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1428
01431 1431화
타다닥!
태수와 김혁권이 달리는 사이, 송민규와 이성혁이 각각 종이 상자를 들고 바짝 뒤에 따라붙었다.
그렇게 네 사람은 동시에 엘리베이터로 달렸다.
옥상에 도착하자 헬기 프로펠러가 이제 막 돌기 시작했다.
언제든지 출동할 수 있게 준비하는 건 변함이 없는 모양이었다.
푸다다다!
프로펠러가 점점 빠르게 돌며 주변의 소리를 삼키고 있었다.
태수는 이성혁이 들고 있던 종이 상자를 건네받으며 말했다.
“이 선생은 내려가서 계속 일과 진행해.”
“저도 가고 싶습니다!”
이성혁이 적극적으로 어필했지만 태수에겐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인원 구성을 보고 엉겨. 그리고 수술 어시스던트도 잡혀 있잖아.”
“…….”
“다음에 같이 가자고. 갑시다!”
태수가 말하며 헬기로 달려가자 그 뒤를 김혁권과 송민규가 따랐다.
홀로 남은 이성혁은 실망하지 않고 크게 소리쳤다.
“꼭 살려서 돌아오십시오!”
프로펠러의 굉음을 뚫고 들려오는 힘찬 소리에 태수가 고개만 돌려 눈을 마주치며 계속 달렸다.
헬기에 탑승하자 태수는 물론 김혁권과 송민규 모두 빠르게 안전벨트를 착용했다.
그제야 태수는 송민규가 헬기를 몇 번 이용했단 얘기를 들었던 기억이 떠올랐다.
지금은 일일이 챙겨 주지 않아도 되는 게 다행이었다.
그리고 3명밖에 탑승하지 않았으니 헬기도 최고 속도를 내는 데 무리가 없을 터였다.
마침 헬기 기장이 뒤를 돌아봤다. 시선을 마주친 태수는 엄지손가락을 높이 들었다. 이륙해도 좋다는 신호였다.
헬기 기장은 바로 알아듣고 다시 앞을 바라봤다.
그리고 헬기가 서서히 공중으로 떠올랐다.
헬기의 최고 속도는 자동차보다 훨씬 빨랐다.
게다가 교통신호나 교통 체증 따위는 전혀 없는 뻥 뚫린 하늘을 날아가니 속이 후련했다.
헬기는 성호종합병원을 출발한 지 불과 20분도 되지 않아 망망대해를 날기 시작했다.
목적지가 점점 빠르게 가까워지고 있었다.
바다에 들어선 순간부터 송민규는 계속 밖을 확인하고 있었다.
그 뒷모습에서 초조함도 느껴졌지만 되레 차분함이 돋보였다.
김혁권이 태수에게 가까이 다가와 송민규를 가리키며 크게 소리쳤다.
“많이 컸어요!”
“저 정도는 돼야죠!”
“그보다 오늘도 레펠이야?”
고함에 가깝게 소리를 질러 물었지만 프로펠러 소리 때문에 간신히 들려왔다.
태수는 김혁권에게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저도 모르겠습니다!”
“뭘 알아야 준비를 하지!”
“일단 줄은 걸어 놓죠. 혹시 모르니까요.”
태수의 말에 김혁권은 엄지를 내밀며 알아들었다고 사인을 보냈다.
두 사람이 준비하는 사이 송민규가 돌아보며 태수에게 소리쳐 말했다.
“선배님, 곧 도착합니다!”
“환자 상공에 붙이라고 그래. 레펠로 내려가는 게 빨라. 해봤어?”
“그럼요.”
송민규는 대답한 후에 고개를 돌려 헬기 기장에게 말했다.
그런데 그때였다.
덜컹덜컹.
헬기가 갑자기 좌우로 크게 흔들렸다.
옆으로 넘어질 정도는 아니었지만 태수와 김혁권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이거 난기류잖아요!”
“오늘 바람이 심하다더니.”
“이 정도면 호버링 되려나?”
“돼야죠.”
태수가 대답했지만 자신이 조종하는 게 아니라 확신하진 못했다.
태수의 불안감이 적중했는지 송민규가 다시 고개를 돌려 소리쳤다.
“바람이 너무 심해서 환자 상공에 멈출 수가 없답니다! 자칫하다가 기류에 말리면 우리가 추락한답니다!”
“젠장. 그럼 뛰어내려?”
“아니요. 해변에 공터가 있습니다!”
“사고 현장에서 얼마나 먼데!”
“뛰어서 1분 거리입니다!”
송민규가 소리쳐 대답하는 사이 헬기가 서서히 하강하기 시작했다.
너무 바람이 심해 헬기 기장도 도저히 고도를 유지할 수 없던 모양이다.
태수는 지상과의 거리를 파악하기 위해 헬기 창문으로 아래를 내려다봤다.
태수 쪽에서 보이는 건 바다였다.
해변과 몰려 있는 사람들을 보니 사고 현장 근처가 확실했다.
그러던 중 뭔가가 태수의 눈길을 잡아끌었다.
울퉁불퉁한 갯바위 지대가 펼쳐져 있었고, 그 가운데에 사람이 누워 있었다. 꼼짝도 못한 채 파도에 일방적으로 얻어맞고 있는 중이었다.
그 주변엔 아무도 없었다.
갯바위에 몰아치는 파도의 힘은 엄청났다. 아무리 성인이라 해도 버틸 수 없어서 접근이 힘들었다.
그걸 본 순간 태수는 솔직히 아찔했다.
“저길 왜 가냐고!”
부상당한 조난자의 옷차림을 보니 섬사람이었다.
파도의 무서움을 모를 리가 없는 사람이 저기 있는 것 자체가 어이가 없었다.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에도 헬기는 하강하고 있었다.
태수가 다시 사고 현장을 내려다봤다.
바다, 파도, 그리고 도로.
도로?
해안 도로라 그런지 가드레일이 길게 펼쳐져 있었다.
그 모든 정보들이 태수의 머릿속에서 정신없이 돌아갔다.
곧 태수의 눈빛이 반짝였다.
이내 손에 든 로프를 꽉 잡았다.
얇은 줄이지만 3톤 정도는 가뿐하게 버틸 정도로 튼튼했다.
이거다.
지금은 이게 필요했다.
태수는 김혁권과 송민규에게 소리쳤다.
“로프 챙겨!”
척!
두 사람은 동시에 엄지를 치켜들어 알았다는 사인을 내보였다.
이유도 묻지 않고 태수의 오더대로 곧바로 움직였다.
각각 허리에 로프을 감고 남은 줄은 어깨에 들쳐 멨다.
그리고 준비한 것들을 하나씩 나눠 든 순간이었다.
헬기가 땅에 닿는 느낌이 들었다.
이젠 본능적으로 알게 된 그 느낌을 신뢰하며 태수는 헬기 문을 거칠게 열어젖혔다.
역시 땅이 보였다.
어느새 헬기 기장도 뒤를 돌아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태수는 오케이 사인을 하고는 헬기에서 뛰어내렸다.
뒤에서 김혁권과 송민규가 이어서 내렸다.
땅에 발을 딛는단 느낌을 받기도 전에 세 사람은 허겁지겁 달려 사고 현장으로 향했다.
휘이잉!
불어오는 바람에 머리카락이 흩날렸다.
프로펠러 소리가 멀어질 정도로 달리니 해안도로와 가드레일이 보였다.
그 주변에서 마을 사람들이 발을 동동 구르고 있었다.
헬기 소리에 마음이 더 조급해졌는지 다들 세 사람 쪽을 쳐다보고 있었다.
몇몇 성질 급한 어른들이 먼저 다가왔다.
그중에 예순에 가까운 중년인이 송민규를 애타는 눈빛으로 다그쳐 불렀다.
“아이고, 송 선생!”
“이장님, 이쪽이 제가 말씀드린 선배님이십니다.”
“아, 최태수 선생님! 선생님, 제발 강 씨 좀 살려 주세요.”
자신이 어른이란 것도 자각하지 못한 채 이장은 사정부터 했다.
태수는 그런 그에게 얼른 말했다.
“이장님, 인사는 나중에 드리고요. 일단 저쪽으로 가시죠.”
“네. 다들 뭐 해? 얼른 들어 드려!”
이장이 소리치자 주변 사람들이 가방과 종이 상자를 빼앗듯 가져가더니 먼저 앞서 달려갔다.
태수는 순순히 내줬다.
지금은 거부할 때가 아니었다.
앞으로 어떤 상황이 펼쳐질지 모르기에 조금이라도 체력을 비축해야 했다.
그래도 어깨에 들쳐 멘 밧줄은 그대로 메고 달려갔다.
사고 현장은 정말 코앞이었다.
사람들이 비켜서서 가드레일까지 곧장 다가갈 수 있었다.
그들 사이에서 하얀 가운을 입고 있는 보건의가 보였다.
보건의도 태수가 왔단 소식을 전해 들었는지 먼저 다가와서 인사했다.
“보건의 조강묵입니다. 최 팀장님, 이렇게…….”
“그런 얘기 할 때가 아니고, 환자에게 접근해 보셨습니까?”
태수가 급한 걸 먼저 묻자 조강묵은 바로 대답했다.
“우선 한 차례 접근했습니다. 그런데 보시다시피 파도가 세고, 바람도 많이 불어서…….”
“그런 얘기 말고 환자한테 뭘 해 줬냐고요.”
“진통제하고 항생제만 주사했습니다. 그 외에는 할 수가 없었습니다.”
조강묵은 자신의 무능력함에 괴로운 표정이었다.
태수는 지금 그런 건 따지고 싶지도 않았다.
“알았어요. 알았으니까, 환자 상태는 어떻습니까?”
“의식은 희미하게 있습니다. 저기 보시면 손을 들고 있잖습니까? 그게 신호를 보내는 겁니다.”
“좋아요. 의식은 희미하고, 바이탈은?”
태수의 물음에 조강묵이 거친 글씨로 적힌 종이를 내밀었다.
“보시는 게 더 정확할 거 같아서요.”
“이게 오히려 좋죠. 음, 음, 그래요. 역시 혈압하고 맥박이 불안정한 상태인데……. 소방 헬기는 아직 소식 없습니까?”
“곧 온다는데 아직 정확한 시간은 모르겠습니다.”
“음…….”
태수가 고민하는 사이였다.
송민규가 다가와 빠르게 보고했다.
“강씨 아저씨, 아니 강주혁 환자가 왜 저기 있는지 알아냈습니다.”
“왜 저기 있는 건데?”
“오늘 강풍으로 배가 뜨지 못해서 찬거리나 구하신다고…….”
“지금 그게 말이야, 뭐야!”
태수가 버럭 소리치자 송민규는 물론 주변에 있던 주민들까지 깜짝 놀랐다.
“…….”
“…….”
주변은 완전히 침묵 상태로 변했다.
걱정하던 목소리까지 쏙 기어들어 갔다.
태수는 그런 그들은 개의치 않은 채 계속 소리쳤다.
“배가 못 뜰 정도로 바람이 강하게 부는데 갯바위가 안전해? 바다에서 평생 사신 분이 그걸 몰라!”
“저분…… 육지서 오래 사신 분입니다.”
“뭐?”
“고향은 여긴데 인천 쪽에서 자라 지금껏 사셨답니다. 그런데 어머니가 치매가 오셔서 작년 겨울에 다시 섬으로 들어오셨습니다.”
송민규의 말에 태수가 멈칫했다.
“어머니가 치매?”
“네. 섬에 아시는 분들도 많고 요양하기도 좋아서 오셨는데, 기술이 없어서 뱃일 배우신다고 하셨습니다.”
“어머니는?”
“치매에 당뇨까지 겹쳐서 거동이 많이 불편하십니다. 제가 직접 왕진을 다녀서 잘 알고 있습니다. 아저씨가 오지 않는다고 걱정하실 텐데요.”
송민규의 말에 태수는 눈을 꽉 감아 버렸다.
“그런 양반이 왜 저길 들어가냐고!”
“매끼 물고기를 싱싱한 걸로 상에 올리신답니다. 어머니가 좋아하신다고요.”
“……어쩌라고!”
태수가 버럭 화를 냈다.
안타까움에 잠시 평정을 잃고 짜증을 터트렸다.
그런 태수를 누구도 험담하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 또한 그 사정을 너무도 잘 알고 있어서였다.
태수는 머리를 벅벅 긁었다.
“진짜 환장하겠네.”
“선배님.”
“부르지 말고 준비나 해. 어쩌기는 뭘 어째. 들어가야지.”
“저길요?”
송민규는 레펠을 허리에 두르고 있지만 태수가 정말 들어갈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다.
보통 갯바위라면 들어가는 게 당연했다.
그러나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스윽.
시선을 돌려 바다를 바라봤다. 강풍이 밀려와 얼굴을 일그러뜨리는 느낌까지 받았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철썩, 철썩!
바위에 부딪쳐 부서진 파도가 몇미터는 가뿐하게 올라갔다.
저 파도를 견디며 응급처치를?
송민규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 가고 있었다.
송민규가 얼떨떨하게 바라보는 사이 태수와 김혁권은 이미 가드레일로 향해 있었다.
“단단히 묶으세요.”
“당연한 거 아닙니까? 난 홀몸이 아니라서 오늘 절대 못 죽어.”
김혁권은 매듭을 마치고 로프를 강하게 몇 번이나 당겼다.
팽팽!
튼튼하게 묶였는지 확인하는 사이였다.
태수도 매듭을 모두 묶으며 김혁권에게 물었다.
“그거 가져왔죠?”
“혹시 몰라서 챙겼는데, 역시 필요하네.”
“시간 없습니다. 빨리 꺼내세요.”
태수가 재촉하자 김혁권은 가방으로 몸을 낮춰 무언가를 꺼냈다.
그건 등에 메는 자그마한 가방이었다.
보통 가방에 비해 작을 뿐이지, 부피는 넉넉했다.
그 속엔 야전에서 필요한 응급처치 용품들이 들어 있었다.
태수와 김혁권은 항상 만약을 대비해서 챙겨 놓았다.
그 상황이 지금이라는 게 그렇게 달갑지는 않았다.
태수에게 하나를 건넨 김혁권은 가방을 또 하나 꺼내 등에 멨다.
그리고 동시에 두 사람은 가방 끈을 길게 잡아당겨 길이를 줄였다.
등을 반 정도 가릴 크기에 딱 달라붙기까지 하니 움직임에 불편함이 없었다.
준비가 먼저 끝난 두 사람의 시선이 자연스럽게 마주쳤다.
까딱.
“갈까요?”
“가 봅시다.”
두 사람은 말이 끝남과 동시에 가드레일을 넘어갔다.
아니, 넘어가려 했다.
한쪽 발을 걸치고 나머지 발을 넘기려는데 마을 사람들이 우르르 다가와 태수와 김혁권을 만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