는 밤에도 자러 들어오지 않는 기수에게 살짝 야속한 마음이 들었지만, 훨씬 더 중요한 일임을 알기에 직접 음식을 해서 두 사람을 대접하는 등 적극 지원하는 쪽으로 마음을 바꾸었다.
기수 입장에선 합비와 보내는 시간, 그것도 무학에 대해 토론하면서 보내는 시간이 너무나도 값지고 소중했다.
단월쇄심장과 여의만상권에 대해 연구한다고 하지만, 포괄적으로 배우는 게 너무나 많아서 하루에도 서너 번씩 탄성이 나왔다.
기수도 막연하게나마 알고 있던 사실도, 오랜 경험을 통해 정리된 합비의 버전으로 듣고 나면 머리에 쏙쏙 들어오면서 한 순간에 정리가 되곤 했다.
그렇게 꼬박 닷새를 함께 지낸 뒤 합비는 자기 집으로 돌아갔다.
그를 전송한 후 조민이 물었다.
“파해법은 찾아냈어요?”
“아니.”
조민과 조현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그런데 아니라고 말하는 기수의 표정이 너무 맑았다.
“파해법도 못 찾았는데 뭘 그리 좋아하세요?”
“눈을 새롭게 뜬 기분이야.”
조민과 조현은 기수의 그런 기분을 이해했다.
그동안 두 사람 곁에 다가갈 때마다 귀를 기울였지만 워낙 수준이 높아서 대화를 따라잡기가 어려웠던 것이다.
조현이 조심스럽게 말했다.
“두 분이 그렇게 오랜 시간 집중적으로 연구해도 파해법을 찾지 못할 정도라면 역시 이 싸움은 다른 방법을 찾아보는 게 좋지 않을까요?”
기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파해법을 못 찾았다고 해도 내가 유리해.”
“예? 어떻게요?”
“척회왕도 어르신의 오행류에 대해 대책이 없기는 마찬가지일 테니까.”
“그럼 공평하다고 봐야죠. 유리할 것 까지는….”
“난 실전 연습을 충분히 했지만, 그는 아니잖아.”
조민이 끼어들었다.
“춘신공과 진영군도 어르신의 비법을 깨려고 연구했을 수 있잖아요.”
“물론 그랬겠지. 하지만 그쪽은 사부가 죽고 세대가 바뀌었지만 합비 어르신은 당시의 기억을 고스란히 가지고 살아계시니까 다르지.”
물론 말이 그럴 뿐, 기수도 척회왕과의 대결에 자신감을 가지는 것은 아니었다.
여전히 그는 미지의 적이었고, 두려운 존재였다.
하지만 괜히 주눅 들어 있어봤자 득 될 일이 없기에 사람들 앞에서는 자신 있는 모습을 보이기로 한 것이다.
“자! 일단 오늘은 좀 쉬고, 내일 아침에 출발하도록 하자.”
조민과 조현의 눈이 빛났다.
쉰다는 말의 의미를 나름 해석한 것이다.
방으로 들어간 기수는 강기막을 펼치고 그동안 참은 자매와 자신에게 충분하고도 넘치는 상을 주는 시간을 가졌다.
태무신궁 제자들은 건물 밖에서 호법을 섰다.
산에서만 지낸 궁주가 언제 기수를 알게 되었는지, 셋이서 도대체 뭐 하는 건지 몹시 궁금하기는 했지만, 궁주의 결정과 행동에 어떠한 의문도 가질 수 없는 게 신궁 제자들의 계율이었다.
문이나 창을 통해 아무 소리도 들려오지 않는 것으로 보아 셋이 가부좌를 틀고 연공을 하는 거라고 짐작할 뿐이었다.
그렇게 합가촌에서의 마지막 밤을 보낸 기수는 강가로 나가 수로맹의 배를 찾았다.
장강이 아닌 황하의 서쪽 끝자락.
수로맹이 반군으로 지목 받는 요즘 같은 때에 과연 배가 있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그러나 그것은 기우였다.
육상과 달리, 물길에선 여전히 수로맹이 관군보다 우위였던 것이다.
물론 수군의 감시와 검문 때문에 몇 가지 달라진 점이 있었지만, 한 때 수로맹의 채주였고, 또 최근에 진무와 중원으로 나오면서 수군 검문을 여러 번 통과했던 기수는 수로맹 배를 단번에 찾아낼 수 있었다.
수로맹주의 신표를 보이고 배에 올라탄 기수는 목적지를 묻는 선장에게 허창으로 가자고 했다.
좌군도독부와 무림맹, 천마교를 모두 만나보기 위함이었다.
조민과 조현은 배를 타는 게 난생 처음이라고 했다.
뱃머리에 부딪히는 물결, 시원하게 부는 강바람, 날아다니는 물새들을 보며 어린아이처럼 좋아하는 모습이 기수로 하여금 미소를 머금게 만들었다.
‘어쩌면 이목구비가 저렇게 예쁠까?’
그보다 더 예쁜 것은 순수하고, 자기만 생각해주는 그녀들의 마음이었다.
허창의 분위기는 살벌했다.
개봉과 함께 반란군의 집결지라는 인식이 퍼져서 행인의 수는 줄어들고, 군인이 훨씬 더 많이 보이고 있었다.
금패를 보고 포구에서부터 호위하는 병사들을 따라 관청에 들어서자 좌군도독 장현과 그의 아들인 기병대장 장철, 무림맹주 주일비, 천마교 교주 혈천제 등이 몰려나와 그를 반가이 맞았다.
기수도 그들과 반가운 인사를 나누었는데, 혈천제의 표정이 경직된 것을 보고 아차 싶었다. 조민과 조현을 보고 긴장한 것이다.
기수는 자리를 정해 앉자마자 두 사람을 소개했다.
“이쪽은 비종 태무신궁의 궁주님과 부궁주님입니다.”
“비종! 아아!….”
그토록 비밀에 싸여 있던 비종이 드디어 모습을 드러냈다는 사실에 주일비와 장현 모두 놀랐고, 몹시 신기하게 여겼다.
혈천제 역시 놀라는 눈치였지만, 그보다는 여자로서 경계심을 드러내는 면이 더 많이 보였다.
기수 입장에선 좀 난감한, 그렇다고 피해 갈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그냥 당당하게 밀고 나갈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 기수는 장현에게 가짜 패거리의 근황을 물었다.
그러자 장현의 얼굴이 곧바로 심각하게 변했다.
“어제 안 좋은 소식이 들어왔습니다.”
“안 좋은 소식이라면…”
“금군대장 조평이 참수를 당했다고 합니다.”
“예? 그 사람이 어째서…”
“죄목은 황상을 능멸하고 명령에 불복종했다는 것입니다.”
“아아!…”
기수는 신음을 토했다.
우군 중에서 가짜 황제와 가장 가까이 있는 그가 죽었다니. 전력 면에서 큰 손실이 아닐 수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