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ohwa Manri RAW novel - Chapter 83
기수는 문주가 아니더라도 약선문 내에 중요한 인물이라면 보물지도에 대한 정보를 공유하고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질문을 통해 알아본 결과, 약선문 문주 고무학은 자식을 무려 7명이나 두고 있었다. 그중 아들이 넷이었다.
‘바아그라라도 만들어 먹었나?’
큰아들 고원의는 올해 30세로, 문주가 폐관수련하는 동안 문파의 대소사를 총괄하며 차기 문주로서의 역량을 과시하고 있었다.
그는 독과 약에 대한 지식은 물론이고 무공에도 조예가 깊다고 알려져 있었다.
둘째는 27세의 딸로 멀리 시집을 가서 집엔 없었다.
그녀의 시댁은 바로 양주의 십절금왕문이었다.
어마어마한 부를 자랑하는 가문. 9파 1방 4문 5가 중 4문에 속하는 가문과 혼인하여 인맥을 구축한 것이다.
세 째는 24세의 고원정. 암기술의 달인으로 알려져 있고,. 네 째 22세 고원달은 독장을 익혔다고 했다.
다섯 째와 여섯 째는 딸인데, 한창 피어나는 꽃다운 미모라는 소문만 돌 뿐 직접 봤다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규중에 깊숙이 숨어서 신부수업을 하는 모양이었다.
그리고 여섯 째 막내아들 고원회는 이제 17세로 약선문 최고의 사고뭉치, 말썽꾼이라 청주에서 일어나는 사건 사고의 절반은 그와 관련되어 있다고 할 정도였다.
기수는 7남매 중 장남인 고원의를 만나고 싶었다.
그러나 그는 워낙 일이 많아서 얼굴 보기가 힘들다고 했다.
그 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약선문 제자라면 모를까, 고용된 용병 처지엔 입문한 첫 날 만났던 백호단 단주 왕총이나 부단주 주광조차 못 보는 알이 더 많았다.
매일 보초를 서지만 약선문 가족들이 사는 안채 쪽으로는 가보지도 못하고 멀리 외곽의 담만 지킬 뿐이었다. 안쪽은 약선문 정식 제자들이 맡았다.
함께 보초를 서는 동안, 조장 유량은 한시도 수다를 멈추지 않았다.
“이봐. 양일. 지난번에 그 그녀 어땠어?”
“어떠긴? 뭐가?”
“입이 작던데, 거기도 좁던가?”
기수는 어이가 없었다.
남자들끼리 할 얘기가 마땅히 없는 시대이기는 했다.
게임도. 인터넷도, 심지어는 TV나 라디오도 없으니 음담패설이나 주고받는 게 유일한 화제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입 작다고 거기도 좁다니…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이라고 생각하면서 머릿속으로는 그동안 잤던 여자들의 입과 그곳의 상관관계를 좌르를 소트하고 비교 및 분석했다.
결론은 아니었다.
“누가 그런 소리를 해? 그럼 입 크면 거기도 큰가?”
“당연하지!”
“말도 안 되는 소리. 그건 전혀 상관이 없어.”
“자신 있게 말하네? 확신할 만큼 많은 여자와 해 봤어?”
기수는 대답할 말을 잃었다.
나름 열심히 노력했지만 모집단의 특성을 정확하게 반영하기에는 표본의 크기가 너무 작았다.
‘아! 좀 더 노력해야겠다.’
창 잡고 반성의 시간을 가졌다.
유량은 질문을 멈추지 않았다.
“얘기해 봐. 그 기녀 털 많았어?”
“털은 또 왜?”
“털이 많을수록 맛이 좋잖아.”
“아, 놔…. 진짜. 말도 안 되는 소리 계속 할 거야?”
“진짜라니까! 예로부터 전해 내려오는 말이야. 원래 털이 많을수록, 색깔이 검을수록 맛이 좋은 거라고.”
“아! 한심한 정보수준이여….”
인터넷 없는 세상엔 정말 루머와 괴담이 진실의 탈을 쓰고 돌아다니는 경우가 너무 많은 것 같았다. 물론 그 와중에도 기수는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털과 색, 그리고 맛의 상관관계를 다시 한 번 검색해보았다.
털에 대해서라면 완전히 반대라고 할 수 있었다.
오히려 무모 중에 슈퍼 명기를 둘이나 만났으니까.
색에 대해서는 확신이 서지 않았다. 분홍색도 좋았지만, 광혼랑이 짙은 갈색을 넘어 아예 까만색이었는데도 느낌이 정말 좋았기 때문이다.
기수가 대답을 하지 않자 유량이 재촉했다.
“혼자 상상하지 말고 얘기해 봐. 어땠어? 응? 응?”
기수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야! 그날 너도 했잖아. 그런데 왜 자꾸 나한테 물어? 너는 어땠는데?”
“내가 한 거야 기억에 남아 있으니까 궁금하지 않지만,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했는지 궁금하단 말야. 얘기 좀 해 줘. 응?”
기수는 피식 웃을 수밖에 없었다.
실제 연애는 한 번도 없이 하드디스크에 들어찬 방대한 AV 콜렉션으로 스스로를 위로하던 과거의 자신이 생각났기 때문이다.
유량의 처지를 이해하고 나니 징그럽다기보다 측은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자기 성생활을 남에게 얘기해주고 싶지는 않았다.
“그냥 그럭저럭 괜찮았어.”
“처음에 뭐부터 했냐? 응? 응?”
“늘 하던 거지 뭐….”
“늘 뭐부터 하는데? 응? 응?”
“일단….. 으으………”
유량이 나이에 어울리지 않고 해맑은 눈동자를 말똥말똥 빛내고 있으니까 더 이상 얘기를 할 수 없었다.
바로 그때. 기수의 구세주가 나타났다. 백호단 부단주 주광이었다.
“비상! 전 단원 전투 출정준비 완전히 갖추고 연무장으로 집합하라!”
유량이 인상을 팍 구겼다.
“아! 이제 막 재미 있을 참인데 무슨 출정이람. 그것도 이런 한밤중에.”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그는 잽싸게 내무반으로 달려갔다.
조장이라 나머지 조원들을 독려해서 집합시킬 책임이 있었던 것이다.
기수도 그를 따라가서 봇짐에 야행복과 담요를 챙겨 넣고, 허리에 칼을 차고, 식당에 들러 건량과 술 호리병을 받아들고 연무장으로 갔다.
깜깜한 연무장은 무사들로 가득 차 있었다.
조별로 줄을 맞춰 서서 기다린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비단옷을 입은 잘 생긴 청년이 단 위로 올라가 섰고, 횃불 든 약선문 정식 제자들이 그 좌우로 늘어섰다.
유량이 기수에게 말했다.
“저 분이 네 째 고원달 공자님이야.”
“아! 그래?”
기수는 기뻤다. 한밤중에 집합한 이유가 무엇이건 상관없었다.
마침내 약선문의 중심인물 중 한 명을 가까이에서 만난 것이다.
고원달이 헛기침을 한 후 목소리를 깔고 말했다.
“철산문이 우리 제자들을 습격했다는 급보가 들어왔다. 장백산에 다녀오는 길이었는데, 사람은 죽고 약재는 모두 빼앗긴 모양이다.”
무사들은 술렁거렸다.
철산문이라면 북쪽으로 백 리쯤 떨어진 곳에 자리 잡은 문파로, 제법 강력한 세력을 구축하고 있었다. 특히 문주 탁일항은 단혼수라는 별호로 유명한 고수였다.
고원달이 계속 이어서 말했다.
“우리가 이대로 당하고 있어야 하는가? 아니다! 철산문 따위가 업신여길 만큼 우리는 약하지 않다!”
“와아!…..”
그의 좌우와 뒤에 서있던 약선문 제자들이 일제히 함성을 질렀다.
연무장에 모인 무사들도 따라서 함성을 질렀다.
아무래도 목소리는 정식 제자들 쪽이 더 컸다.
그들은 자존심에 상처를 입어서 몹시 분개한 표정이었다.
기수는 사람들 사이를 비집고 고원달 가까이로 가려 했다.
그러나 다들 줄을 똑바로 서 있어서 조장인 유량보다 앞으로 나갈 수는 없었다.
고원달이 말했다.
“오늘밤! 우리는 철산문을 치러 간다. 철산문 문도와 가족들을 단 한 놈도 남기지 말고 모두 죽여라! 그래서 우리를 건드린 대가를 치르게 해주자!”
“와아…..!”
“철산문 문도의 아내와 딸들은 모두 범해라! 세상이 우리를 두려워하게 될 것이다!”
“와아아아!………”
이번엔 용병들 쪽 함성이 훨씬 더 컸다.
마음껏 불 지르고, 약탈하고, 강간하는 것보다 즐거운 일이 세상에 또 어디 있겠는가.
기수도 기뻤다. 전쟁을 하러 가는 거라면 고원달과 가까이 접근할 기회가 얼마든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병력은 곧바로 출발했다.
깊은 밤이고 가로등도 없는 길은 험하기까지 했지만 행군속도는 빨랐다.
다들 무공을 익힌 무사들이다 보니 웬만한 험로는 4×4 오프로더보다 더 잘 탔다.
철산문이 먼 곳이지만 새벽녘이 되어 동이 터오를 때쯤 되자 도착할 수 있었다.
병력이 행군을 멈추자 고원달이 백호단 단주와 부단주, 그리고 십여 명의 중요한 조장들을 불러 작전을 하달했다.
기수는 슬그머니 주광 뒤를 따라가 그들 뒤에 머물렀다.
“묘시가 되면 동시에 친다. 우리 백호단은 철산문의 동쪽 담을 넘을 것이다.”
단주 왕총이 고원달에게 물었다.
“동시라니요? 혹시 다른 단도 와 있습니까?”
“그렇다 4개 단이 총출동했다.”
“아! 그, 그랬군요.”
단주인 자기에게까지 비밀로 한 걸 보면 이번 공격의 보안 유지에 엄청나게 신경을 쓴 게 분명했다. 어쨌거나 4개 단이 모두 집결했다면 철산문은 오늘 자로 봉문을 면치 못할 것이었다.
고원달이 조장들에게 강조했다.
“인원이 충분하니까 철산문에서 단 한 사람도, 아니 쥐새끼 한 마리도 빠져나가지 못하게 해야 한다. 그리고 철산문 문주 탁일항의 목은 우리가 쳐야 한다. 그러니 담을 넘을 때 머뭇거리는 놈은 내가 용서치 않을 것이다. 다들 목숨 걸고 싸워라. 알았지?”
“예! 알겠습니다.”
뒤에서 듣고 있던 기수는 속으로 생각했다.
‘앞장서서 담을 넘는 게 아니라 감시하겠다고? 쳇! 그러면서 공은 세우고 싶은 모양이지?’
그러면서 염정구심술을 조심스럽게 시전해보았다.
오랜만에 해보는 거지만 고원달과의 동조는 무리없이 아주 스무스하게 이어졌다.
내공 증진의 효과를 보는 것 같았다.
‘형에게 공을 빼앗겨선 안 돼! 탁일항은 반드시 내 손으로 죽이고 말 것이다.’
형제들 간에 경쟁이 심한 모양인데, 기수에겐 관심 없는 생각이었다.
원하는 답이 나오길 기다려봤지만, 고원달은 오로지 이번 전투 생각뿐이었다.
‘조금 밀어붙여봐야겠군. 아주 약간만….’
기수는 상대의 마음을 지배하지는 않았다. 그건 하지 않기로 맹세했으니까.
대신 상대의 마음속에 장보도라는 세 글자가 울리도록 정신을 집중했다.
그러자 고원달의 생각이 그 단어에 반응했다.
‘이번에 철산문에 있는 지도를 빼앗으면 네 장 중 세 장을 모으게 되는 거지? 후후후… 거의 다 됐다고 볼 수 있겠군.’
기수는 뛸듯이 기뻤다. 예상대로 약선문이 지도를 가지고 있는 것이었다.
더욱 기쁜 일은 그들이 4장 중 2장을 가지고 있고. 이제 3번째를 찾으려 한다는 사실이었다.
기수는 마음의 연결을 끊고 자기 자리로 돌아왔다.
‘정말 고맙구나! 너희들이 애써서 모은 지도. 내가 잘 쓰도록 할게. 후후후….’
이번 습격도 사실은 지도를 찾기 위함이라는데 생각이 미치자, 어쩌면 자기네 제자가 당했다는 것도 꾸며낸 말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생각은 곧 사실임이 확인되었다.
묘시가 되어 사방에서 동시에 약선문의 공격이 시작되었는데도 철산문은 아무런 반응이 없었다. 그냥 평범한 새벽 시간일 뿐이었다.
그들이 정말 약선문 제자를 공격했다면 이렇게 무방비상태로 당할 리가 없었다.
함성과 비명이 난무했고, 여기저기서 피가 튀었다.
잠자다 뛰쳐나온 철산문 제자들이 반격을 했지만 철저한 준비 끝에 기습에 성공한 약선문의 공격을 막아내기엔 역부족이었다.
단지 기습이 성공했을 뿐만 아니라 병력이 훨씬 많아서 이미 승패는 기울었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었다.
기수는 고원달의 움직임을 주시했다.
그는 정식제자들과 어울려서 안쪽으로 집요하게 파고들고 있었다.
싸움, 방화, 약탈은 용병 무사들에게 맡겨 두고, 그들은 문주를 찾고 지도를 찾으려 함이 분명했다.
기수가 그들을 따라가려 하자 백호단 부단주 주광이 불렀다.
“이봐! 어딜 가는 거야? 우리가 맡은 건 이쪽이다!”
그 역시 정식제자라 용병이 지도 찾을 가능성을 차단하는 것이었다.
기수는 자기 조에 합류했다.
어차피 자기가 나서지 않아도 약선문에서 다 찾아 놓은 다음에 손에 넣으면 그만인데, 자기도 모르게 욕심이 동해서 불필요한 행동을 한 것이다.
기수는 함성을 지르며 싸움에 뛰어들었다.
그의 칼은 무시무시한 파공음을 내며 선풍기처럼 돌아갔지만 사실, 피가 한 방울도 묻지 않고 있었다.
있지도 않은 죄를 뒤집어쓰고 죽는 것만도 억울할 텐데, 자기가 거기에 칼질을 더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 것이다.
철산문은 약선문 만큼은 못하더라도 상당히 규모가 큰 문파였다.
그러다 보니 싸움은 그다지 쉽게 끝나주지 않았다.
쥐도 궁지에 몰리면 고양이를 문다고 했던가.
절대적 열세임에도 불구하고 악착같이 버티는 철산문의 반격은 만만치 않았다.
그때, 백호단 단주 왕총이 외쳤다.
“1조부터 20조까지 나를 따르라!”
그가 현장을 부단주 주광에게 맡기고 따로 움직이는 것은 한 무리의 도망자들이 빠져나가는 것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단 한 명도 빠져나가면 안 된다는 고원달의 지시를 따라야 하는데, 이런 중요한 일은 직접 해야 직성이 풀리는 왕총이었다.
그는 거구임에도 불구하고 경공이 빨랐다.
도망치는 자들은 모두 합해 30명 정도.
그러나 그들의 무공은 들쭉날쭉해서 담을 빠져나간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선두와 후미가 벌어졌다.
뒤에 처진 자들은 도망을 포기하고 돌아서서 싸우기 시작했다.
“네놈들 따위가 나를 막을 수 있을 것 같으냐?”
거구의 왕총은 따로 무기를 들지 않아도 몸 전체가 흉기였다.
부하들이 도착하기도 전에 가로막는 자들을 때려눕히고 추격을 이어갔다.
20여명으로 줄어든 도망자들은 다시 선두와 후미로 나뉘었고, 처진 자들이 돌아서서 반격을 가해왔다. 이번엔 조금 더 도망친 만큼 무공도 처음 무리보다 센 편이었다.
왕총은 고함을 지르며 팔을 휘둘렀다.
“이렇게 시간을 끈다고 해서 내가 놓칠 줄 아느냐?”
그의 파워는 장난이 아니었다.
지체되긴 했지만 두 번째 저항선도 모두 깨부수고 도망자들의 선두와 거리를 좁혀 갔다. 그들은 철산문 뒤쪽의 산을 올라가는 길을 택했기 때문에 간격이 계속 줄어들었다. 기수는 도망자 일행 중에 여자가 있음을 알아차렸다.
머리카락이나 얼굴을 본 게 아니라 힙을 하나 봤는데, 딱 여자의 골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