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r. Taesoo Choi RAW novel - Chapter 1603
01606 1606화
“훈련생이 무슨 전화야?”
“선배!”
“귀청 떨어져. 그보다 훈련은 잘 받고 있어?”
“죽을 맛입니다. 다들 최소 5킬로씩은 빠졌습니다.”
송민규의 분노 서린 대답에도 태수는 덤덤하게 대답했다.
“멋있어졌겠네.”
“아주…… 아주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게까지 감사할 건 없고.”
“2주 남았습니다. 달력에 표시해 놓고 있고요. 선배님을 다시 뵐 그날을 말입니다.”
“힘내.”
태수의 무심한 대답이 송민규에겐 자극으로 다가왔는지 목소리가 더욱 서늘해졌다.
“퇴소하면 꼭…… 무조건 찾아뵙겠습니다.”
“자식. 그만 으르렁거리고, 레펠 숙달은 잘돼 가?”
“그럭저럭이요.”
“제대로 배워 와. 생각보다 쓸 데가 많으니까.”
태수가 장난을 거두고 진지하게 말하자 송민규의 목소리도 달라졌다.
“안 그래도 조교들이 오늘 신문 보여 줬습니다.”
“무슨 훈련생한테 신문을 보여 줘? 거기 당나라 군대야?”
“자극받으라고요. 선배하고 민수 형이 어떻게 거길 갔는지 기사엔 자세하게 나와 있잖습니까.”
송민규 말에 태수가 반색했다.
“아, 그럼 말이 되지.”
“사실 그 기사 보기 전까진 다들 서슬이 퍼랬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다른 의미로 독해져 있습니다.”
송민규의 말에 태수가 옅게 미소 지으며 물었다.
“어떤 의미?”
“우리가 배운 이 기술 하나가 어떻게 쓰일지에 대한 겁니다.”
“그런 각오면 충분해.”
만족한 태수의 대답에 송민규가 자신감 넘친 목소리로 화답했다.
“쓸 만한 놈들이 돼서 나가겠습니다.”
“쓸 만? 그 정도 만들려고 내가 거기까지 보냈을까?”
태수가 자극하자 송민규의 목소리가 좀 더 단단하게 변했다.
“어떤 상황에서도 레펠을 할 수 있게 해 달라고 하겠습니다.”
“그 정도 각오라면 만족해.”
“그럼 퇴소하고 찾아뵙겠습니다.”
“속은 비워 놓고 와. 고기하고 술로 가득 채워 줄 테니까.”
“당연한 말씀이십니다. 그럼 2주 후에 뵙겠습니다.”
송민규는 조금 딱딱한 말투로 전화를 끊었다.
죽도록 고생시킨 태수에게 감정이 조금 남은 목소리였다.
다만 처음과 달리 결심이 굳은 모양이다.
개개인 모두 적극적인 의사들이었다.
그런데도 항상 태수에게 자극을 받고 싶어 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 레지던트 때 버릇이 아직까지 이어지고 있어보였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자극을 받고 싶은 그 마음도 얼핏 이해가 됐다.
“자식들, 목표를 더 높게 잡아야지.”
며칠 집에서 두문불출하는 사이 병원 소식도 간간이 전해 들었다.
송선희와 아기는 어느 정도 회복되어 다시 병상에 함께 누워 있단 소식도 들려왔다.
아직 산후조리가 끝나지 않아 며칠 더 입원해 있을 거란 소식을 송현미 간호사가 전해 줬다.
정민수는 아직도 집을 구하는 데 애를 먹는 모양이었다.
태수는 그런 정민수를 떠올리며 눈을 굴렸다.
오피스텔로 데려오는 건 어떨까?
꽤 규모가 큰 오피스텔이라 일주일에도 몇 번씩 많은 사람들이 이사를 한다.
뒤처리를 깔끔하게 하고 정민수와 어머니가 편안하게 살 공간을 만들어 주는 것도 나쁘지 않아보였다.
정민수에겐 그 정도가 아니라 집을 두 채 내어줘도 아깝지 않았다.
가까이 살면 반찬도 해결되고, 출동할 때 번잡하지도 않고.
생각하던 태수가 눈빛을 반짝였다.
“좋아.”
기왕이면 같은 건물에서 살면 서로서로 좋다.
몸살을 털고 일어난 태수는 아이들을 등교시킨 후 매형의 카센터로 향했다. 이번 일 때문인지 수현이가 눈에 계속 아른거린 탓이다.
카센터는 여전히 차가 많았다. 옆에 있는 공터도 연 단위로 임대해서 주차장으로 사용할 정도였다.
기술자들도 좀 더 늘었는지 못 보던 얼굴들도 보였다.
좀 더 다가가던 태수가 갑자기 발걸음을 멈췄다.
차를 수리하는 매형의 모습을 본 탓이었다.
매형은 행복한 얼굴로 부품을 닦고 조이는 일들을 반복했다.
카센터를 시작하고부터 언제나 같은 표정이었다.
항상 하는 일이 지겨울 만도 한데 매형은 한 번도 다른 표정을 보인 적이 없었다.
태수는 그 모습이 조금은 존경스러웠다.
그때 매형이 태수를 봤는지 하얀 이를 드러내며 크게 손을 흔들었다.
태수가 같이 손을 흔들자 매형이 기름 때 가득한 장갑을 벗으며 부지런히 다가왔다.
“처남, 이번에도 아주 큰일 했다며.”
“무슨 큰일이요?”
“기사 났던데. 그보다 좀 쉬는 거 아니었어?”
“제 영혼의 휴식처를 찾아왔습니다.”
태수가 어렵게 말해도 매형은 척 알아들었다.
“수현이? 지금 어린이집 갔는데.”
“이런……. 전혀 예상 못한 변수네요.”
“농담은, 들어가자고. 가서 차 한잔해.”
“제가 시간 빼앗는 거 아닙니까?”
“무슨 소리야. 어서 들어가자고.”
매형이 앞서 안내하자 태수도 웃으며 뒤따랐다.
사무실에 들어섰는데 누나는 보이지 않았다.
태수가 의아하게 바라보자 매형이 먼저 말했다.
“오전엔 쉬라고 했어. 살림하면서 출근하는 게 얼마나 힘들어.”
“제가 매형만 보면 존경이 앞섭니다.”
“존경은 무슨. 같이 가사 분담해야 하는데 내가 그쪽으로는 영 꽝이니까 누나가 다 하는 거지. 음료수 가져갈게. 앉아 있어.”
매형은 태수를 소파로 안내하고 세면대로 향했다.
손을 씻고 음료수를 가져올 모양이었다.
태수는 손을 씻는 매형을 바라보며 소파에 앉았다.
같은 남자지만 배울 점이 분명히 있었다.
가정적이고, 성격 좋고, 주변에 평판도 좋았다.
그런 매형을 빤히 바라보던 태수가 조금 소리 높여 물었다.
“누나하고 매형도 싸워요?”
“뭐?”
“부부싸움하시냐고요.”
태수의 물음에 음료수를 가져온 매형이 어이없는 얼굴로 대답했다.
“당연히 싸우지. 안 싸우는 부부가 어디 있어?”
“절대 안 싸우실 거 같은데요. 누나도 매형도 워낙 성격 좋은 분들이라.”
“처남, 보이는 게 전부가 아냐. 우리도 남들처럼 싸우고 화내고 소리도 치고 그래.”
매형의 진지한 말에 태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진짜요? 전 한 번도 못 봤는데요.”
“처남도 모르는 게 당연하지. 수현이 눈치도 보이고, 우리는 밖에서 싸우고 들어와.”
매형의 대답에 태수가 음료수를 열며 물었다.
“들어와서는요?”
“밖에서 끝장 보고 들어오니까 안에선 또다시 웃고 떠들지.”
“그게 됩니까?”
아직 미혼인 태수로선 이해하기 힘든 말이었다.
이해한 듯 매형은 웃으며 천천히 설명했다.
“부부싸움이란 건 뭐랄까, 칼로 물 벤다고 하잖아. 처남하고 안사람하고 많이 싸웠다며?”
“우리야 싸워도 남매니까 별수 있습니까. 투덕거려도 그냥 얼굴 보며 웃는 거지.”
태수의 대답에 매형이 미소 지었다.
“부부도 똑같아. 서로가 서로에게 애정이 있으니까 싸우고, 또 그러니까 실없이 웃기도 하고. 그런 거라고.”
“머리는 이해가 가는데…….”
“결혼하면 가슴으로도 이해하게 돼.”
매형이 묻자 태수가 고개를 저었다.
“의외네요, 매형이 워낙 가정적이시라 안 싸울 거 같아서요.”
“하루 종일 끌어안고 있어도 싸워.”
“그건 제가 모르는 일이니까요. 아, 그리고 하나 더 여쭤 봐도 됩니까?”
“오늘 질문이 많네. 해봐.”
“일하시면서 지겨운 적 없으십니까? 매번 웃으면서 일하시는 거 같아서요.”
태수가 조금 진지하게 묻자 매형이 잠시 생각하다 물었다.
“그런 얘기 알아?”
“어떤 얘기요?”
“반복에 지치지 않는 자가 승리한다.”
“어디서 들은 거 같기도 하고.”
“어떤 체육관에 있는 문구라는데, 내가 진짜 힘들 때 그 얘기를 들은 적이 있거든.”
매형의 말에 태수가 호기심을 보였다.
“그래서요?”
“그래서는 무슨. 그때부터 마음을 바꿔 먹었지. 하루하루 내가 할 일이 있음에 감사하자.”
“…….”
“그 감사의 결과는 안사람과 수현이와 함께 누리는 행복이잖아. 그러면 내가 같은 일을 하는 게 왜 지겹겠어. 행복하지. 안 그래?”
“오.”
척.
태수는 엄지를 내보이며 진심으로 감탄했다.
그런 태수의 반응에 매형이 머쓱한 표정으로 변했다.
“남의 문구 인용해서 하는 말인데 뭘 그렇게까지.”
“아니요. 진짜 좋은 말입니다. 반복에 지치지 않는 자가 승리한다라. 잘 써먹어야겠네요.”
“승리라는 게 이기는 게 다는 아니고.”
“물론 알죠.”
태수가 미소를 지어 보이자 매형이 슬쩍 대화를 마무리 지었다.
“당연히 잘 알겠지. 처남은 나보다 훨씬 똑똑한 사람이니까.”
“지식은 지혜가 아닙니다. 매형의 사회 경험을 제가 어떻게 쫓아갑니까.”
“나 체면 살려 주려고 온 거였어?”
“수현이가 보고 싶어서 왔는데, 없으니까 매형 칭찬하는 건데요.”
태수의 말에 매형이 작게 헛웃음을 지었다.
“좌우간 괜히 사람 칭찬이나 해서 기분 들뜨게 하고 말이야.”
“진심입니다. 항상 배우는 게 많은, 존경하는 형님이시기도 하니까요.”
“이거 내가 점심 사야 하는 분위긴데.”
“그 말씀을 기다렸습니다. 점심 먹고 놀다가 수현이 보고 저녁 먹고 가면 되겠네요.”
“그래. 오랜만에 얘기도 많이 하자고.”
매형이 반기자 태수가 슬쩍 물었다.
“할 일 많으신데 제가 눈치 없게 붙잡는 건 아니죠?”
“애들도 많이 늘어서 난 단골 차량만 수리하고 있어. 아차, 하던 건 마저 끝내야지. 조금만 놀고 있어.”
“걱정 마시고 다녀오십시오. 저 전화도 잘 받습니다.”
“그래그래. 좀 쉬고 있어.”
매형은 태수가 아무리 반가워도 할 일을 미루진 않았다.
태수는 오히려 그런 매형의 모습이 편했다. 자신 때문에 아무것도 못하고 매여 있다면 더 불편했다.
태수는 저녁 무렵 아이들과 함께 집으로 돌아왔다. 하교하는 아이들을 카센터로 불러 같이 저녁 먹고 돌아온 길이었다.
소파에 털썩 주저앉은 아이들이 숨을 길게 내쉬었다.
“후, 힘들었다.”
“나도 배불러 죽는 줄 알았어.”
그런 윤사라와 주영수의 모습을 태수가 어이없이 바라봤다.
“이젠 니들도 늙었구나.”
“늙다니요? 이건 삼촌이 하루 종일 진료 보고 저녁에 술 한잔하고 들어오신 거랑 똑같은 거라고요.”
“어떻게 비유가 그렇게 되는 건데?”
“저희는 학생이니까요.”
“아이고, 잘났다. 퍼져도 씻고 퍼져.”
태수가 잔소리를 하자 아이들이 삐쭉거리며 일어났다.
“네. 아, 그런데 삼촌.”
“왜?”
“이번 주에 시간 괜찮으세요? 선생님이 진로 상담 때문에 한번 오시라던데요.”
“아아, 벌써 그럴 때가 됐나? 가을이니까 때가 됐네. 오케이. 접수했어.”
“감사합니다.”
윤사라가 인사하자 태수가 방긋 미소를 지었다.
아이들이 각자 방으로 들어간 후였다.
태수는 잠시 생각하다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아무래도 윤사라의 담임 선생님을 뵈러 가는 김에 주영수의 담임 선생님도 한 번 봬야 할 거 같았다.
그런 생각을 하는 사이였다.
띵동.
초인종 소리가 들리자 태수가 의아한 얼굴로 일어나 현관으로 나갔다.
“누구세요?”
“납니다.”
“혁권 씨?”
놀란 태수가 문을 열자 정말 김혁권이 서 있었다. 그런데 커다란 가방을 하나 들고 있었다.
태수가 얼른 머리를 굴린 후 물었다.
“쫓겨나셨습니까?”
“그거 진담입니까?”
“지금 모습으로는 진담인데요.”
태수의 대답에 김혁권이 짧고 굵게 숨을 토해 낸 후 물었다.
“후, 그렇다고 치고. 나 좀 여기서 며칠 묵어도 됩니까?”
“그거야 뭐.”
“어째 들어오란 말도 안 해.”
“아차차! 들어오시죠.”
태수가 비켜서자 김혁권이 커다란 가방을 들고 집 안으로 들어왔다.
쿵.
가방을 대충 내려놓은 김혁권이 소파에 풀썩 앉자 태수가 음료수를 들고 다가갔다.
“그런데 갑자기 무슨 일이십니까?”
“며칠 전에 급작스럽게 생긴 처제하고 조카가 집으로 왔습니다.”
김혁권의 돌려친 말을 대번에 알아들은 태수가 얼른 물었다.
“집으로요?”
“그 집 부모가 병원에 찾아왔었어요.”
“어떻게 알고 왔답니까?”
태수의 물음에 김혁권이 심드렁하게 대답했다.
“뭘 어떻게 알고 찾아와. 뉴스에서 보고 찾아왔다던데.”
“줄배 탄 모습밖에 없었는데요.”
“부모라서 알아봤답니다. 그것도 한눈에.”
“저런.”
태수는 입 안이 썼다.